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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문화재답사 스크랩 통도사에 숨어있는 색다른 볼거리 (2)
청목/金永柱 추천 0 조회 140 14.02.14 08: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통도사에 숨어있는 색다른 볼거리(2)

 

 

통도사 전경

 

 

통도사는 우리 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佛寶-통고사·法寶-해인사·僧寶-송광사)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646(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통도사가 있는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형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창건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으며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다.

 

 

 

 

산문에는 영축총림(靈鷲叢林)이라고 적혀 있는데  총림(叢林)이라는 것은, 많은 수행승들이 머물러 있는 것을 나무가 숲을 이룬 것에 비유한 말로서, 많은 선승(禪僧)들이 모여서 좌선을 수행하는 도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총림이 5군데 있는데, 해인사,송광사,통도사,수덕사,백양사이다.

 

현재 통도사에 있는 65580여 칸에 달하는 크고 작은 건물들은 창건 이래 하나 둘씩 끊임없이 지어지고, 고쳐지고, 옮겨진 결과로서 역대 우리나라 불교 신앙을 상징하는 전각들이 빠짐없이 자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건물의 독특한 형식과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절묘한 공간구성은 한국 전통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통도사 주위에는 선원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 비로암, 자장암 등 19개의 암자가 있다.

 

 

통도사와 주변의 암자들

 

 

통도사 전각 배치도

 

 

통도사는 규모가 커다보니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볼거리들이 여기 저기 숨어 있다.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 나머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입구에서 경내로 들어가면서 찾아보자

 

 

 

1.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의 뜻은?

 

 

 

 

주차장에서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다리로서 3개의 홍예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은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인데 삼성(三星) 반월(半月)은 '3개의 별과 반달'이라는 말로 이를 한자로 적어보면 마음 심(心)자이다. 즉 마음 심(心)자를 파자(破字)한 것이다.

'마음의 다리'라는 말로서 이 다리는 난간도 없고 폭이 좁으니 헛된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의 마음(일심一心)으로 다리를 건너야 불국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리 이름의 표지석은 경봉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2. 일주문의 '영축산 통도사'는 흥선 대원군의 글씨이다

 

 

일주문

 

 (불지종가)                                                                    (국지대찰)

 

 

통도사의 3문(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가운데 첫째문인 일주문은 1305년(충렬왕 31)에 창건되었으며, 현존하는 편액 '영축산 통도사(靈鷲山通度寺)'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興宣 大院君 李昰應 ) 필적으로 영축산에 어울릴 만큼 장중하고 기운차다.

통도사에는 유독 흥선대원군 즉 석파(石坡)의 글씨가 많이 있는데, 일주문의 편액인 영축산 통도사의 글씨와 원통방의 편액과 금강계단 편액, 대방광전 편액의 글씨 등이 모두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이다

 

일주문 기둥 좌우의 주련에는 ‘佛之宗家'' 國之大刹(불지종가 국지대찰)’라고 적혀있는데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서 '부처님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절'이라는 뜻이다.

 

 

(이성동거필수화목)                                            (방포원정상요청규)

 

 

일주문에 들어가기 전 양쪽에 돌기둥이 서 있고 한쪽에는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泌須和睦)' 다른 쪽에는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라고 적혀있다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泌須和睦)'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으니 서로 화목해야한다'라는 말이고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은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은 이들은 반드시 계율과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므로 통도사에서 생활하는 모든 스님들은 서로 화목하고 계율을 지켜 수행에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3. 사천왕의 발 아래에는 조선시대 유생들이 있다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

 

 

부처님이나 보살, 천인이 앉거나 서있는 자리를 대좌(臺座)라고 하며 대좌는 불상을 조성하는데 있어 장엄뿐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 꼭 따라야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대좌는 불상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불·보살상을 받드는 대좌에 아귀, 축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생령좌(마구니)이다.

생령좌는 생명이 있는 생물을 대좌로 삼고 있는데, 사찰 내에서 생량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천왕문 사천왕상의 대좌이다.

부처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누구든 사천왕 앞을 지나야 한다. 부처님을 수호하는 사천왕은 어떤 잡스러운 존재도 정토세계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천왕은 대체로 갑옷을 입고 양 손에 지물을 든 체 사방을 지키는데, 발 아래에는 생령이 짓밟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나쁜 생령을 힘으로 항복시킨다는 의미로 선을 보호하고 악을 없애는 신중(神衆)본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천왕 발 아래의 조선시대 유생, 양반

 

 

천왕문에 들어서면 사천왕의 발 아래에 있는 생령의 모양에는 관심이 적고 천왕의 얼굴만 쳐다보며 지나가기 쉽다.  

 

통도사 천왕문을 지날 때에는 사천왕이 밟고 있는 생령(마구니)를 유심히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있는 것이 보통이나 통도사의 마구니는 악귀가 아니라 조선시대 갓을 쓴 양반과 유생의 모습들이다.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사찰이 처했던 고통과 비애를 알게 해 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이 빚은 불교의 폐해는 필설로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조선 중엽에 이르러 불교의 박해는 그 극에 달하는데, 사찰의 토지는 대부분 서원에 빼앗기고 승려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종이, 붓, 노끈, 짚신, 새끼, 지게 등 그리고 특수 곡물 등 온갖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무려 36종이나 되는 물품울 만들어 바치게 하는 부역이 부여되었다.
그래서 승려들은 자신들의 공부는 전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일생을 나라에서 부과된 부역에 종사하기도 바쁜 나날이었으니 승려를
머슴처럼 여기던 조선 양반들의 만행을 생령이라는 모습으로 풍자한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웠으면 저렇게 사천왕에게 밟히는 생령으로 표현하였을까?

 

생령좌의 모습은 대개 악귀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때로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반영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관련자료 : 불국사의 마구니는 왜구이다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746>

 

 

4. 노약자 전용문이 있다

 

천왕문 오른쪽의 노약자 전용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면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출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찰측에서는 이들을 배려하여 노약자 전용문을 천왕문 오른쪽에 만들어 두었다.

문턱이 없는 작은 쪽문으로서 항상 열려 있고 노약자들은 이곳으로 이용하라고 안내판을 붙어 놓았다.

 

천왕문 계단은 몇개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은 노약자전용라기보다는 장애자 전용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장애자라는 말을 피하여 노약자라고 쓴 것으로 보인다. 작은 것이지만 세심하게 배려한 사찰측의 마음이 보인다.

노약자 전용문을 들어서면 바로 반야용선도가 그려져 있는 극락전의 뒷면이 바로 보인다

 

 

5. 극락정토로 가는 배가 있다

 

극락전 뒷 벽면의 '반야용선접인도

 

단청이 거의 사라진 극락전 벽면에는 '반야용선접인도(般若龍船接引圖)'의 그림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반야용선은 절에서 천도제를 하거나 큰 제를 지낼 때 등장을 하며, 또한 무속인들이 굿을 할때 등장 하는데, 앞머리는 용 모양으로 되어 있고 꼬리도 용꼬리라 편의상 그냥 용선(龍船)이라고 한다.

이 용선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 또는 진리나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이 타고 가는 배이다.

 

반야(般若)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달은 지혜" 라고도 하며 용선(龍船)이란 "용모양의 배"를 말한다. 따라서 지혜를 얻은 자들은 용모양의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를 타고 해탈의 바다를 건너 사방정토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즉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뜻하기도 한다.

이 배는 중생들에게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함으로 누구든지 반야용선에 승선하면 지혜를 깨달아 고통 없는 부처님 나라로 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뒤돌아보고 있는 사람

 

이 반야용선접인도(般若龍船接引圖)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보인다

용처럼 생긴 배의 앞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이 합장을 하고 있고 뒤에는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지장보살이 고리가 6개 달린 육환장을 들고 서 있다

배에 탄 모든 중생들이 모두가 합장을 하며 다가올 극락세계를 향하여 앞을 보고 있는데  오로지 한 사람이 계속 뒤를 돌아다 보고 있다.
수만 번의 윤회를 겪으며 힘겹게 억겁 업장을 벗고 아미타극락세계로 가는데 무엇이 그리워 차안(此岸)을 돌아본단 말인가? 속세에 남겨둔 재물이 아까워서인가? 미련이 남아서인가?

 

이 한사람의 모습은 그림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고 재미있게 한다

우리 선조들의 예술세계에는 이렇게 여유와 해학이 생활화되어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표출되어 있는 것이 많다

 

 

청도 운문사의 반야용선과 악착보살

 

사찰 중에는 반야용선을 만들어 천정에 매달아두기도 두기도 하는데 이때, 반야용선에서 늘어진 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보는 경우가 있다. 줄에서 떨어지면 서방정도(극락)으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고 해서 악착보살이라 부른다

 

 

6. 절을 지켜주는 우리나라 토종 신(神)이 있다

 

 가람각

 

천왕문의 좌측에는 종루와 마주보고  일반 사찰에는 잘 볼 수 없는 가람각이 있다.

가람각은 통도사의 가람신을 모시고 가람(절)의 수호를 빌기 위한 곳이다. 따라서 이 가람각에는 부처와 상관없이 가람을 지켜주는 이곳의 터주 신(地神)이 모셔져 있는데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불교에서만 수용된 것이다,

이 가람각은 산신각과 함께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과 융화를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통도사 주지로 부임을 하면 먼저 이 터신에게 제를 지내고 가람의 안녕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가람각의 내부

 

불명패                                                                       소금단지

 

가람각의  내부 위쪽 모서리에 갈색의 자기가 얹혀져 있다. 소금이 들어있는 항아리(염불화방지병)로서 화재를 막기위한 벽사의 의미로 올려놓은 것이며 전각의 바깥쪽에도 있다.

벽면 가운데 가득하게 신중탱화가 있고 예전에는 탱화 앞에 나무로 만든 신상(神像)이 놓여있었는데 지금은 못신상(木神像) 대신 불명패가 자리하고 있다 

 

가람각은 사찰의 담장 안에 있으나 천왕문의 뒷쪽으로 물러나있어 가람 바깥에 배치되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 절에서는 아예 사찰 밖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7. 만세루는 누각(樓閣)이 아닌데도 '루(樓)'자가 붙어있다

 

만세루

 

범종루는 2층이나 오른쪽 만세루는 단층이다

 

만세루는 본래 법회(法會)나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할 때 사용하던 누각(樓閣)이다. 이 건물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1644년(인조 22)에 영숙화상(靈淑和尙)이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범종루는 2층 누각이므로 '루'자를 붙이는데  만세루는 누각이 아닌 단층건물이면서도 '루'라고 한다

 

아마 초창기 이 건물이 만들어졌을 때는 누각의 형태였으나 중건을 거치면서 단층형태로 변하였는지,

아니면 이 건물이 원래 벽이 없고 기둥만 있었던 것으로 보여져 단층으로 지으면서 루(樓)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건물의 외형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지만, 기둥이 높고 그 간격이 넓어 훨씬 크게 보인다. 본래 누각은 바닥이 지면에서 높이 올라간 2층의 다락집으로, 기둥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 단층건물이다.

이렇게 낮게 만든 이유는 건물을 편리하게 이용하고자 한 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산지에 위치한 절의 누각은 산지 경사로 인해 입구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본전의 마당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고, 마당에서 바로 법회장인 2층으로 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불편함이 없으나 통도사는 평지에 세워진 절이기 때문에, 이곳이 2층 누각이라면 많은 승려나 신도가 의식을 거행할 때 오르내리기에 크게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단층으로 지었는지도 모른다.

 

 

청도 운문사의 만세루

 

이러한 예는 청도 운문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평지사찰인 운문사의 '만세루'도 단층이면서도 누각의 형태로 벽면이 없고 기둥만 있다.

 

 

건물 바깥쪽의 용머리                                             건물 안쪽의 물고기꼬리


 

통도사 만세루는 출입문 위에 보면 잘 생긴 용두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나 건물 안에 들어가서 꼬리부분을 보면 물고기 꼬리이다. 물고기가 법당 밖으로 나오면 용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는 중생들이 만세루 안에서 설법을 듣고 밖으로 나올 때에는 깨달음을 얻어 용처럼 되라는 의미로 새긴 것이라 한다. 

 

 

만세루 어간 출입문 오른쪽 용이 물고 있는 것은?

 

출입구 왼쪽의 용은 물고기를 물고 있다. 이렇게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은 불국사 등 많은 사찰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오른쪽의 용이 물고 있는 것이 예사스럽지 않다.

여의주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도끼날 같기도 하고 아니면 옛날 벳틀의 북실 같기도 한데 처음 보는 모양이다.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일까?

 

 

 

사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만세루를 짓고 나서 웅장한 건물에 맞추어 현판을 달아야 할 때, 기골이 장대한 6세의 어린 동자가 나타나 거대한 붓으로 만세루란 세 글자를 쓰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이는 문수보살이 어린 동자로 변해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만세루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세워지기 전에는 유물 전시관으로 사용이 되었으나 현재 불교용품과 기념품을 파는 매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8. 호랑이 피가 묻은 호혈석(虎血石)이 있다

 

호혈석

 

통도사에는 백운암에 얽힌 호랑이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전설을 뒷받침하는 2개의 돌이 있다

이 돌을 호혈석(虎血石)이라고 부른다. 하나는 하노전의 극락전과 급수대 사이의 땅바닥에 있고 또 하나는 상노전의 응진전 옆에 있다.

호혈석은 호랑이 기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붉은 피를 발랐다는 넓은 반석으로 피가 묻은 것처럼 붉은 색이얼룩져 있는 돌이다.

극락전 옆의 호혈석 위에는 움푹 파인 부분이 있는데 이를 호랑이의 발자국이라고 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모래와 흙먼지로 덮혀있어 식별이 싶지 않지만  물을 부으면 자국이 뚜럿이 나타난다

 

 

극락전과 우물 사이의 호혈석

 

응진전 옆의 호혈석

 

호혈석(虎血石)에 얽힌 전설이 있다.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백운암에는 젊고 잘 생긴 홍안의 스님이 홀로 기거하며 경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장차 훌륭한 강백(講伯:경전을 가르치는 스님)이 되기 위해 경 읽기에 매진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부처님께 기원하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아느 봄날 저녁 무렵,

스님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예불을 마치고 경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젊은 여인의 곱디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한 스님이 문을 열자 아릿다운 처녀가 바구니를 허리춤에 붙인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 멀리 불빛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왔다며 하룻밤 묵어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스님은 난처하긴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단칸방의 아랫목을 처녀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습니다. 스님의 경 읽는 음성은 낭랑하였으며 고요한 산중에 울려 퍼지는 그 음성은 마치 신비경으로 인도하는 듯 처녀를 사로잡았고 그날 밤부터 처녀는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날이 밝자 처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고 스님을 사모하는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마침내 처녀는 병이나고 말았다. 마을에서 지체 있는 가문의 무남독녀인 처녀는 좋다는 약은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했고 처녀의 어머니는 딸이 마음의 병이 있음을 알고는 근심을 말해보라고 일렀다.

그때서야 처녀는 지난날 만났던 젊은 학승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고백했고

사연을 들은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스님을 찾아가 딸과 혼인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젊은 스님의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얼마 후 처녀는 병이 악화돼 끝내 한 맺힌 가슴을 안고 눈을 감게 되었으며 죽은 처녀는 그날로 영축산의 호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고 그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해 드디어 강백이 되어 처음 강론을 열게 되었는데 저녁 무렵, 감로당 산중 연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더니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큰 몸집을 가진 호랑이가 감로당 지붕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문을 할퀴고 사납게 울부짖자 대중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필경 대중 속에 누군가가 저 호랑이와 사연이 있는 걸세.”

 “그렇다면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져보세. 그럼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것이 아닌가.”

연회에 참석한 스님들은 저마다 저고리를 벗어 하나씩 밖으로 던졌으나 호랑이는 그냥 옆으로 밀쳐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마지막으로 새로 취임하는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면서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강백 스님은 아무래도 소승의 속세 인연인가 보다하며 합장 예경하고 바깥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고 호랑이는 스님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재빠르게 낚아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산중 모든 대중은 강백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매다가 스님이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산등성이에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는 스님을 찾았으나 이미 이 세상 사랑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남성의 상징이 보이지 않았다

미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호랑이로 태어난 처녀는 살아생전 흠모하던 스님과 그렇게라도 연을 맺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에도 호랑이의 횡포는 사그라질 줄 몰랐는데 그러던 어느 날, 통도사를 찾은 한 고승이 말하기를 '이곳은 호랑이의 기운이 넘쳐나는 곳이니 호랑이의 혈을 눌러야한다'며 붉은 피를 바른 큼직한 붉은 반석 2개를 도량에 놓게 하였다. 그러자 그 뒤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며 이 때 가져다 놓은 반석이 ‘호혈석(虎血石)’이라고 한다, 호혈석을 ‘호석(虎石)’이라고도 부르는데 지금도 산신각에서 20m 남쪽 응진전 바로 옆과 극락전 옆 북쪽에 그 일부가 남아있다

 

  

9. 극락전과 약사전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다

  

남쪽(만세루가 있는 곳)에서 본 배치

 

하노전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마주보고 있다

사찰에서 전각의 배치는 지형이나 특수성  등에 의해서 세워지기 때문에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전은 동쪽,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은 서쪽에 배치한다

 

약사전의 위치를 동쪽에 두는 이유는 이 여래의 주로 거처하는 곳이 동방이라는 것에서 연유한다. 약사여래가 상주하는 곳이 동방만월세계이기 때문에 동쪽에 약사전을 배치하는 것이다

또한 극락전은 서방정토셰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쪽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통도사에는 동쪽에 극락전이 있고 서쪽에 약사전이 있어 완전히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10. 특이한 모양의 배례석이 있다

 

 삼층탑 앞의 배례석

 

영산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1기가 서 있고 석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다

배례석이란 국왕배례지석(國王拜禮之石)이라는 상징적 조형물로서 신라 사찰에서도 자주 볼 수 있으나 이곳 배례석은 1085년(선종 2)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일반 사찰에서 배례석은  장방형의 육면체로 윗면에는 큼직한 연꽃문양이 1∼3개가 새겨져 있으며 지면에서 20∼30cm 높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나 통도사의 배레석은 이와는 매우 다르다

길이 175㎝, 너비 87㎝의 낮은 판석으로 3절 되었으며, 윗면에는 아름다운 연화문과 운문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면에서의 높이도 지극히 낮아 마치 돗자리를 깔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게한다. 

 

둘레에는 연화무늬의 돌기둥이 4개가 놓여 있는데 연결하는 둘레석이 없어 무언가 엉성한 느낌이 든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지 아니면 소실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주변의 모래가 덮히기 쉬워 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례석의 명문

 

왼쪽 윗쪽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현재의 명문은 ‘太康王一年乙丑二月日造’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太康十一年乙丑二月日造’의 위각(僞刻)이고 또 중간의 판석(길이 35㎝, 너비 87㎝)도 후에 보충된 것임이 최근 판명되었다고 한다

 

이 삼층석탑의 복원 시 하층 받침대 아래의 다진 흙 속에서 금동의 소형 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 등이 발견되어 현재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탑기단 안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물은 탑을 건립하기 전에 땅의 악한 기운을 누르며 땅을 다질 때 묻는 진단구(鎭壇具)이거나 혹은 탑의 건립과정에서 행하였던 여러 단계의 의식(儀式)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형태의 배례석

 

 <관련글 : 배례석은 올라서서 절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703>

 

 

11. 통도사에도 다보탑이 있다

 

영산전 북쪽멱의 다보탑 벽화


영산잔의 서쪽 벽에 그려진 다보탑

 

다보여래는 동방 보정세계() 있다는 부처로서 석가모니 영취산에서 '법화경' 설법할 , 땅속에서 다보탑 함께 솟아나 소리 질러 석가모니 설법 이라고 증명하였다고 하는 부처이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은 석가여래의 설법을 뜻하는 석가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이곳 통도사에도 다보탑이 있다.불국사처럼 돌로 만들어진 탑은 아니지만 영산전 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가로 2.2m,  세로 5.4m에 달하는 대형그림으로 각종 구슬과 풍령으로 장식한 구층탑의 내부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이병불의 형태이며 탑의 좌우에는보살과 제자가 4명씩 그려져 있다

영산전내의 석가모니와 후불탱화(영산회상도)가 다보탑 벽화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부 벽에는 다보탑(多寶塔)을 비롯하여 법화경의 여러 내용을 담은 품격 높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팔상도는 1775년(영조 51)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불화의 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팔상도 아래에는 야단법석을 할 때 쓰이는 괘불을 보관하는 상자가 길게 놓여져 있다

 

영산전 내부에는 다보탑 벽화1775년에 그려진 국보급 팔상도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도' 등의 벽화가 있다

영산전 내부의 벽화들은 모두 52점으로 2011년 4월 29일 우리나라 보물 17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8세기 조선 정조대왕에 그려진 우수한 불화들이다. 외벽의 벽화들은 17점이 그려져 있으나 훼손이 심해 윤곽을 알아보기 힘들다.

 

 

12. 불이문(不二門) 들보는 코끼리와 호랑이가 받치고 있다

 

유일하게 청기와를 올린 불이문

 

통도사의 세번째 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불리는 불이문(不二門)은 하노전에서 중노전으로 들어가는 경계에 있는 문이다. 모든 것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음을 불이(不二)라고 하며 둘이 아닌 경지로, 생사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아니하고 만남과 이별 등 상대적인 모든 것들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으로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음을 상징하고 있는 문이다.
통도사 전체 건물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처음 지은 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짜임새가 있고 견실한 건물이며 중앙 기둥의 간격이 넓어 훨씬 웅장한 느낌을 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불이문에 걸려있는 ‘원종제1대가람’이라고 쓴 편액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원종1대가람(源宗一代伽籃)'이란 말이 무엇을 뜻한 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석가모니의 불사리를 안치했기 때문에 원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들이 있는 것 같다

이 편액은 1920년대까지는 일주문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응진전 뒤 스님들의 선원인 보광전에도 '원종1대가람(源宗第一代伽籃)'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불이문이란 편액은  송나라 미불(米? 호는 元章)의 필적이라고도 한다.

 

호랑이와 코끼리가 들보를 받치고 있는 불이문 내부

 

 

 

 

이 건물은 중앙에 대들보를 쓰지 않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로 받쳐서 지붕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구성 방식이 독특하다.

코끼리는 보현보살을, 호랑이는 문수보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문수보살은 사자등을 타고 나타나지만 옛 우리 선조들의 정서로 보아 사자보다 가까운 호랑이로 바꾸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통도사의 호랑이 전설을 관련지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 내부 천장에도 이와 비슷한 형상이 있다

기둥 사이 보에 걸쳐 하얀 코끼리와 용, 점박이 사자와 용이 좌우 칸에 둘씩 보에 발을 걸치고 있다.

그런데 사자라고 하는 동물의 형상이 사자라기 보다는 점박이 호랑이에 가까워 표범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불이문 건물의 특징은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짠 뒤, 그 부재 위에 장혀를 걸쳐 중도리ㆍ하중도리ㆍ종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보기드문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기둥도 통도사 건물 중에는 가장 뚜렷하게 배흘림 양식으로 처리하고 있어 건축 연대가 오래 되었음을 알게한다.

 

 

 

 

불이문의 측면 기단은 수평이 아니라 기울어져 있다. 

불이문은 통도사 중심통로중에서 가장 경사가 심한 곳으로 앞 뒤 지면의 높이 차이가 1.5m나 된다. 그래서 기단의 높이를 조정하여 경사의 차이가 적어보이도록 한 것이다. 앞쪽 기단을 뒷쪽보다 20cm정도 낮게 쌓아놓고 주춧돌과 기둥의 높이를 조절하여 지붕은 수평이 되게 하였다

불이문 뿐만 아니라 대웅전, 대명광전, 원통방 등 여러 건물에서 이와같은 현상이 보인다

 

 

13. 나도 극락에 갈 수 있는지 알아보자

 

 

 

불이문에는 아는 사람들은 한번씩 해보는 것이 있다. 대웅전 큰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절 밖으로 나가면서 불이문 문고리에 머리를 넣어본다고.....

머리가 들어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한번씩 넣어보고 간다는데 과연 저 고리속으로 머리가 들어갈까?

어린 아이 머리라면 들어갈 수 있겠는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뜻일까? 성경에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했는데......

웃자고 하는 행동이겠지만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절문을 나서는 보살님들의 재미있는 모습이다

열려있는 불이문의 안쪽에 있다

 

 <올릴 수 있는 사진 매수의 제한으로 3편으로 이어집니다>

 

 

<관련자료 : 통도사에 숨어있는 볼거리들 (1)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299>

<관련자료 : 통도사에 숨어있는 볼거리들 (3)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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