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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용호댁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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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둘레길 스크랩 전남 장성 입암산 / 입암산성 산행 그리고 남창계곡
난초레이디 추천 0 조회 291 18.07.23 13: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입암산(626m)은 정읍시 입암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의 서부지역에 해당된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경계에 위치하고 주위에 축성한 백제 때의 입암산성과 더불어 내장 6봉, 백양 3봉과 함께 호남의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실제로는 내장산 11봉과 백암산의 6봉을 비롯해서 이 입암산 지역을 통틀어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일컫고 있으나 내장산, 백암산의 명성에 가려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와 소, 울창한 숲으로 천연의 신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입암산 서쪽 정상에 있는 갓모양의 바위를 속칭 '갓바위'라고 하는데 입암산이란 이름이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고 북쪽 산아래 면 이름도 입암면이다.


유명한 백양사와 약사암, 영천굴 등의 암자, 장성호와 비자나무숲 등이 근처에 있고, 특히 계곡 상류에 위치한 입암산성은 삼한시대에 축성된 포곡식산성으로 국가사적 제384호로 지정되었다. 약 730m 정도의 남창계곡 자연관찰로에는 곳곳에 자연학습과 관련된 다양한 안내판과 체험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생태학습에 좋다. 자연관찰로를 따라가면 테마를 설정하여 탐방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길게 뻗은 삼나무숲도 볼거리이다. 가을철에는 계곡물에 떨어진 단풍잎과 단풍나무들의 조화가 이상적이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있어 산림욕을 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트레킹 코스이다.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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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입암산/입암산성에 대한 설명이다

이곳이 왜 유명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여름 명산의 기본인 훌륭한 계곡도 있고 올라가는 내내 계곡의 물소리가 나를 즐겁게 했다



엊그제 비가 와서 일까 날이 좋은 날이다


남창계곡 주차장은 5천원의 주차료를 받는다

좀더 위로 올라오면 마지막 계곡 주차장이다



시작부터 멋진 계곡이 보인다 남창계곡이다

맑은물과 적당한 깊이는 지금이라도 물놀이 하고 싶은 기분이다
















계속 하여 보이는 계곡들



멋진 삼나무 숲길이 나온다













은선동 삼거리는 갈림길이다

왼쪽 / 오른쪽 ?

오른쪽으로해서 입암산성으로 해서 갓바위를 가야 조망이 좋다


갓바위 가는 길인데 다시 돌아 왔다

시원한 계곡이 은선동 삼거리까진 계속 이어진다






여기까지 조금 힘들고 이제 부터는 둘레길 같은 길이 나온다

편한 길이다

날 좋다




이곳에 선조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산행 내내 보이는 맑은 물

이제 1.5km



녹두장군 전봉준이 잠깐 머물었다는 입산산성


전봉준은 누구인가? 교과서의 희미한 기억을 다시 보자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은 조선 말기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로서,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동학 농민 운동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가혹한 수탈로 인하여 일어났다. 1893년(조선 고종 30) 11월 전봉준은 고부 군수 조병갑을 찾아가 과중한 세금징수와 노동력 착취 등의 학정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쫓겨났다. 이에 이듬해 최경선⋅김도삼 등 20여 명과 함께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천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한 후 고부 관아를 점령하였다. 농민군들은 무기고를 파괴하고 창고에서 곡식을 꺼내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후 조사관으로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가 동학도에게 책임을 돌리자, 전봉준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내걸고 무장에서 봉기하였다. 이후 잇따라 관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는 청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청군이 조선에 출병하자 일본도 톈진 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파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동학 농민군은 폐정 개혁안의 시행과 농민군의 신변을 보장해 줄 것을 전제로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한 후 해산하였다. 이후 전라도 각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교정청을 설치하여 폐정 개혁안을 실천해 나갔다.

한편 조선에 출병한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자,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하였다. 이에 전봉준은 반침략의 기치를 내걸고 다시 봉기하여 서울로 진격하였지만, 주력 부대가 공주 우금치에서 패퇴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전봉준은 은신하여 다시 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으나, 1894년 12월 2일 순창군 피노리에서 부하인 한신현과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어 한성부로 압송되었다.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던 전봉준은 이듬해 3월 의금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동학 농민 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반봉건, 반외세의 민족 운동으로서 이후 갑오개혁에 영향을 미쳤고, 일부 잔여 세력들이 1890년대 이후 전개된 항일 의병 투쟁에까지 활약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삼한시대부터 이지역에 터를 잡고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계단이 많다 거북바위를 간다


이 거북바위를 지나면 어마어마한 절경이 나온다


과연 어디까지 보일까

호남고속도로와 멀리 변산반도까지 보인다 어마어마한 조망에 감탄을 한다  

이런곳이 어찌 남창계속밖에 안 알려졌을까

갓바위... 그야말로 GOD 바위다




멋진날과 조망을 감상해보자
















변산반도가 보인다




삼나무길 안녕~

남창계곡 하류에서 발을 담궜다


지역 막걸리론 장성 고로쇠가 15.14% 들어간 요 막걸리다 금방 취한다



10.1km 면 제법 많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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