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나온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다음에는 박시춘이나 손목인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노래에 가사를 붙인 작사가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원인으로 노래는 역시 가수가 주인공이라는 생각과 작사가인 시인 혹은 극작가 또는 문인 자신들이 노랫말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경향도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사가들이 원래이름을 두고도 필명이나 예명을 만들어서 함부로 쓴 점이 일반사람들의 관심을 흐리게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노랫말을 가장 많이 지은 조영출과 박영호 등이 해방 후에 이북으로 갔다고 해서 그 노래가 남쪽에서 금지되고 원작자의 이름을 표절하거나 왜곡한 사례들이 많아서 작사가들에 대한 연구와 정리가 어려웠던 점이 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유명해진 노래들을 보면 노랫말이 흥행과 대중의 인기를 좌우한 점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노래의 반주나 악기가 단순했던 일제시대의 대중가요는 작사가의 참신한 발상과 조선민족의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노랫말이 대중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 소개하는 노래 "알뜰한 당신"도 그런 노래중의 하납니다. 이 노래는 황금심을 가수로서 유명하게 만든 출세작이라고 전합니다. 이 유성기판은 1938년 빅터레코드사에서 만든 것을 다시 복제한 적입니다. 이 노래에 노랫말을 붙인 작사자의 이름이 분단 후에 이남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뀐 적이 있었지만 해금이 된 후에 다시 원작자인 조영출 작사로 바로 잡혔습니다. 이 노래에 곡을 붙인 전수린은 1907년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살 때 홍난파가 지도하던 연악회에서 바이올린연주를 익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수린은 후에 흥행연극단인 < ; 취성좌 > ; 에서 음악을 연주하면서 작곡에도 손을 댔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옛터"가 꼽히는데 이 유성기판은 나오자마자 5만장이 팔려서 당시 유성기판 판매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황성옛터"를 부른 이애리수는 이 노래로 "민족의 애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전수린은 후에 일본 북해도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를 위문하기 위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수린은 1984년 77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금심의 본이름은 황금동이고 황금자라는 이름도 썼습니다. 황금심은 노래 "알뜰한 당신"을 부르면서 당시 이름을 떨치던 민요가수 이화자와 맞먹는 가수로 등장했습니다. 황금심은 후에 노래 "타향살이"를 부른 고복수와 결혼했습니다.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난 황금심은 지난 7월에 나이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일제시대 유성기로 듣던 한민족의 노래들을, 그 노래에 얽힌 사연들과 함께 들어보는 < ; 남북이 다같이 부르는 노래 > ; , 자료제공에 남한의 신나라레코드사, 그리고 이 시간 진행에 RFA 심재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