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일기

. . . . . . . . . .       . . . . 이미 늦 가을의 아침 해가 중천에 떠서 좁은 방 안 가득 햇살을 뿌리고 있지만 까시리 할망구는 좀처럼 침대 이불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지금이 시월 하순인데도 벌써 영하 10도를 기록하는 등 추위가 다른 해에 비해 빨리 찾아왔다고……   한반도 전국의 아침 기온이 전날 보다 10도 이상이 떨어진 날씨라고 테레비 뉴스에서는 시끌벅쩍이다. . . . . 까시리 할망구는 혼자 이불 속에서 씨부렁 거려 싸면서 오래도록 누워 있음이 지루했던지 “어디 보자”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가?”   . . 그래도 아직까지 시력은 좋아서 왠만한 거리는 안경 없이도 가능하다   젊어서는 모가지가 길어서 미인 소릴 듣고 살았다는 까시리 할망구는   곱디 고운 연두색 공단 이불 바탕에 진 홍색 양단 이불 깃에 그 우아한 모가지를 이불 속에서 빼꼼히 내 놓고는 누워서 반대편 베랑빡에 걸려있는 달력을 쳐다 보며 두 눈만 깜박 거려싼다.   그 달력은 평안남도 구장군 농협에서 농민들을 위한 24절기가 씌여 있고, 10간(갑,을,병,정,무,기….) 12지(자,축,인,묘,진,사,오,미…..)도 씌여 있는 농사용으로 발간된 글씨체가 아주 큼지막한 달력이다. . . “으응” “오늘이” “<st1:date w:st="on" Day="27" Month="10" Year="2025" o:ls="trans">2025년 10월 27일</st1:date> 이구나”   오늘 날짜를 확인 하던 까시리 할망구는 무언가 마음속에 지피는 게 있는 듯 해 보인다. . . 까시리 할망구는 태어났던 고향, 젊은 시절을 보내왔던 서울 땅을 뒤로하고 이곳 평안남도 구장군 묘향산맥에 위치한 묘향산 실버타운에서 생활 한 지도 벌써 8년 째 이다.   . . 그러니까 2017년 그 해 이곳 실버타운에 입소 할 당시도 시월 하순쯤 이었을 것이다.   달랑 한 개있는 외아들 손 잡고 서울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개성-사리원-평양-안주-개천-구장-강계까지 가는 PTX 를 타고 가다가 구장 역에서 내려서 낯 설은 이 실버타운에 입소를 했엇다.   그때만 해도 까시리 할망구 연세는 겨우 70대 초반 이었으니…..   이런 저런 8여 년 전의 실버타운 생활들이 까시리 머리 속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다.     여전히 침대 이불 속에서 이런 저런 잡념에 사로 잡혀 지나간 세월들을 헤집고 있는 이 때   시말테기 없는 노크 소리가 “퍽, 퍽…., 퍼 퍽” 난다 그러더니 문이 빼꼼히 열린다. . . . “야” “까시라” “너 뭐하고 아직까지 안 일어났니?”   “어데, 아푸냐?” . . 자주색 골덴 긴 치마에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앙고라 쉐터를 입은 채로 여지없이 그 방을 파고 든 “건달 아짐” 할망구였다.   건달 아짐 할망구는 묘향산 실버타운 입소가 까시리 보다는 2년 선배이며 부산에서 살다가 왔다.   타고 난 성격이 항상 기분파이며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지낸다 실버타운 여러 사람 중에서도 까시리 와는 더 더욱 친하게 지내고 있다.     건달 아짐 할망구는 까시리의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는 곧 바로 식당으로 가서 펄펄 끓는 물에 라면을 뽀사 넣고 냄비 뚜껑을 잠시 닫았다가 라면만 뜨건 물에 헹구어 버리고는 다시 뜨거운 물 울 붓는다. 즉 니끼한 라면을 싫어하는 까시리의 드러븐 승질이다. 라면 냄비와 속이 노오란 배추 무근지 김치 한 토막을 들고 그 방으로 들어 갔다. . . .   이미 <st1:time w:st="on" o:ls="trans" Hour="10" Minute="0">오전 10시</st1:time>가 되었다… 실버타운 생활은 늘 하는 대로 하고 있다.   이 실버타운에서의 유난히 성비가 전혀 맞지 않는 34명의 할망구들과 19명의 영감텡이 들은 각자 놀이 방으로 흩어졌다   실버타운 안에는 아래와 같은 동호회가 있다. 1.       장기, 바둑 방 2.       뜨개질 방 3.       노래방 4.       스포츠 딴쓰 방 5.       요가 방 6.       탁구 방 7.       비됴, 테레비젼 방 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스포츠 딴쓰방에 적을 두고 있는 꼴통 영감과 대추씨 영감은 오늘도 여전히 그곳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길 줄 안다.   그 중에 대추씨 영감텡이는 충청도 출신에 젊어서는 군수도 두 번씩이나 했었던 아주 활동력 있는 영감텡이 이다.   아주 작은 키에 헐렁한 멜빵 바지를 입고 머리카락도 없이 사람들과 마주치면 항상 위로 쳐다 보는 타입이다. 실버타운 건물 외부의 잡초를 뽑고 청소는 죄다 채금 질 정도로 부지런하다     꼴통 영감텡이, 전라도 출신에 키는 멀대같이 크고 배 바지를 입은채 콧털이 약간 삐져 나와있다 젊어서는 색시를 서넛 거느렸으며 천석궁이나 다름없는 아주 선조 대대로 부자였었다. 성격이 특이해서 지금도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성깔을 부리는 아주 꼴통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저런 승질을 받아 주는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린채 제 잘난 맛에 살아간다.   . . <st1:time w:st="on" o:ls="trans" Hour="11" Minute="0">11시</st1:time>가 되어서 까시리 할망구는 대충 얼굴에 몇 가지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는   딱 쪼이는 거들을 입고 곤색 모직 롱 스커트를 걸친다     보푸레기가 일어난 살색 젖 마개를 탈탈 털며 늦 가을 수세미 열매 같이 추욱 쳐진 거시기를 올려 잡고 단디 메고는 앞 가심팍 확 패인 메리야쓰에, 얇은 앙고라 쉐터를 입는다   돼지곱창 같은 레이스가 너덜거리는 흰색 부라우스에 곤색 정장 모직 더블 단추 자켓을 입는다.     모가지가 길어서 미인 소릴 들었었다는 그 부위에는 호피 무늬의 실크 목도리로 칭칭 감는다.   그리고는 가로 줄 무늬의 길다란 털실 양말에 중 굽 높이의 검은색 구두를 신고 검정색 털실로 짠 모자를 푹 눌러쓴다.   갈색 악어가죽 핸드백을 든다   실버타운 현관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 . . 그 모습을 언제 봤는지 스포츠 딴쓰에 푹 빠졌던 꼴통 영감이 유리창을 열고는 . . “야” “까시라” . .   “까시라” . . 소리 내어 불러 싼다. . . 까시리는 잠시 그 소리에 뒤 돌아 보며 손을 흔들어 주는 꼴통 영감에게 답례로 손으로 흔들어 주면서 실버타운 정문을 나선다. . . . 정문을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 5분만 걸으면 빨강색의 우체통 있는 곳 여풀떼기가 바로 구장역이다. . . 까시리는 구장역에서 경로 우대쯩을 보이며 서울 가는 PTX 기차표를 받아 든다. . .   PTX 기차는 2015년도에 남 북 통일이 되고 곧 바로 건설 된 철도이다.       갑자기 서울행 외출을 감행 한 까시리 할망구는   2016년 요맘때 쯤해서 영감이 죽고 영감이 평소에 수령하여 쓰던 그 위대한 대한민국 궁민연금의 50%를 미망인의 배우자 몫이라고 까시리 할망구가 계속 받아가며 빈곤하지 않게 살아간다. . . 까시리는 처녀 쩍부터 친정 집이 서울 장안의 부잣집이었다. 시댁도 왠만큼 잘 사는 집이었다.   까시리 부모님의 간택으로 그 젊은이와 결혼 후 서울 장충동에 아주 큰 한옥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두고 오래 오래 부족함 없이 잘 살아왔었다.   신랑은 1970~1990년대 말까지 무역업을 하며 꽤나 많은 돈도 모았었다.   하나뿐인 아들은 지금 서울 강남에 살고 있으며 두 아들 손주만 달랑 있다.     오늘 밤이 영감 제삿날이라서……………………………………….//   찬 바람을 가르며 산 계곡을 파고들며 달리는 PTX 기차에 우아한 삭신을 싣고 모처럼만에 서울을 간다.   남 북 통일은 되었어도 남 북 왕래 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구장역을 출발 했던 PTX 기차는 한참을 달려 오다가 개성역에서 한참을 서 있다.   즉 통일은 되었어도 아직은 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사정이라서 민쯩 까 보여야만 하는 검열 관들이 저쪽에 보인다. . .   “할마이는 어디 사십네까?” 이민국 관리원이 까시리에게 묻는다.   “녜” “묘향산 실바타운이야요” . . “워데 가십네까?” . . “서울이야요” . . “무슨 일로요?” . . “영감텡이 제삿날이라서요” . . “잘 댕기 오시라요” . . 건성 건성 민쯩만 조사해간다.   . . . 가을 추수도 다 끝나가는 석양의 들판 d g 게 달려가는 고속열차의 유리창 밖으로는 회색 빛 들판들이 싸늘해 보이기만 한다.   서울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명문 여고를 졸업하고 거시기 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쩐에 쪼들리는 생활을 한번도 안 해 보고 자라다가   그저 부모가 엮어주는 배필을 만나서 모자람 없이 살아 온 지난 나날 들… . . . 80 평생을 돌이키려 하니 까시리의 우아한 머리가 뽀사질려고 한다     시속 250km 로 달리는 PTX 유리창 밖 전봇대가 d g 게 뒤로 달리는 것처럼 …………….   . .   내 세월도 그러했었노라.   서울에 가면 내 에리디 에릴적의 깨 복쟁이 친구들도 만나 볼수 있을까?   청계천에서 물짱구 치며 창경원에서 곤충 채집하며 종로에서 줄 넘기 했던 그 시절들이,….   순심이는 겡기도 일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고 영순이는 어데 사는지 원! 금자는 분당에 산다더라   칠복이는 죽었고 성식이 건수 명수 권태는 저 세상에 간지 오래 되었고…   어느덧 서울역 플랫폼에 다가 선다.   역시 서울은 지금도 활기찬 도시여.     마중 나온 회갑 넘은 나이의 아들 자동차에 타고 남산 길 돌아 아들 집으로 간다.                         송도 보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