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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해방구 서울, 살아남기
7월 5일
인민군이 개전 나흘 만에 서울을 점령한 이후, 서울은 다른 체제의 세상이 되
었다. 공화국 새 체제가 어떻게 다르며 어떤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냐는 문제가
공산주의를 말로만 듣던 시민들에게 가장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신변에 위험이
나 불이익은 없을가, 시장이 설까, 시장이 서지 않는다면 당장 양식 조달을 어떻
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내무서나 인민위원회에서 가가호호 양곡을 배급할까, 배
급한다면 북조선 당국은 그만한 양곡을 비축하고 있을까... 궁금한 점은 그외에
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이런 걱정을 안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지
켜보았으나 그런대로 하루하루 넘기는 데는 예전 대한민국 체제와 별로 달라진
점이 없었다. 시민들이 한길을 자유롭게 나다녀도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6월 28일 이후 사흘 동안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연일 군중 집회가 열려 남반부
서울 해방 축하 환영 열기가 대단했다. 전시 체제가 그렇듯 시내 거리는 온통
누런 군복의 인민군들로 차버렸다. 서울 이남 남반부 인민의 호응이 없잖은가.
수도 서울만 해방시키면 여수. 순천 인민 폭동처럼 이승만 괴뢰 폭정에 시달린
인민이 전국적으로 궐기하여 다른 지역은 저절로 해방될 줄 알았는데, 판단 착
오인가?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들이 저들끼리 모여앉아 담배질하며 쑥덕거렸다.
피란 안 가거나 못 가고 서울에 남은 시민들은 한강 남쪽 소식을 알 수 없었으
나, 인민의 열화 같은 혁명 완수 투쟁이나 궐기가 없든 점은 분명했다. 서울 점
령 사흘이 지나자 탱크와 포대들이 시내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처럼
많게 북적대던 인민군 부대도 다음 전투를 위해 이동해버려 완전 군장한 인민군
모습은 시내에서 볼 수 없었다. 서울 시민들은 인민군의 한강 도하 작전이 시작
되었음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남반부 인민들의 혁명 열기가 식었다면 우리가 밀
고 내려가 전국토를 해방시킬 수밖에, 하듯 인민군은 전 전선에 걸쳐 남진의 신
호를 올렸다.
서울 시내는 예전처럼 자전거. 손수레. 우마차들이 슬그머니 다시 한길을 채웠
다. 광화문통을 비롯한 시내 중심부 네거리에는 흰 모자 쓰고 흰 제복 입은 교
통안전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정리를 했다. 그들은 윗녘말을 썼는데 새로
일을 시작한 관청의 위치를 묻는 시민들을 상냥하게 응대했다. 길을 건너는 어
린이와 노약자는 친절하게 안전 지대까지 보살펴주었다. 어린이 동무, 차도에서
놀면 다칩니다. 반드시 인도로 다녀야 해요. 이렇게 아이들한테도 올림말을 썼
다. 나다니는 시민들에 대한 검문 검색은 없었다. 농번기를 맞아 농촌 일손을 도
우러 갔거나 여름 뙤약볕을 피해 휴가라도 떠난 듯 문이 닫힌 회사 건물과 점포
는 많았으나 생필품을 파는 가게는 여전히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상설 시장
도 예전 그대로 섰다. 예전하고 똑같잖아. 달라진 게 없는데. 공산주의 질서에
적응될 때까지, 당분간이겠지 뭘. 시민들은 그렇게 말했다. 시장은 오히려 바뀌
어지기 전 세상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끓었다. 시장에서는 북조선 인민폐와 남
한 돈이 함께 사용되었다. 빨간 딱지 라 불리기 시작한, 크기가 손바닥 안에 들
어오는 북조선 중앙은행권인 붉은색 백 원짜리 인민폐에는 쇠스랑을 어깨에 멘
밀짚모자 쓴 농민과 망치를 어깨에 멘 노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양식이 될 만한
곡물은 며칠 사이 네댓 배로 값이 뛰었으나 그나마 품귀하여 구입하기가 힘들었
고 살림 포시라운 집은 좁쌀. 보리쌀. 감자 등, 장바닥에 곡식감이 풀렸다 하면
값을 따지지 않고 사재기했다. 집안의 귀금속이나 반반한 옷가지를 들고 나와
곡물과 바꾸려는 사람도 많았다. 서민들은 대체로 열흘이나 보름치 양식은 여투
어둔 터라 남의 나라에 침탈당한 것도 아니어서 별로 달라진 점 없는 새 질서에
차츰 순응되어갔다. 어느 쪽 이념은 인간을 살리고 어느 쪽 이념은 인간을 죽이
는 게 아니기에 무지렁이 민중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선택되어진 체제에 길들
여지게 마련이었다. 서민들의 끼니 잇기가 어느 체제든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예전의 가진 자 앞에서 굽신거리던 태도가 없어져 걸음새와 목소리만은 오히려
기세찼다. 해방과 더불어 진작 이런 세상이 와야 한다며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
았다. 노동자. 일용 노무자. 영세 상인. 잡상인. 실업자. 지게꾼. 길바닥에 널렸던
거지와 행려자들이 그들이었다. 나라가 바뀌어도 그들의 생활이 당장 나아질 리
없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한 어느 쪽 체제든 전시의 어려움은 으레껏 겪게 마련
이라는 당위성은 일정 말기 태평양전쟁을 통해서도 체득한 바 있기에 아주 낯선
환경은 아니었다.
서울의 겉모습은 별로 변한 게 없는 듯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한 점이
많고 계속 변해가고 있었다. 새 공화국의 시책에 따라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낯
선 광경을 목격하자 신기해했다. 동무는 왜 자측 통행을 하기요? 길거리에서
내무서원이 좌측통해하는 시민을 잡아 통행을 정지시켰다. 세상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죄측 통행에서 우측 통행으로 변했으니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걸
거리에서 걸음을 묶고 창피를 당하며 2,3십 분 정도 벌을 서다, 앞으로는 조심하
라는 말과 함께 훈방되었다. 그 정도는 약과였고, 행세깨나 하던 부류는 새 시대
를 맞아 두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큰 건물마다 인민공화국 붉은 깃발이
내걸리고 소련의 스탈린 대원수 초상화와 젊은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를 곳곳에
서 볼 수 있는 점은 나라가 바뀌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시내 곳곳에 게시판이
설치되었다. 게시판에는 새 공화국 제반 민주 개혁 조치에 서울 시민이 적극적
으로 조력해달라는 여러 당부말이 나붙는다. 당부말을 넘어, 이제부터 이렇게 하
면 안 된다는 규정도 많았다. 미 제국주의 꼭두각시 남조선 괴뢰 정부를 비판하
는 선전문, 해방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인민군의 혁혁한 전과도 게시판 벽보를
통해 날마다 바뀌어 붙었다. 새 신문도 재빠르게 간행되어 배포되었다. 예전 신
문팔이 소년들이 다시 한길을 누비며 어색하지 않게, 금방 나온 로동신문! 혁명
전쟁 속보, 인민군 수원 점령! 하고 외쳐대었다. 서울 시민은 가로쓰기 편집에
한글로만 인쇄되, 예전 남조선 신문과 아주 달라진 신문을 보고 변화된 세상을
실감하기도 했다. 바깥 세상에서는 동무 란 새로운 말이 거침없이 나돌았다. 해
방 직후까지도 널리 쓰인 말이었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동무란 말을 쓰면 빨갱이
로 몰려 치도곤을 당했는데, 이제 그 말이 응달에서 양달로 나와 그 동안의 한
풀이라도 하듯 말끝마다 입에 올려졌다. 어린이 동무, 청년 동무, 노인 동무, 김
동무, 리동무, 이렇게 사람을 부를 때마다 무조건 동무란 말을 붙였다. 계급 없
는 사회의 한형제 자매이므로 우리는 모두 동무 사이요. 이런 정의가 내려지고
부터 시민들도 남 듣는 자리에서는 어눌하게나마 그 말을 따라 썼다. 인민 이
란 말도 그랬다. 호칭으로는 동무란 말을 썼으나 삼인칭으로 쓸 때는 시민. 사
람. 인간. 군중. 대중이란 말 대신 두루뭉실 인민으로 불렀다. 북조선은 인민의
군대이므로 인민군, 대한민국은 국민의 군대이므로 국군이라 부르는 이치와 같
았다.
7월에 접어들자 한길에는 흰 남방셔츠 차림의 젊은이들이 인공기와 붉은 깃발
을 앞세우고 몇 명씩 뭉쳐서 군인들처럼 절도 있는 걸음을 걷고 있음도 자주 목
격되었다. 그들은 전인민의 력량을 집합하여 남반부 해방 전쟁을 완수하자 란
깃발을 들고 다니며 스탈린. 김일성 장군 만세 남조선 인민은 리승만 정권 타
도에 총궐기하자 는 구호를 주먹 쳐들고 외쳐대었다. 팔뚝에 붉은 헝겊 찬 그들
은 대체로 윗녘말을 썼다. 저 청년 동무들은 북에서 내려온 공산당원들이래, 공
화국 세상에서는 공민증이 아니라 당증 가진 동무래야 힘센 자래. 젊은이들이
무슨 해코지를 하지 않는데도 시민들은 그들의 당당하고 절도 있는 태도에 기가
죽어 작은 소리로 이런 말을 쑤군거렸다. 그들과 더불어 붉은 완장 차고 각목을
든 젊은이들이 호구 조사차 집집마다 들이닥쳐 다락이며 마루 밑까지 샅샅이 뒤
지기도 했다. 그들은 값진 물건을 강탈하거나 곡식을 공출하기 위해 동원된 행
동대가 아니었다. 상부로부터 엄한 지시를 받았는지 민폐 끼치는 작페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민청 단원이었다. 민청당원은, 해방되고 일본인이 떠나자 그들이
썼던 건물을 차지한 서북청년단처럼 주인 떠난 회사 건물을 차지하여 민주청년
동명 이란 간판을 걸어놓고 그쪽으로 출퇴근했다. 민청 각 지부 단원의 주요 임
무는 남반부 정권에 빌붙어 설쳤던 반혁명 분자를 색출 검거하는 일이다. 그 행
동대원 젊은이들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하 좌익 운동에 가담했
던 열혈 젊은이들이 이제 자기네 세상을 만나 그렇게 할거했다. 어느 사회나 그
렇듯 개중에는 세상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박쥐 같은 기회주의자도 섞여 으스
대곤 했다. 민청단원의 검거 대상자는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고급 관리, 우익
정당 관계자, 재력 있는 상공인, 친일 이력을 가진 민족 반역자, 보도 연맹에 가
입하여 예전 동지를 남반부 수사기관에 밀고한 자, 각계에 이름이 알려진 우익
저명 인사들이었다. 각 동마다 과거 지하 남로당원으로 활약했던 인사를 중심으
로 새로 조직을 갖춘 인민위원회는 검거된 반동 분자를 평가 분류해서 그 중 조
사가 더 필요한 지도급 인사는 재심사 분류 대상자로 남기고 전쟁 전의 죄질이
확연히 드러난 반동 분자와 발쇠꾼으로 겅중댄 송사리떼는 인민 재판에 회부했
다. 동 인민위원회는 서울시 인민위원회의 재가를 받아 독자적인 재판권을 행사
했던 것이다. 7월 1이로가 2일에는 각 동마다 설치된 자위대가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에서 공개 인민 재판을 열고 민청 단원이나 인민위원이 검사로 나서서 반혁
명 분자의 죄상을 공개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다수의 재판관으로 동원된 시민의
동의가 있으면 묶여 온 자들 중에 죄질 나쁜 자는 현장에서 즉결 처형해버리기
도 했다. 처형된 자는 많은 재산을 독식한 부호, 반공 단체 간부, 경찰 출신 등
이었다. 그러나 그 공개 처형이 선량한 민주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져 3일부터는 전격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즉결 처형이 폐
지된 날도 시내 곳곳에서는 인민 재판이 열렸다. 민청단원과 지위대원들은 반혁
명 분자는 숙청 처단하라! 는 현수막을 앞세워 오랏줄에 줄줄이 묶인 그들을 시
내 큰 거리로 끌고 다니며 창피를 주기도 했다.
7월 3일 오전 열한시에는 서울운동장 앞 광장에 학생 1만 6천여 명이 모여
력사적 남조선 해방, 혁명 전선을 지원하자! 란 구호를 외치며 인공기와 각종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가 행진을 했다. 강제 동원은 아니었고, 과거 남로
당 지하 조직인 학생동맹 각 대학 세포가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부도덕한 이승
만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많은 학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그 시가 행진은 종로통
을 누볐다. 오후 2시에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애국 학생 궐기대회 란 집회를 개
최했다. 이 집회에서는 서울 시내 학생들의 빨치산 전투 참가, 인민군을 적극 지
원하는 학생의용대 조직, 의용군 참가 학생의 전선 출진, 이렇게 세 가지 항목이
긴급 동의로 가결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의용군 현장 지원자를 받으니 남학
생이 325명, 여학생이 68명이었다. 남학생 지원자들은 총기 훈련을 받기 위해 전
선수송대가 주둔하고 있던 용산구 용산중학교로 가고, 여학생 지원자들은 위생
대로 편성되어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숙명여중에서 응급 처치와 구급법 위생 훈
련을 받게 되었다.
점령 지역 안에 거주하는 반혁명 분자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하고 이를 분류하
는 최종 상부 기관은 서울시 임시인민위원회였다. 위원장은 사법상이며 남로당
계 제 2인자 리승엽으로, 그는 붕괴 직전에 있던 서울시당과 지도부의 재건을
책임 맡고 당 조직 사업을 진두 지휘했다. 당 복구 사업에는 북조선에서 교육받
은 당과 사회 단체 핵심 요원들이 파견되어 서울로 들어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남로당계로서 전쟁 전 월북했던 자였다. 이는 남조선에서의 혁명은 남조선 실정
을 잘 알고 그 혁명에 절실한 이해 관계를 가진 남조선 출신자들에 의해 추진되
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김일성 수상이 특명을 내렸던 것이다, 29일로 서울시 임
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자, 이튿날로 각 구 각 동 인민위원회가 잇달아 조직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먼저 17세부터 40세까지 민주청년동맹 이 발기되었다. 13세부
터 16세까지 소년 소녀를 대상으로 한 소년단 과 민주여성동맹 직업동맹 도
속속 결속되었다.
서울시 인민위원회 산하 정보조사부는 점령 지구 안의 반혁명 분자 색출에 따
른 지시와 그 처리를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무성 정치보위국 소속 정보처
도 서울에 임시서울분국을 설치하여 전쟁 전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남반부
반혁명 인사의 명단을 비치하고 성분 평가 작업과 그 소재 파악에 이중으로 조
사를 벌였다. 그들은 서울시 인민위원회 정보조사부 활동에 간섭하는 월권 행위
를 하지는 않았으나 점령 지구 보안대를 통해 반혁명 분자 색출과 그 처리를 보
고받았고 이를 내무성 검열단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북로당계가 요직을
차지한 내무성 정치보위국 간부진은 남로당계가 요직을 차지한 내무성 정치보위
국 간부진은 남로당계가 장악한 서울시 인민위원회 정보조사부의 점령 지구 행
정력을 따로이 은밀히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보위국 정보처 임시서울분
국은 다섯 개의 과로 나뉘어져 있었고 제3과가 점령 지구 반혁명 분자의 내사를
담당했다. 과장 아래는 정치. 사회. 경제. 학예로 세분하여 각 분야를 전담하는
네 명의 주임과 각 주임 아래 열 명 안팎의 부원을 두었다. 조민세는 제3과 심
판관이란 모호한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과장보다는 아래 직급이나 주임과는 동
격의 별정직이었다.
점심 식사 뒤 과장 주제 아래 주임 넷과 더불어 과회의를 마치자 조민세는 잡
책을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그는 직속 부원을 도고 있지 않아. 예닐곱 평
정도의 방을 혼자 쓴다. 책상과 의자, 열쇠를 채울 수 있는 서류함밖에 없는 간
출한 방이다. 의자에 앉았으나 그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인민군 제1사단 사령부
본대와 함께 그가 서울로 입성하기는 지난 28일 정오 무렵이었다. 정치보위국
정보처는 소공동 큰길에 들어앉은 삼층 건물을 접수하여 통신 시설을 가설한 뒤
곧 사무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었으나 마음만 바빴을 뿐 그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날마다 있는 제3과 과회의에 참석했고 자신에게 넘겨온 비도장
이 찍힌 서류를 검토했으나, 그에게는 어떤 결정권도 없었고 자신의 직분에 따
른 소명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북조선의 강력한 해방 전쟁 완수의 조속한
실천을 주장했던 만큼 인민 해방군의 서울 점령이야말로 감격 그 자체였다. 그
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에게 맞겨진 심판관이라 직책이 한직이어서 자신이 맡
은 업무란 게 하루 두 차례 과회의 참석과 넘겨온 서류를 검토하여 소견서를 제
출하는 게 고작이었다. 회의 석상에서도 참고인의 역할로 소견 제시만 할 뿐 자
신의 견해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 과장
과 주임은 물론 북원 모두가 북조선 출신으로 해방 후 북로당 조직 때부터 정당
원으로 활동했던 일꾼이어서 남반부 출신 남로당계에서 갓 발탁된 조민세로선
그들과 밀착된 동지 의식이 없었다. 회의석상에서도 그는 물에 기름 돌 듯 어색
하여 누가 의견을 묻지 않을 때는 입을 꿰미고 있기 일쑤였다. 앞으루 조동무의
임무가 큽네다. 심판관으로서 조동무의 협조가 절대적입네다. 보안간부학교 출
신으로 서른 중반인 제3과 박영철 과장이 더러 이런 격려의 말을 했으나 그렇다
고 그의 사기가 진작될 리 없었다. 해주지휘부로 소환당해 평양에서 비판의 된
서리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기는 했으나 차라리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쯤 복권되
어 당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받았을는지 몰랐다. 남조선 해방 전쟁 수행에 따
른 점령 지역이 넓어질수록 점령지 당 사업을 관장할 간부 요원이 그 어느 때보
다 필요한 시점이요, 지하 공작에 헌신해온 과거 전력을 참조하더라도 자신이야
말로 복권이 되어야 마땅했다. 어쩌면 지금쯤 후방 빨치산 임무를 띠고 고향 부
근 적진 깊숙이 투입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조민세는 책상 한 켠에 놓인 라디오의 스위치를 켠다. 힘찬 행진곡 군가가 잠
시 이어지더니 여성 방송원의 싹싹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다시 한 번 보고드리겠습니다. 서울을 완전 해방한 우리 영용한 닌민군은
당찬 기세를 몰아쳐 계속 견결하게 남으로 전진, 전진하고 있습니다. 오늘 칠월
오일 새벽 네시, 용감한 닌민군은 수원 남쪽 오산에서 미 제국주의 제이십사사
단 소속 기동 부대인 스미스 부대를 불과 십이 분 만에 격퇴시켰습니다. 우리
닌민군은 스미스 대원 백오십 명을 사살하고 칠십이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스미스 부대는 일본 큐슈 구마모토에 주둔하다 조선 땅에 파견된 미 제국주의
첫 침략군입니다. 이제 영용한 닌민군은 미 제국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으
며, 그 첫 전투에서 개가를 올린 것입니다. 우리 닌민군은 남조선 해방, 김일성
장군의 천명 그대로 성스러운 정의의 전쟁 국토 완정 에 기필코 승리를 쟁취
할 것임을 확신하며...
조민세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끈다. 그 방송 소식은 조금 전 회의에서 보고된
내용이다. 지난 2일 미국 공군 비-29 비행기가 출격, 연포와 평양 비행장을 폭격
한 이래 드디어 세계 제국주의 왕초로 군림하는 미제의 지상군이 조선 땅에 투
입되었고 오늘 새벽 그 첫 접전이 있었다. 미제 수괴 트루먼이 지상군 부대 4만
명의 조선 전선 출동을 명령했고 미제 상원 본의회가 2억 2천 4백만 달러의 남
조선 원조비 할당을 승인한 바 있다는 외신 방송을 접수하기도 지난 30일이었
다. 개전 불과 나흘 만에 내린 결정이니 미제의 기동력 있는 조선 전쟁 개입에
정보처가 놀랐고 조민세 자신도 긴장한 바 있었다. 1946년 이래 미국의 대외 정
책 및 방위 정책은 신중함이 지나쳐 애매함을 보여왔고 그만큼 소극적이었다.
작년 6월 미제의 남반부 점령군 철수와 때맞추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의 미제
국무장관 애치슨의 연설 골자인 미국의 대외 불후퇴 방위선, 즉 애치슨 라인
을 설정하여 조선 반도를 속국으로서의 영향권 밖으로 내몬 경우도 그런 측면에
서 일관된 해석이 가능했다. 그러나 개전 불과 며칠 사이 미제가 뜻밖에도 대담
하고 명확한 행동 방향을 설정하고, 그토록 미첩하게 조선반도 내전에 침략군으
로 참전할 줄은 예상 밖이었다. 인민군이 스미스 부대와의 첫 접전에서 승전보
를 올렸다곤 하지만 앞으로의 전쟁 추이를 낙관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미제
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맹주요 어느 국가도 갖지 못한 가공할 위력
의 원자탄과 현대적 전쟁 무기를 대량 보유하고 있으며 실전 경험에도 풍부한
군사 초강대국이다. 미제의 조선 전쟁 참전이 결정되자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
이 즉각 미제의 제국주의 정책을 연일 맹비난하고 있으나 그들이 직접 북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 이상 북조선은 단독으로 이제 남조선과 미제를 상대로 힘
겨운 전쟁을 벌려야 할 입장이다. 미제가 본격적으로 대거 병력과 군사 무기를
투입하기 전에 인민해방군이 부산에서 목포에 걸친 남해안까지 속전속결로 과감
하게 밀어붙이는 길밖에 달리 방책이 없다.
조민세는 서류철을 들친다. 어제 보안대 본부로 이첩된 점령지구 검거자 명단
과 일차 조사가 끝난 검거자 행적 사항이 기록된 서류이다. 남조선 정부의 고급
관리, 치안. 정보 계통 종사자. 상공인들의 명단과 그들의 인적 사항, 자술서에
의거한 과거 행적이 나열되어 있다. 그 동안 남조선 신문에 이름이 올라 귀에
익은 인사도 있으나 대체로 모르는 인물들이다. 그는 한동안 서류철을 검토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주목할 만한 반동은 개인 잡책에 인적 사항을 옮겨적는
다.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제3과 문서 정리를 담당하는 김영희 동무가 실
내로 들어선다. 인민군복 차림에 이름 적힌 명찰을 달고 있다.
과장 동무께서 찾으십네다.
조민세는 제3과를 거쳐 복도로 나선다. 복도 건너 대각선 쪽 제3과 과장실 방
문이 열리고 박영철 과장이 나온다.
처장 동무 호출이랍니다. 박영철의 말에 조민세가 무슨 용무 냔 듯 바라보
자, 과장회의에서 조동무의 [로력인민]론문 얘기가 있었디요. 박과장이 말한다.
둘은 일층으로 내려와 처장실로 들어간다. 부속실 여비서가 본실 문에 손기척
을 해서, 안으로부터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는다. 송인기 처장과 제1과 신일환 과
장이 의자에 마주앉아 무슨 얘기인가 나누다 둘을 맞는다.
앉으시오. 쥘부채로 부채질하던 송인기가 둘에게 자리를 권한다. 박영철이
처장 옆자리에, 조민세는 신일환 옆자리에 앉는다. 과장 둘은 서른 중반 나이이
고, 처장은 서룬 후반의 김일성 대학 출신이다.
조동무께서는 혁명 과업 추진에 련일 수고가 많으십네다. 서울 가족은 다 안
령하시지요? 가진 얼굴에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송인기가 걸직한 목소리로 살
갑게 묻는다.
무사합니다.
조민세는 지난 28일 서울로 들어온 뒤 그가 묵정동 가족을 만나기는 두 체례
였다. 사무실 정리가 대충 끝나 방 배정을 받자 29일 낮에 잠시 틈을 내어 들렀
고, 3일 밤 묵정동에 들렀을 땐 배종두는 물론 심찬수를 만났고, 그는 오랜만에
서너 시간에 불과했지만 처자식과 함께 잠을 잤다. 이튿날은 안진부 집에서 그
와 함께 아침밥을 먹으며 서울시 임시인민위원회 조직 개편과 업무 추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중앙위원 박태길 있잖아. 자넬 남로당 반동으로 몰아세우더군.
그 작자가 서울시당 심사분석위원장이 됐지. 안진부가 말했다. 조민세는 그런
비판쯤 각오하고 있은 터라 대답하지 않았다. 조민세는 그런 비판쯤 각오하고
있은 터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쪽 업무는 어때? 박이 하는 일과 비슷하지
뭘. 조민세는 내무성 정치보위국 서울분국 업무와 자신이 맡은 직분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울시 인민위원회나 지도부 동무들을 만나는 일
을 막지 않겠으나 이쪽 소관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송인기 처장
과 박영철 과장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치보위국 정보처 복무자는 모두
1급 취급자였으므로 기밀의 대외 발설은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안진부는 서울시 인민위원회로, 자신은 간판도 달지 않은 소공동 사무실로
방향이 같아 함께 출근했다.
어제 조동무 가족 사는 데루 양곡을 날라드렸습네다. 박영철이 말한다.
조민세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다. 이틀 전 집에 들렀을 때 안사람이, 새 공화국
건설도 좋지만 처자식 굶겨죽이겠다며 양식 푸념을 늘어놓았기에 박영철에게 가
족 양식에 관한 부탁말을 별려왔던 참이다.
잘했습네다. 집안이 안정돼야 당 사업에두 로력을 배가할 수 있잖습네까. 앞
으루 제가 말 않더래두 박동무가 마음을 써주기요. 송인기가 부채를 접어 탁자
에 놓곤 각진 얼굴을 조민세에게 돌린다.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한
다. 어제 중앙위원회 회의 석상에서두 조동무가 발표한 [로력인민]의 남반부 정
세 분석에 관한 테제 검토가 있었습네다. 우리는 조동무의 정확한 남반부 정세
분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역시 조동무의 예견이 빗나가지 않았시우. 남반부 유
격대는 이번 해방 전쟁 수행에 큰 성과가 없음이 차츰 증명되구 있습네다. 공화
국 닌민군이 수도 서울만 점령하믄 남조선 닌민이 총궐기하여 지역마다 해방구
를 설정하구, 해방구끼리 호상 협동하여 국방군과 경찰개를 내치구 남반구 전역
을 쉽게 해방시킬 수 있으리란 락관론이, 막상 남조선에 내레와보니 거짓뿌렝이
루 판명나고 있습네다. 지리산. 팔공산. 소백산 일대 남반부 전역으 삼십 프로에
걸쳐 지역 해방구를 설정했다는 김삼룡 동무 말이 헛소리가 아니구 무었이었습
네까. 김삼룡 동무가 아마 작년 십일월말이지, [로동신문]에 발표한 남반부 유격
대가 팔만구천구백여 명이라 했는데, 그 빠르치산이 지금 어데서 뭘 하구 있습
네까? 허튼 수작질이었소. 두메 산골짜기에 면 단위에다 해방구 몇을 설정한 게
무슨 전략적 가치가 있겠수. 안 그렇소, 조동무?
할 말이 없습니다. 조민세는 자신에게 쏟아진 힐책이듯 머리를 숙인다. 아니,
자신도 그런 힐책을 받아 마땅한. 남로당 남반부책 김삼룡 동지가 [로동신문] 작
년 11월 23일자에 발표한 남조선로동당 창립 3주년 - 조국의 통일과 자유를 위
한 투쟁에 있어 남조선로동당의 역할 은 평양의 중앙당 5호실 심문에서 이철주
가 조민세를 반당 행위로 몰아세우는 데 활용되었다. 그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
이 들어 있었다.
.... 10월에 이르러서는 우리 유격대는 벌써 89,924인의 활동인원수와 1,330회의
교전 횟수를 가지게 되었으며, 2,415인의 소위 국방군과 경찰을 격멸하였으며...
최근 남반부 인민 투쟁에 있어 특별히 주의를 돌려야 할 점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에 의한 토지 개혁을 농민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실행하고 있는 그것이다
[...] 이것은 10월 한 달 동안에만 무장유격대의 손에 의하여, 1,212호의 악질 지
주의 가옥들이 소각되고 45개 소의 면 사무소가 없어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
명되는바 영용한 무장 투쟁이 광봄한 농민 대중의 사활적 리익과 뿌리깊게 련결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민세는 중앙당 5호실에서 그 문제로 신랄한 추궁을 당하고 정치보위국 정보
처에선 다른 각도에서 그 문제로 비판을 받게 되니 안팎 곱사등이의 곤혹을 치
르지 않을 수 없다. 참담한 심경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조동무, 린민 대중의 적극적 호응 없는 산골 화전부치 기천 명으루 남조선 괴
뢰 정부를 어드렇게 뒤엎겠습니까. 전쟁만 발발하믄 남조선 사십만 지하당원이
총궐기한다? 군사위원 박동무(박헌영)의 그 호언장담이 현실적으루 어떻게 나타
났습네까?
며칠 사이 조민세가 한두 차례 들어본 말이 아니다. 그 역시 해주지휘부측의
그런 논조에는 비판적이었으나 막상 북로당계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남로당계로
계속 집중되자 그 역시 더 드러내기 힘들 만큼 오기가 솟는다. 자신이 몸바쳐
싸워온 터전의 혁명 열기를 되풀이 비판하며 몸담아온 당을 폄하하는 말이기 때
문이다. 해방 전쟁 수행에 차질이 있다면 그 모든 책임이 과거 남로당계에 있다
는 것은, 덤터기씌우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제의 조선 해방 전
쟁 개입도 남로당의 허위 선전과 정책 결정 실패에 있냐고 그는 묻고 싶다. 그
러나 그는 침묵으로 계속 자제한다.
침략자 미 제국 괴뢰가 조국 해방 전쟁에 손떼지 않는다면 닌민군의 막강한
무력으로 부산까지 밀어붙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정 불간섭주의로 따지더래두
씨가 먹혀들 종자가 아니니깐요. 그 성과는 이제 실전을 통해 나타나구 있잖습
니까. 신일환이 말한다.
전면전에 불을 댕겨야만 남조선 유격 활동에두 전망이 있겠다구 설파한 조동
무의 현금 남반부 정세 분석은 어떠합네까? 박영철이 묻는다.
이제 조민세도 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초전 단계라 사태를 좀더 지켜봐야 할 겁니다. 유격대의 무기 지원도 필요하
고요. 조민세가 무겁게 대답한다. 사실 전쟁 전 남반부 유격대는 지서 습격을
통한 남반부 경찰의 무기 탈취로 무장해온 형편이었고, 비무장 대원도 허다하여
죽창이나 장대에 칼과 낫을 매달아 투쟁 대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 실정에 현
대적 무기로 무장한 지금 쌍방의 전면전에 껴붙기란, 죽기를 각오한 용맹만으론
무리라 아니할 수 없다.
무장이 안 됐다? 오딕 그 니유요? 송인기가 냉소를 짓는다.
여러 요인 중에 중요한 한 가집니다. 조민세는 박헌영을 정점으로 한 남로당
계를 계속 헐뜯는 송인기 처장의 말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남조선 인민이 북
조선의 해방 전쟁 수행에 적극 지원하지 못하는 이유의 분석은 아직 시기 상조
로 보이고 일주일이 지나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 각도에서 분석이
필요할 터이다.
군사위원장(김일성)께서는 남반부 빨치산. 노동자. 농민. 기업가, 나아가서 상
인. 문화인 인텔리. 국방군 장병에게 각 분야마다 능력껏 총궐기하여 인민군을
지원하구 반동들의 활동에 타격을 가하는 투쟁 강령을 개전초에 발표했잖습니;
까. 그러나 개전초라지만 남반부는 대중 세력을 이끌 각 분야의 핵심체가 없음
이 사실로 드러나구 있습니다. 조동무가 사태의 진전을 두구 보자구 말했으나
제 판단으로, 결론은 비관적입니다. 신일환의 침통한 말이다.
조동무가 [로력인민]에 쓴 비판적인 남반부 정세 분석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
확한 판단이었음이 입증됐습네다. 농민으 봉건적 체제에 익숙한 순응적 보수성,
지주 착취에 따른 운명론적 체념, 빠르치산 부대간으 정보 체제 단절, 해방 지구
장기 확보 불능으 혁명적 투쟁 의식 결여... 조동무가 분석한 이런 제반 요건이
작금으 남반부 린민을 숨죽이게 하구 있는 것입네다. 전쟁 전 우리 부처 한 녀
성 군관 동무의 정세 분석두 정확했구요. 미제의 조기 참전두 녀성 군관 동무
우려대루 덕중하고 있는 실정입네다. 류월초 해주지휘부가 남조선 출신 정치공
작대를 밀파한 각지역 침투 해방구 성정두 소기으 성과르 거두디 못했습네다.
거점 확보만이 임무가 아닐 텐데 오늘까지 보고된 활동상은 극히 부진하우. 송
인기가 말한다.
그 동안 남반부에서 남로당 지하 활동은 남반부 인민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임했기 때문에 위압감, 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수. 순천 항쟁이 수포
로 돌아간 후 그 지역 인민은 오히려 계급 투쟁과 인민 해방이 너무 급진적이라
며 등을 돌렸다지 않습니까. 민중 정서를 제대루 읽지 못하구 피의 숙청을 즉결
로 해치우다보니 과격 일변도루 치달은 게지요. 각 지방 빨치산 활동두 지역민
에게 혈연 의식, 동지 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구 폭력 혁명만 고취시킴으로써 인
민의 환심을 사지 못했구요. 신일환이 계속 남로당계의 실책을 몰아친다. 막상
서울을 점령하여 정보를 수렴해보니 그 동안 남반부 남로당의 활동이 북에서 듣
던 말과 생판 다르고, 그 활동이 인민과 동떨어진 채 얼마나 지지부진했는지 알
조라는 투다.
그 점은 조동무를 앞에 두구 비판할 성질은 못 됐네다. 조동무야말루 남반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디 않았습네까. 표정이 굳은 채 입을 다물고 있는 조민
세가 안쓰럽다는 듯 박영철이 조민세를 두둔한다.
물론 우리가 조동무를 문책하는 건 아닙니다. 서울에 들어와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우리가 평양에서 남반부 정세를 얼마나 오판하구 있었는지 알게 된 게지
요. 그 동안 해주에서 올려보낸 정보가 여기 와서 보니 맞는 게 하나두 없어요.
이를테면 김삼룡. 이주하 동지두 남로당 서울시당과 지도부의 내분에 따른 밀고
로 체포되었다는 말까지 나도는 실정 아닙니까. 아직 확증을 못 잡았지만 서대
문형부소에서 석방된 동지들 입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 정
보처는 반드시 그 책임 소재의 규명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신일환이 송인기
를 본다.
그만하시우. 조동무르 격려하려 부른 자리에서 말이 너무 지나쳤습머이. 내부
터 반성을 하우. 송인기가 쥘부채를 펴서 바람을 낸다. 한낮이라 실내가 후텁지
근하다. 송인기 책상 뒤쪽 열어둔 창문 밖의 가죽나무 잎은 바람기가 없어 미동
도 않는다. 송인기가 탁자에 이마를 겨누고 있는 조민세를 보며 위로하듯 다독
거린다. 조동무가 거론한 지적 사항은 우리 쪽두 얼마쯤 예측을 했습네다. 자본
제 브르좌 체제 전복이 나무를 흔들면 떨어질 홍시같이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
우. 조동무가 책임딜 성질두 아니구요. 해방 전쟁 승리으 한 난관으루 니해하며
협심해나갑세다.
옳은 판단입니다. 남반부 완전 해방 달성에 장애 요인은 앞으로도 계속 잇다
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기필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합심해서 뭉쳐야 합니다. 조민세의 목소리에 힘이 선다. 그는 신일환에게
쏘는 눈길을 보내며 말을 잇는다. 신동무, 지금 어느 쪽을 비판한다고 우리에게
돌아올 이득은 없습니다. 남반부 인민의 대중 봉기가 아직 확산되진 않으나 서
울 시민, 특히 청장년층이 공화국의 서울 탈환에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음을
보더라도 다수 인민이 이승만 정권을 얼마나 증오해왔는지 확신할 수 있잖습니
까. 또한 사회주의 혁명 성취는 역사의 필연입니다. 그 필연성을 신봉했기에 남
반부 혁명 세력은 온갖 악조건 아래 사회주의 민주국가 건설의 그날을 고대하며
투쟁해왔습니다...
송인기 책상의 전화기 종이 울린다. 송처장이 책상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
다. 상부의 전화인지 그의 표정이 굳어지고, 곧 출두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는 전
화를 끊자 부속실 여성 동무를 불러 차를 대기시키라고 이른다. 그는 서랍 안
한 묶음 서류를 봉투에 챙겨담고 외출 채비를 한다.
조동무, 내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조동무르 보자구 했습네다. 현상황 아래 미
점령 지구으 남반부 유격 투쟁에 관한 대책을 꾸며봐주시우. 유격 부대으 대 린
민 유화책, 유격 부대와 해방구 확장책, 어런 걸 아우르는 소견서르 글피까지 만
들어주면 좋겠습네다. 조동무는 현지 실전 경험이 풍부하니 기대하겠음네. 송인
기가 말을 마치자 먼저 부속실로 나선다.
자리에 일어서 있던 나머지 세 사람도 그의 뒤를 따른다. 신일환과 헤어져 박
영철은 이층 계단을 오르며 조민세에게 묻는다.
서울시 인민위원회 동무들과 더러 접촉이 있습네까?
이쪽 집무가 그런 만큼 그쪽과 접촉할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요.
조민세는 정치보위국 서울분국의 각과 주임들과 함께 사무소에서 가까운 북창
동에서 합숙 생활을 한다. 남반부 출신 몇을 빼곤 주임들이 모두 북조선 출신으
로 가족을 평양에 두고 남하했기에 특수 정보 본야라는 업무의 기밀성을 유지하
기 위해서도 공동 생활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북창동에 적산 가옥 두 채를 접수
하여 숙사로 쓰고 있다. 조민세도 그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며 필요한 외출을
할 때는 박영철의 재가를 얻는다.
조동무, 서울시 인민위원회나 지도부 간부 동무들과 접축할 땐 늘 말조심하시
라요. 묻더라두 대답 않구 듣는 쪽 립장에 서야 합네다. 여기 정보처가 당 중앙
위원회 직계 기관임을 아시구 보다 큰 안목으루 해방 전쟁 수행을 대세적 립장
에서 판단해야 합네다.
잘 알고 있습네다. 하루에 한 차례꼴로 주의를 주는 당부라 조민세는 한쪽
귀로 흘려듣는다. 어느 쪽에도 자신의 위치를 말뚝 박을 수 없는 현재 입장이라
면 전쟁 수행에 따른 판단은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게 대의에 서야 함이 마땅하
다.
조민세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김영희 동무가 놓고 간 쪽지가 있
다. 대기실에 면회자가 기다린다는 전갈이다. 먼저 배종두가 떠오른다. 조민세는
3일 저녁 묵정동 집으로 들어가 그를 만났다. 배종두는 강동정치학교 단기반 교
육중 전재이 나자 지난 1일 피교육자 중에 차출된 마흔네 명과 함께 서울로 들
어왔던 것이다. 물론 함께 월북하여 입교한 김삼문도 끼여 있었다. 서울로 들어
오자마자 그는 서울시당 소속 정치공작대에 편입되었다. 정치공작대는 그 인원
이 3백 명이 넘고 수송동에 있는 수송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유격대로 미점령 지
구 남파에 따른 별도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에 연고가 있는 자는 외박이 허락
되어 배종두는 이틀째 외박을 나온 참이었다. 인민해방군이 대전시만 점령하면
영. 호남 지방 출신자들은 미점령 연고지에 소조 편제 공작대원으로 투입될 것
같습니다. 투입 즉시 각 군과 면 단위로 지하 인민위원회로부터 가동시키고 후
방 교란 작전에 임할 것입니더. 배종두의 말이었다.
조민세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정보처 요원이 정문 통제소에 미리 출입을 허
가해놓은 자, 특별 신분증을 소지한 자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정보처 출입디 용
인되지 않는다. 면회 온 자는 신분을 밝히고 통제소에서 기다려야 한다.
조민세가 통제소로 가니 뜻밖에도 전쟁 전 서울시당 이론진 요원 성주걸과 부
녀부책 공현숙이 그를 맞는다. 성주걸은 서울시 인민위원회 정세분석실 간사, 공
현숙은 서울시 민주여성동맹 부위원직을 맡고 있다. 그들을 보자 조민세는 혈육
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둘을 불끈 껴안아주고 싶다.
오랜만입니다. 조민세는 그들이 자신의 소재를 모를 텐데 안진부가 알려주었
으리라 짐작한다.
이십팔일 당일에 서울로 들오셨다면서 어떻게 그토록 연락도 없으시구. 무정
두 하셔라. 공현숙이 살찐 뺨에 웃음을 담고 말한다.
선생님, 무사하셨군요. 해주로 떠나신 후 무척 걱정했더랬습니다. 평양까지 가
셨다는 얘기두 북에서 내려온 인편에 들었구요. 어쨌든 잘되셨으니 다행입니다.
통제소에는 보안대원 근무자와 다른 면회자도 있기에 성주걸이 쭈뼛거리며 말한
다. 진정으로 반가워하는 표정이다.
곽. 민. 홍. 이, 모두들 잘 있지요? 조민세가 서울시당에 편입되어 몇 달 몸
담았을 동안 협조적이었던 동지들 안부를 묻는다. 그들이 지금 어떤 사업에 열
중하고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들만이 아니라 전 서울지도부 요원, 중앙위
원들의 활동상도 날마다 보고되는 서울 인민위원회 동정 을 통해 알고 있기도
하다.
다들 바쁘게 활동하구 있습니다. 이럴 땔수록 조선생님이 필요하다며 얘기두
자주 하구요.
조선생, 드릴 말두 있구... 잠시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까.
공현숙이 말한다.
그럽시다. 조민세로서도 통제소 안에서 대화를 나누기엔 눈치가 보여 껄끄럽
다.
조민세는 보안대원에게 정보처 신분증을 보이고 외출을 허락받는다. 밖으로
나오자 따가운 햇살을 가리느라 공현숙이 꽃무늬 양산을 펴든다. 소공동 큰길로
나와 셋은 길 건너 눈에 띄는 다방으로 들어간다. 식사 때가 아니어서 다방 안
은 손님이 없다. 계산대 안쪽에 파리한 얼굴로 앉아 졸고 있던 젊은 여인이 그
드을 맞는다.
자리값은 해야지. 하더니, 공현숙이 여주인에게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
우유와 감자국뿐이에요.
공현숙이 우유 세 잔을 주문한다.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뒤 며칠이 지
나자 시내 다방들이 하나둘 다시 문을 열었는데, 다방이 간이음식점으로 변해
주로 감자국을 판다. 식량난으로 시민들이 끼니 챙기기도 어려운 판이라 다방에
서 커피 마시며 호사 누리는 인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미제 구제품 탈지분유
를 물에 푼 우유는 팔고 있다.
선생님, 이쪽 일은 어떻습니까? 성주걸이 묻는다.
심판관 신분이니 한가하지요. 소견서만 제출하니 결정권도 없고, 그래서 책임
질 일도 없습니다. 조민세의 대답이 시틋하다.
그렇다면 거리도 지척이라 인민위원회에 자주 나오실 만한데 그렇게 발을 끊
기예요? 우리가 어디 그럴 사입니까. 공생송사 동고동락하며 그 어려운 시기를
넘겼는데, 모두들 조선생이 아주 토라진 모양이라구 말이 많습니다. 공현숙이
뽀로통해한다.
왜 전들 동지들을 만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쪽으로 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야 하루에도 몇 차례나 들지요. 받아줄는지 어떨지 모르긴 해도. 그러나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지요. 우선 저녁 외출이 자유스러워
야 하는데, 여기 생활이 그렇지가 못해요. 조민세가 날라온 우유로 목을 축인다.
그는 공현숙의 말을 더 듣지 않아도 서울시당 동지들이 자신을 두고 배신자니
뭐니 하며 헐뜯을 말을 짐작한다. 북로당계에 붙어 얼마나 출세하냐 두고 보자
며 비아냥거릴 전 중앙위원 박태길이 눈에 훤하다.
그저께 공여사와 민과 홍을 만난 김에 선생님 애기를 했지요. 해주 쪽 조치가
너무 가혹했다구. 그래서 검열국장실로 가서 함께 탄원을 했습니다. 국장 동무도
선생님이 여기 계신 줄 알고 있구 한 번 만났으면 합니다.
난 전쟁 전 유격대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 같아요. 기회가 오면 다시 그
길로 나섰으면 합니다.
조선생은 체질이 그런가봐요. 남 밑에 못 있구. 비슷한 대가리끼리 아웅다웅
하는 꼴 못 봐내구. 지리산 이현상 동지가 그렇대요. 공현숙이 말한다.
지금으로선 이현상 선생 유격대 전과가 가장 확실해요. 지리산을 떠나 경북.
경남 일대에서 후방 투쟁을 성공적으로 벌이고 있어요. 조민세가 정보를 흘린
다. 이현상이 남반부 출신이므로 남려당계의 그런 정보쯤은 어떠랴는 계산에서
이다.
그쪽 소식은 금시초문입니다. 군사위원회 지령이 있었겠지요? 성주걸이 놀란
다.
조민세는 남조선 유격대에 관한 다른 정보도 입수하고 있다. 전쟁 전 태백산
을 따라 월북한 김무현. 이호제 부대를 통합한 김달삼 부대 766명이 6월 25일
당일 인민해군 상륙용 주정으로 주문진에 상륙하여 경남 신불산을 목표로 태백
산을 따라 남진중이라는 정보는 말하지 않는다. 인민해방군보다 앞질러 부산 돌
입을 목표로 하는 김달삼 유격 부대에 그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 작전이 성
공해야 남로당계의 사기 진작은 물론 송인기 처장과 신일환 과장의 콧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검열국장을 한 번 만나시죠. 이제 오해도 풀렸을 텐데. 김국장을 잘
아시잖아요. 조민세가 대답이 없자 성주걸이 말한다.
문화선전성 검열국은 옛 서울시 청사 한 귀퉁이를 쓰고 있고, 신문. 통신. 잡
지 등 보도 자료를 사전에 검열하는 기관이다. 국장은 김삼룡. 이주하 체포 경위
를 조사하기 위해 전쟁 직전 해주에서 서울로 파견왔던 남로당계 김용팔이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올 테지요.
서울시당과 지도부에 사사건건 책임 추궁을 일삼던 김용달의 성깔 있는 매운
표정이 조민세의 눈앞에 떠오른다. 그는 한정화에게만은 태도가 늘 공손했다. 그
래서 한정화의 위상이 수수께끼에 가려진 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따져보
면 갬용팔은 그 때 이미 한정화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은 셈이다.
아직도 마음의 앙금을 풀지 못하구 있군요? 어쨌든 서울이 해방된 마당에 풀
어버리실 만두 한데. 우린 지금 이기는 전쟁을 하구 있잖습니까. 공현숙이 넌지
시 조민세의 마음을 짚는다.
해주에서 온 간부들이 저를 옳게 볼 리 없잖습니까. 답답하긴 오히려 내 쪽입
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갈 꿈이나 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조민세는 서울로 들어온 뒤 서울시 인민위원회 이승엽 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서 자신을 다시 그쪽으로 불러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아직 그럴 때가 아니
라 미루고 있다. 어차피 지금 그쪽으로 넘어가봐야 한직으로 밀린 채 배당 해위
자로 눈총이나 받을 게 뻔하다. 그쪽에서 먼저 자신을 청해주지 않는다면 명분
이라도 세워 옮겨가야 함이 마땅하다.
참, 한정화 동무는 자주 만나십니까? 공현숙이 묻는다.
인천에서 같이 올라간 후론... 서울로 들어온 뒤 전화만 있었습니다.
문화공작대 여성사업부의 상당한 요직에 있다는 말이 들리던데요? 영성 군관
중좌랍니다. 성주걸이 말한다.
서울에 들어온 중앙당 여성 간부 중 서열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말두 있
구요. 수상 동무 직계라면서요? 조민세가 대답이 없자, 공현숙이 알은체한다. 해
방 전쟁 직전 여기 있을 때 그럴만한 중요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는 걸 나두 대
충 눈치는 챘어요. 그런데 그만큼 거물인 줄은 몰랐죠.
남대문시장 피복작업실 시절, 더러 나타나던 한정화의 아리송한 역할을 곱게
보지 않던 공현숙이다.
내 입장을 정리할 것도 있어 조만간 만날까 합니다. 평양에서 신세를 졌고 해
서... 그런데 아까 말했다시피 지금은 밖으로 나가 누구를 만나고 할 그럴 입장
이 못 돼요. 조민세는 팔목시계를 본다. 들어가봐야겠어요. 작성해야 할 문건도
있고.
얘기나 좀더 하시잖구. 한가하시다며, 그 차돌 같은 성미는 여전하시구먼요.
공현숙이, 잠시만 더 앉으라며 일어서려는 조민세를 붙잡는다. 조선생, 이쪽 정
보로 전화을 어떻게 봅니까? 미제 공군에 지상군까지 본격적으루 참전한 마당이
니 저쪽 저항두 만만찮을 게 아닙니까?
정보국 판단은 알 수 없고... 조민세는 정보를 흘릴 수 없다는 말을 둘러댄
다. 제 사건으로 말하자면, 인민군이 그대로 쓸고 내려갔다면 지금쯤 대전은 능
히 점령했어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하잖습니까. 한강 도강에서 나흘을 허
비할 동안 낙오병으로 쫓겨내려간 국방군이 조직을 재정비하여 경수(서울과 수
원)가두에서 인민군의 남하 지연책 응전을 벌인 탓이지요. 남반부 후방에서 가열
한 유격적과 인민 봉기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
국방군이 힘을 얻은 겝니다. 개전초엔 접전만 하면 국방군 다수가 부대를 이탈
하여 총부리를 거꾸로 들이댈 줄 알았잖아요? 그 점 또한 오판이었고요.
이 점은 정치보위국 정보처의 분석과 자신의 견해가 일치하기에 조민세가 사
실 그대로 의견을 밝힌다. 개전 열흘, 지금으로선 미제의 해방 전쟁 개입 규모가
어느 정도에 달렸나에 따라 전쟁 기간의 단축과 연장이 결정될 형편이다. 아무
도 속단할 수 없고, 이쪽의 속전속결만이 최선의 길이다. 해방 전쟁 완수를 목표
로 한 북조선 최고 지휘 기관 군사위원회도 단 한 길, 그 가열한 투쟁을 독전하
고 있다.
국방군 주력 제칠사단. 수도사단, 제이사와 제오사가 철저히 깨어졌잖습니까.
미제 참전두 아직은 소규모라 대전까지 밀어붙이는 것쯤 시간 문제잖아요? 성
주걸이 묻는다.
그쪽에서도 들었겠지요? 혼겁 먹은 이승만과 그 각료 무리가 이미 대전조차
버렸어요.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국방군은 무조건 후퇴만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
다. 이쪽이 맹공을 하는 만큼 저쪽도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선을 아
직도 경기도를 넘지 못하고 있어요. 어제야 겨우 인천을 점령하지 않았습니까.
계획대로라면 서울 함락과 동시에 인천 또한 점령해야 했습니다.
시청 쪽(남로당계가 장악한 서울시 인민위원회와 그 산하 부서)에선 지금의
전화에 만족하구 있는데요. 어제 발표한 남조선 점령지 토지개혁령두 시효 적절
했구요. 전 토지를 소작농과 빈농에게 무상 분배한다는 방침은 해방군의 전쟁
수행에 남반부 농민의 적극적 협조를 얻어낼 겁니다. 시청 쪽은 이번 주 안으로
대전 점령은 낙관하구 있어요. 공현숙이 말한다.
보는 시각 차겠지만 안이한 판단입니다.
조선생은 아직두 부정적이네. 아무리 돌다리두 두드려가며 건넌다지만.
호남 지역과 경상도 일대까지 미점령 지구 각 군은 물론 면 단위에 벌써 인
민위원회가 재건되어 활발한 선무 공작을 하구 있습니다. 성주걸이 말한다.
성간사 말이 맞아요. 전방 전선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후방이 견결한 조직력
을 갖춰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나 역시 이렇게 뒷전에 앉아 보고서나 들치고
있는 데 회의를 느낍니다. 조국 해방 전쟁은 여태껏 남반부에서 투쟁해온 애국
인민이 앞장을 서야 하잖습니까. 전선의 인민군보다 선두에 나서서 전진해야 참
다운 혁명 전사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야만 해방 전쟁에 승리한 후 우리 역시
당당한 몫을 주장할 수 있을 겝니다.
정말 조선생두 유격대 시절로 돌아가 다시 총을 들구 나서겠네. 아까 한 말
겸양이 아니었구먼요. 공현숙이 미소 띠며 말한다.
이 바쁜 와중에 실없는 소릴 왜 흘립니까. 할말도 아껴야 할 형편인데. 조민
세가 뒷말에 힘을 준다. 혁명이란 그 진행 과정에 행동으로 열정을 소진해야 참
다운 의미와 기쁨이 있지. 혁명 완수 뒤끝은 이미 늙어버린 욕망 덩어리 권력
투쟁의 허무밖에 남지 않습니다. 러시아 혁명 성공 후 마야코프스키의 자살이
적절한 예가 되겠지요.
모두들 연일 전승 소식에 열광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이미 앞을 내다보시며,
그 비관주의는 여전하십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시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주걸
이 말한다.
나는 오직 나의 지금 입장과 비슷한 예를 들었어요. 조민세가 냉담하게 말을
맺곤 의자에서 일어난다.
조선생, 정말 자주 좀 만납시다. 저녁에 시간 한 번 내세요. 제가 맛있는 음식
대접할께요. 한정화 동무도 자리 한 번 같이해서. 한중좌 부처가 문화공작대라면
서로 공조하며 협조할 건도 있으니깐. 공현숙이 앞서 나서더니 우유 값을 치른
다.
셋이 찻집 밖으로 나오자 확성기를 앞에 매단 지프가 천천히 지나가며 왁자지
껄하게 방송을 해댄다. 여성 방송원의 격양된 목소리가 소공로 한길에 삐라처럼
흩어진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어 그 방송을 듣는다. 젊은이들은 더러
손뼉을 치기도 한다.
... 남반부 반동군의 북침을 일거에 내치고 정의의 민족 해방 전쟁에 용맹하게
나선 우리 영용한 인민군은 오일 정오 현재 서부 전선에선 송탄을 점령하고 평
택 근교를 압박하며 진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강토를 침략군의 군홧발로
짓밟은 미 제국주의 반동군을 오늘 새벽 오산에서 격파한 인민군 제사사단의 승
리에 시민 동지의 열렬한 성원이 있기를 당부합니다. 중부 전선 현황을 말씀드
리면, 그쪽은 더욱 진공이 빨라 우리 인민해방군은 원주 점령에 이어 제천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동부 전선은 파죽지세로 삼척과 묵호를 해방시키고 해안선을
따라 울진을 맹공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해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오늘의 조국
전선에 서울 시민은 물심양면으로 인민해방군을 지원해야겠습니다.
이어 남자 방송원이 잇달아 외친다.
청년 동무들은 모두 나서서 인민의용군에 용약 입대합시다! 정의로운 성전,
민족 해방 전쟁은 피 끓는 청년 학우들을 부른다! 미제와 남반부 괴뢰 정권을
타도하는 조국 해방 전쟁의 수행에 애국 시민은 총칼을 들고 합세하자...
지프가 한국은행 쪽으로 멀어져간다. 늘 듣는 거리의 선전 탓인지 시민들은
무심한 얼굴로 제 갈길을 간다. 공현숙은 조민세에게 시 인민위원회 여성 동맹
사무실로 연락하면 된다 하고, 성주걸은 옛 동지들을 모아 자리 한 번 같이하자
고 말한다. 둘은 시청 광장을 향해 걷는다.
조민세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 송인기 처장이 지시한 미점령 지구 남반부
유격 투쟁 의 원고 집필에 착수한다. 그는 집필로 들어가기 전, 먼저 골격부터
짠다. 유격 투쟁은 합법 투쟁과 비합법 투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합법적 투쟁
은 남반부 출신 활성화를 기하는 사업이다. 군. 면. 리 단위로 인민위원회를 조
속히 재건하고 당 조직의 지도와 결속력을 통해 혁명 역량을 축적한다. 인민위
원회 산하로 농민동맹. 청년동맹. 부녀동맹. 소년단을 조직하고 토지 개혁의 무
상 몰수. 무상 분배를 과감히 추진하며, 지주. 토착 기득권 반혁명 세력과 결연
히 맞서게 한다. 합법적 투쟁에는 과거의 실패를 경험 삼아 모험주의적 폭력 행
사를 지양한다. 미점령 지구는 당 조직이 임시 체제요 행동에 제약이 따르므로
반혁명 세력의 살해. 납치. 고문 등 인민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극단적인 폭
력 투쟁은 자제하고 회유. 설득을 통한 사상 전향의 유화책을 투쟁 노선으로 설
정해야 한다. 모서리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이치대로, 그들로 하여금 이
판사판의 광적 행동력을 자제케 하는 데는 모험주의적 폭력 투쟁은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황이 북조선공화국에 유리한 시점이므로 인민위
원회의 지도력만 강화된다면 합법적인 투쟁을 통하여 소규모 인민자치제 형태의
해방구 설정이 가능하다. 한편, 비합법 투쟁으로는 소조 무장 유격대를 미점령
지구에 남파하는 방법이다. 무장 유격대는 소대 규모 서른 명 전후로 편성하며
각 지역의 연고자를 정치위원으로 임명하여 길잡이로 삼는다. 유격대는 각 지역
의 반혁명 거점인 치안 기관과 행정 관서 등을 무력 공격하여 그 기능을 마비시
키고, 통신. 수송. 도로의 파괴를 주임무로 한다. 유격대는 고정 아지트를 가지지
않고 이동 은신하며 인근 유격대 및 인민군과 상호 협동하여 작전을 전개한다.
유격대는 민주 인민의 안녕과 재산을 보호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음으로써 동지
적 유대감을 공고히한다...
조민세는 대충 이런 내용으로 엮기 위해 간추린 요지를 따로 종이에 적는다.
물론 자신의 생각과 근사치로 서울시 인민위원회에서도 미점령 지구의 선동. 선
전. 유격 활동을 위해 남로당계 요원을 별도로 훈련하고 있다. 강동정치학교에서
내려온 배종두. 김삼문도 그 요원의 하나이다.
조민세가 비합법 방법으로 유격대를 소수 정에화한 이유는 그 동안 중대 또는
대대 단위의 대규모 유격대의 전과가 득보다는 실이 많았음을 인지한 탓이다.
49년 6월부터 태백산맥을 따라 남파된 규모가 컸던 유격대, 이를테면 8월의 김
달삼 부대 300명, 9월초 이호제 부대(인민유격대 제1병단)360명, 올해 들어 3월
하순에 김상호. 김무현 부대 약 700명은 비록 남반부 잔류 유격대의 북조선 길
잡이의 역할을 담당했고, 전쟁이 터진 시점에서 보자면 희생을 가급적 축소하고
재훈련시켜 결정적 시기에 재투입하겠다는 계산 아래 계획되었다고 보여지지만
그 희생이 너무 컸다. 많은 인원의 이동으로 그 행적이 쉽게 노출되고 그런 과
정에서 국방군의 토벌 작전에 많은 희생자를 냈다. 개전일인 지난 6월25일에는
남도부를 유격 총책에 임명하여 766명의 유격대를 엘에스티(LST)네 척에 분승
시켜 강원도 주문진에 상륙시켰다. 남도부 부대는 경남 밀양군 신불산을 최종
거점으로 정하고 인민군을 앞질러 태백산맥을 종주하며 남하했으나 아직도 별다
른 전과는 보고되지 있지 않는 실정이다.
오후 일곱시로 업무를 대충 마무리짓자, 조민세는 박영철과 함께 북청동 숙사
로 돌아온다. 그는 오늘 저녁에는 꼭 한정화를 찾아보기로 작정한다. 그가 지난
달 28일에 서울로 돌아온 뒤, 한정화가 문화공작대 여성사업부 부부장으로 서울
로 들어와 있다는 걸 알기는 30일이다. 문화공작대 여성사업부는 안국동 창덕여
학교 건물을 쓰고 있다고 했다. 7월에 들어 그는 날마다 오늘, 오늘이 지나면 내
일의 오늘, 그렇게 그녀를 만나야 한다고 벼르기만 했다. 만나 꼭 전해야 할 사
무적인 용건은 없다. 사무적 용건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상관없이 그는
그녀를 만나고 싶을 뿐이다. 만난다면 둘만의 공간을 구해 다시 한 번 그 뜨거
운 행위를 통해 그녀가 말한, 오늘뿐인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 그녀를 생각한다. 업무가 짜증나고 시들할수록 미체게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를 떠올릴수록 그 시간은 괴로운 그리움이다. 자신의 소속처를 그녀가 먼저
알아 두차례 안부 전화는 있었으나 찾아오지 않는 데 그는 불안하다. 어쩜 그녀
는 노련한 남성 사냥꾼이 아닐까 하는 좋지 않은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비밀
이 보장될 안정성 있는 적당한 대상을 골라 성적 만족을 취한 뒤 그게 언제였냐
며 잊어버리는 여성도 있을 수 있다. 그 삐뚤어진 생각이 한정화에 대한 모독임
을 그는 잘 안다.
조민세는 세수를 하고 저녁밥을 먹고 나자 박영철을 찾는다. 박영철은 윗층
거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다. 모두 러닝 셔츠에 간편한 반바지
차림이다. 라디오의 남성 보도원의 목소리는 전황 속보가 아닌, 미제의 조선 민
족 내부 문제 개입에 따른 성토로 일관하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의 진공은 국제법상으로도 그 타당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미 제국주의를 비롯한 자본제 적성 국가들이 침략 전쟁이라는 망언을 되풀이하
지만, 민족 내부의 단일 민족국가 형성의 노력에 우리 인민이 바치는 열성을 무
력으로 침공하는 미제야말로 비열한 침략 전쟁의 꼭두각시라 아니할 수 없습니
다...
조민세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박영철을 눈짓으로 부른다.
집에 양식을 보내줘 고맙습니다. 조민세는 서두를 뗀 뒤, 박영철에게 잠시
묵정동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자정 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숙사에서도 비상 대기하라는 전통이 내려왔어요. 용무만 보구 날래 다녀오시
오.
조민세는 반소매 인민복 차림으로 숙사를 나선다. 거리에는 어둠이 내렸다. 바
람 없는 후텁지근하게 더운 날씨다. 버즘나무 가로수잎이 후줄근히 늘어져 있다.
통행인들은 어둠 속에 쥐처럼 발소리 죽여 나다닌다. 빈 손이 아니라 무엇을 들
거나 머리에 이고 있다. 조민세는 집 쪽이 아닌 시청 광장 쪽으로 걷는다. 처자
식에게 미안한 마음은 잠시, 그는 곧 그들을 잊는다. 그들도 중요하지만 지금 그
에겐 한정화가 더 필요하다. 그는 그녀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빨라
진다. 광화문 네거리를 건넌다. 네거리에는 반원형 대형 아치가 세워져 있고, 김
일성. 스탈린의 대형 초상화가 아치 가운데 걸려 있다. 어둠에 희미하게 드러나
는 두 얼굴의 표정이 근엄하다. 네거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전조등을 켠 지
프가 빠르게 지나간다. 네거리의 종로로 빠지는 입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
롭게 들린다. 그쪽에 전짓불이 여러 개 번쩍인다. 조민세는 수송동 좁은 길로 꺾
어든다. 앞쪽에서 군모 쓴 그림자 둘이 걸어온다. 조민세를 보더니, 야간 순찰조
라며 길을 막는다. 팔에 완장 두르고 방망이 찬 민청단원 둘은 조민세에게 인민
증이 있냐고 묻는다. 각 동마다 분주소에서 시민에게 인민증을 한창 발급중이라
는 말은 그도 들었다. 조민세가 소속을 대자 둘은 더 말을 않고 경례를 붙이곤
그냥 간다. 조민세는 길갓집을 부지런히 살핀다. 문을 열고 있는 여관은 있을 리
없다. 문을 연 상점이나 음식점이 있나 하고 봤으나 눈에 띄지 않는다. 한정화를
불러내면 우선 그런 집에 들어가 잠시 쉬어갈 방을 빌려볼 수 있을 텐데, 난감
하다.
창덕여학교 정문 수위실은 램프등이 밝다. 어두운 운동장 건너 교사는 창마다
불빛이 비쳐나온다. 여자들의 재잘거리는 말소리가 멀리로 들린다. 정문 앞을 여
성 경비 전사가 지키고 있다. 조민세는 허적허적 경비병 앞으로 다가간다.
동무, 여기 부부장 한중좔글 찾아왔는데요. 면회가 되겠죠? 조민세가 단도직
입으로 묻는다.
동무는 어디서 왔습네까? 소련제 아카바 소총을 어깨에 멘 여성 경비병이
묻는다.
내무성 정치보위국 정보처요. 조민세는 윗도리 윗주머니에서 신분증명서를
꺼내어 경비병에게 건네준다.
여성 경비병이 조민세의 신분증을 들고 수위실 안으로 들어간다. 수위실에 나
이 든 여성 군관과 안경 낀 여성 전사가 있다. 경비병이 군관에게 조민세의 증
명서를 보이며 뭐라고 말한다. 군관이 안경 낀 전사에게 뭐라고 지시한다. 안경
낀 전사가 수위실에서 나와 어두운 운동장을 질러간다. 경비병이 밖으로 나와
조민세에게 수위실에 들어와 기다리라고 말한다.
회의에 참석하시구 조금 전에 귀대하셨는데, 아마 교육중일겁네다. 소위가
조민세의 신원을 방문자 비망록에 기록하며 말한다.
교육요? 조민세가 대기용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부부장님은 석식 후 한 시간 반 간부 요원에게 당사 교육을 담당하십니다.
소위가 조민세의 신분증명서를 넘겨준다.
조민세는 한정화가 나오기를, 불빛 밝은 교사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안경 낀
전사가 돌아와, 부부장님 강의실로 쪽지를 넣었다고 소위에게 말한다.
시간이 한정 없이 느리게 간다고 조민세는 생각한다. 그녀를 대면할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활랑거리다 풀무질 손잡이를 놓아버리면 바람개비가 멈추듯 차
츰 가슴 뛰는 진동이 가라앉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풀무질을 한다. 그는
초라한 꼴로 넋 빠진 듯 앉아 한 여자를 소년처럼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한 녀석이라고 스스로를 비웃는다. 금욕주의자로 자처한 내가 언제
부터 이꼴이 되고 말았는지, 그는 그 날수를 헤아려본다. 분명 평양을 떠나기 전
날 밤, 몸으로 맺어진 그 사건 이후부터이다. 물론 그전에도 그는 서울에서 그녀
를 만나왔다. 그때는 특별한 감정은 물론 그녀를 따로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공현숙과 그런 것처럼 한정화 역시 같은 선상에서의 동지였다. 그
런 점에서 남녀란 몸의 섞음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사랑을 체득하지, 정신적 교
유란 이름의 그런 사랑만으론 한계가 있게 마련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흔한 살이나 먹은 나이에 주착 없이 한 여자의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자신의 꼴이 측은하고 민망스럽다.
운동장을 바삐 질러오던 그림자가 걸음을 빨리한다. 군모 쓴 인민군 복장이다.
한정화의 그 서두는 걸음에서 조민세는 그녀가 자기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었
음을, 현재의 확실한 시간을 만들기 우한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다. 한정화가 수
위실로 들어선다. 금테 둘린 군관 작업모를 쓰고 잘록한 허리에는 혁대를 두르
고 권총을 찼다. 바지 바깥쪽엔 붉은 줄이 그어져 있다. 그런 그녀의 군관 복장
이 큰 키에 잘 어울린다. 조민세와 소위가 일어선다.
연락받고 강의를 조금 일찍 끝냈죠. 그 동안 별고 없었죠? 한정화가 조민세
를 보며 환한 얼굴로 말한다.
한 번 온다는 게 짬을 내기 힘들었어요. 마음과 달리 그의 대답이 무뚝뚝하
다.
나 잠시 나갔다 올게요. 한정화가 소위에게 말하곤 안경 낀 전사를 본다.
내가 손전등 안 가지고 왔네. 있음 빌려줘요.
안경 낀 전사가 한정화에게 사물함에서 손전지를 꺼내준다.
조선생님, 나갑시다. 나가서 얘기해요. 한정화가 휴대용 손전등의 누름단추를
눌러 불이 켜지나를 실험해보곤 말한다. 그녀는 손전등을 바지주머니에 꽂는다.
둘은 학교 정문을 나선다. 어둠 속에 둘의 모습이 묻힌다. 시간은 밤 아홉시가
넘어 거리에는 통행인이 없다. 한길이 적요하다.
그기 일은 어때요? 한정화가 묻는다.
하루 두 차례 회의에, 보고서. 소견서를 날마다 제출하지요. 심판관 일이란 게
그런 거니까... 조민세는 시투렁히 대답하면서도 옆에서 걷는 한정화를 품에 안
고 싶은 졸갑증에 마음을 떤다. 그는 마음에 품을 말을 뱉는다. 서울에서 이렇
게 만나게 될 줄이야... 꿈만 같소.
만나 뵙고 싶었지만 바빴어요. 그 사이 평양을 한 차례 다녀왔구요. 한정화
가 가볍게 한숨을 날리며 군모를 벗어 바지주머니에 꽂는다. 그녀가 조민세의
팔을 낀다. 우리뿐인데, 이래도 되겠죠?
조민세는 갑자기 걷기 거북할 정도로 아랫도리 양물이 불끈 힘을 세운다. 그
는 길 옆을 살핀다. 어둠 속 전봇대 옆 골목길이 뚫렸다. 그는 한정화를 골목 안
으로 이끌어 벽에 붙여 세운다. 그는 힘차게 그녀를 껴안는다. 누가 먼저랄 수
없게 둘의 입술이 밀착된다. 서로가 서로를 탐하는 오랜 입맞춤이 이어진다. 불
같이 타오르는 욕망으로 숨길이 가빠 입맞춤 이상 그 무엇을 갈망할 때야 조민
세가 한정화를 풀어놓는다.
서울로 내려오고 난 후 난 내 정신이 아니었소. 자나 깨나 당신 생각만으로
꽉 차서... 내가 이 지경이 될 줄이야... 난 이제 나를 이해할 수 없어요. 혁명도,
해방 전쟁도 다 시들해졌소. 아무리 생각해도 길은 하나, 당신을 앚고 나를 송두
리째 태워버릴 그 무엇을 찾아나서지 않는다면, 난 이제 파멸이오. 구제불능이
오. 조민세는 한정화와 떨어진 뒤 무너지듯 쭈그려앉으며 머리통을 싸쥔다. 자
신을 학대하는 그의 비뚤어진 마음은, 여기서 그만 숙사로 도아가야겠다는 쪽으
로 갑자기 생각을 바꾼다. 넘치게 채워도 정욕은 늘 목말라할 테고, 그나마 지금
은 그럴 장소마저 없다.
선생님. 조민세 옆에 쪼그려 앉은 한정화가 나직한 목소리로 부른다. 조민세
는 대답이 없다. 저 때문에... 괴로움을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오. 자청한 괴로움이니깐. 시간이, 그래요. 우리 사인 시간이 해결해줄 거
요. 조민세는 일어선다. 냉정을 회복하여 말한다. 숙사로 가야겠어요. 만나고
싶어서... 얼굴만이라도 봤으니 됐어요.
선생님, 오늘 겨우 방을 구해놨어요. 그걸 구하느라... 그래서 사실은 내일쯤
연락을 하려 했어요.
방을 구했어요?
그래요, 우리 두 사람만이 있을 방을.
여기서 머오? 조민세의 물음이 뜨겁다.
가까워요.
둘은 골목길을 나선다. 한정화가 큰길을 바쁜 걸음으로 앞장선다. 거리에는 통
행인의 발길이 끊겼다. 그녀는 덕성여중을 못미처 골목길로 꺾어든다. 손전등을
꺼내 앞길을 밝힌다. 그녀는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 높다란 솟을대문 앞에 선다.
단발머리에 군모를 쓴다. 손전등을 문틈 사이로 비추며 대문을 두드린다. 대문과
잇대어 행랑채가 달린 대갓집이다.
문 열어주시오. 낮에 왔던 인민위원회 동무요. 한정화의 부름에 안에서 기척
이 있다. 신발 끄는 소리가 나고, 돌쩌귀 삐걱이며 대문이 열린다. 머리칼이 희
끗한 아낙네이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오늘밤 방을 좀 써야겠기에... 한정화가 말하며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밤이 깊엇는데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아직 자지 않았어요. 큰방을 대충 치워놓긴 했는데 주무실 만한
지..
한정화와 조민세는 화단 있는 마당을 둘러 안채로 들어간다. 안채는 괴이쩍다.
주인 식솔은 피란가고 드난꾼이 빈 집을 지키는 모양이라고 조민세는 짐작한다.
그럼 됐어요. 들어가 주무세요. 뒤따라온 아낙네에게 한정화가 인사를 한다.
한정화는 손전등을 비추며 군화를 신은 채 마루로 오른다. 마루는 세간살이들
로 어수선하다. 조민세도 작업화 그대로 뒤따른다. 그녀가 안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손전등 불빛이 방안을 두루 훑는다. 방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그녀
가 장롱문을 열어 이부자리를 확인한다. 조민세는 오늘밤 자정 안으로 숙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정화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마음만큼 그의 몸이 안
달을 낸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린다.
조금만, 잠시만 참으세요. 신발 벗고... 한정화가 손전등을 끈다. 그녀는 앉아
군화를 벗는다. 그녀가 혁대를 풀고 옷을 벗을 동안, 조민세는 장롱 속 요를 내
리고 서둘러 작업화와 옷을 벗는다. 마치 누가 빨리 알몸이 되냐는 시합 같다.
조민세가 구부린 채 옷을 벗는 한정ㅎ화를 안아든다. 그는 그녀를 요에 눕히
고 채 벗지 못한 그녀의 속옷을 벗겨내린다. 한껏 달아 있는 둘의 몸이 한몸이
되어 엉긴다. 말없이, 증기차처럼 터지는 숨길을 몰아쉬며 서로가 서로의 몸을
미친 듯 탐한다. 현재의 시간을 분초도 아끼기 위한 필사의 노력은 나 자신만의
탐닉이 아닌 상대를 위한 헌신이다. 너무 짧은 한 순간, 그러나 결코 짧지 않은
격렬한 시간이 흐른다.
한정화가 조민세의 팔을 베고 둘은 나란히 누워 깜깜한 천장을 바라본다. 쾌
락 뒤끝, 아쉬움과 근거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이 둘의 마음을 죄어온다.
힌두교는 현세가 끝나 우리가 죽으면 언젠가 다시 다른 신분의 인간으로 태
어난다고 믿는다 했소. 조민세가 말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는 주저 없이 한정
화를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말은 할 수가 없다. 그의 눈앞에 아내의 활짝 핀
건강한 모습이 떠오른다. 잘못 맺어진, 참다운 애정 없이 이어진 부부 관계이다.
그러나 그 여인 역시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불행해진 여자다. 장애자 자식을 키
우며 애간장을 태우고, 남자가 가족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숱한 고초를 겪었다.
처는 자신을 대신해서, 그럴 만한 신념도 없이 남조선 수사기관에서 적잖은 고
문을 당했다. 일회성 현생에서 어떤 이유로든 그 여자를 헌 신발짝 내버리듯 버
리기엔 철면피이고 자신은 이제 나이를 너무 먹어버렸다.
선생님은 어떤 신분, 아니, 어떤 직업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세요?
한정화가 소근소근 묻는다.
만약 그 믿음이 진실이라면 우린 다른 세상에서, 이십대 초반쯤, 그 청춘의
나이에 새롭게 만나고 싶소. 조민세는 처의 모습을 애써 지운다.
만난다면? 한정화는 뻔한 대답을 짓궂게 질문해본다.
사랑할 것이오. 격정을 눌러삭인 조민세의 힘준 대답이다.
한정화는 말길을 잃는다. 어둠만이 들이찬 그네의 눈앞에 장현의 단단하고 젊
은 청동색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그렇게 미라가 되어 만. 소 국경 밀림 지대 땅
속에 숨을 멈추고 누워 있을 것이다.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으면 피돌기가 작동
하여 얼굴이 구리색으로 변해 벌떡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상상은 환상이다.
힌두교의 믿음대로 죽어 만약 다시 이 세상에 환생한다면 자신은 장현, 그를 찾
아야 한다. 잔물이 흐르고 흘러 발바닥의 지문이 없어질 때까지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그를 찾아내야 한다. 자기가 장현을 찾아 혼신으로 헤매고 다닐 때,
한 초라한 중년의 사내가 다리 절룩이며 미친 듯 자기를 찾아 지구 끝까지 헤매
고 다닐 것이다. 한정화의 머릿속에 늘 떠오르는 조민세의 모습은 서울 명동 찻
집에서의 첫 인상이다. 수염조차 깎지 않은 초췌한 얼굴로 그는 다리를 절며, 조
금은 가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때 그의 강렬한 눈빛이 살아난다.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은 지금 이 길을 택할 거예요? 잠시의 침묵 끝에 한정
화가 말을 돌려 묻는다.
이런 세상이 아닌 평화 시대라면 노동자가 될 테지요. 철강공장쯤, 그곳에서
노동조합 일을 봐도 좋고...
철강공장마다 찾아다니면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겠군요.
그땐, 내가 당신을 찾겠소.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런데...
한정화는 다시 태어난 그 새로운 세상에서도 자신은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장
현과 조민세 사이에서 괴롭게 방황할,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자신의 심장이 떠
오른다. 정말 현재, 지금 시간만이 확실한 인식의 세계임을 그녀는 다시 확인한
다. 한정화는 머리를 들어 조민세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비빈다. 조민세의 팔이
그녀의 등을 감싼다. 한동안의 따뜻한 애무 뒤, 지쳐버린 둘은 본래 위치로 널브
러진다.
난 아무래도 서울로 올라오기 이전, 전쟁 전 유격대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소. 그 길이 내 생리에 맞아요. 조민세가 말한다.
가족과 저는 여기 두구요? 입에 담지 않으려던 그의 가족 말을 한정화가 뱉
는다. 갑해엄마를 떠올리면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죄씻
음의 심리적 작용인지 그가 아닌, 그 가족을 위해 무슨 도움이든 주고 싶은 마
음이다.
내 운명이 그 선택을 요구하오. 유격대 생활이야말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재뿐인 생존이오. 내겐 아직 그런 열정이 남았소.
직업적인 혁명가?
그럴까...
저도 동만주 빨치산 출신입니다.
한중좌는 더 큰 임무가 있잖소?
저도 선생님 운명에 묶여 그 길로 가고 싶어요.
죽음까지?
함께하구 말구요.
조민세는 인민해방군 중좌가 아닌, 열에 들뜬 새가슴으로 파들거리는 한 여성
을 다시 격렬하게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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