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관의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동·서측 각각 2번째 협 칸의 전면 내진주를 이주(移柱)하여 내진주 앞쪽에 고주(高柱)로 처리하였다. 이 고주는 곧바로 종보를 받치고 있고 대량은 맞보로 고주에 결구하여 그 위에 퇴보를 걸었다. 전후면의 내진주와 외진주 사이에는 간단한 형태의 퇴량을 결구하였고 측면의 칸에는 2개의 충량을 두어 그 머리는 내부 대량위로 빠져나와 용두로 마감되었다. 기둥의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위에 짜여진 포작은 외부로는 출목 첨차가 있는 2출목의 다포계 수법을 보이고, 내부에서는 출목첨차를 생략하고 살미로만 중첩되게 짜서 익공계 포작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출목에 사용된 첨차에는 화려한 연봉 등의 장식을 가미하였고 특히 정면 어칸 기둥과 우주에는 용머리 장식의 익초공을 사용하였다.
각 주칸에는 1구씩의 화려한 화반을 배열하여 건물의 입면공간을 살려주고 있으며, 내·외부 및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문양도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또한 건물 내부공간을 크게 하기 위하여 건물 양측의 기둥인 고주(高柱)를 뒤로 옮기는 수법을 사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리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양 측면에는 2개의 충량(측면보)을 걸어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18세기 초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객사의 용도로 이용된 진남관은 1959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후에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진남관 뜰 안에 세워져 있는 석인도 유명하다.
돌로 만든 사람의 모습이다. 여수는 임진왜란 때 해전의 격전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전라좌수영으로 있던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그와 인연이 깊은 유물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드느라 한창일 때 왜구의 공격이 심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7개의 석인(돌사람)을 만들어 사람처럼 세워 놓았는데, 이로써 적의 눈을 속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한다.
원래의 7기 중에서 지금은 이것 하나만 남아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손은 팔짱을 꼈으며 그 위로 도포자락이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시선은 유유히 적을 바라다보는 듯하다. 비록 전하는 이야기이긴 하나, 임진왜란과 관련된 소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오동도
여수의 중심가에서 약 10분쯤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오동도 입구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만큼 운치가 있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동백을 이야기하자면 항상 가장 먼저가 여수 오동도다. 섬 전체를 이루고 있는 3천여그루의 동백나무에선 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3월이면 만개한다. 오동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자산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향일암과 더불어 한려수도 서쪽 관광루트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오동도는 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방파제 입구에서 동백열차를 타거나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에 들어서면 방파제 끝에서 중앙광장으로 연결된 큰길 옆으로 오동도 정상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나 있다.
오동도에는 두개의 전설이 전해진다. 고려 말. 오동도에 오동열매를 따먹으러 날아든 봉황을 본 신돈이 오동도에 있는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내게 했다는 것과, 아리따운 한 여인이 도적떼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벼랑 창파에 몸을 던졌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오동도 기슭에 정성껏 무덤을 지었는데 북풍한설이 내리는 그해 겨울부터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시누대가 돋아났단다. 그런 연유로 동백꽃을 '여심화' 라로도 부른다는 전설이다.
전설비를 지나면 모형거북선이 광장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뒤로는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또 하나의 방파제를 만나다. 이곳의 유람선선착장에서 오동도를 일주하거나 돌산대교, 향일암, 금오열도를 유람할 수 있는 유람선이 출발한다. 동쪽의 광양만과 남해바다로 쭉 뻗어나간 이곳 방파제는 낚시 포인트로 유명하다.
중앙광장에서 섬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시누대 터널을 지나 섬 외곽을 도는 순환산책로로 나뉜다. 오동도에는 동백과 더불어 시누대가 곳곳에 자라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이순신이 군사를 조련하고 시누대를 잘라 화살로 사용했다고 한다. 시누대 터널을 지나면 후박나무, 동백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고, 오동도에서 가장 넓고 길게 바다로 나간 갯바위가 나오고 곧, 하얀 등대가 서 있는 오동도 정상에 닿는다.
오동도 안에 자리한 테마공원에는 25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등대가 있고, 음악 분수공원, 맨발공원이 있다. 1952년 처음으로 불빛을 밝힌 오동 등대는 여수항과 광양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은 물론 해마다 20여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2.5km에 이르는 자연 숲 터널식 산책로는 동백이 지는 날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걷기에 좋은 장소이다. 미로 같은 산책길 옆으로 펼쳐진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바위와 병풍바위와 소라바위, 지붕바위, 코끼리 바위 등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겨울부터 봄까지 4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발그레한 볼을 붉히는 오동도. 2011년 여수시는 오동도 산책로에 깔려 있던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을 모두 걷어내고, 인공 황톳길로 이루어진 웰빙 트레킹 코스를 조성해 찾는 이들에게 한층 더 기쁨을 주고 있다.
향일암
해마다 세밑이면 마음에 와 닿은 일출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향일암에 오른다. 새아침, 새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염원하는 것일까. 여수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와 함께 희망을 염원하며 하늘로 띄어 보낸다. 가족의 건강, 연인과 사랑의 결실, 혹은 자식들의 무탈한 앞날을 바라며 소원하는 희망은 생각보다 소소하면서도 소박하지만 소박해서 오히려 더욱 간절하다. 밤이면 더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돌산대교를 건너 향일암을 향해가는 길은 아름답다.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한 없이 오르는 길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는 길옆, 바다위에는 그림처럼 배 한 척 둥둥 떠 있다.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인 향일암(向日庵)은 돌산도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때 원통암( 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다. 고려시대에는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鼇庵)으로 개칭하여 불리어 오다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아름다워 조선 숙종41년(1715년)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命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주차장을 지나 거의 40도에 가까운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온통 초록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나무 잎 새들을 만난다. 햇빛에 반짝이는 싱그러움이 향일암에 대한 신비를 더하게 한다. 적당히 다리가 아파올 즈음이 되면 향일암으로 오르는 석문(石門)이 앞을 가로 막는다. 하늘을 향하여 가장 낮춘 몸이 되고 머리를 숙여야만 지나 갈수 있는 석문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께 이르는 길. 새날 새로운 해맞이를 하러가는 길은 그만큼의 깊이로 다가가서 겸손함을 배우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손수건만한 햇볕이 스며드는 일주문 같은 첫 석문을 지나면 다시 돌계단을 오르고, 뒤로는 금오산, 앞으로는 돌산의 푸른 바다와 하늘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여행의 덤이다.
남도에서 향일암처럼 해맞이로 유명한 곳도 드물다. 일출은 물론 일몰도 볼 수 있는 특별한 곳. 기암절벽 위에서 숨을 죽이면 바다의 표면 너머로 해가 진다. 아침이 오면 해는 바다를 뚫고 다시 솟는다.
향일암은 금오산의 기암괴석 절벽에 위치해 있다. 산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쇠 금(金) 큰바다거북 오(鰲)'자를 써서 금오산 또, 산 전체를 이루는 암석들 대부분이 거북이 등 문양을 닮아 향일암을 금오암, 또는 거북의 영이 서린 암자인 영구암이라고도 한다. 파도가 일렁이는 풍랑이라도 심하게 부는 날이면 거북이가 바다를 헤엄쳐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다.
좁은 바위틈으로 만들어진 해탈 문을 지나 대웅전에 오르는 길. 그곳을 지나면 속세의 모든 번뇌는 끊어지는 것일까. 숨이 차도록 향일암의 계단으로 오르고 또 오르면 그동안 어깨에 지고 있던 삶의 무거운 번뇌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관음전에 올라 반짝이는 남해의 푸른 빛으로 가득한 바다와 솟아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향일암은 해안가 수직 절벽위에 건립되었으며, 기암절벽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과 잘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2009년 12월 화재가 발생해서 대웅전을 비롯한 주변 건물이 모두 소실됐으나 재건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돌산대교
여수의 아름다움은 환상적인 밤의 야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항 여수는 낮보다 더 아름다운 화려한 밤 풍경에 넋을 놓게 한다. 여수 야경의 백미는 돌산대교이다. 시내와 돌산도를 잇는 길은 450m의 사장교이다. 돌산대교는 여수시봉산동과 여수시돌산읍 우두리 사이에 놓여진 연륙교이다. 길이 450m의 미국 트랜스 아시아사(社)와 한국 종합개발공사가 설계하고, 대림산업과 삼성중공업이 시공을 맡아 1980년 12월에 착공하여 198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이 다리로 연결된 여수 앞바다는 조류속도가 초속 3m(조류속도)나 되고, 여수국가산업단지와 여수항에 출입하는 대형선박의 주요항로이기 때문에 양쪽 해안에 높이 62m의 강철교탑(鋼鐵橋塔) 1개씩을 세우고, 56∼87mm 강철 케이블 28개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사장교 형식을 취해, 수면 위 높이가 20 m나 된다.
돌산공원에 오르면 다리와 시내 야경까지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들이 보여주는 군무 또한 아름답다. 밤길을 여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 오가는 배들의 움직임은 바라보는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자신을 이동시키게 하기에 충분하다.
교각에 비추는 조명 색깔이 초록에서 노랑, 보라, 빨강 등 몇 초마다 계속 바뀐다. 선명하면서도 낭만적인 이 불빛들은 바다와 섬 그리고 여수항과 조화를 이뤄 바다의 전망이 더욱 아름답다. 불빛이 비치는 바다가 그립다면 돌산대교로 가볼 일이다. 여수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밤이 되면 교각 기둥에서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전망 좋은 분위기 있는 해안가 카페가 많아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좋다.
돌산대교를 건너면 바로 돌산이다. 돌산은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이었다. 지금은 돌산갓으로 유명해졌지만 한때는 보리와 어업이 주된 수입원이었던 곳이다.야경을 즐기기 전에 무술목이나 방죽포 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해변과 모래를 자랑하고 있으며 조용한 산사로 대표적인 은적사도 찾아가 볼 만하다. 무술목은 몽돌이 많은 해수욕장이며 방죽포 해수욕장은 잘 어우러진 해송이 눈길을 당긴다. 마지막으로 닿는 곳인 향일암 가는 길의 드라이브 코스는 무조건 환상이다. 노을이 지는 해변을 바다를 끼고 달리며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소를 정하지 않고 무조건 가고, 배경을 어디에 두던 상관없이 무조건 찍고, 어느 집이나 들어가 무조건 먹어도 실패할 확률이 적은 여수의 아름다움은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지나온 기억의 되새김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곳. 바로 여수이다.
거문도 등대
섬 여행은 언제 찾아가도 낭만적이다. 더구나 거문도는 아름다운 비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의 역사까지 함께 되새김해볼 수 있는 모험의 섬이어서 더 매력이 넘친다. 더구나 배에서 내려 만나는 첫 풍경은 여느 섬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을 깊숙이 요새처럼 터져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본식 건물들을 많이 만난다. 영국 해군들이 이 섬을 점령했을 때, 학문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 '거문(巨文)'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풍경이 왜도(倭島)나, 이(夷)섬 이라고 하는 말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100년 가까이 된 등대가 있고, 영국군들의 묘지가 있는 여수 거문도. 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거문도는 고도·동도·서도와 삼부도·백도 군도를 아우르는 섬을 일컫는다. 본섬은 동도·서도·고도 등 세 섬으로 이뤄져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본섬은 그야말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새'다. 누구든지 매서운 풍랑이 불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와 쉬라는 듯 두 섬이 팔을 뻗어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거문도는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러시아·영국·미국·일본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위치한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의 세 섬으로 구성되며,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태풍이나 폭풍이라도 불면 바위지대를 파도가 넘나든다고 해서 수월산(水越山)이라 불렸던 서도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흐드러지는 아름나무 나무로 이루어진 동백꽃 길이다. 섬에 자라는 나무의 70%는 동백나무이다. 거문도를 동백섬으로 부르는 것도 이 길 때문이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기도 하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만나는 기암절벽 위의 하얀 등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둥그런 원통형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낭만적이다. 동양최대의 프리즘 렌즈를 자랑하는 거문도의 등대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적색과 백색이 15초마다 교차한다. 1905년에 처음 불을 밝힌 이래 지금까지 등대지기가 안개가 심한 날은 무적신호를 보내 안전 항해를 돕고 있다.
해양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옛날, 등대는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빛이자 바로 생명선이었다. 거문도에 등대를 세운 이유는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그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1885년 거문도를 점령해 버렸다. 영국군 병사들은 23개월 동안 이곳에 주둔했다. 거문도에는 지금도 영국군 수병 묘 3기가 남아 있다. 당시 영국군은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 우리의 역사가 보이는 섬인 거문도. 그 안에 동그랗고 하얗게 빛나는 등대가 섬을 굳게 지키고 있다. 누가 노랫말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문도의 등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노래도 있다. 등대지기의 회환과 외로움, 안개 부산하고 풍랑이 이는 날,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누구보다도 소원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이다.
출렁출렁 파도는 삼산을 울리고 남쪽에는 희미한 한라산/동백꽃이 만발한 수월산 밑에 여기를 찾아오라 거문도 등대//반짝반짝 비치는 등대의 불은 15초 간격 두고 일섬광 강약 교섬광/ 어두운 밤에 앞 못 보는 길 잃은 배야 여기가 거문도다 길을 찾아라//붕붕붕붕 울리는 무신호 기적 40초 간격 두고 5초붑니다/안개 끼어 앞 못 보는 눈 잃은 배야 여기가 거문도다 조심하여라//하하하하 웃음이 끊임이 없고 직원 가족 친절히 일가족처럼/ 업무에는 충실히 힘을 다하니 갈매기야 전해다오 거문도 소식 - 거문도 등대가
등대 옆 건물은 예전에는 등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였다. 창을 통해 보이는 거문도의 풍광을 한 눈에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해 지금은 거문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가장 인기 있는 근사한 공간인 숙박 장소로 활용 중이다. 거문도 등대로 연락하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쉼터의 등대, 삶의 등대가 되고 있다.
거문도 서도마을 언덕에 위치한 인어 ‘신지끼’의 전설이 살아 흐르는 인어해양공원에는 4.5m 높이의 인어상이 세워져 있다. 거문도 주민들에 따르면 새벽 어스름한 달빛과 물살 위에서 희미하게 비친 인어는 몸 윗부분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여인이었고, 아랫부분은 긴 꼬리가 백합처럼 고운 물고기였다고. 해안 절벽 바위에 자주 나타나 풍랑이 예상되는 날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돌을 던지거나 휘파람, 혹은 노래를 불러 나가지 못하도록 일러줘 어민들을 보호했다고 한다. 인어상 주변에는 돌담장과 바다엔 자연석을 깔아 만든 예쁜 산책로(1.5㎞)가 있다. 인어해양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녹산등대로 접어 든다. 이생진 시인이 거문도를 향한 마음을 표현한 시가 등대가는 길 양옆으로 쓰여져 외로운 등대가 낭만속으로 녹아든다.
거문도 일대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인 백도는 거문도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에 있으며 다도해국립해상공원일뿐더러 국가명승지 제7호다. 백도는 섬 전체가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백도라 했다는 이야기와 섬이 100개에서 하나 모자라 일백 백(百)에서 한 획(一)을 빼 백도(白島)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39개의 돌섬으로 이뤄져 있다.
슬프지만 흥미로운 전설도 지니고 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이곳에 머물렀는데 100명의 신하를 내려 보내도 올라오지 않았다. 더구나, 신하들마저 돌아갈 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용궁궁녀들과 놀고 있는 것을 안 옥황상제는 화가 나서 아들과 신하들을 돌로 변하게 했다는 전설을 백도를 바라보며 상상에 빠져보는 것도 백도만이 주는 환상이다. 백도의 갖가지 기암괴석과 수많은 세월동안 몰아치는 파도로 인해 형성된 절벽과 무수한 타원형의 해안가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환경보호와 생태보전을 위해 사람의 접근을 금지해 온 ‘금단의 섬’이기도 했다. 거문항을 출발한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의 항해를 하다보면 백도는 놀라울 만큼의 비경으로 하늘과 맞닿아 그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등대섬이 있는 상백도와 병풍섬, 곰보섬이 서로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멀리 하백도가 흰 돌기둥을 무수하게 세워두고 힘겹게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것도 보인다.
유람선이 섬에 다다를 즈음에는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린다. 강제를 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동안 거기 한 자리에서 버티고 있으면서 온갖 풍광을 이겨내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가지고 있는 인내심에서 비롯된 탄성일 것이다. 만약 황혼녘에 백도에 당도했다면 황금으로 만든 것처럼 온통 노랗게 빛나고 있는 상백도의 상암, 중암, 하암 바위덩어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왕관처럼 황금빛으로 깊게 물들어 파도와 함께 흔들리는 세 섬을 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이다. 운이 좋은 날은 노랗다 못해 붉게 물들어 보이는 원추리가 꽃대를 올리고 있는 풍성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풍경 위로 봉우리 높이 솟아있는 하얀 등대의 온 몸을 송두리째 볼 수도 있다.
형제 바위는 백도의 전설에서 나오는 신하들 중의 형제가 숨어서 옥황상제의 꾸지람을 듣다가 형제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어 한 번 더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한 형상이다. 본 섬의 모퉁이를 돌아 만나는 노적바위는 옥황상제의 아들이 신하들과 먹을 양식을 쌓아놓은 바위라는 설명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커다란 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래 아주 느리게 평생을 파도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거북섬은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선물해 주기에 충분하다. 낙타섬을 올려다보면 더 탄성이 나온다. 자연의 놀랍고 신비스러운 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만물상이 여기에 있고 누가 보아도 당연한 성모마리아 상도 눈에 보인다.
백도 유람은 날씨가 좋아야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그만큼의 운치를 보여주는 곳이 또 백도의 풍광과 신지끼의 느낌이다. 유람도중에 풍랑이 불면 어김없이 나타나 유람선을 쫓아준다는 인어이야기도 흥미가 쏠쏠하다. 유람선이 거문항에 안전하게 입항하고 나면 비로소 바람이 불고 풍랑이 격해졌다고 뱃사람들이 전할 정도로 신지끼는 두려우면서도 신비로운 존재였다. 해풍과 풍랑으로 더 아름다운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백도는 자연이 만든 가장 큰 예술 작품임이 틀림없다. 해풍 따라 코끝으로 전해져오는 풍란 향기 더듬어 노를 저어가 볼까.
사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복잡하고 미온한 기계조각도 하지 않는다. 배에 몸을 맡기고 두 눈은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흔적을 향한 타이머가 맞춰지고 거슬러 간 시간이 배와 맞닿아지면 두 발은 공룡이 살았던 고대의 시대에 당도한다. 평평한 바위 위에 각인되어 바닷물이 고여 있는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길게 걸어본다. 공룡의 발자국 위로 발을 내디뎌 포개보며 이미 사라져버린 공룡의 숨결과 체취를 따라가 본다. 공룡의 발길은 길게 뻗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이미 사라져버렸다고 믿었던 공룡들이 무리를 지어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며 올라올 것만 같은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도(沙島)는 신비의 타임로드가 펼쳐지는 섬이다. '바다 한 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고 사도라 불리는 이곳은 여수가 거느린 수많은 섬들 중 하나로 해양수산청이 선정한 '여수 해양관광 8경'에 꼽힌 명성을 자랑한다. 또, 현대판 모세의 기적인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사도는 본도, 추도, 긴도, 시루섬, 나끝, 연목, 진대성의 일곱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이면 7개의 섬이 'ㄷ'자로 이루어지는 모세의 기적 같은 바닷물의 갈라짐 현상이 장관이다. 1년 중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이때, 마을 사람들은 바다가 갈라져 드러난 뻘에서 낙지, 해삼, 개불, 고둥 등을 줍는다. 사도가 이곳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축복이자 선물이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절벽의 지층을 바라보며 수 만 년이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색색이 다른 빛깔로 층층이 쌓여져 있는 퇴적층이 상상도 하지 못할 먼 후대인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자연의 말할 수 없는 위대함이 바람결에 실려 와 머리칼을 흩날리게 하며 말을 걸어온다. 먼 고대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다만 형태와 모습을 달리 했을 뿐. 너희들의 가슴 안에 뜨거운 기억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야. 사실은 이곳이 바닷물이 출렁이는 섬이 아닌 공룡들이 살았던 육지였으며, 땅이 뒤틀리고 솟아오르거나, 내려 앉아 공룡들은 사라지고 발자국만 남아있다는 것을 해안가의 바위 위에선명한 발자국들로 이해를 도와준다.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닮은 얼굴바위가 노을 배경으로 사도를 찾은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눈썹이 굵고 콧대와 입술 선이 분명한 사람이다. 수 만 년을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사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만 같아 잠시 숙연해진다.
가족단위 쉼터로 적당한 양면 해수욕장과 아이들에게 고대학습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우수성은 선착장에 자리하고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모형이 호기심 유발과 함께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음을 말해준다. 작고 조용한 해수욕장의 모래 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바로 눈앞으로 한없이 흐르며 쏟아져 내리는 한 무더기의 별들. 어린 시절 외가의 툇마루에 누워 뒷마당의 댓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던 별무더기로 인해 먹먹하도록 가슴 무너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보면 볼수록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곳 역시 사도이다.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증거이다. 무엇보다도 사도의 밤 풍경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물해준다. 돌담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의 향기와, 금방이라도 툭.툭. 지상으로 화라락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 좌·우에 위치한 손바닥 만 한 크기의 아담한 양면 해수욕장 등이 마음마저 편안하게 한다.
영취산 진달래
어렸을 때는 꽃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봄이면 여기저기서 피는 꽃들을 찾아가며 꽃구경을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온 산이 불이라도 난 것처럼 온통 철쭉으로 붉어져 버린 산을 보며 비로소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마음의 평안, 그리고 그 안에서 얻어지는 안식으로 인해 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해마다 피었다지는 꽃들이 같은 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즈음에야 비로소 자연의 이치에 개안이 되어간다.
봄이면 꽃을 찾아 꽃을 찾아 길을 나선다. 전국의 철쭉제를 찾아가지만 그중에서 단연 으뜸은 여수의 영취산에 피는 진달래꽃이다. 온 산이 붉게 물든 가슴 먹먹하도록 와 닿는 그 느낌은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직접 산을 올라야만 느낄 수가 있다. 산을 오르다보면 진달래꽃이 뿜어내는 붉고 연한 색깔과 꽃잎이 그대로 온 몸에 물이 들 것만 같다. 굳이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를 읊조리지 않아도 진달래꽃이 주는 아프도록 선연한 빛깔의 의미를 알겠다.
진달래가 아름다운 산, 매년 4월 초가 되면 영취산은 온통 진분홍 진달래꽃 밭이 된다. 키가 낮은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영취산 굽이굽이 진달래꽃이 만개한다. 특히 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꽃으로 거의 뒤덮여 마치 산이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연분홍 꽃으로 가득한 산을 오르다 보면 이 세상의 길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참꽃, 두견화, 안산홍, 귀촉화 이 모두가 진달래를 일컫는 이름이다. 햇빛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영취산을 오르는 길목마다 분홍빛 꽃들이 솟아나 꽃망울을 펼치기 시작한다.
햇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진달래 군락이 있는 곳은 키 큰 나무들이 없어 더 장엄한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다. 최고의 진달래꽃 군락지는 바위 봉우리 부근과 정상아래, 진래봉 부근이며 이 군락지를 즐길 수 있는 등산로는 상암초등학교에서 시작해 450m 봉을 거쳐 봉우제와, 영취산 정상을 오른 뒤 흥국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영취산은 정상까지 1시간에서 3시간까지 오를 수 있는 다양한 등산로가 있다. 탁 트인 정상에 서면 여수의 모든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여수산단에서 부터 멀리는 바다로 이어지는 남해의 풍경까지 가장 정확하고 가장 폭넓게 볼 수 있는 여수의 풍경이다.
여수를 대표하는 영취산의 진달래 축제는 진달래가 만발하는 매년 4월 첫째 주에 열린다. 나라의 평화와 시민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사진촬영대회, 진달래 아가씨 선발대회, 향토음식 축제, 우도 풍물굿, 농악경연대회, 시화전, 압화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영취산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취산은 예로부터 지역민들에게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되어 기우제나 치성을 드렸던 곳이다. 영험한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전통기원 도량이었던 금성대가 있고 그 아래 기도도량인 도솔암이 현재까지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진달래 축제가 보고 내려오는 길목에 기도도량에 들러서 다가올 여름과 가을, 겨울의 안녕을 빌어본다면 어떨까.
여수국가 산업단지
진달래가 만개한 영취산에서 내려다보면 여수의 심장인 여수국가산업단지가 보인다. 바다가 바로 인접한 산업단지이다. 누군가 그 도시의 활력을 알고 싶으면 가장 힘차게 24시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산업단지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광양만과 함께하는 석유화학단지는 단지 산업화되어가는 공장의 삭막함만을 보여주지 않아 더 눈길을 끈다. 탁 트인 바다와 산업단지. 그리고 밤이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의 화려한 불빛. 여수10경에 굳이 산업단지가 선정된 이유가 아닐까.
여수국가산업단지는 호남정유공장이 터를 닦고 세워지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석유화학공업단지로 성장하는 발판을 닦았다. 뒤를 이어 남해화학, 메탄올공장 등을 비롯해 비금속, 기계, 전기전자, 비제조업 등이 자리를 잡고 지원시설로는 호남화력발전소와 여수화력발전소, GS칼텍스 부두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는 조립, 금속관련, 제일모직, 삼남석유화학, 한국바스프 등 주요 화학 기업들이 여수산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장 건설을 이전, 이 지역은 여수를 대표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특히 앞으로는 섬진강 하구에 형성된 광양만이 있어 남해안 어족의 산란지역으로 일컬어지는 황금어장이기도 했다. 공장이 형성될 즈음에 선사시대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어 사장될 유물들이 구제, 발굴되었다. 적량동, 평어동, 월래동 등의 지역에서는 고인돌 뿐 아니라 강력한 권력이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비파형 청동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음을 알려주는 소옥, 대롱옥, 곱은옥 등의 장신구가 발굴되기도 하였으며, 돌칼, 돌창, 돌화살촉, 민무늬토기 등의 생활도구가 출토됨으로서 이 지역이 선사시대부터 유리한 주거지였으며, 더불어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볍씨자국이 있는 토기는 일찍부터 쌀농사를 지었음을 알게 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산단과 인접한 광양만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전승지 중 한 곳인 관음포대첩이 있었던 곳이며 노량해전으로 알려진 충무공의 마지막 전투도 바로 이 바다에서 있었던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늘어나는 물류의 원활한 운송과 함께 물류비용을 감소하며, 여수세계박람회를 찾아오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산단과 묘도를 거쳐 광양시까지 연결하는 여수국가산업단지 진입도로를 건설 중이다. 또, 여수국가산업단지는 '미래형 생태산업단지' 구축을 통해 친환경 도시로의 추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태산업단지란 먹이사슬로 공생하는 자연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원리를 산업에 적용시킨 개념으로 에너지, 용수, 물질 등을 포괄하는 환경 및, 자원문제를 다루는데 협업을 통해 환경적, 경제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조업 및 서비스 업체들의 공동체이다.
여수국가산단을 걷다가 만나는 흥미로움은 또 있다. 바로 산단 안에 위치해 있는 흥국사이다. 흥국사는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을 염원하는 사찰로 유명하다. 대웅전을 비롯한 6개의 보물과 다양한 문화재가 관람의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며, 대웅전 문짝마다 달려있는 큰 문고리를 만지면 삼악도를 면한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 절을 지은 스님들이 1000일 기도를 하며 흥국사를 찾아오는 중생구제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니 흥국사의 큰 문고리를 꼭 만져보도록 하자. 여수를 찾은 더 큰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만 갯벌
여자만 갯벌의 노을은 바다에서 보는 노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물한다. 물이 빠진 갯벌과 그 위로 느껴지는 바다의 쓸쓸함. 어촌의 작고 소박한 마을의 지붕과 다시 그 위에 붉게 드리워지는 노을은 따뜻함에 애잔함까지 섞여 노을의 붉은 빛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자연과 사람이 숨 쉬는 곳, '여자만'은 순천, 여수, 보성, 벌교를 이어주는 큰 바다이다. 갯벌 위로 드리워진 노을을 따라 모래 위를 길게 걷는다. 모래도 사람도 바람도 모두 붉게 물들어가며 한 몸이 되어간다. 가장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시간이 이곳에서는 노을과 함께 충분히 가능하다.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즐비하다. 제각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외관이 노을 속에서 더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앉아서 풍경으로 해안도로에서 느껴지는 바다냄새와 바다냄새 물씬한 바람, 한없이 물들어가는 붉은 노을의 경관이 환상적이다.
여자만(汝自灣)은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바다로 드넓은 갯벌과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한다. 순천만으로 더 잘 알려진 그 바다를 여수사람들은 굳이 여자만으로 부른다. 바다 한가운데에 여자도(汝自島)로 불리는 외딴섬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만은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지루함을 덜어주고, 남도의 갯벌 위로 맞이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가장 아름다운 색조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가을이면 여자만 해넘이 축제도 열린다. 하늘과 갯벌을 붉게 채색한 해가 여자만 너머 고흥반도로 지면서 연출하는 황홀한 낙조는 여자만의 해넘이를 감상하는 최고의 포인트로 각광받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곳곳에 해수욕장이 줄을 이어 있고 주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찻집을 겸한 레스토랑이 많아 가족 단위의 드라이브 코스나 피서지로 제격이다.
거문도
100년 가까이 된 등대가 있고, 영국군들의 묘지가 있는 여수 거문도. 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거문도는 고도·동도·서도와 삼부도·백도 군도를 아우르는 섬. 본섬은 동도·서도·고도 등 세 섬으로 이뤄져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렸다. 본섬은 그야말로 누군가 만들어 놓은 ‘요새’다. 풍랑 불면 들어오라는 듯 두 섬이 팔을 뻗어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항상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러시아·영국·미국·일본 등 열강이 탐냈던 천혜의 항구였다.
태풍이나 폭풍이라도 불면 바위지대를 파도가 넘나든다고 해서 수월산(水越山)이라 불렸던 동도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동백꽃길. 거문도를 동백섬으로 부르는 것도 이 길 때문이다. 섬 에 자라는 나무의 70%는 동백나무다.
1905년 세워진 거문도 등대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1885년 4월15일 거문도를 점령해 버렸다. 영국군 병사들은 23개월 동안 이곳에 주둔했다. 거문도에는 지금도 영국군 수병 묘 3기가 남아 있다. 당시 영국군은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 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
거문도란 이름도 구한말에 생겼다. 거문도(巨文島)란 학문이 크다는 뜻.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청나라 수군제독 정여창이 이곳을 찾았을 때 거문도 사람들의 학식이 높은 것에 감탄해서 ‘거문’(巨文)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전복
여수의 역사책 <호좌수영지>에 따르면 잠수군을 두고 전복을 한양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여수 지역은 전복이 유명하다. 연체동물로 복족류에 속하며 각피는 흑갈색이다. 서식처는 수심 5~50m 이며 섬 지방이나 암초에 있다. 고서에 복어, 석결명, 구공라 등이라고 불렸다. 구입 시 빛깔이 좋고 탄력이 있는 것이 좋다.
■ 해저 케이블 육양점
우리나라의 국제 전신 전화가 거문도를 무단 점령한 영국군에 의해 두 번째로 개설 되었다. 1885년 거문도-상하이까지 연결 했고 1887년 영국군이 철수할 때 철폐되었다. 1904년에는 일본 사세보-거문도-중국 따롄, 같은 해 사세보-거문도-철원/거문도-고흥에 건설되었으나 해방 이후 폐쇄되어 현재 거문리에 흔적만 남아 있다.
■ 선바위
서도리 내에서 득남과 다산을 기원하는 성 상징물이다. 바위 기질이 기운차고 우람하다. 아궁이에서 아침밥을 할 적에는 고개만 돌려도 바라보이는 선바위 기운을 입으려고 치마 가랑이를 선바위 쪽으로 돌리고 앉아서 밥을 지었다, 는 구전 이야기가 내려온다
■ 코바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와 덕촌리 사이에 있는 서도 서쪽 해안에서 볼 수 있는 기암이다. 별칭 비암곶이다. 코바위 외에도 선바위(노인암), 배치바위 등이 있다. 코바위 오른쪽 직벽은 감성돔 낚시 포인트이다.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다.
■ 대매지끝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동도 섬에 위치한다. 대매지끝이란 해안의 작은 돌출부를 일컫는 말이다. 대매지끝 외에도 외탄갑, 다렝이끝, 취끝 등이 있다. 돌출부가 많으므로 전체적으로 해안선이 복잡하다. 주변 경관으로 동도 남쪽 해안에서 해식애를 볼 수 있다.
■ 불탄봉
전라남도 여수시 거문도(서도)의 산봉우리이다. 거문도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산봉우리로 높이가 약 195m이다. 이름 그대로 산이 불탔다하여 불탄봉으로 불린다. 덕촌리 마을회관 쪽에 등산로 입구가 있으며 동백나무 터널이 유명하고 보로동으로 이어진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에 의해 축조된 군사 시설 T자형 벙커가 남아 있다.</SPAN>
■ 박계홍 불망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에 위치해 있다.
■ 원세학 영세불망비
여수시 삼산면 덕촌리 거문중학교 정문에 위치하고 있다. 원세학은 일제강점기시대에 항일운동가였다. 1858년 2월 19일에 삼산면 덕촌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주수문장을 지냈다. 유배를 왔던 임병찬과 함께 거문도 어린이들의 교육을 도왔다. 삼산면 제 5대 면장을 지냈고 덕촌초교 설립에 공로했다. 1938년 11월 22일 사망 하였다.
■ 해녀
바다 속에 들어가 해조류와 패류를 캐는 여자를 뜻한다. 별칭 잠녀, 잠수이다. 산소호흡기 없이 나잠어법으로 수심 10m 이내 바다로 잠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소라, 전복, 미역, 톳 등을 캔다. 장비로 망사리, 태왁, 빗창, 호미, 갈갱이, 갈쿠리, 소살, 물수건, 눈, 잠수복 등이 있다.
■ 울물통
서도 음달산 237 언덕에 대략 50평 되는 못을 가리킨다. 둘레 8m, 길이 6m인 용물통이 바위 한 가운데 있다. 구전에 한라산 백록담과 통한다는 못에 용이 용물통 속으로 들어가 제주도 바닷가에서 죽어 승천했다고 한다.
■ 박옥규 제독 송덕비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덕촌리에 위치해 있다. 박옥규는 제 2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1901년에 태어나 1971년에 별세했다. 1932년 일본 유학 후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해 선장을 지내다 조선선박운항통제주식회사 선박감독관이 되었고, 1954년 6월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태극무공·충무무공·화랑무공·영국 은성무공 훈장을 받았다.
■ 음달산
서도 음달산 정상 근처에 일본 군사 시설물 잔재가 남아 있다. 일본군이 거문도 주민 100여명 및 함경도 출신 기술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1944년 후반부터 1945년 광복 직전까지 건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돌산도
한려수도의 시작점인 여수반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큰 섬이고 돌산대교를 지나면 돌산공원, 무술목전적지, 방죽포 해수욕장을 포함한 아름다운 해수욕장, 그리고 향일암, 은적사 등 명승 유적지가 많으며 특히 향일암은 우리나라에서 빼어난 절로 손꼽힌다. 돌산도는 총 60여km의 해안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어 드라이브 코스, 낙조 감상 포인트로 유명하다. 해안도로를 타고 일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넉넉히 2시간은 걸린다. 돌산도에서만 자라는 돌산갓은 독특한 향과 맛이 일품이어서 찾는 이가 많다.
■ 둔전마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둔전마을에 위치해 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인 5개 군락에 분포해 있는 남방식 고인돌 24기로 유명하다. 가군은 둔전마을 서금석의 집 뒷담장으로 이용되고 있고 4기 확인 1기만 존재, 나군은 수죽산 안골과 참마장골 사이 도로인접에 4기 존재, 다군은 둔전리 416~419 번지 위치해 동서 2열로 13기 확인 5기만 존재, 라군은 다군에서 서 20m 위치해 12기 확인 6기만 존재한다.
■ 돌산 평사리 고니 도래지
전남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산250 및 굴전해안(돌산대교를 건너 돌산 방향으로 약 7km)에 위치한 철새도래지로 공유수면(公有水面)은 약 628,099m²다. 1979-08-03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 43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늦가을 약 150여 마리에 이르는 고니가 이듬해 3월 초순까지 서식한다. 큰 고니를 주로 볼 수 있다. 고니는 기로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물새로 순백색이며 백조라고 불린다. 눈 앞쪽은 노란 피부이고 다리는 검은 색이다. 시베리아에서 풀잎과 흙을 이용해 둥우리를 만들고 6개 정도 알을 낳는다.
■ 성루 타포니(Tafoni) 지형
돌산도 남·동부 해안에 벌집형인 타포니가 발달되어 있다. 타포니는 중성화산암류의 안산암이 화산쇄설물과 응고 형성 된 포획암이 침식을 받아 독특한 발달은 한다. 특히 돌산 성두 타포니는 역암이 이탈 되고 바닷물에 의한 풍화 작용을 받아 직경 3m에 달하는 탁월한 모양의 거대한 타포니가 관찰 된다.
■ 중봉산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와 금봉리 사이에 위치한다. 높이는 384.9m 인데 경사가 가파르다. 여수시청에서 승용차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천왕산이라고도 불린다.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의 불국사화강암류 지질이며 산 정산 쪽 바위가 떨어져 내린 지형 인 애추해가 발달했다. 동백나무 및 상록활엽수림이 식생한다. 돌산도의 8대 산 중 하나인 은적암(전남 문화재자료 제 39호)이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를 짓고 잠깐 쉬어 가는 곳에 지었던 사찰로 알려져 있고 옥녀 전설이 전해진다.
■ 도실 일본군 포대 주둔지
전남 여수시 돌산읍 도실마을 봉화산 자락 중턱에 위치한다. 태평양 전쟁 때 주둔하던 1개 중대 일본군이 1943년 말 콘크리트로 대함포자리 즉 미군 함대 공격에 대비한 대규모 군사기지를 만들었던 것이 원형 그대로 최초로 발견되었다.
■ 금죽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금봉리에 위치한 섬이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약 8.2km 거리이며 면적은 0.9㎢ 정상은 47.9m이다. 신생대 제4기 토양 적색토이며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의 불국사화강암류이 지질 특성을 띄고 온화다습하다. 명칭은 대나무가 많아 섬이 금빛이 된다 해 유래되었으나 현재 대나무는 소멸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금죽도 대나무를 화살로 만들어 무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송도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위치한다. 돌산읍에서 남서쪽으로 2km 떨어져 있다. 면적 0.91㎢, 해안선길이 5.8㎞, 정상은 89m, 1월 평균기온 0.7℃, 8월 평균기온 25.5℃ 이다. 명칭은 소나무가 많아 유래되었으나 현재 밭으로 개간되었다. 1896년 돌산군이 생기며 진주강씨가 처음으로 석발을 쌓고 어업으로 생계를 꾸렸고 김·박·고씨 등이 입주하여 마을이 되었다.
■ 목책
여수시 중앙동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 해저에 위치한다.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인 목책은 수중성과 함께 전국에서 유일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축조되었다. 응급 임시 방어시설 축조시, 노동력이 부족시 도서 지방에서 사용되었다.
■ 이충무공 전공기념비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1-1598년간(8년) 전라좌수사에 있었으며, 1592년 4월 임진왜란 발발시 수군 활약으로 전세를 승리로 이끌었고, 1593년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활약을 했고, 1598년 11월 순천 왜교로 후퇴한 소서향장의 퇴로차단작전을 명나라 장수 진린과 더불어 강행하던 중 1598년 11월 19일에 미명에 남해도 관음포 앞바다에서 적탄에 전사하였다.
■ 해넘이
2005년 당머리(당두진)와 장군도 사이의 빠른 유속 때문에 섬 주변이 침식 되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해안 주변을 따라 석축을 쌓았다. 석축 윗면이 산책로가 되었다. 섬 전체를 돌아보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고 돌산대교와 여수 시내를 볼 수 있다. 일몰 시간을 맞추면 남도 바다에서 지는 해넘이를 볼 수 있다.
■ 낚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 방향 버스로 15분 소요되는 중앙동파출소에 선착장이 있다. 종포선착장-장군도-돌산나루터 를 경유하는 연락선이 15분 소요, 요금 2400원 (왕복) 매일 수시로 다니고 있다. 바다에서 놀래기·감성돔·도다리·볼락·갑오징어 등이 많이 잡힌다.
이순신 광장은 상징조형물, 야간조명시설, 친수시설 그리고 바다로 향하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육교형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광장 구석구석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있고 이순신장군의 역사적인 행적과 난중일기, 임진왜란 해전도 등 관련 유적들도 기록되어 있으며 이순신장군을 도왔던 11인도 함께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순신광장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돌산공원, 돌산대교, 장군도의 야경은 여수의 찬란한 밤바다를 새삼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 옆에는 왜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장군도의 아름다운 불빛이 더해져 여수항 앞바다와 함께 이국적 정취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바로 위쪽은 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돌산대교와 장군도는 그야말로 빛이 함께 하는지를 이해시켜줄 것이다.
오동도는 여수의 중심가에서 약 10분쯤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오동도 입구에서 약15분 가량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다. 특히,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만큼 운치가 있다. 오동도 안에 자리한 테마공원은 오동도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등대가 있으며, 음악분수대, 맨발산책로 등이 있다. 3월부터 피기 시작한 동백꽃은 빨간 빛을 내 뿜으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4월 한달 내내 그 빛을 더한다. 오동도 동백과 근사한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오동도 야간분수는 여수의 밤바다를 흥분의 도가니로 이끈다. 또한 동방파제 야간조명시설이 이에 빛을 더할 것이며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박람회장 전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야경을 여러분께 선물할 것이다.
1967년 조성된 여수국가산단은 정유, 비료, 석유화학 등을 소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중화학 공업단지이다. 산업단지에 밤이찾아오면 반짝이는 불빛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수만개의 조명으로 웅장한 기계설비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으로 어울러진 야경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탄성을 내기에 충분하다. 현재 LG화학 남문 입구에 여수산단 야경뷰포인트가 새로운 야간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낫선 도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그 도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고 겪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수시티투어는 여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빼어난 완성작품이다. 도시 안, 곳곳을 버스를 타고 돌며 유리창 너머로 혹은 종착지마다 내려서 만나는 유물유적은 여수가 고대로부터 생생하게 이어져온 고도(古都)라는 역사성을 알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전 10시30분. 새로 단장 된 여수엑스포역에서 시티투어버스는 출발한다. 미리 운영업체나 여수시청 홈페이지를 이용해 예약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나마도 여행 성수기에는 1~2주 전에 예약이 끝난다.
오동도로 향하는 길은 동승한 문화관광해설가의 이야기를 귀담을 필요가 있다. 여수시에 배치된 해설가의 풍부한 오동도에 대한 지식은 처음 오동도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도 이해가 쉽다. 방파제를 따라 길게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고 있자면 어느 새, 오동도 선착장에 내리게 되고 음악분수가 경쾌하게 햇살과 함께 빛나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설가의 안내에 따라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진 시누대 터널을 지나 오동도의 등대와 전망대에 올라 검푸른 남해바다를 감상할 수 있으며, 바람재에 서서 오르며 흘렸던 눅눅한 땀을 바닷바람으로 식힐 수 있다. 은비늘처럼 반짝이며 출렁이는 바다를 지나 온 바람이 온통 서늘하게 불어와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다.
섬 전체가 온통 오동나무와 시누대, 후박나무로 이루어진 오동도를 걷다보면 이곳이 정말 섬일까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오동도에 식재되어 있는 일곱 그루의 부가가치 높은 황칠나무 중, 눈에 보이게 있는 곳에 있는 황칠나무를 찾아보는 탐험도 즐겁다.
오동도를 뒤로하고 진남관의 높은 계단에 올라서면 이구동성으로 자아내는 탄성을 들을 수 있다. 사진과 설명으로만 듣던 진남관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오고, 넋을 잃는다. 해설가의 흥미진진한 진남관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고, 쉽고 경쾌한 설명에 남녀노소 모두 이해가 쉽다. 진남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바로 옆에 서 있는 석인상에도 눈길을 주는 것을 잊지 말자. 석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록 오래되어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도포자락까지 표현된 석공의 섬세함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배가 고파진다.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허기가 더 심하다면 시티투어 버스 안에 비치되어 있는 버스모양의 손바닥만 한 여수시티투어 안내책자를 챙기면 맛있는 점심은 시간문제이다. 진남관을 나와서 거북선 공원이 바라다 보이는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디를 찾아가도 맛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져주는 맛 집들이 즐비하다.
여수시를 대표하는 막걸리식초로 버무린 서대회무침부터 간장게장, 장어탕, 오리탕, 백반까지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라면 진남관 바로 옆 골목의 피자나 스파게티도 골라 먹을 수 있다.
맛있는 점심식사 후 다시 버스에 올라 찾아간 곳은 해양수산과학관이다. 이곳에는 바다 밑 생물들의 모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살아있는 생물에서부터 먼 고대의 화석까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게다가 손으로 직접 물고기를 잡아볼 수 있는 체험장까지 있어 더 흥미롭다. 바로 뒤로는 남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장관도 연출하며 맑은 날에는 외치도, 내치도, 죽도, 애기 섬이 둥글게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점심식사 후 쏟아지는 노곤함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눈을 감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향일암을 보러가는 길이어서다. 오른쪽으로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바다를 끼고, 향일암까지 가는 길은 한 폭의 동양화다. 야트막한 산과 들. 푸르게 자라고 있는 갓을 밭들이 눈을 편안하게 만든다. 한없이 오르막길로 오르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향일암으로 들어서는 주차장. 갓김치 시식을 할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일주문을 지나고 다리가 아프도록 계단을 오르면 자연석 그대로의 일주문인 석문을 통과하고 비좁은 통로를 들어서기 위한 몸을 낮추고 허리를 구부리면 비로소 향일암에 발을 딛을 수 있다.
온통 거북이의 등처럼 갈라져 있는 바위가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가득 찬 향일암은 원효대사의 신비를 간직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다행히 운이 좋다면 지는 노을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으며 고개를 돌리면 바로 앞의 연리지의 사랑스러운 형태의 동백나무도 마주할 수 있다. 일출이 아름다운 향일암에 서면 왜 사람들이 열광하며 일출을 보기위해 이곳을 찾는지를 바로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향일암에서 돌아오는 길은 오른편으로 바다를 끼고 오는 길이다. 온 몸에 충만함이 가득한 이유는 바다가 보이는 향일암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이다. 늘 바쁘게만 살아온 시간들을 되새겨보았던 시간이 돌아오는 동안 내내 다시 일할 수 있는 신선한 활력을 제공해준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여수의 수산물이 모두 모아져있는 여수 수산시장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동의 건물은 청결하다. 비릿한 냄새가 생물들이 모아져 있음을 알게 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 가족과 친지들을 위한 선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곳이다. 활어와 건어물, 갓김치까지 여수의 특산품들이 망라되어 있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잔뜩 구입한 선물을 손에 들고 다시 처음 출발지였던 여수엑스포역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6시10분.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들과 인사하고 문화관광해설가와 시티투어 버스 운전기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하루를 아주 촘촘하고 뿌듯하게 보낸 느낌이다. 저렴한 시티투어 비용과 친절한 운행. 여수의 모든 것을 가장 편안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였다. 가장 편안하고 정확하게 여수를 관광하고 싶다면 여수시티투어 이용을 적극 추천한다.
오전 10시. 여수엑스포 역에 도착하는 순간 여행의 시작이다. 새로 지은 역사가 산뜻하다. 시티투어 버스가 있는 곳은 부산하다. 미리 예약을 한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운이 좋으면 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 시티투어다. 동승을 할 문화관광해설사와 버스운전 기사의 일일이 건네는 인사가 상쾌한 하루를 열어주며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한다.
여수는 바다와 함께 성장해온 도시다.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던 과거의 바다와 현재의 바다, 그리고 도약하는 미래의 바다를 모두 보여주는 곳이 바로 박람회홍보관이다. 이곳에서는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리는 2012여수세계박람회까지의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주제로 한 미래의 바다가 현실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는지를 홍보관의 도우미가 이해가 쉽도록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테라스로 나서면 바다 위로 한참 공사 중인 건물의 완성도를 바로 바라볼 수도 있으며 그 거대한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80%정도 완공이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 자랑스러워진다.
다음 행선지는 여수에서 가장 으뜸인 오동도이다. 동백관광에 관한한 항상 1순위가 여수 오동도다. 섬 전체가 동백 숲이라 할 정도로 붉은 동백꽃이 장관을 이루는 섬이다. 3천여그루의 동백나무에선 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3월이면 만개한다. 오동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거북선의 조형물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음악분수이다. 소풍 온 학생들의 발랄한 웃음소리와 음악분수의 물소리가 섞여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동도에 전해지는 두 가지 전설을 찾아 문화관광해설가의 관광안내를 받으며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대 바로 옆의 전망대에 올라 남해바다의 푸른 물결을 감상하고 시누대 산책길을 걸어 온통 초록으로 쏟아지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지천인 오동도를 보고 느꼈다면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 내려와도 좋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여수시의 우국충정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진남관이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유산이 즐비하지만 여수시에서 보유하고 있는 국보는 진남관(鎭南館)이다. 계단을 올라 만나는 진남관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위용만으로도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제압하고 남을 것 같다. '남쪽을 진압한다'는 뜻을 가진 진남관은 단층 팔작지붕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최대 규모이다. 한 아름 안아지는 붉은 기둥과 일일이 세어보기에는 고개가 아플 정도의 천정의 보들이 숨을 멎게 할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나오는 길, 잔디밭 위 외로이 서 있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의인전술(擬人戰術)의 일환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석인상도 눈길을 끈다. 원래 7구였지만 현재는 1구만 남아 있는 석인상이다. 관복의 주름이 보일 정도로 섬세한 석인상. 나머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문화관광해설가의 설명을 들어도 좋다.
12시40분. 배가 고플 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니 이제는 맛집을 찾아갈 순서이다. 버스모양의 시티투어 안내서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맛집 정보가 담겨진 페이지를 펼쳐들고 진남관을 나서서 오른쪽 방향으로 우회전을 해 황단보도 앞에 선다. 바로 앞 이순신광장이 보이고 진남관에서 보이던 바다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다.
서대회, 장어탕, 꽃게장, 갈치조림. 여수시 인증 맛집이니 의심할 필요도 없다. 한 무더기 어울려 어디나 들어가도 맛이 있다. 막걸리 한사발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달콤새콤 서대회무침에 밥을 비벼먹고 나오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다시 올라 탄 시티투어 버스. 같이 밥을 먹고 나니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오전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서로 이야기도 곧잘 한다. 서로 달리 찾아간 맛집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며 못간 맛집에 대한 아쉬움에 다시 찾아올 것도 기약하며 웃음이 넘친다. 여행의 행복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티투어 버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다.
나라에 대한 우구충정을 보았으니 이제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절절함을 볼 차례이다. 애양원역사박물관·손양원 목사 유적 공원(순교기념관)이다. 이곳에는 기독교정신 뿐 아니라 손양원 목사의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는 곳이다. 1909년 선교 활동에 전념하던 오웬 선교사는 급성 폐렴으로 순교하고 만다. 목포에서 활동 중이던 포사이드는 오웬목사를 찾아 급히 광주로 오던 중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해 나환자를 치료하는데 이것이 애양원의 설립 동기가 된다.
우리는 손양원 목사를 '사랑의 원자탄'으로 기억한다. 나환자들의 상처를 빨아줄 정도의 사랑이 넘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1948년에 공산당에 의하여 두 아들을 잃었을 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깊은 사랑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애양원을 나서며 손양원 목사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기도할 일이다.
애양원을 나서면 다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흥국사로 향한다. 영취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흥국사에는 국가지정 보물급 문화재 12가지가 있는데 문화관광해설가와 함께 흥국사에서 보존 중인 9개의 보물급을 찾아보는 것도 즐겁다.
낙엽이 붉게 물들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감도는 흥국사는 천천히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계단을 오르면 하나씩 만나는 일주문과 천왕문. 시간과 햇볕, 바람에 바라져 색마저도 알 수 없는 단청의 대웅전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느 절과는 다른 유난히 커다란 문고리와 바로 옆의 종탑 등은 시간의 흔적과 호국충정을 그대로 보여주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인 후불탱화는 보조국사 지눌의 나라사랑의 지극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흥국사의 사적기에는 호국의 비보사찰이라 명시하고 나라가 흥하면 절도 번창하고 절이 흥하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 설하여 국가와 사찰이 공동의 운명체임을 강조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보조국사의 법화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은 훗날 임진왜란 때 흥국사는 의승군의 주진사로서 전라 좌수영 이순신 장군 휘하의 수군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던 기록은 이 남아있어 우리를 더 숙연하게 만든다.
흥국사를 내려오는 길에 올려다보는 영취산은 봄이면 진달래 군락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밤이면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야경을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여수수산시장이다. 길을 사이에 두고 건물 두 동이 있으며 남해 청정해역의 싱싱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마음껏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피곤한 느낌이 온다면 시장 한복판에서 삭힌 막걸리로 만든 서대회무침의 달콤 쌉싸름한 맛을 즐겨도 좋고, 싱싱한 회를 그대로 즉석에서 먹어도 좋다. 수산시장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수산물을 구경했다면 여행의 마무리인 선물도 이곳에서 준비하는 게 좋다. 친절하고 관광객에게 바가지 상흔이 없다는 게 믿음이 간다.
오후6시. 비릿한 냄새가 더 정겹게 느껴지는 수산시장을 한 바퀴 휘 돌아보았다면 이제는 처음 떠나왔던 여수엑스포역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버스 안은 수산시장에서 구입한 선물들로 비릿한 냄새가 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비록 힘들고 고단한 몸이지만 여수의 모든 것을 관통하며 즐긴 여수의 멋을 몸과 기억에 담아두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여수 시티투어 관광. 여수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여수시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