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같은 손목시계
남성들이 대중적으로 차고 다녔던 손목시계는 ‘산토스’로 110년 전쯤에 생겨났다. 처음 판매되었을 때는 고가의 사치품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 손목시계는 1960년대 까지만 해도 가격의 높낮이를 떠나 서민들이 지니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얼마 전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6.25전쟁 중 손목시계로 목숨을 건진 에피소드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당시 25세였던 그는 악극단에서 활동하다 전쟁을 맞았다. 서울이 적에게 함락된 후 문화 예술인(연예인)들은 인민군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혀있었다. 전세가 불리해진 인민군은 이들을 북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구씨는 일행의 손목시계 6개를 걷어 인민군에게 하나씩 선물하면서 특별한 사유가 있는 사람 순서대로 탈출 시켰다. 선물을 받은 인민군들은 이들이 도망가는 것을 묵인 했다고 하니 그 무렵 손목시계는 목숨을 구해낼 만큼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1950년대 후반, 내 고향마을로 시집 온 한 젊은 여인이 결혼예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차고 우물가에 물을 긷기위해 나갔다. 마을 아낙들은 그녀를 만나 지금 몇 시냐고 물으면 ‘저녁준비 할 때가 되었어요’ 라든가 ‘참을 먹을 때가 됐어요’ 라고 대답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 여인은 시계(시간)를 볼 줄 몰랐기에 그렇게 답했다고 한다. 시계가 귀하여 단지 치장품에 불과했을 뿐, 시간을 아는데 중점을 두지 않았기에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대답’이 나왔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초. 중학 시절 이었던 1960년대에도 손목시계를 끼워 다니는 급우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시계는 고가에다 귀중품이었다.
나는 고교시절에도 손목시계를 갖지 못했다. 구미나 영천 등에서 열차 통학을 했던 급우들은 차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더러 시계를 차고 다녔다. 손목시계는 고사하고 벽시계 마저 하나 없는 내 시골집에서는 라디오로 시간을 알았다.
70년대 중반 무렵, 형이 결혼을 하게 되어 어느 지인이 세이코 벽시계를 선물했다. 형은 이 시계를 신혼집에 걸어두지 않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사는 시골집 큰방 벽에 걸었다. 건평이 좁은데다 누추한 방이었지만 새 벽시계로 인해 방안의 분위기가 한결 살아나는 듯했다.
형이 결혼 했던 이듬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여 번 돈으로 손목시계를 마련했다. 값비싼 시계는 아니었지만 결혼할 때까지 그 시계를 지니고 다녔다. 결혼 때 아내와 예물로 주고받았던 시계를 10년가량 차고 다녔다. 시계 줄이 쇠줄로 되어 와이셔츠를 입으면 소매 끝이 줄에 닳아 터실터실해져 멀쩡한 셔츠를 버리기도 했다. 두어 벌 버린 후, 쇠줄을 가죽 줄로 바꿨지만 닳아 터실터실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와이셔츠를 입을 때는 시계를 착용하지 않거나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 그럴 땐 늘 쳐다보던 시계가 손목을 벗어나 허전하고 불편했다.
오랜 기간 결혼 예물시계에 의존해 오던 중 공직자에게 의례적으로 주는 상의 부상(副賞)으로 가끔 손목시계를 받았다. 퇴직 전 까지 받다보니 갯수가 많아졌다. 희소가치가 떨어져가니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게 됐다.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 손목시계가 가장 필요했을 때는 열차나 비행기를 탈 때나 시험장(試驗場)에서였다. 수험생이 되어 책상위에 두고 시간을 체크하거나 시험 감독을 갔을 때 지참하고 다녔다. 이제 내 집에도 손목시계가 넘쳐난다. 자녀 졸업 때 상으로 받은 시계, 공무 수행 중 부상으로 받은 시계, 퇴직기념 시계 등이다.
휴대전화가 나온 후부터 손목시계는 사람들의 손목과 헤어지게 되었다. 돈을 주체 못하는 이들이 과시용으로 수 천 만 원 대에서 수억 원대를 홋가하는 고급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이들이 있긴하지만 매우 드물다. 늘 손에 휴대폰을 지니고 있는 일반 젊은이들에게 시계는 거추장스런 장신구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이 돼 버렸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잘 볼 수 없다. 대부분 장롱속이나 책상 서랍 속에 숨어 잠자고 있다. 왠지 아날로그시대의 구닥다리 같은 느낌이 든다. 스마트 폰을 비롯한 여러 문명의 이기로 이제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2015. 5. 23
첫댓글 옛날 생각이 납니다. 시계, 참 귀하고 갖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계의 변천사를 읽는 느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최상순드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날카로운 예지가 번뜩입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손목시계를 얻어끼고 시계를 볼 때면 하늘을 향하여 팔을 크게 한 번 휘드르고 뽐내고 싶었던 기억들이 떠 오릅니다. 그러한 귀중품이 오늘에 와사 계륵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시계의 얽힌 이야기 재미있게 표현하셨습니다.12년전 미국여행시 자부에게 줄 로렉스를 사서 귀국할 때 온 몸에 땀흘리며 공항 빠져나온 생각을하니 웃음이 납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선목시계는 계륵같은 존재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고급손목시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계란 단지 시간만을 알려줄 뿐, 그러기에 고가품을 구입할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릴적 시계는 그림의 떡. 너무나 부럽고 갖고 싶었던 귀중품이 였지요. 오늘 날 시계는 닭갈비 같이 쓸일도 없고 버리자니 머식하고 삼국지의 암호 같은 물건이 되었군요.시계에 대한 예리한 분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