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편의 글을 쓰셨네요. 지금쯤 다음 글 뭐 쓰지? 글감 다 떨어졌는데 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럴 때는 글감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이 내게 있어서 이미 있는데도 발견을 못 할 수도 있고, 너무 바쁘게 삶이 돌아가서 무언가에 감응할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이것 말고도 글쓰기 어려운 이유는 많겠죠? 전 그럴 때 책상에 십분만 앉아 있자, 한 줄만 써보자 해요. 가만히 있는 게 생각보자 도움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요 며칠은 그것도 통하지 않아 잠시 기다리는 중입니다. 여러분은 안 써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저도 따라 해보고 싶어요. 이번주는 제 개인 일정이 있어 리뷰를 조금 빨리 올립니다. 보통 리뷰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올려요. 다들 그럼 편안한 밤 되시고, 리뷰는 한 독자의 의견으로 참고만 하시길 바라요. 🙏
봄날 – 세 번째 전학
장사를 시작하며 귀가가 늦어진 엄마, “카스텔라 굽는 냄새”가 사라진 빈집에서 동생을 돌보며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화자. 그 모습이 절절하게 다가와요. “엄마가 은우를 업고 달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겼을 텐데, 그게 슬펐어요.” 아이를 업고 달리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고됨이 보였고, 봄날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아이의 시점으로 봤을 때는 경기에 져서 슬펐다고 했는데, 지금의 봄날이 이 장면을 떠올릴 때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시절 엄마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 필자에게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요. 여전히 아픈지, 아프면 무엇이 아픈지, 아프지만 다른 해석이 생긴 게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이의 시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긴 한데, 지금 필자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데 제약이 있어서요. 저는 빈집에서 엄마를 기다렸던 어린 시절을 지금의 봄날은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더 마음껏 적어 보면 좋겠어요.
은유 - “엄마의 흐느낌이 자장가처럼(들려오고)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한시절 가족의 삶을 축약해주는 문장 같아요. 동화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키키 – 애 셋에 개 셋
와, 사촌 언니 집이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언니네 풍경이 제가 사는 집과 별다르지 않아서 친숙했어요. “가난은 자꾸 설명해야 하는 일이구나.”, “가난은 언니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사례 뒤에 나오는 필자의 이런 해석도 좋았고요. 저는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덜어내면 좋겠어요. 필자의 자기반성이 나오는 부분인데, 톤이 달라지기도 하고, 언니의 태도와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필자가 나와 직접 말하기보다는 사례로 보여주세요. 전 사촌 언니 이야기가 더 나오면 좋겠어요. 캠핑을 가고 음식을 나누는 건, 가난하지만 여유가 있었다는 거지 “가난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로 보이진 않거든요. 무엇을 보고 필자는 “가난한 것이 온전히 언니의 책임은 아니며, 부끄러움이라는 곁다리 감정 또한 언니의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을까요? 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은유 - 사람의 온기가 있고, 반려견의 지린내 있는 사촌언니네. 그곳을 통해 필자의 달라진 생각들이 구체화되면 주제가 선명해질 것 같아요. 영화 기생충에서도 다뤄졌듯이 ‘냄새’는 빈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데 그부분에 집중했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산스 – 침묵 : 무너진 나를 감추기 위함으로
몰입해서 읽었어요. 왜 몰입했나 생각하니, 사례가 구체적이고, 그에 따른 필자의 생각과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났어요. “아침을 먹으면 저녁을 걸러야 했고, 커피는 K집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했다.” 이런 생생한 사례가 확 와닿아서 필자의 사정에 처음부터 이입하게 돼요. (K집은 커피가 싼 거겠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하며 읽었어요. 그런데 “내가 언제 왜 좋았는지 얘기했던 J의 과거 말”은 왜 나오는 걸까요. 애인이 뭐라고 했길래 필자가 자기 모습을 보여주기를 이토록 망설일까, 궁금해요. 이 이야기가 나와야 J와 관계 속에서 필자가 솔직하기를 힘든 이유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요. 2020년이면 3년 전 일인데, 지금은 어떻게 관계가 변했는지 궁금해요. 가능하다면 지금의 이야기도 적어주세요.
은유 - 돈이 데이트에, 궁극적으로는 관계의 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드러나는 글입니다. 문장도 단단하고 글의 흐름도 좋네요.
까마귀 – 우리 집에 놀러 올래?
까마귀가 처음 독립한 집이 우리 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하네요. 제가 사는 곳도 세면대가 없거든요. 까마귀가 묘사를 잘해서 제가 다녀온 거 같이 생생해요. 그런데 첫 집과 달리 두 번째 집은 정보가 별로 없어서 그려지지 않았어요. 친구에게 “집이 좋지 않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했는데, 이유를 적어주세요. “집을 둘러본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라고 했는데, 이렇게만 적으면 여러 해석이 가능해서요. (말이 없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잖아요.) 친구의 반응을 더 정확하게 적어주면 좋겠어요. 사실 친구의 반응보다는 필자가 어떤 반응을 기대했던 건지 궁금했어요. 마지막에 집에서 의료, 경제, 복지, 나라 걱정까지 주제가 확장돼요. 물론 열악한 주거 환경과 다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갑작스러워요. 이 글은 집 이야기로 마무리해 주세요. “우리 집에 놀러 올래?” 하지 못한다는 게 필자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단순히 집을 소개하지 못한다, 이상의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그 해석도 덧붙이면 좋겠어요.
은유 - “여름에 수박이라도 먹을라치면 방에서 잘라야 했다.” 경험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구체적인 문장이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돌멩이 – 압구정 오렌지
압구정 오렌지족. 오랜만에 듣는 단어네요. 야타족도 생각나고요. 서울이 안 그래도 낯설었을 텐데, 아이들이 나를 보며 키득거렸으니 얼마나 긴장했을까요. 서울과 다른 지역의 위계, 경제적 차이의 위계를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사례가 구체적이어서 좋았어요. 예를 들어 에바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재수생들의 부유함을 그냥 부자라고 하지 않고 렘브란트 물감으로 표현한 부분이요. 어릴 때 장래 희망이 “부자”라고 했는데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 욕구가 이 글을 관통하는 서사일 수도 있어서요. “차원이 다른” 압구정 부자를 보고 그 꿈을 내려놓는 장면이 웃음도 나면서 씁쓸하네요. 이게 미술학원에서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미술학원까지 가게 된 사유가 길어서 줄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이후 미술학원에 “어떤 마음으로 다녔는지 기억나진 않”는다고 했는데요. 기억나지 않는다면 지금 그 일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필자의 이야기가 더 있으면 좋겠어요. 쓰다 보면 그때 마음이 기억날 수도 있고요.
은유 - 시골에서 올라온 학생의 압구정 미술학원 분투기. 드라마처럼 영상지원 되는 장면이 많아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옛골”이란 동네가 서울 지명인 것도 절묘하고요.
백리향 – 디딤돌
저번 글도 그렇고, 백리향은 이야기꾼인 거 같아요. 글이 유려하게 흐르네요. 고민은 이 글의 주제인데요. 나의 성취를 내 것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주변의 도움과 지지로 만들어졌음을 돌아보는 결론이 좋은 태도임은 분명해요. 하지만, 독자는 좋은 태도 이상의 이야기를 원해요. 실제 삶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우니까요. 자칫 지금처럼 결론을 내리면 작은 언니의 삶이 나를 위한 디딤돌로 납작하게 요약될 수도 있고요. 저는 백리향이 충분히 다양한 결을 살려 언니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결론을 내기 전에 나온 언니의 이야기도 풍성했고요. 이 글을 통해 전하고 하는 백리향만의 메시지와 해석을 찾는 게 중요한데요. 지금의 시각을 바꾸려면 언니 목소리가 글에 더 드러나도 좋겠어요. 언니를 인터뷰했다고 했으니, 그 이야기를 더 채워주세요. (저는 저번 글에 나온 어머니, 이번에 나온 작은언니까지. 두 분 다 힘든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뚫고 나오는 힘이 대단하다 느꼈어요. 이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삶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디딤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나와 작은 언니의 관계를 열어놓고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결론 없이 쓴다는 게 처음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있는 그대로 있었던 이야기를 쓰고, 그 후 내 생각을 적다 보면 새로운 발견이 있을 거예요.
은유 - “나 외의 삶은 돌아볼 줄 몰랐”던 필자가 나 외의 삶을 돌아보게 된 계기나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그걸 적어주면 글에 중심이 잡힐 것 같아요.
종이 – 너를 생각하는 시간
너를 생각하는 시간. 제목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나는 정미에게 종종 짜증이 났다. 답답해서였다. 또래 아이들이 모두 원하는 것을 왜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저는 필자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난 이 문장들이 좋았어요. 돕는 사람이 겪는 딜레마적 상황이 잘 드러나요. 사례도 생생하고, 필자가 이 사례를 통해 고민하는 지점도 드러나 같이 고민하게 돼요. 마지막에 이야기가 “정미”에서 “그들(철거민,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로 확장돼서 이 부분은 덜어내면 좋겠어요. 저는 오히려 정미가 “욕망하길 바라는”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그 지점을 더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필자 말대로 편견일 수도 있고, 정미가 아닌 필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편견이라면 어떤 편견인지 정확하게 적어주세요. 정미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원했던 건지 적어주세요. 필자가 이렇게 자기가 가졌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어떤 욕망이 있었는지 적어주면, 독자도 공감하며 함께 깨질 수 있을 거예요.
은유 - 정미의 사례가 그대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도입부 같아요. 가까이서 오래 지켜봐야 좋은 글이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무언가를 욕망하고 소유하는 게 정상이 되어버려서 그렇지 않는 삶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진 딜레마도요.
밍밍밍 – 그 시절 내가 믿었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성공 서사”인 “입시 성공”을 위해 분투했던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17시간 공부법이라니. 비빔밥이 간편한 음식이라니!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서요.) 여러모로 “입시 성공 신화”에 놀라며 읽었습니다. “유일한 탈출 방법”인 공부에 필자가 얼마나 매달렸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힘들었는지 절절하게 다가와요. 필자는 지금 다시 그 입시 신화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은폐하는 이야기인가” 묻는데요. 이 질문을 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나오면 좋겠어요. “그 시절 믿었던 이야기”를 필자는 이제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마지막 문단의 질문에 가닿기까지 과정을 독자에게 더 세밀하게 보여주세요. 그래야 읽는 독자도 필자와 함께 “입시 성공 신화”가 깨지는 경험을 할 거예요.
은유 - 간절함이 지나쳐서 “폐륜적인 생각에까지 도달”하는 부분이 솔직하게 표현되어서 좋았습니다. 사람이 하나의 목적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난폭해질 수 있는지, 볼 수 있게 하는 인간 탐구의 글로 읽힙니다.
마리오 – 연연하다
아버지 천의 입장에서 쓴 글이네요. “우리 부자는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 맞을까.” 마지막 질문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마리오 마음은 어땠나요? 후련했을지, 여전히 답답함이 남아 있을지 궁금했어요. 한편, 아버지에 관해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게 놀랍고요. 제 아버지의 생애사를 저는 이렇게나 자세히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모두 아버지가 마리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들일까요. 이 글에는 두 인물이 나오는데요. 아버지 천과 그의 아들이에요. 천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라 그렇겠지만 천의 서사는 자세한데, 그의 아들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욕구를 가졌는지가 모호해요. 이 글은 아버지 관점에서 서술하는 글이니 아들의 마음을 직접 쓰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넣어 주세요. 물론 저번 글에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 글에서도 아들의 서사나 욕망이 보여야 둘의 부딪힘이 생생해질 거예요.
은유 - “타자 앞에서 체면이 서는 일”에 온 생애를 바친 사람과 가족으로 지내는 아들의 이야기가 다음에 나오면 아버지의 이야기도 더 풍성해 것입니다. 문장이 기사처럼 정확해서 놀랐는데 장점이기도 하고, 조금 부드러워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선우 – 투정, 교정, 걱정
“수능을 6개월 남긴 어느 날, 내 앞에 일곱 살 어린 동생과 아파트와 은행 잔고가 뚝 떨어졌다.” 이 글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1분위 장학생”으로서 살았던 필자의 경험을 담았는데요. 가난에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지현(<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이 떠올랐어요. 참기 힘든 건 가난이 아니라 “알 만한 사람들의 지껄임”이라는 말도 공감가고요. 모든 학생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듯 전제하는 교수들의 말에 저도 화가 나네요. 소득 분위가 떨어졌을 때 “필요한 사람”을 생각하라는 애인의 말에 필자는 “나도 필요하다”며 작게 응수하는데요. “미성숙한 투정”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투정보다는 절실함으로 읽혔어요. 충분하지 않은 장학금과 그마저도 소득으로 등급을 나눠 경쟁하게 만드는 시스템. 그 속에서 더 힘든 누군가를 제쳤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필자까지. 저는 선별 복지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드러난 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투정이라고 바로 결론내리기보다는 그때 내 마음, 불편함을 들여다보고 적어주세요. 애인의 말이 나는 왜 마음에 남았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이 글의 메시지가 보다 명확해질 거예요.
은유 - 수업시간에 질문한 장학제도 설명을 어느 정도 넣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 이글을 보니 장학제도 이야기가 글을 투박하게 하네요. 글 중반 지나서 ‘또 다른 사례~’ 단락을 덜어내면 낫겠어요. 장학제도 이후에 ‘학 석사 연계과정’이 또 나오니까 정보 처리할 게 많아서 필자의 내면과 주제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거 같아요.
귤이 – 사라진 오구 1
오구는 찾았나요? 제목부터 심장이 떨렸어요. 가게 문을 모두 꽁꽁 잠갔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긴 연휴, 아버지가 있는 춘천을 향해 떠난 귤이와 오구. 누룽지처럼 무릎에서 잠든 오구, 귤이의 몸에 밴 오구의 냄새. 오구가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너무 흐뭇하게 읽었을 장면들이에요. 제목에 오구가 사라졌다고 먼저 나오잖아요. 그래서 떠날 채비를 하고 오구와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 집중이 안 됐어요. 오구가 언제 왜 사라졌을까 생각하느라요. 제목을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기서 끊으시면.... 오구가 다시 찾았는지 애타네요. 다음 글 기다릴게요.
은유 - “흰색인 줄 알았는데 귀와 등에 따뜻한 연한 베이지색을 가진” 오구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워서 몇 번을 읽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사랑이 샘솟는 글입니다.
썸머 – 가난의 변이
한 시대를 통과해 온 A의 이야기.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없던 시절은 몇 년도일까요? 저는 너무 익숙한 법이라, 검색하고 나서야 생각보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구나 놀랐어요. 법이 있는 지금도,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데, A는 그 시절을 얼마나 어렵게 통과해 왔을까요. 건설 현장에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고. 그렇게 대기업에 취업한 뒤, “돈을 모조리” 쓰는 A의 모습에서 힘든 어린 시절이 남긴 상흔이 보였어요. 초중반까지는 A의 서사가 촘촘하고 자세하게 나오는데, “상대적 박탈감”이 나오는 부분부터 추상적으로 바뀌어요. A가 어떤 박탈감을 느낀 건지 모호해요. “가난의 변이”라는 제목으로 봐서는 그의 자녀 세대는 그와는 또 다른 가난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 같은데, 그 근거와 사례가 나오지 않아요. 만약 “가난의 변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면 A 이야기를 덜어내고, 자녀 세대에는 어떤 가난의 변이가 있었는지에 분량을 더 할애해야 해요. 제목을 내려놓는다면, A의 이야기에만 집중해도 좋고요. A는 필자와 무슨 관계일까요? 소설은 허구라는 전제가 있어서 괜찮은데, 에세이는 독자들이 실존하는 필자가 직접 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나오면 나와의 관계를 써주는 게 좋아요. 안 그러면 이 사람이 누군지, 필자와는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서 글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은유 - “탐욕스러운 사교육이 판을 치기 전”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의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올라가기는커녕 뒤로 쳐지지 않기만을 소망하는 중년”이 얻은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더 듣고싶어집니다.
숨 – 위태로웠던 그때를 기억하며
대안학교부터 교육봉사까지. 교사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네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숨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져요. “나의 경제적, 심리적 가난의 경험이 자산이 되어 교사라는 꿈을 꾸게 했고” 저는 이 지점을 중요하게 봤어요. “마음의 가난”을 겪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필자에게 “자산”이 되었다는 건데, 교사를 하며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자산이 되었을까요? 그 부분이 나오면 이 글의 주제로 연결될 거 같아요. 글이 전반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후반부에는 교사가 된 현재 나의 고민이 나오거든요. 전반부 이야기는 한 문단 정도로 줄이고, 지금 하는 교사 일에 관한 이야기에 분량을 더 할애하면 좋겠어요. 교사로서 해온 일(대안학교이든 교육봉사이든) 중 기억에 남는 사례를 적어보세요. 사례에서 출발하면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거예요. 가령, 6개월 동안 변화하는 듯 보였던 청소년들이 왜 80% 이상 다시 범죄를 하게 되는지. 그 상황에서 교사는 무엇을 고민하는지. 그때 내 과거의 경험은 어떤 자산이 됐는지. 숨이 경험한 사례에서 출발해 보세요. 독자들도 숨이 그려낸 현장에서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거예요.
은유 - 숨과 닿아있는 사람과 삶이 많아서 글이 생생해요. 하나씩 독립시켜서 써보면 정말 좋겠네요. 할머니한테 돈 빌려오라고 한 엄마이야기가 강렬하고요. 학인들 글을 읽으며 (저 포함) 어른이 얼마나 비겁하고 약한 존재인지 느낍니다.
들개 –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하려는 마음이라도
글이 매끄럽고, 정보를 적절하게 주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이 술술 읽었어요. 고민은 주제인데요. “매사 의욕이 없”어 보인 지혜의 모습은 “개인의 불성실함”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발견을 하면서 글이 끝나는 게 아쉬워요. 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던 교육 현장의 이야기가 개인이냐, 구조냐의 이분법 문제로 납작해져서요. 당장 이 글을 읽고 나니 독자로서 “교육 현장에서 지혜와 비슷한 학생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이 남아요. 필자가 꼭 답을 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 고민을 끈질기게 붙들고 써 내려가는 건 필요해요. 그래야 필자도 독자도 이 사건에 대한 통찰(다른 시선)이 생기니까요. 전 들개가 지혜를 바라보는 답답한 마음, 이해되지 않는 마음을 솔직하게 써준 게 좋았어요. 이 마음을 더 붙들어 써 보세요. 뭐가 답답한지, 그게 답답한 이유는 뭔지. 이렇게 실컷 나의 생각을 옹호한 다음에는 의심도 해보세요. 이 마음은 온당한 걸까? 온당하거나 온당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렇게요. 다루는 주제가 하나이고, 고민할 이슈도 명료해서 퇴고하기 좋은 글감이니 한 번 다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퇴고해 보세요. (“무릎을 굽혀 낮을 곳을 바라보는 태도와 노력” 종교적 표현일까요? 이렇게 표현하면 의도치 않게 지혜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되고, 필자가 높은 곳에 있게 돼요. 관용적인 표현은 쓸 때 항상 의심해 보면 좋아요.)
은유 - “가난하다는 이유로 꿈을 가지고 키워나가야 학생이 아닌, 가정 내 미래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게 거의 한국사회에서는 상식처럼 자리잡은 삶의 태도였던 거 같아요. 그런 삶을 어른에게 강요받거나 스스로 자처해온 세대로서 고민이 엿보여서 좋았습니다.
구름돌 – 자연스러운 가족
지난번 <배웅>과 연결되는 글이네요. “얘기하면 불편하고 슬퍼지는 것, 그러니 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던 아빠의 이야기를, 필자가 어떻게 되찾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저는 “아빠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생각이잖아요. “왜 아빠 이름은 넣지 않았느냐” 묻는 고모의 질문을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었기에 이 글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 세상엔 없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아빠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청첩장에 아버지 이름을 넣은 구름돌의 선택이 아름다워요. 원래 그렇게 하는 것, 관성과 관례에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를 따라 행동한 거잖아요. 저는 이 글에 나온 사례 하나하나 다 좋았거든요. 한 편 한 편 나눠서 글로 써주세요.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글감만 들어가야 메시지가 명료해지거든요. 우선 앞에 나온 많은 사례는 이 글에서는 지우고(따로 저장), 아빠의 이름을 청첩장에 적게 된 사례에만 집중해 보세요. 애도에 관한 깊이 있는 글이 될 거 같아요.
은유 - 제목이 글을 다 읽고나서 보니 더 좋네요. 자연스러운 가족이라는 유토피아를 찾아가고 구축하는 여정. 번호로 나열한 게 도드라지면서도 글의 흐름을 깨지 않고 재밌게 읽힙니다.
첫댓글 매번(겨우 두번째이군요) 쓰다만 초고를 검사받는 느낌입니다~~ 분량때문인지, 쓰고 싶은 말이 힘이 딸려 그러는지 쓰다보면 다급하게 마무리하고 올려버리니.. 저도 찝찝하게 썼던 부분은 읽는 사람도 정확하게 느끼게 되는군요… 리뷰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일하고 읽고 쓰느라 치열하게 보내면서도, 그래서인지 '살아있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리 내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서 애를 써도 '글쓰기는 끝이 안 보이는 희망(?)'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 제 글만 쓰는 것도 힘든데 자신의 글을 쓰면서 수업시간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고 또 다른 학우 들의 글을 꼼꼼이 읽고 그 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예리한 점까지 짚어주는, 도리 반장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정말 기립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그 노고를 생각하며 저도 다시 힘을 내어봅니다..
꺅 제 글에 피드백을 해주시는 걸 보는 마음은 언제나 두근두근한 마음이에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읽는답니다. 글쓰기는 언제나 미루게 되는 일인데, 이번주에는 그런 마음이 더 심했어요. 제가 관심 있는 주제인 '관계'였기도 하고, 또 제 글을 모든 학인들 앞에서 읽고 피드백을 받는다 생각하니 하루종일 배가 아파서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시간도 지나고 보면 '그래도 하길 잘한 것'일 것 같아요. 하...그렇지만 전 정말 쓰기 싫을땐 가까운 사람과 제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메모만 남겨두고 잔답니다. 다음날의 내가 알아서 할거야, 생각하면서요. (그 대화조차 하기 싫으면 그냥 자요. 일단 머리가 맑아져야 한다면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