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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도시
- 이원호
---- 차 례 ----
1. 폭풍전야
2. K공작
3. 긴급 상황
4. 대통령의 꿈
5. 쿠데타Ⅰ
6. 누가 반역자인가?
7. 쿠데타Ⅱ
8. 大한민국
후기
1. 폭풍전야
근대리아만큼 활기가 넘치는 국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이주해 온 한인들은 이차대전 후에 이스라엘로 들어간 유대인들과는 물론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조선족과 고려인, 조센징에다 남한과 북한인으로 불리웠던 모든 한인들에게 근대리아는 희망의 땅이었고 그것은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한인의 재통합이다. 역사에 기록되고 유물이 있는 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족이다.
대륙의 끝에 밀려 끈질기게 혈통과 습관, 언어를 지켜 왔던 한인들인 것이다.
열강의 세력에 의해 국토가 찢겨져 국적이 바뀌었거나 또는 살기 위해서, 강압으로 타 국적이 되었던 그들이었다.
조국(祖國)은 민족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조상이 살았다는 땅으로 유대인들은 돌아왔지만 한인들은 새로운 조국을 이루려고 근대리아에 모였다고 봐도 되었다.
현재 인구 700만, 지금도 매일 수십 대의 비행기와 특별열차 편으로 이주민이 쏟아져 들어오는 중이다.
요즘의 이주민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까지의 이주민과는 전혀 유형이 다르다.
중소기업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의 중산층 이민인 것이다.
거기에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갖가지 유형의 사기꾼이 몰려와 있었다.
각종 환락시설은 한국보다 더 화려하고 규모가 큰데다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도박장이다.
기대에 부풀어 이민을 왔다가 사기를 당하거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전 9시, 경비본부장 이대각은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사내는 보안국장 장동택이다.
「부동산 투기꾼과 폭력배가 발을 딛지 못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대각이 찌푸린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것 빼놓고는 나머지 범죄자가 다 몰려온 것 같군.」
근대리아에 사유지는 없다.
모든 사업장은 행정청으로부터 대지를 임차받는 형식으로 계약을 한데다가 부동산을 허가 없이 거래했을 경우에 행정청은 가차 없이 해당 부동산을 몰수했다.
폭력조직은 환경이 더욱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날리던 대구와 광주의 폭력조직이 한 달쯤 전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 하에 근대리아에 거보(巨步)를 내디뎠었는데 열흘이 못가 간부급 십여 명이 총에 맞아 몰사했던 것이다.
김상철과 삼합회, 러시아 마피아에다 일본 야쿠자, 거기에다 북한의 세력이 제각기 기반을 쌓아둔 근대리아 땅이다.
이대각은 어느 쪽의 소행인지 깊게 수사하지 않았다.
혼비백산한 졸개들이 벌집처럼 구멍이 난 시체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사건수사를 종결했고 그것으로 한국의 폭력 조직은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장동택이 입을 열었다.
「북한의 마약판매는 잠시 멈춰졌지만 그것을 포기할 놈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북한계 이주민의 사업장 이탈이 심해져 가고 있어요. 특히 공장에서 말입니다.」
「이 시체들도 아마 북한 사람들 같은데, 사업장을 이탈했다가 잡혀서 처형당한 것 같단 말이야.」
이대각이 손끝으로 서류를 두드렸다.
「북한 감찰대가 한 것이야.」
밀입국자 숙소 근처에서 발견된 세 구의 시체를 말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신원불명의 피살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밀입국자 숙소 근처의 경비를 강화시키도록 하고, 그리고 이 사람, 수사 삼 과장 자리가 비었으니 삼 과장으로 임명을 하지.」
서류 한 장을 들어 사인을 한 이대각이 그에게로 내밀었다.
「당신의 강력한 추천이니까 말이야.」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본부장님.」
서류를 받은 장동택이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능력도 뛰어나구요. 제가 잘 압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장동택은 인터폰을 눌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철진을 불러들였다. 곧 방에 들어선 오철진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다.
「이봐, 자네 발령이 났어. 본부의 수사 삼 과장이야.」
장동택이 테이블 앞에 선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서장급이지. 어때? 직급이 나보다 낮다고 서운한 건 아니지?」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국장님.」
부동자세로 선 오철진이 정중하게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과분한 직책입니다. 모두 국장님의 덕택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자네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이곳에서는. 전화위복으로 생각하라구.」
오철진은 그와 안기부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였다.
한 달쯤 전에 안기부의 인원감축으로 해임된 그는 장동택에게 일자리를 부탁해 온 것이다.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데다 근대리아의 경비대를 확장하는 중이었다. 시기가 적절하게 맞았던 것이다.
총독이 총독실로 강미현을 부른 것은 한 달여 만에 처음이었다.
관사에 같이 살고 있어서 총독과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함께 했지만 업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보름쯤 전에 총독의 아들이자 강미현의 부친인 근대그룹 회장 강용식이 근대리아에 와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총독실에는 행정청장 이남호와 강용식이 총독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자리 잡고 앉자 총독이 입을 열었다.
「한국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권도 곧 파탄 상태가 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되건 나라는 망한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영문도 모르고 정부의 발표만을 믿고 있는 국민들이 불쌍하다.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책임질 놈은 한 놈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모두 외국으로 도망칠 것이다.」
그가 강용식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강회장이 말해.」
강용식이 조그맣게 헛기침을 했다.
「오성그룹과 대한그룹, 그리고 제일그룹이 지금 근대리아로 자산을 옮겨오고 있어요. 이건 내가 서울에 있을 적에 그 그룹들의 회장과 만나 합의를 했습니다.」
이남호가 놀란 듯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강용식이 말을 이었다.
「현재 근대리아에 들어오는 자금의 약 삼십 퍼센트가 그들의 자금입니다. 지금 원화 환율이 폭락하고 있는 이유가 그들이 대량으로 달러를 바꾸기 때문이오. 머지않아 원화 가치는 대폭락을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무너집니다.」
「한국 정부에서 단속을 할 텐데, 어떻게 자산을 옮겨온단 말입니까?」
이남호가 묻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업 임원이나 심복들을 사직하게 하고 그들에게 기업 자금을 주어서 근대리아로 이주시키는 거요. 곧 한국 경제는 껍질만 남게 됩니다.」
「‥‥‥‥」
「철없는 노조에서는 지금도 임금투쟁으로 악을 쓰고 있는데 머지않아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되겠지요.」
그러자 총독이 말을 받았다.
「그 세 그룹은 재계순위 오 위 안에 드는 그룹들이라 강회장과 합의를 했지만 나머지 그룹들도 제각기 움직이고 있어. 그들끼리 연락이 된 모양이야.」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을 하고 있다. 정부는 서민을 위해 잘된 일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발표를 했는데 곧 은행이 망한다. 겨우 부동산 담보로 기업을 꾸려갔던 기업들도 쓰러질 것이고.」
「그것, 야단이군요.」
이남호가 말하자 총독이 머리를 끄덕였다.
「종합기획실에서 이미 대책을 세워 놓았다. 곧 한국의 이주민이 난민처럼 몰려들 데지만 투자이민 외에는 받지 않을 테니까. 지금 한국의 근로자가 받는 임금으로 이곳에서는 세 사람을 고용할 수가 있어.」
총독이 강미현을 바라보았다.
「격변기다, 대단히 중요한 때야. 이러한 시기에 지휘체계에 혼선을 일으키거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엄격한 표정으로 그가 말하자 강미현이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만큼 근신을 했으니 이젠 청장과 함께 한국의 그룹들이 근대리아에 기반을 잡는 것을 도와라. 그 일이 우선이다.」
근신이 풀린 것이다. 긴장이 풀린 강미현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가늘게 숨을 뱉었다.
「현재까지 작업장을 이탈한 반동은 이백칠십삼 명이오. 지난달이 삼십칠 명으로 제일 많습니다.」
박기환이 방 안의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북한 대표부의 대표실 안이다. 서일을 중심으로 장호성과 이금철, 최태호가 벌려 앉아 묵묵히 그를 마라보고 있었다.
「어제도 세 명을 즉결처분했지만 작업장의 감독을 철저히 해야 됩니다. 앞으로는 연대책임을 지도록 할 테니까요.」
박기환은 감찰대장으로 이제까지 송무웅의 휘하에 있었으나 지금은 조직을 맡은 이금철의 상위(上位)에 있게 되었다.
자금을 맡은 장호성을 제치고 서일 다음가는 제2인자가 된 것이다. 서일이 입을 열었다.
「호위대 병력은 돌아갔지만 우리의 세포조직은 그대로 살아 있어. 그것만 해도 다행이야.」
그는 당으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서 호된 질책을 받았지만 평양으로 소환되거나 경질될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행정청과 특히 강미현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쌓아온 그와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당분간 약품사업도 위축된 상황이니 사업장 영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합시다.」
서일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더구나 이번 달에 북남 대표회의가 이곳에서 열릴 계획이야. 평양에서 오시는 분들의 경호문제도 있고 또 사업현황을 시찰하실지도 모르니 철저히 준비를 해두도록.」
「어느 분이 오십니까?」
최태호가 묻자 그는 머리를 저었다.
「아직 미정이야. 하지만 날짜는 열흘 후인 9월 15일이야.」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남조선 대통령 선거의 대책회의가 열리는 게지, 북남의 대표가 모여서 말이야.」
회의를 마친 박기환이 근대시 외곽에 위치한 100평형 단독주택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였다. 응접실에는 그의 아내와 딸이 외출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준비 되었어?」
「옷가지만 대충 꾸렸어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내는 미인이었는데 보천보 경음악단의 가수 출신이다. 박기환은 10살 된 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쓸었다. 어머니를 빼박은 듯한 깜찍한 용모의 아이였다.
「돈은 충분할 거야. 은행구좌하고 비밀번호는 외웠지?」
박기환이 묻자 아내가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당신도 참, 몇 번이나.」
「비행기 갈아탈 때 조심하고.」
시계를 내려다본 박기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들를 데가 있어서 공항에 못 나간다. 도착하면 연락해.」
「알았어요.」
박기환이 허리를 굽히자 딸이 볼에 입술을 대었다.
그는 처자식을 스위스의 제네바로 보내는 것이다.
물론 당의 허가를 받은 딸의 유학이었다.
5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운 딸은 신동소리를 들어왔고 제네바의 국립음악학교에 학비 전액면제의 장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박기환의 처 한정미는 음악단의 가수로 해외여행의 경험이 많은 여자였다.
집 밖까지 처자를 배웅한 박기환은 그들이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한이 근대리아에 도착한 것은 부산을 떠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김상철이 살아 있다는 소식은 고리키 호를 타고 오는 도중에 들었지만 다시 한국으로 가겠다면서 니호트카에 며칠간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김상철이 직접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국으로 밀항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오후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구려 호텔의 20충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린 이한은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 2021호실 앞에서 멈춰 섰다.
잠깐 주위를 둘러본 그가 노크를 하자 곧 문이 열렸다.
그를 맞은 사내는 박기환이다. 잠자코 옆으로 비켜선 그를 지나 이한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호위총국 출신 송무용이 근대리아 정부측의 기습적인 통고를 받고 북한으로 되돌아간 후에 박기환의 지위는 격상되어 있었다.
남은 조직을 관리하는 이금철을 감독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박선생이 많이 도와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한이 똑바로 박기환율 바라보았다.
송무용 이하 호위총국에서 파견된 호위대의 명단을 변순태에게 넘겨준 것은 박기환이다.
그는 들고 왔던 가죽가방을 탁자 위로 내려놓았다.
「십만 달러요. 형님이 드리라고 한 것이니까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동안 가방을 바라보던 박기환이 손을 뻗쳐 그것을 들었다.
의자 밑으로 가방을 내려놓은 그가 입을 열었다.
「김사장께선 지금 서울에 계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왜 묻습니까?」
「북조선 공작조가 남조선에 파견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그래요?」
이한이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닌 것이다.
그가 알기로도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간첩이나 이적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얼마든지 있다.
만일 북한 대학생들이 한국 학생들 같은 행동을 한다면 총살을 당하거나 잘 되어야 정치범 수용소에서 굶어죽는다.
공작원을 새삼스럽게 파견하지 않아도 한국에는 얼마든지 공작원이 있는 것이다.
박기환도 그의 분위기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극비사항이라 나도 송무용한테서 겨우 들은 말이오. 그 공작조가 김사장의 부인을 해친 것 같습니다.」
「‥‥‥‥」
「그놈들은 남조선 정치권 주위에서 대남공작을 하고 있어요. 부인을 해친 것도 아마 그 공작의 일부분일 겁니다.」
이한의 얼굴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졌다.
「사실이오?」
「송무용은 공작조의 작전이 너무 경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떠나기 전날에 들은 말이오. 칠려면 본인을 쳐야지 가족을 친 건 비겁하다고 하더군요.」
「‥‥‥‥」
「하지만 그 자들은 칭찬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사장은 한국 정부와 근대리아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을 품게 되었으니까요. 그것이 본래 그들의 계획이었던 모양이오.」
이한이 핏발 선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증거가 있습니까?」
기무사 참모장 현창복 준장은 스카이라운지 입구에 멈춰 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방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나 라운지에는 손님들이 꽤 들어차 있었다.
「이봐, 여기야.」
갑자기 옆쪽에서 부르는 소리에 그는 몸을 돌렸다. 벽 쪽의 테이블에서 사내 한 명이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기무사령관 함종일 중장이다. 그도 현창복과 마찬가지로 양복 차림이었다.
다가간 그가 자리에 앉자 함종일이 양주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랐다.
「우선 한잔 마셔.」
함종일은 안보수석 신형목과 저녁을 먹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현창복이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하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전작(前酌)이 있었던 모양으로 그의 얼굴에는 취기가 있다. 위스키를 한 모금 삼킨 현창복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수경사가 조금 이상합니다.」
「조금 이상해? 그런 표현이 어디 있어? 군기가 빠졌군 그래.」
함종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국어 표현법을 더 연구해야 되겠어.」
그러나 현창복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요즘 들어 사령관과 여단장들의 회동 횟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평시의 두 배 이상이고 세 번이나 사령관과 50여단장의 행적이 불명(不明)인 때가 있었습니다.」
「나도 보고 받았어.」
함종일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대원각 안에서 오입한 모양이더군, 엊그제는 말이야.」
「사령관이 오입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왜? 대령 땐 오입대장이었어.」
「51여단장 전속부관이 통하는 놈인데요, 전종택이가 정권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겁니다. 휘하 연대장과 같이 있을 때랍니다.」
「요즘 수경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뭔가 조치를 내리셔야‥‥」
「심증만 가지고는 곤란해.」
이제 함종일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현창복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남북간 비밀합의를 했다는 소문이 군 일부에 퍼져 있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이건 소문으로 그친다.」
「‥‥‥‥」
「열흘 후에 다시 근대리아에서 남북간 대표회의가 열린다. 물론 비밀협상이지.」
「그리고는 아마 획기적인 발표가 있을 거야. 이건 저녁때 안보수석한테서 들은 이야기 다.」
긴장한 현창복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감시는 철저히 하도록. 정책에 불평불만을 했다고 잡아갈 수는 없는 세상이니까.」
「알겠습니다.」
「수경사령관의 인맥은 내가 다 알아.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나야.」
그는 다시 술잔을 쥐고는 마시자는 듯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도 군인이면 나도 그렇고 충성심의 강도도 비슷할 것이다. 다만 맡은 일이 다를 뿐이지.」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다. 국방부에 들러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마친 최무섭은 차관과 함께 청사 근처의 일식집에 들렀다. 장성들의 단골식당이어서 테이블마다 장군들이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인사를 했다.
「차관님, 전 잠깐 화장실에.」
방에 들어서려던 최무섭이 말하자 차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소장으로 예편했지만 최무섭의 8년 선배였다.
식당 안쪽의 화장실로 다가간 최무섭은 곧장 화장실의 옆쪽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은 주방 창고로 쓰이는 방이어서 야채류가 어지럽게 쌓여져 있었다.
곧장 방을 가로지른 그는 반대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은 2층의 비상계단이었다.
언젠가 이곳에서 술에 취했을 때 화장실을 찾으려다 잘못 나온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3층의 계단으로 올라가자 벽에 기대 서 있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김상철이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시멘트 바닥 위에 버리더니 구둣발로 비벼 껐다.
「미안합니다, 기다리게 해서.」
최무섭이 그의 앞에 다가섰다.
「이것, 간첩 접선하는 것 같아 스릴이 있군요.」
「9월 15일에 근대시에서 다시 남북간 비밀회담이 열립니다.」
빠르게 말한 김상철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도 오늘 아침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떠나기 전에 직접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비밀회담이라. 이쪽 대표는 누굽니까?」
얼굴을 굳힌 최무섭이 묻자 김상철이 머리를 저었다.
「아직 모릅니다, 북한 쪽도. 하지만 거물급이 되겠지요. 북한은 이번 회담을 한국의 대통령 선거 대책회의라고 부르고 있더군요.」
김상철이 힐끗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제가 돌아가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김사장.」
최무섭이 김상철의 손을 쥐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알려주셔서.」
「이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령관님.」
계단에 발을 내린 김상철이 그에게로 머리를 숙였다.
「저도 슬한 고비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지요.」
계단을 내려오면 빌딩의 후문이었다. 후문 앞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었고 앞쪽은 높은 시멘트벽에 가로막혀져 있다. 길가에 서 있던 김봉만이 다가왔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어머나, 깜짝이야.」
차에서 내린 이유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회사 앞의 주차장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려던 그녀의 앞을 가로막듯 서 있는 사내는 윤태석으로 광고회사의 부장이다.
「갑자기 웬일이야?」
그녀가 묻자 윤태석이 턱으로 옆쪽을 가리켰다.
「잠깐 나하고 같이 가. 잠깐이면 돼.」
신장이 185센티미터에 체중은 100킬로그램이 나간다는 거인이다. 체육학과를 나온 그는 유도가 3단에 태권도가 5단으로 광고회사에서 연예인의 매니저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 들어가 마주앉았다. 어깨를 편 윤태석이 실눈을 뜨고는 이유미를 내려다보았다.
회사의 광고문제로 그를 만났을 때 둘이는 순식간에 서로의 매력에 끌렸고 그날 밤에 몸을 섞었다.
시바다가 서울에 오기 전까지 거의 6개월 동안 둘이는 한 몸처럼 붙어 지냈던 것이다.
「왜 내 전화도 받지 않는 거야?」
윤태석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이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날 우습게 보는 거야?」
「태석 씨, 왜 이래?」
이맛살을 찌푸린 이유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왜 소리치고 그래?」
「그럼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았냐?」
그러자 주위의 테이블에서 이쪽을 힐끗거렸다. 윤태석이 으르렁 대듯 말했다.
「너, 나 어떤 놈인지 알지?」
「‥‥‥‥」
「이런 식으로 내가 당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넌 여행사고 지랄이고 끝장이야, 알았어?」
그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했다.
「오늘 저녁에 봐. 여덟 시에 내 아파트로 오란 말이다, 알았어?」
윤태석은 나이 30세로 아직 미혼이다. 그가 결혼상대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유미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저녁 8시, 이유미가 서초동의 아파트 벨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렸다. 셔츠차림의 윤태석이 넓은 가슴을 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왔군.」
그의 득의에 찬 표정이 순간 허물어졌는데 이유미의 뒤에 선 사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내는 보통 키에 조금 우울한 표정이었다.
「누구야?」
문 앞에 아직도 서 있는 이유미에게 짜증난 듯 묻자 사내가 힐끗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이유미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에요.」
「잠깐 집에 들어가도 될까요?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사내가 머리를 숙였다.
「잠깐이면 됩니다.」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어.」
윤태석이 앞으로 바짝 다가서자 사내의 얼굴은 가슴에 닿았다.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윽!」
그 순간 윤태석은 목 안으로부터 야릇한 비명소리를 내며 허리를 구부렸다.
사내에게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찍힌 것이다.
그 다음 순간 사내의 발길이 날아 턱을 쳐올렸으므로 털컥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큰 대자로 뒤로 넘어진 윤태석의 옆구리를 다시 구둣발로 찍듯이 차면서 김봉만이 이유미를 돌아보았다.
「밖에서 기다리시지요.」
얼굴이 하얗게 된 이유미가 서둘러 밖에서 문을 닫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김봉만은 온몸을 웅크리고 누워 신음소리를 뱉는 윤태석의 앞에 섰다. 어느 사이에 그는 소음기가 끼워진 긴 권총을 꺼내들고 있었다.
「일어나 앉아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윤태석은 알아들었다.
입가로 피를 흘리면서 아직도 머리를 건들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겨우 소파 위에 몸을 얹었다.
그의 시선은 김봉만이 쥐고 있는 권총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다.
김봉만이 그의 시선을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는 권총을 혁대 사이로 찔러 넣었다.
「난 야쿠자다. 이유미는 내 보스의 여자야.」
두 다리를 벌리고 선 김봉만이 부드럽게 말했다.
「넌 보스의 여자를 협박했어.」
그 순간 벌떡 일어선 윤태석이 탁자를 김봉만의 앞으로 들어 젖혔다.
그리고는 아수라처럼 달려들었는데 몸을 날려 피한 김봉만에게 다리가 걸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그러나 몸을 젖혀 일어나려던 윤태석은 한쪽 귀가 섬뜩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화끈한 통증이 왔다. 무의식중에 한 손을 귀에 대며 일어나려던 그는 앞에 서 있는 김봉만을 바라보았다.
「어!」
비명인지 놀람인지도 모를 소리가 그의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김봉만은 어느새 빼들었는지 한 손에 단도를 들고 다른 손에는 그의 한쪽 귀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를 악문 그가 다시 두 팔을 벌리며 달려드는 순간 김봉만이 와락 다가왔다. 그리고는 칼날이 번뜩이더니 다른 쪽 귀가 섬뜩했다.
「아이고!」
이젠 공포의 외침이다. 두 팔을 벌리고 선 윤태석은 난생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감으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었다.
「다음은 네 코다.」
귀 두 짝을 발밑에 던진 김봉만이 피묻은 손가락을 들어 그의 코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음은 네 연장.」
김봉만의 손가락이 윤태석의 사타구니로 내려갔다.
「튀어나온 것은 모조리 잘라버릴 테다.」
김봉만이 번쩍 몸을 날려 다가왔으므로 윤태석이 무의식중에 손과 발을 휘저었으나 어느 사이에 그는 뒤로 돌았다가 다시 앞에 나타났다. 비틀거리던 윤태석의 손이 저도 모르게 코를 덮었다. 두 눈이 찢어질 듯 치켜떠져 있었다.
「이번에는 머리를 베겠어.」
김봉만이 한 움큼 잘라 움켜쥐고 있던 머리칼을 윤태석의 얼굴에 뿌렸다.
「돼지 같은 놈, 무릎을 꿇어라.」
그러자 부들거리던 윤태석이 응접실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양쪽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온몸을 적신 데다 한쪽 머리까지 하얗게 베어진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김봉만이 소파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지를 벗어.」
「아이고 형님.」
윤태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형님, 살려 주십시오.」
잠시 후, 아파트를 나온 김봉만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이유미에게로 다가갔다.
처음처럼 깔끔한 옷차림에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이유미가 운전하는 차로 곧 그 자리를 떠났다.
영동의 번화한 대로로 들어서자 이유미가 김봉만에게 물었다.
「저,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죠?」
김봉만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에 이유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김사장님도 이 일을 알고 계세요?」
그녀는 김봉만에게만 연락을 했던 것이다. 김봉만이 힐끗 시선을 주었으나 이유미는 앞쪽을 바라본 채 기다렸다.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만 보고드릴 작정이었지요.」
「내가 모시는 분이니까요.」
「하지만 원하신다면 보고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유미가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저요.」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여 야권은 역사적인 대통합을 이루었고 단일후보로 국민당의 이대현을 선출했지만 그렇다고 야권 양당이 완전 화합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일사불란한 진군을 외치고 있었으나 아직도 이해관계에 얽힌 내분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선이 ~달도 안 남은 시기였다.
언론은 온통 대선에 대한 보도뿐이었고 경제문제는 장미빛 청사진만 펼쳐보였는데 물론 정부의 발표와 정부측 조사기관의 자료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 정권과 여권 후보인 정동민의 프리미엄이다. 야당이 현재의 경제공황 상태를 매일처럼 외치고 있었지만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상황이 아니었다.
근대리아로의 이주민이 폭주하는 데 반비례해서 집과 땅값이 30퍼센트 가량 하락한 것이 우선 서민들을 기쁘게 했다.
거대한 부동산을 소유한 재벌기업과 부동산업자가 앉아서 재산의 30퍼센트를 잃은 데다 그것을 담보로 잡은 은행이 사색(死色)을 띠고 있었지만 나설 시기가 아니었다.
부도가 났거나 폐업 직전의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근대리아로 몰려간 바람에 실업률에도 변동이 없었고 물가도 그대로인 것이다. 근대리아와의 자연스런 경제연합이라고 정부는 선전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처럼 보였다.
한국에는 고부가가치 품목의 생산시설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근대리아는 자원을 바탕으로 한 저부가가치 품목을 맡는다.
실제로 환경부는 폐수를 많이 내거나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근대리아로의 이주를 권장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근대리아가 원하건 말건 간에 근대리아 경제는 한국경제의 일부분이다.
주시장도 한국이고 자금원도 한국이다. 정부의 근대리아관(觀)이 그것이었다.
여당의 대선후보 정동민이 주창하는 정책은 안정된 정국과 균형 있는 경제발전이었다.
지난번 어선과 어부들을 북한으로부터 송환받음으로써 대북협상의 능력을 보인데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다는 것도 그 증표(證票)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대현의 추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야당은 현 상황을 국가의 위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이 외세에 끌려 다니게만 만들어 국가의 자존과 기능을 말살시켰고 그 한 예가 5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대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정권은 북한의 위협에 속절없이 굴복하고는 그것을 선린과 동포애로 위장하여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경제는 이미 파탄이다. 3D현장을 기피해 온 한국의 노동인력이 그나마 중소기업의 근대리아로의 대탈출로 대량실업자 사태를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선거 직후에 물가폭등과 경제공황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대현은 현 정권의 독선과 위선에 싫증이 난 중산지식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와 외교 등 정치권에 대한 반응이지 경제정책에 대한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대현의 경제정책 비판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대현은 여의도 당사의 총재실에서 사무총장 김상식과 마주앉았다.
김상식은 선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그의 심복이다.
60대 초반으로 이대현보다 나이가 서너 살 아래인 그는 흰 머리에다 얼굴의 주름이 많아 오히려 나이가 더 들어보였다. 벽시계는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봐, 근대리아에서 남북간 비밀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건 믿을만한 정보야.」
반쯤 탁자 위로 허리를 숙인 이대현이 말하자 김상식이 퍼뜩 눈을 치켜떴다.
「아니, 언제 말입니까?」
이대현이 도청을 염려하는 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지난주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나를 샅샅이 조사는 시켜두었지만 안심이 안 되는 눈치였다.
「9월 15일로 날짜를 잡았다는 거야. 한국 대표는 정동민과 이태준, 그리고 신형목이다.」
「도대체 무슨 회의지요?」
「북한 대표는 아직 미정이야. 하지만 근대리아에서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 대책회의라고 하는 모양이야.」
이대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북한 쪽에 그렇게 소문이 났다고 했어.」
「누가 말씀입니까?」
「김상철이.」
김상식이 눈을 껌벅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김상철을 만나셨습니까?」
「건너 들었어.」
「지난번에 근대리아에서 남북한이 작성한 비밀합의서도 보았어. 쌀 백만 톤을 대선 전 십일월에 준다는 치욕적인 내용이었어. 하지만 언론에 터뜨릴 수가 없었다. 정부에서 잡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안기부장 권준규가 갑자기 물러난 이유도 그것이야. 지금도 언론인들은 감시를 받고 있어.」
검경과 안기부, 기무사 등 사법과 정보기관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현 정권이다. 더욱이 언론사 노조에도 집권층의 끄나풀이 심어져 있어서 재야투쟁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김상식이 목구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선거 대책회의가 틀림없을 것 같군요, 총재님. 이러고 있다간 우린 죽습니다.」
「‥‥‥‥」
「북한 놈들이 정동민과 손발을 맞춘다면 선거는 하나마나란 말씀입니다.」
야당의 선거대책 본부장인 그는 여권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따지는 것보다도 우선 염두에 떠오른 것이 선거였고 그 결과인 것이다
테헤란로의 양식당 파코는 바닷가재 요리로 이름난 곳이었다. 10층 빌딩의 1,2층을 차지한 식당은 규모도 컸지만 내부 장식도 운치가 있어서 음식맛은 둘째로 치는 단골 고객들이 많았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이유미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는 정확히 7시 정각이었다. 안면이 있는 지배인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식당 안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테이블이 반쯤 차 있었다. 지배인은 벽 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김상철에게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는 이미 맥주를 시켜놓고 마시는 중이었다.
「식당 분위기가 좋군.」
자리에 앉은 이유미를 향해 그가 말했다. 출발이 내일 밤으로 다가온 저녁이다.
김상철이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전화를 해온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여행사 사장들과 저녁약속이 되어 있던 이유미는 그들에게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김상철의 저녁초대는 뜻밖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잔에 맥주를 채운 이유미가 잔을 들었다.
「무사히 귀국하시길 바라겠어요.」
김상철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고마워, 여러 가지로.」
주문한 요리가 날라져 왔으므로 그들은 잠자코 식사를 했다.
안쪽의 스테이지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동남아계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밝은 목청에 가벼운 곡조의 노래였는데 식당 안의 분위기에 맞았다
「인천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되죠?」
포크를 든 채 이유미가 문득 물었다. 시선이 부딪히자 짙은 속눈썹이 두어 번 닫혀졌다 열렸다.
「그쪽은 좀 나을 거야.」
「미리 연락은 해두셨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말을 잘랐던 김상철이 힐끗 시선을 주더니 포도주잔을 쥐었다.
「유미 씨한테 또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
「말씀하세요.」
「경주에 조기욱 외과라는 병원이 있는데 그 사람 앞으로 돈을 보내주면 돼.」
「그럴게요.」
「나하고 봉만이는 은행에 갈 형편이 못 되어서 그래.」
「염려마세요.」
「김봉만이 보냈다고 하면 알 거야. 내가 연락은 할 테니까.」
머리를 끄덕인 이유미가 그를 바라보았다.
「완이는 외할머니하고 같이 있을 건가요?」
김상철이 잠자코 있자 그녀가 시선을 내렸다
「미안해요. 그냥 걱정이 되어서.」
「친척 중에 여자란 외할머니뿐이어서.」
「엊그제 겨우 통화를 했어, 외할머니하고.」
「염려 말라고 하시더군.」
그들이 식당을 나왔을 때는 밤 9시가 되어 갈 무렵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그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섰다.
주차장은 지하 2층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손님은 그들 둘뿐이었는데 갑자기 김상철이 이유미의 허리를 나꿔채며 옆쪽의 벽에 붙어 섰다.
깜짝 놀란 이유미가 무의식중에 두 손을 김상철의 가슴에 대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주차장은 조용했고 조금 어두웠다.
100평쯤 되어 보이는 지하실 안에는 20여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지만 인적이 없다.
이윽고 김상철이 이유미의 허리를 감은 팔을 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유미는 그가 한 손에 기다란 권총을 빼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이 달아오른 그녀는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그들이 선 곳은 엘리베이터의 바로 옆쪽의 벽 모서리였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손님들이 내려오는 것이다. 김상철이 이유미를 돌아보았다.
「움직이지 마라.」
이유미가 머리를 끄덕였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두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이쪽에서는 그들의 뒷모습만 보였는데 김상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내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누굴 찾는 거냐?」
김상철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그 순간 이유미는 두 사내가 펄쩍 뛰듯이 뒤로 몸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좌우로 갈라서면서 제각기 몸을 비틀고 구부렸다.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그때였다.
「퍽, 퍽, 퍽.」
김상철이 쥔 총에서 지하실을 무겁게 울리는 발사음이 연속해서 들렸다. 사내들은 이미 손에 권총을 빼내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엎어지면서 시멘트 바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리고는 그만이다. 두 사내는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주차장의 입구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김봉만의 목소리였다.
김상철이 이유미를 돌아보았다.
「자, 어서 떠나자.」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김봉만이 그의 앞에 섰다.
「한 놈은 잡아 차 안에 두었습니다. 나머지 세 놈은 죽여 없앴습니다.」
그는 쓰러진 사내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밖은 이상없습니다.」
그들은 곧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왔다. 이유미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므로 김상철이 그녀의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이유미가 파코로 약속장소를 정하자 김상철과 김봉만은 미리 도착해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이유미와 이런 식으로 만난 적은 없다.
오늘의 저녁약속은 미행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주차장이 습격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로 보였으므로 김봉만은 습격자를 역습하려고 차 안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무참한 살해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유미는 질린 듯 앞쪽에 시선을 준 채 몸을 굳히고 있었다.
이곳은 한국이다. 근대리아처럼 총격전이 일어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차가 테헤란로를 벗어나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김상철이 옆자리의 이유미를 바라보았다.
「놈들이 누군지는 곧 알게 될 거야.」
이유미는 눈만 깜박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놈들은 유미 씨를 미행해 왔는데 그건 날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유미는 근대리아에서 김상철에게 추방을 당해 원한이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지. 우리가 이제 협조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길이 뚫렸으므로 그는 차에 속력을 내었다.
「일본 정보국과 또 하나 있지. 나와 이유미를 잘 알고 있는 놈, 그리고 그놈이 연관된 조직일지도 모른다.」
사내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각진 얼굴에 피부가 검었고 건장한 체격이었다.
용인에 위치한 이유미의 별장 안이다. 사내를 데리고 역삼동의 빌라나 이유미의 청담동 아파트로 갈 수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밤길을 달려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두 손과 발목을 묶인 사내는 응접실의 소파에 앉혀졌지만 당당한 태도였다.
이유미는 자리를 피하려는 듯 안방으로 들어갔으므로 응접실에는 그들 셋뿐이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김상철이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재일동포의 여권을 갖고 있는 걸 보니 일본에서 온 것 같은데, 신원과 목적을 말해라. 말한다면 제 삼국으로 떠나게 해주겠다.」
그는 힐끗 김봉만을 바라보았다.
「말 안 한다면 할 수 없다. 죽여서 버려라. 이놈 아니더라도 말할 놈이 있으니까.」
김봉만이 그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넌 북한 공작원이다, 그렇지?」
던지듯 그렇게 묻자 사내가 어깨를 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날 돌려보내 주겠소?」
「정직하게 말한다면.」
「살려준다고 어떻게 보장합니까?」
「못 믿어도 할 수 없다. 네가 알아서 판단하는 수밖에.」
「말해.」
사내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소. 난 북조선 공작원이오.」
「다섯 명 모두 재일교포인데 조총련계입니다. 조금 전에 일본 경시청에서 신원확인이 되었습니다.」
서태영이 테이블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이놈들은 다른 곳에서 살해되고 나서 고수부지로 옮겨진 것 같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이근복이 서류를 넘겨보았다. 다섯 명의 시체를 실은 승합차가 고수부지에서 발견된 것은 어젯밤이었다. 모두 총상을 입은데다가 재일동포이다.
검경에 비상이 걸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방송뉴스는 시간마다 속보를 전하는 중이었다.
「총기를 휴대하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아. 도대체 이놈들이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이맛살을 찌푸린 이근복이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살해한 놈들은 누구야?」
「경찰에서는 조직 간의 싸움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그래야 파장이 적을 테니까.」
이근복이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청와대에서도 긴장하고 있더구만.」
곧 남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로 비약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은 뻔했다.
「각하께서도 K작전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셔. 특히 보안에 주의해야 돼 .」
이근복이 그제야 턱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으므로 서태영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추세로 나간다면 대선 전에는 조직이 완전히 갖춰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안기부의 자금은 물론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리아의 여타 조직이 사업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음성조직이라면 K작전으로 추진하는 한국 조직은 근대리아의 행정청은 물론이고 경비대와 공장,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인력을 침투시키고 자금을 쏟아 붓고 있었다.
「중점을 둬야 할 곳은 경비대야. 그곳만 장악하면 일은 훨씬 쉬워져.」
「안기부 출신이라면 장동택이 나서서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서태영이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더구나 지금 경비대를 확장하는 중이라서요. 중간 간부급으로 이미 열네 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 청와대 안보수석 신형목은 민정길 보좌관과 마주앉아 있었다. 그도 출근하자마자 민정길을 부른 것이다.
「이봐, 일본 대사관측 반응은 어때?」
「아직 노코멘트입니다. 그들도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정길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북한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려가 되는데요. 남북회담 전이라 말씀입니다.」
「우리 정부가 한 짓도 아닌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형목의 표정도 어두웠다. 그도 한국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근대리아에 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돼. 언론을 특히 조심하도록 해.」
이미 경찰에는 주의를 주었지만 언론이 책임 없는 추측기사를 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증거도 없는데다 원인 또한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민정길이 서두르며 사무실을 나가자 신형목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조총련계 사내 다섯 명이 제각기 총기를 휴대한 채 사살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안보문제로 얼마든지 연결시킬 수가 있는 사건이었다.
수경사령관 최무섭이 여의도의 일식집 동경에 들어섰을 때는 정확히 12시 30분이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안쪽의 방으로 들어서자 기무사령관 함종일이 웃음 띤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최선배. 갑자기 밥을 사겠다니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최무섭이 싱긋 웃었다. 함종일은 육사 2년 후배였지만 말을 올렸다 내렸다 제 맘대로 했는데 물론 악의는 없었다. 진급이 늦었던 최무섭이라 함종일보다 계급이 낮았던 적도 있었던 것이다
다다미방에 마주앉은 그들은 물론 군복 차림이었다. 제각기 근무 중에 식사 외출을 나온 것이다.
주문한 생선회와 매운탕이 나올 때까지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건성이었다. 이윽고 음식이 놓여지고 한두 점 고기를 씹고 났을 때 최무섭이 입을 열었다.
「이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어젯밤에 사살된 다섯 놈 말이야, 그놈들은 북한 공작원들이다.」
그는 옆에 놓인 서류봉투를 들어 함종일의 무릎 밑으로 밀어 놓았다.
「그 속에 녹음테이프가 있어. 한 놈이 잡혔는데 자백한 내용이다.」
「한 놈이라니? 그리고 누구한테 잡혔는데?」
눈을 치켜 뜬 함종일이 묻자 최무섭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죽은 놈들의 일당이야. 그리고 놈들을 사살한 건 김상철이다.」
「김상철이라면 근대리아의.」
「그렇지, 지금 정부에서 눈을 까뒤집고 잡으려고 하는 자다.」
함종일이 서류봉투를 들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시선은 최무섭에게로 향해져 있다.
「그 자가 왜 당신한테 이걸 보냈지?」
「아마 내가 제일 말이 통할 것같이 보인 모양이다.」
「이봐요. 지금 농담할 상황이 아냐.」
함종일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어떻게 그 자를 알게 된 거요?」
「그것보다 테이프 내용이 중요하단 말이다, 이 사람아. 듣고 나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이제 최무섭의 얼굴도 딱딱해져 있었다.
「국가의 위기다. 김상철은 근대리아에 수천 명의 정보원을 가진 거물이고 북한의 경쟁상대야. 이제야 겨우 그가 왜 한국 정부에 덤비는지를 알게 됐지만 대북관계에 있어서는 우리의 우군이야. 그 봉투 안에 지난번 남북간 비밀회담이 열렸을 때 작성한 비밀합의서 사본도 들어 있어. 나도 읽었는데 김상철이 그것을 쥐고 있어서 정부로부터 들켰던 모양이야.」
「비밀합의서?」
목소리를 낮춘 함종일이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더니 거칠게 봉투를 뜯었다.
합의서 사본을 꺼낸 그가 내용을 읽는 동안 방 안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최무섭이 젓가락을 들어 생선회를 뒤적거리다가 입맛을 다시더니 내려놓았다. 이윽고 함종일이 머리를 들었다.
「이것도 김상철이 보내왔단 말이오?」
「집 앞 가게에 맡겨 놓았더군. 전화 감청을 했다면 보고가 되었을 텐데, 오늘 아침에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으니까.」
「‥‥‥‥」
「왜 하필 나한테 보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는지 어떤지도.」
「하지만 이걸 받고 보니 그냥 둘 수가 있나? 비겁하게 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어린애 같은 수작 말아요, 당신.」
「어쨌든 난 비겁한 사내는 아니야.」
최무섭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도 알게 되었으니 그 테이프나 들어보고 내 처리를 해.」
흰색 벤츠는 톨게이트를 지나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저벽 8시 반이었다.
차들이 밀리고 있었으므로 이유미는 초조한 듯 여러 번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차가 다시 속력을 내자 옆자리의 김상철이 이유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아무래도 당신이 위험할 것 같은데. 지금 남아 있는 북한 공작원들도 있고.」
「당신을 미행해 왔다가 당했다는 건 놈들도 알고 있을 테고, 아마 당신과 내가 손발을 맞췄다고 생각할 거야.」
앞쪽을 바라본 채 이유미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표시였다.
「당분간 근대리아에 가 있는 것이 어때?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말이야. 그곳에서 회사 일을 봐도 될 것이고.」
「가겠어요.」
이유미가 짧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경주로 돈 보내고 나서 바로.」
「내가 근대리아로 연락할 테니까.」
의자에 등을 기댄 김상철이 어두운 앞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안인석이 박미정의 살해에 협력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어젯밤에 사내는 모든 것을 자백했던 것이다. 안인석은 박미정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겨주었는데 그 중에는 김영환의 목장 위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김봉만이 앞쪽으로 상반신을 숙였다.
「안인석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겁이 나서 외국에는 나가지 못했을 테니 국내에 있을 텐데요.」
조용한 차 안에 그의 말소리가 울렸다.
「몇 사람만 보내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
그러자 김상철이 머리를 저었다.
「내버려 둬라.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
아침에 김봉만이 안인석을 찾아 나섰지만 그는 집에도 없었고 병원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공작원들이 사살당한 것을 알자 재빠르게 몸을 감춘 것이다.
그들이 인천 남쪽의 조그만 어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김봉만이 서둘러 포구 쪽으로 다가갔다. 짙은 어둠에 잠긴 포구는 인적이 없었고 서너 채의 가게와 민가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바다 위로 몇 줄기 뻗쳐 있었다.
습기를 띤 바람이 옷자락을 날리며 스치고 지나갔으므로 이유미는 어깨를 움츠렸다. 뒤쪽의 국도에서 차량의 엔진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앞장서서 그놈이 그 일을 했다면 덜 미울 텐데.」
포구를 향해 선 김상철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차를 등지고 나란히 선 이유미는 잠자코 입을 열지 않았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약한 놈이었어. 그리고 내가 옆에 있었다는 것도 그놈에겐 불행이었던 모양이야.」
「‥‥‥‥」
「그놈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겠지, 책임도 지지 않고. 그리고 어떻게든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했어.」
「‥‥‥‥」
「내 손으로 죽이겠어, 그놈은.」
앞쪽의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는 물체가 보이더니 곧 김봉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장님, 보트가 와 있습니다.」
김상철이 이유미에게로 몸을 돌렸다.
「고마웠어. 그럼 근대리아에서 만나.」
「몸조심 하세요.」
그러자 김상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가 당신한테 말한 약속을 지킬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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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
즐감요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지 두번은 읽고 잇습니다
즐감!!!
매일 매일 기다려지는 김상철 소식^^
감사합니다
넘 재밌게 ....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있습니다. 많은 독자들을 위하여 봉사하심에 고마운 인사드림니다. 건강 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멋진 작가님, 화이팅!!!!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여전히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즐독
즐감요~^^
즐감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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