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에 설립된 간도국민회는 회장인 구춘선이 교회를 세운 하마탕에 본부를 두었다.
캐나다장로회 교힐들을 지회로 해서 세워진 간도국민회는 훈춘의 한민회를 통합하면서 영역이 넓어지자
본부를 궁벽한 오지 하마탕에서 연길에서 가까운 의란구 구룡평으로 옮겼다.
연길에서 하마탕까지 거리는 대략 100km이다.
그러나 후기 간도국민회 본부인 의란구 구룡평은 여러 면에서 하마탕보다 여건이 좋았다. 물론 의란구에도 1912년에 의란구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통이 좋았다.
연길에서 의란구 구룡평까지는 30km이다. 구룡평은 5km 떨어진 춘흥에서 부터 두 개의 야트막한 산이 좌우로 나란히 달리며 의란하를 사이에 두고 적당히 펼쳐져 있고 옛 의란구진 사무소가 있는 쪽은 산 아래에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유사시에 몸을 숨기기도 좋은 곳이었다.
구룡평은 산 아래 길게 늘어진 마을인데 간판에 나타난 대로 구룡이라고 불리는 입구 마을과
구룡평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다. 조선인들에 의해 개척된 조선인 촌락이다.
다리 위의 도로는 왕청으로 가는 고속도로이다.
구룡평에 있는 고가로 폐허가 되었다. 산 아래 있는 집으로 유사시에 피신하기 좋은 위치에 지어졌다.
구룡평에 있는 조선인 가옥들
배초구와 왕청으로 가는 구도로.
구룡평과 구룡 사이 산밑에 세워진 항일유격기지기념비
항일투쟁에서 희생한 열사기념비
의란구 출신의 항일투쟁 희생자 명단
구룡 조선족 교회
영웅 열사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