고속도로와 포철신화
박정희 불후의 업적으로 대국토개발사업인 경부고속도로건설을 들 수 있다.
당시는 국가재정도 열악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 남짓한 최빈국이었다.
430억 원의 공사비로 428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3년 안에 건설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 세계은행도 사업추진에 따른 차관지원을 꺼렸고 한일 청구권배상 자금을 전용하자는데 대하여 집권당인 공화당에서 조차 신중론을 폈다.
야당은 언론과 합세하여 극렬히 반대를 했고 또한 경부고속로건설 저지를 위해 길바닥에 수없이 드러눕기도 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해냈다.
'우리나라의 재원‘과‘우리나라의 기술‘과‘우리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건설사상‘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가장 짧은 시간’에 대역작을 만들어 놓았다. 부족한 인건비 때문에 군(軍)도 힘을 보탰다.
그렇게 박정희가 이룩한 쾌거였다.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한 배상 자금은 얼마였나?
한일회담 14년, 이승만-장면 정권에서 9년간 협상했고, 박정희 정권 5년 만에 타결을 보았다.
타결액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상업차관 3억 달러, 총 8억 달러였다.
정부 부문 청구액 5억 달러는 66년부터 75년까지 10년에 걸쳐 나눠 받되, 매년 무상 3,000만 달러, 유상 2,000만 달러 총 5,000만 달러 한도 내에서 양국 정부의 협의에 의해 받기로 했다.
유상 2억 달러에 대해서는 산업시설과 기계류 등 공공차관의 형태로 7년 거치 13년 분할 상환하되 금리는 연 3.5%가 적용됐다.
박정희는 이 돈을 어디에 썼나? 76년 당시 경제기획원 발간 '청구권자금백서'에 따르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55.6%가 포항제철 건설 등 광공업 투자에 쓰였다.
유상 2억 달러는 대부분 포항제철 등 기간산업과 경부고속도로 등 기간산업 시설에 사용됐다.
댐건설 발전소건설 등 간접자본 확충에도 전체 자금의 18%를 투입했다. 당시로서는 인구비례 주산업인 농업분야투자가 가장 적었다.
이 중 포항종합제철 건설에만 무상자금 3,080만 달러와 유상자금 8,868만 달러 등 총 1억1,948만 달러를 몰아줬다.
전체 청구권 자금의 23.9%에 이른다. 광공업용으로 도입된 원자재 1억3,282만 달러도 대부분 포철을 짓고 공장을 돌리는 데 썼다. 원자재까지 합치면 전체 청구권 자금의 절반 이상을 포철에 투자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썼나? 일본 정부로부터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나라는 아시아 5개국.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00년에 펴낸 ‘대일 청구권 자금의 활용사례 연구’에서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교수는 이들 5개국 중에서 한국이 청구자금을 최고로 잘 사용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자금 유출에 대해 엄청난 단속을 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는 군의 공병대 장교들이 대거 파견되어 날림공사와 자재 유출을 감시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청렴한 집단은 그래도 군인들이었다.
포항제철 공사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았다면 자금의 수십%가 유출됐을 것이고, 중국의 등소평까지도 그토록 부러워했던 오늘날의 포항제철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씨에게 특별한 마패를 만들어 주었다. 세도가들이 찾아와 여러 가지 압력을 넣거나 회유를 할 때마다 보여주면서 이권과 청탁을 물리치라는 것이었다. 박태준씨는 그 마패를 보여주면서 모든 이권과 청탁을 차단했다.
박정희 집권 초기에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3배 더 잘 살았지만, 지금은 한국이 이들보다 10-11배나 더 잘 산다.
북한보다는 36배 더 잘 산다. 이는 순전히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때문이었다.
이 통계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이룩한 신화였다.
소니신화의 아키오 모리타와 네쇼날의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모범을 보인 훌륭한 기업인으로 일본 국민의 신앙이지만 한국의 박정희는 세계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온갖 욕을 다 먹는다.
그 경부고속도로는 산업화의 혈맥이 되어 “대~한민국”의 국운을 상승시켜 놓았다.
오늘도 나는 박정희가 내 놓은 그 길을 달리고 있다.
시위꾼들에게 그토록 부대끼면서도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 그를 어찌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박정희는 참 바보였다.
아내마저도 지켜주지 못하고 비명에 가게 한 바보였다.
사랑하는 자식들도 끝까지 챙겨주지 못한 바보였다.
자신보다 국가를 고집한 바보였다.
박정희야 말로 ‘나‘ 아닌 ‘우리‘를 걱정하던 바보였다.
"잘 살아 보세!” 밖에 모르던 바보였다.
그 흔한 기념관 하나 얻지 못한 불쌍한 바보였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바보였다.
비록 자신이 이룩해 놓은 풍요를 향유하지 못하고 갔지만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를 다져 준 위대한 바보였다.
자료출처 : 호박넷 (내용 일부첨삭, 사진 편집함)
* 오늘 고박태준회장님을 사회장으로 보내드리면서 삼가 이 글을 올리며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