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사전정보로만 접한 것과 달리 실제로 상당히 묵직하고 진중한 메시지를 내포했다. 유별나다. 제목이 왜 그런가(?) 했더니, 암살범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내재된 진정한 의미는 '운명의 고리'인 것이다. 영화의 종반, 마지막 순간 알게 됐다는 주인공의 말과 함께 모든 것을 무(無)인 상태로 되돌릴 때까지, 잠시도 사고의 고리를 풀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가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전개된다.
불교의 '윤회설', 돌고 도는 '물레방아인생', '인과응보'의 수레바퀴, 선과 악의 '운명적 결정론' 등의 다각적인 논제들을 액션으로 포장한 전시물 속에 투여한 영화 <루퍼>(Looper)는 고차원적 개념의 공상과학소설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어둠의 손에서 자란 고아가 기나긴 세월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겪는 인간성에 대한 참회를 주제로, 방탕한 도시생활의 이면에 진정한 양심이 되살아난 순간, 그게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기회는 늘 공존했다는 걸 깨치게 해준다.
영화의 연출은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감독이 맡았다. 2044년과 2074년,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에는 두 배우가 한 사람으로 나온다. 조셉 고든 레빗(Joseph Gordon-Levitt)과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가 바로 그 주인공. 둘은 현재와 미래의 주인공 조 역할로 출연했다. 아들 시드 역에 피에르 가뇽(Pierce Gagnon)과 함께 극의 중차대한 변수로 작용하는 모친 세라 역에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의 등장도 반갑다.
영화는 '시간여행'을 개념적 토대로 조직범죄와 결부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근 미래, 조직폭력단은 누군가를 제거하고자 할 때 새로 고안된 장치를 이용한다. 그 수단은 그러나 매우 불법적인 시간여행 기술 장비다. 이 기계를 이용해 갱들은 제거대상을 과거로 보내고 과거엔 루퍼라 불리는 암살자들이 제거대상을 즉각 처리한다.
고든 레빗의 조이는 루퍼 중 하나다. 자기 임무를 충실히 잘 해왔다. 단, 이제 막 과거로 보내진 그의 최근 제물이 미래에서 온 자신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비평가들은 영화 <루퍼>를 지난 수년간 나온 공상과학영화들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젊은 감독 라이언 존슨은 새롭고 흥미진진한 영화적 식견을 가진 신진감독의 도래를 속히 전파했다. <루퍼>의 음악은 37세의 콜로라도 출신 작곡가 나단 존슨(Nathan Johnson)이 썼다.
감독의 사촌이다. 2000년대에 영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작업을 해왔다. 순회공연을 하는 밴드 더 시네마틱 언더그라운드(The Cinematic Underground)의 창립멤버로 활동한 나단은 이전 라이언의 두 작품 <브릭>(Brick)과 <브라더스 블룸>(The Brothers Bloom)의 스코어를 쓰기는 했지만, <루퍼>는 지금껏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끌 작품이자 야심만만 프로젝트. <루퍼>에 존슨은 표준적인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이용했다.
주로 현악과 피아노를 특징적인 악기로 편성하고, 거기에 사운드 샘플링 된 소리들과 가공된 퍼커션 효과음향을 대규모로 배합해 전체적인 사운드의 질감을 증폭시켰다. 쓰레기통 뚜껑부터 요동선풍기, 그리고 폴리염화비닐관을 두들겨 낸 총소리, 화제경보음까지 다양하게 만들어낸 소리들이 타악적 효과음으로 활용됐다. 그 결과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들이 심적인 동요를 유발하지만, 기묘하게 매우 흥미로운 음악적 요소들은 총체적으로 무작위적이고 황잡한 소리들의 충돌 같이 들리면서도 추진력 있고 색다른 매력을 준다.
특별한 기대감을 자극한다. 장면의 전개를 돕는 지시악절로 쓰인 대개의 곡들은 관현악 편성에 있어서 하나나 그 이상의 악기들이 결합돼 특색을 이룬다. 피아노와 현악기들, 현악기들과 금관악기, 그리고 세 가지 악기들이 표본화되고, 타악적인 효과음들과 조합된 스코어는 초자연적인 상상의 영감을 준다. 다수의 장면 지시적 큐들에서 스코어의 내면적인 리듬은 주된 원동력이다.
웅웅거리는 효과음향, 일관성 없는 타악적 소리들, 그리고 부조화와 생경한 소음들이 충돌해 두드러지지 않게 배음으로 결합돼 깔리면서 거기에 멜로디가 융합되는 식이다. 'A body that technically does not exist'의 오프닝, 괴상한 'Seth's tale', 맹렬히 기계적인 'Time machine',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의 'A new scar'와 같은 지사악절로서의 곡들, 그리고 확실히 이 스타일을 쓴 'The path was a circle'은 유쾌함 이상으로 더 흥미진진하지만 스코어에 특이한 소리의 분위기를 확고히 한다.
존슨이 창출해낸 일부 퍼커션 리듬은 복잡한 특징들 안에서 대단히 흥미롭고, 완강하고 활기찬 사운드의 전진운동으로 기능한다. 계속해서 영화를 앞으로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서의 실감을 더하는 것이다. 지시악절로 쓰인 최상의 곡들은 잠시라도 오케스트라가 주목을 받는 곳에서 나타나곤 한다. 금관악기가 활기 넘치게 터져 나오고 현악이 통격을 가하는 'A day in the life', 짙은 어둠과 두근거리는 심리적 요동이 교차하는 'Closing your loop', 음울하고 위협적인 'Run', 전율하는 'Hunting the past', 의외로 대단히 낭만적인 'Her face',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City sweep', 'Revelations'의 근사한 후반부, 그리고 기를 죽이는 'Showdown'과 같은 지시 곡들은 존슨이 가공 처리한 다량의 효과음향을 여전히 함유하고 있는데도 더 유기적인 강렬함을 전한다.
액션을 지시하는 큐(cue)로 쓰인 이 곡들에서 나타나는 관현악곡의 수준은 가히 최고 수준이다. 액션장면을 위해 쓴 음악의 구성요소들에선 과연 이 작품이 10편도 채 안 되는 영화에 음악을 쓴 작곡가의 실력이라고 쉬이 믿기 어려운 사운드를 접하게 된다. 모티프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피아노 주도의 테마는 'A life in a day'에서 처음으로 현저히 나타난 후 'Mining for memories', 'Revelations'의 뜻밖에 다정하고 친숙한 도입부, 대단히 훈훈하고 서정적으로 대단원을 장식하는 'Everything comes around'와 같은 큐들에서 되풀이된다.
하지만 대체로 강력한 주제적 선율이 있는 스코어를 원하는 이들에게 <루퍼>의 음악은 매력 반감일 수 있다. <루퍼>의 음악에서 '깜놀'하게 되는 면은 존슨이 창출한 전자음악적 파노라마(electronic soundscape)가 이치에 맞지 않는 반이상향의 미래를 전하는 데 쓰인 유효성에 대해 진가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실로 매우 특이한 인상을 주고 오케스트라와 구조적으로 적절히 융화된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 혼돈과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창성이나 기법, 양면에서 나단 존슨은 주목해야할 작곡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