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 지어야 복 받는다 / 경봉 대선사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한 번 구르고 이르셨다.]
새해가 되면 서로 인사를 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인사가 '복(福) 많이 받아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사를 하는 것은 참 좋다.
상대방에게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축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요,
이렇게 축원하는 마음이 나를 복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복(福)을 많이 받아라'고 하면 상대는 그 말 자체를 기뻐한다.
그러나 '복 많이 받아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여
상대방이 복을 받게 되지는 않는다.
복은 스스로가 복을 지어야 받는 것이지,
남의 말에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지은 복은 절대로 남에게 가지 않고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를 증명하는 옛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다.
중국 당나라의 두 번째 천자는 태종(재위 627~649)으로,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다.
어느 날 '사주(四柱)가 같으면 팔자도 같은 것인지?'가 궁금해진 그는,
신하들에게 자신과 같은 사주를 지닌 사람을 찾도록 명하였다.
그 결과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태종은 그들을 불러서 사는 형편을 물었다.
한 사람이 먼저 말하였다.
"신(臣)은 잠이 들면 천하의 재물이 제 것이 되고,
만조백관과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지냅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잘 먹지도 못하고 근근이 지냅니다."
꿈속에서 천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신은 아들이 여덟 명인데, 모두가 만석꾼입니다.
아들 여덟 명이 정월 초하루부터 칠일마다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찾아와서는, 비단옷과 진수성찬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천자인 나보다 더 복이 많은 듯하구나.
걱정을 좀 만들어 주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태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야광주(夜光珠)를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말하였다.
"우리가 한날 한시에 태어났으니,
매년 봄마다 한 번씩 만나서 놀아 보세나.
그날은 반드시 지금 주는 이 야광주를 가져와야 하네."
아들 여덟을 둔 부자는 집이 황하강 건너에 있었는데,
천자는 신하에게 '그가 돌아가는 배를 함께 타고가면서
야광주를 물속에 빠뜨리라'는 명을 내렸다.
변복을 한 신하는 부자가 야광주를 자랑하자 보여주기를 간청하였고,
부자가 야광주를 넘겨주자 배가 기우뚱거릴 때
그 보배를 황화강의 물속에 빠뜨렸다.
"아, 천자가 주신 야광주! 큰일났다.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부자가 걱정을 태산과 같이 하면서 지낸 지 사흘이 되는 날,
황하강 강변에 사는 소작인이 잡은 잉어를 들고 부자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 잉어의 배를 갈라 보니 야광주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워낙 복을 많이 지어 놓았기에 구슬을 삼킨 잉어가
소작인에게 잡혀서 그의 집으로 온 것이다.
그 이듬해에 사주가 같은 세 사람은 다시 모였다.
천자는 구슬을 잃어버린 황하강 건너의 부자가 근심걱정으로
피골이 상접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상외로 부자는 좋은 얼굴로 나타났고
구슬을 천자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천자가 자초지종을 캐묻자
부자가 구슬을 도로 찾게 된 내력을 말하였다.
천자는 무릎을 치며 찬탄하였다.
"아, 복이 있는 자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구나.
그대가 천자인 나보다 복을 더 받는 것 같아서
걱정을 좀 주려고 일부러 구슬을 잃게 만들었는데,
그 구슬이 고기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대에게로 되돌아가서 걱정을 면케 해주었구나."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호(號)를 하나씩 내렸다.
"밤마다 꿈속에서 천자 노릇을 하는 그대에게는 몽천자(夢天子),
근심이 없는 그대에게는 무수왕(無愁王)이라는 호를 내리노라."
***
이 이야기처럼 내가 지은 복은 남이 결코 어떻게 할 수 없다.
천자라고 하여도, 하느님이라 하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닦은 복의 과보는 반드시 자기가 받지 절대로 다른 이에게 가지 않는다.
반드시 내가 받게 되어 있고 내 후손이 받게 되어있다.
모름지기 지금 이 생에서 잘 살고,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서도
큰소리를 치려면 복을 많이 지어야 한다.
그럼 불자인 우리는
어떠한 행을 하여 복을 짓고 복을 쌓아가야 하는가?
나는 네 가지 복 짓는 법을 늘 일러주고 있다.
첫째는 공경삼보(恭敬三寶)이다.
무량한 복이 간직되어 있는 불법승 삼보에 대해 공경을 하면 저절로 복이 깃든다는 것이다.
삼보공경의 방법은 간단하다.
매일 삼보에 대해 예경하는 것이다.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올리는 예불은 바로 삼보에 대한 공경의식이다.
모름지기 불자라면 매일 예불을 올리면서
삼보에 대해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를 하여야 한다.
나아가 '부처님 잘 모시고 삼보를 잘 받들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살면,
마음에 늘 지혜의 광명이 깃들어 복을 받게 된다.
이 삼보를 선종에서는, '마음 청정한 것이 부처요, 밝은 마음이 법이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이 승'이라고 한다.
이렇게 청정하고 밝고 걸림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삼보공경이다.
그러므로 맑고 밝고 걸림 없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늘 부처님처럼 깨어나고자 열심히 수행하고,
불법을 널리 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을 짓는 삶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둘째는 효양부모(孝養父母)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다 통하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이다.
부모는 자식이 병들게 되면 신약, 한약 가리지 않고
온갖 약을 구해다가 병을 낫게 하려고 하는데,
가끔씩 보면 부모가 감기 때문에 콜록콜록하면서 아파 누워 있어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으레 있는 천식이나 노병(老病)'이라 하면서
약 한 첩 지어주려 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부모가 곧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부모에 대해 깊은 효성을 가져야 한다. 효도를 하면 반드시 복이 온다.
그것도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셋째는 급사병인(給事病人)이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병든 이를 내 힘닿는 데까지 구완을 해주면
큰 복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죽림정사의 여러 승방을 살피던 부처님께서는
한 명의 병비구(病比丘)가 자신이 배설한 똥오줌 위에 누운 채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찌하여 배설물 위에서 고통스럽게 누워 있는 것이냐?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느냐?"
"없습니다."
"왜 돌보아주는 이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제 몸이 성하였을 때, 저는 병든 동료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를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듯합니다."
부처님은 비구의 몸을 일으켜서
옷을 벗기고 더러운 온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그리고 똥오줌이 묻은 옷은 빨아서 말렸으며,
자리에 깔려 있던 낡은 풀들을 버리고 방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새 풀을 뜯어다가 깔고 병 비구를 그 위에 편안히 눕혀 주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간병에 병 비구는 너무나 황송해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부처님께서는 다른 비구들에게 설하셨다.
"병든 비구를 보거든 나를 돌보듯이 하여라.
병든 자를 보살핌은 곧 나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보시 가운데 이보다 더 나은 보시는 없다.
병든 이에 대한 간병은 큰 복덕을 이루고 큰 과보를 얻어,
영광과 감로의 법미(法味)를 이룩하게 되느니라."
***
"병든 자를 나를 돌보듯이 하여라. 병든 자를 보살핌은 곧 나를 보살핌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마음이요, 부처님의 자비심이다.
병자를 대하는 것이 역겹고 힘들지라도 인연 따라 자비심을 표출하여
자비행을 실천하면 무한한 복덕이 생겨나고,
그 복덕이 감로의 법미,
곧 불멸의 진리를 체득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넷째는 구제빈궁(救濟貧窮)이다.
가난하고 궁한 사람을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구제해 주는데
어찌 복을 받지 않을 것이냐?
그래서 예로부터 국가와 덕 있는 이들이 빈궁한 삶을 돕는 선행을
널리 행하여 왔던 것이다.
***
안동의 하회마을에서는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을
비롯한 훌륭한 분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늘날까지 유정승의 후예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음덕은 류성룡의 7대 조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7대 조부 되는 분은 고개마루턱 갈림길에 집을 지어놓고,
고개를 넘나드는 이들 중 배고푼 이에게는 밥을 주고,
옷이 낡은 이에게는 옷을 주고, 짚신이 떨어진 이에게는 짚신을 주고,
노자가 없는 이에게는 노자를 주기를 30여 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그가 사는 마을에 넓은 벌판이 있었는데,
그 벌판이 꽉 차도록 자손들이 번성해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7대 조부는 이러한 원을 품고 30여 년 동안 많은 덕을 베풀었고,
마침내 복이 가득 쌓여 그 복력(福力)으로 원을 성취하였을 뿐 아니라,
류성룡과 같은 훌륭한 백의정승(白衣政丞)까지 배출하게 된 것이다.
모름지기 복을 잘 지으면 나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후손들까지 모두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영광된 일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힘닿는 데까지 남을 구제하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복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복을 짓고 복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복(福)을 아낄 줄도 알아야 한다.
***
약 3백 년 전의 일이다. 일본 임제종의 관산(關山)선사는 국사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높은 신분임에도
늘 스스로의 복을 아껴서 공부하는 이들을 대접하였고,
매일 밭에서 김을 매고 도량의 풀을 뽑는 등의 생활을 기꺼이 하였다.
또 그와 동시대의 몽창(夢窓)선사도 국사로 추대되었는데,
그는 매일 가마를 타고 다니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몽창선사가 김을 매고 있는 관산 선사를 찾아가자,
관산선사는 이웃 마을 떡집에서 찹쌀떡 일곱 개를 사다가
몽창 선사에게 대접하였다.
몽창 선사는 시장하던 터라 '맛이 좋다'고 하면서 순식간에
모두 먹어버렸다. 그때 관산선사가 말하였다.
"후대(後代) 아손(兒孫-자손)은 무엇을 먹으란 말이오?"
이 한마디에 몽창은 스스로가 행한 모든 처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예언을 했다.
"나의 후대 아손들은 관산의 아손들에게 모두 정복 될 것이다."
과연 그의 예언대로 몽창의 제자들이 있던 사찰들은 뒷날
관산의 제자들이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
지금 복이 있거나 여유가 있다고 하여 복을 까먹으면서
남을 멸시하고 방탕하게 살면 바로 이 금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아무쪼록 지금 힘이 있거든 힘껏 남을 위할 줄 알고
복을 아끼면서 음덕을 쌓아가라.
부디 살아가면서 복을 짓고 복을 쌓아 세세생생 복된 삶을 누리고,
복을 아끼고 가꾸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축원 드린다.
'할(喝)'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월간 <법공양> 통권 349호에서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