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어도 2020년 정도가 되면 이 법률의 무분별한 적용이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모든 위정자들이 깨닫고 깊이깊이 후회할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한다."
손정목(88)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서울 도시계획 역사를 기록한 자신의 책 '서울도시계획 이야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약 6000개의 법률이 제정됐지만 그 숱하게 많은 법률들 중 이 법만한 위력을 가진 법률이 과연 몇 개나 있었을까"라며 이 법의 가공할 위력을 지적했다.
전두환은 1979년 12월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 최규하 대통령이 물러나자 대통령 취임 후 그해 말 주택 500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택촉법을 제정한다. 사진은 1980년 8월 퇴임 직전의 최규하 대통령이 전씨의 진급신고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그가 말한 법은 바로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다.
그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큰 택촉법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아야 했고, 불가피했다면 10년 정도만 효력을 지난 한시법으로 해야 했다. 불행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도 위정자들은 이 법률이 천하의 악법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편리하고도 강한 이 법률의 힘을 빌려 나라 곳곳의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대량토지의 약탈적 점거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주민 무시·법 무시, '법위의 법' = 택촉법이 무엇이기에 도시계획 전문가인 손 전 교수가 이토록 우려한 것일까.
박성규 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전까지 택지조성사업은 부지를 반듯하게 정리한 후 땅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일종의 환지방식이었지만, 택촉법 제정 이후 정부가 땅을 강제 수용해 민간기업에 나눠주는 사이비 공영개발 방식이 자리를 잡게 됐다"며 "그 결과 막대한 개발이익을 땅주인은 배제된 채 사업시행자와 택지를 분양받은 민간기업이 가져가는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택지개발은 택촉법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손 전 교수는 "택촉법 이전의 택지개발은 도시개발법을 비롯한 많은 법률에서 그 사업의 진척단계마다 존재하는 각급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적절한 제동이 걸리도록 규정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택촉법은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장관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만 하면 그 토지는 일괄 수용돼 택지로 개발된다. 그곳에 사는 주민의 의사는 무시된다.
뿐만 아니라 토지개발공사(현 LH공사)가 건설부장관으로부터 택지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면 도시계획법을 비롯한 19개 법률이 규정한 결정·인가·허가·협의·면허 등 모두 32개에 달하는 처분을 받은 것으로 간주(의제)됐다.
사유재산권 보호나 필수적인 녹지의 보전 등 도시개발의 중요한 원칙과 절차들을 일거에 무시하는 것이다. 가히 택촉법은 '법위의 법'인 셈이다.
택촉법을 필두로 이후 100여개에 달하는 수용법이 제정돼 대부분 택촉법의 일괄 의제조항을 그대로 따랐다.
◆"박정희독재도 감히 생각 못해" = 손 전 교수의 지적대로 "엄청난 사유재산권 침해가 되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권력으로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헌정이 중단된 1980년 12월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에서 이 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뒤,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를 대신하는 국보위를 만들었다.
국보위는 국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156일동안 215개 법안을 제정했는데, 택촉법은 그 중 하나다.
택촉법은 국보위가 발표한 주택 500만호 건설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됐다. 광주민주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집권한 전두환 국보위위원장은 민심을 얻기 위해 1980년 9월, 향후 10년안에 주택 500만호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택지가 필요했다.
이전 박정희 정부도 절대부족 상태인 주택수를 늘리기 위해 택지 확보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권 보호와 도시계획상 자연녹지나 생산녹지(절대농지) 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추진해 단기간에 급격한 택지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규모 택지 잇따라 세워졌지만 = 전두환의 500만호 주택건설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법은 살아남아 전국에 택지개발 광풍을 불러왔다.
1980년초 서울에서만 개포(73만평), 고덕(95만평), 목동(130만평), 상계(112만평), 중계48만평) 등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세워졌다. 노태우 정부 들어선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에 따라 분당(596만평), 일산(476만평), 중동(163만평), 평촌(153만평), 산본(127만평) 등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됐다.
또한 광교·동탄·양주·운정·위례·판교·김포한강·아산 등 수도권과 지방에 수백만평 규모의 대규모 신도시 건설 붐이 일었다.
1981년부터 2014년말까지 33년간 택촉법에 의해 택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곳은 전국 621개였고, 그 총면적은 5억7757만㎡(1억7500만평)에 달했다.
택촉법에 따른 대규모 택지공급으로 주택의 절대량 부족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1980년 주택총수는 약 500만호에서 2005년 1322만호로 주택보급률 105.9%를 기록했다.
◆도시빈민 양산에 환경파괴도 =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난 무수히 많은 원주민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1983년 목동지구를 시작으로 사당동 상계동 오금동 암사동 등에서 택지개발사업이 벌어졌다. 철거가 시작되자 세입자들과 무허가 건물에 살던 주민들은 말 그대로 결사항쟁을 했다. 1966년 실시된 전수조사 결과 서울시 무허가건물은 13만6650동에 달했다. 터무니없이 적은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경찰을 앞세워 최루가스가 터트리며 강제 철거에 나서면 주민들은 돌맹이를 던지며 저항, 아수라장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1989년에는 신도시개발 지역 농민 5명이 수용을 비관해 잇따라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입자들은 처절한 싸움으로 보상금을 약간 더 받기는 했으나, 결국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했다.
이제까지 '절대보전'으로 지켜지던 녹지와 농지 등도 대거 파괴됐다.
박정희 정부는 녹지(그린벨트)와 농지는 절대보전지역으로 묶어왔다.
1971년 7월 서울지역을 시작으로 대도시 주변의 녹지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했다. 도시 과밀화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 도시민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용지확보 등의 명분이었다. 지역주민들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며 이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아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박정희 정부는 식량자급자족을 위해 1975년 농지보전법을 만들었다. 전국 농지를 절대농지와 상대농지로 나눠, 절대농지는 농업이외 다른 용도전용을 못하게 했다.
택촉법은 이를 모두 무시했다.
◆'국민엔 고통, 건설업체엔 혜택' = 주민들의 고통과 자연파괴의 결과이외에 사업시행자와 민간건설업체들은 큰 돈을 벌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당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등 택촉법에 의한 사업시행자들은 '땅장사' '집장사'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벌었다. 일례로 토지개발공사의 경우 1981년 자산총액이 1320억원이었다. 택촉법 시행이후 자산총액은 천장 모르게 늘어나 1985년 1조1150억원, 1990년 4조4700억원에 달했다. 주택공사와 통합이후 2010년 147조원에서 2015년 6월 현재 170조원에 달했다. 34년간 무려 1288배나 커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민간건설업체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택촉법에 의한 정부의 공공택지 공급정책에 대해 '서민의 돈을 빼앗아 공기업과 기업에겐 고수익 특혜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시지가로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한 후, 용도변경을 통해 택지로 만든 뒤 민간건설업체에 추첨을 통해 분양했다. 건설업체는 이곳에 시세대로 아파트를 분양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경실련은 2004년 용인 동백, 용인 죽전, 파주 교하, 남양주 호평 등 4개 공공택지개발지구에서 발생한 총 개발이익은 3조3714억원이라고 분석했다. 경실련은 "토지공사가 토지조성 과정을 통해 5217억원을, 주택공사와 민간건설업체가 택지를 구입해 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2조8497억원의 개발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그대로 입주자와 국민들에게 전가됐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택촉법 폐지 반대 = 2014년 9월1일 박근혜 정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택촉법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2013년말 현재 미매각이나 미착공 등으로 인해 전국에 남아있는 공공택지 여유물량이 246.2㎢로 무려 137만가구를 공급할 수 있어, 신규 지구지정 없이도 10년간 공공택지 여유가 있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신규 택지개발지구 지정이 없는데다 최근 10년간 지정된 지구(233㎢)의 11%인 15개 지구, 26㎢가 사업성 부족 등으로 지구 해제나 취소됐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이 법에 따른 개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폐지추진 배경을 밝혔다.
국토부는 진행중인 택지개발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법 공포후 3년간 유예기간을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년 10월29일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국토부와 협의해 택촉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발의 1년이 넘도록 소위를 통과하지 못해 폐지여부가 불투명하다. 지난 11월 13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법안은 보류됐다. 새정치연합이 법안 폐지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백재현 새정치연합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택지지구가 사라지면 무주택 서민이 집을 장만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12월 2일 소위가 열리는데 이 법안이 상정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