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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회론>
SGI_청년평화페스티벌과 좌담회를 다녀와서
사회학과 11, 부미정
작년 사회조사실습 수업을 통해 창가학회를 처음 알게 되었다. 「숙명전환의 선물」,「창가학회와 재일제주인」이라는 두권의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나마 창가학회안에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창가학회는 개신교와 같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재일한국인의 사회에서 비난을 받는다. 정작 창가학회에 입신을 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앙생활은 행복인데 그 본질은 무시하고,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만 창가학회를 바라보려하니 창가학회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어딘가에 온전히 의지하고 자 할 때 찾는 것이 종교이다. 외부의 걱정과 의심(?)과는 달리 창가학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주체적이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렇다면 창가학회 신도들에게 창가학회는 종교적 의무를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SGI에서 주최하는 청년평화페스티벌을 제주문화회관에 모여 스크린으로 생중계로 관람했다. 신도들이 주차장에서부터 교통정리 및 길안내를 도와주셨고, 지정석까지 마련해주셔서 편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이미 창가학회를 책과 교수님의 얘기를 통해 접한 나는 창가학회가 무섭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축하화환을 보낸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종 언론사에서 후원을 했다는 내용은 신선했다. 창가학회 신도들 이외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창가학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창가학회에 대한 국가와 시민들의 인식의 현 주소가 궁금해졌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뒤로하고 SGI청년들의 공연 영상을 지켜보았다.
오케스트라, 뮤지컬, 탭댄스, 태권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공연이 구성되어 있었다. 제주문화회관에 앉아서 스크린으로 공연을 보는데도 현장의 분위기와 그 열기가 느껴져서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공연에 임했던 청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가상했다.
창가학회가 포교방식을 절복에서 좀 더 완화된 방식으로 바꾸고, 교리 또한 개인구원의 차원이 아닌 사회구원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대외적이고 표면적으로는 개인구원보다는 사회구원의 의미가 더 강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달 한번씩 열리는 좌담회에 참석하여 창가학회를 들여다보았을 때는 여전히 개인구원의 의미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갔던 좌담회는 연동2지구 좌담회였는데, 연동지구에서 분지구를 하고 처음 갖는 좌담회였다. ‘남묘호렌게쿄’라 하는 제목삼창을 시작으로 여는 글, 학회역사, 기초교학, 어서배독, 인간혁명도전기, 체험담, 미래부코너, 4부인사, 참석간부인사의 식순으로 좌담회가 이루어졌다. 몇 명의 회원들이 SGI의 화광신문사에서 발행된 월간지 법련을 가지고서 잡지에 실린 글들을 읽었다. 눈이 침침하신 어르신들을 대신하여, 글을 모르는 어른․아이들을 대신해 읽는 행위를 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두가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었다. 이어서 기초 교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믿음(신)과 구체적인 실천(행), 그리고 불법의 법리(학)를 배우고 매일의 신행학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실천은 독경․창제를 통한 자행, 홍교․광선유포활동의 화타가 있는 데 화타의 예가 좌담회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시간은 ‘체험담’을 들었을 때다. 어머니의 병이 낫고, 간절하게 바라던 아이가 생기고, 남편이 좋은 조건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한 회원의 스토리는 개인과 가족의 행복의 이야기였다. 또한 다른 한 사람은 취직준비를 하던 중에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한 상태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다행이도 면접이 잘 이루어졌고 현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기존에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의 후임을 찾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그 일도 잘 풀려 문제 없이 아르바이트도 그만 둘 수 있었다고 한다. 간단히 두 회원의 말을 정리 한 것이나 두 회원의 스토리를 들으며 아마 회원들은 더 열심히 어본존께 창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회원들의 스토리에는 ‘열심히 창제를 하였기에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라는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체험담을 듣는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경청의 자세를 취했고, 심지어는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회원들간의 친목도모는 물론이거와 자신의 신심회복, 만족감, 확실함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담회의 목적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싶다.
신앙에 대한 불안감을 내려놓고, 신앙심을 회복하여 열심히 공덕을 쌓는 일을 통해 자신과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구체적인 계기가 좌담회인것 같다. 물론, 세계평화․핵무기반대 등의 사회구원의 내용을 말하고는 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런 점들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개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편안함과 안정감 등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좌담 회에 가기전 학생들을 데리러 나오셨던 한 회원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 또한 정말 원하던 딸을 갖게 되었고, 창가학회 회원이 되면서 자신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정말 배가 아팠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잘되는 일이 내가 잘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남을 위해서 창제를 한다고 하셨다. 광선유포를 위해 사는 인생을 개개인 나름대로 실천하며 꿋꿋이 사는 일에서 사회구원의 의미도 시작되는 것 같다. 나와 타인이 함께 행복해지는 일에서부터 SGI의 사회구원의 의미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은 따로 첨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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