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공부 잘 시키면 영어교육 저절로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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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원회의 '영어몰입교육' 맞지 않다...미국학교에서 있었던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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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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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최근 영어 진행 수업 등을 골자로 발표한 '영어몰입교육'과 관련, 조기숙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의 글 일부를 싣는다.(편집자) -------------------------------------------------------------------------------- 학생을 데리고 미국에 가면 제일 먼저 찾아갈 곳이 카운티 교육청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물론 집 주소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거주지 주소에 따라 공립학교가 자동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좋은 학교가 있는 학군은 집값이 비싸다. 우리는 좋은 학원이 있는 곳이 집값이 비싸니 집값이 그 나라 교육의 바로미터가 되는 셈이다. 교육청에서 중고등학생은 영어와 수학시험을 치른다. 수학시험은 한국 학생이 많은 곳에서는 물론 우리말로 치를 수 있다. 그런 곳이라면 학적부도 영어로 번역해갈 필요가 없다. 한국인 교육감이 두서너 명씩은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배치고사이므로 아이에게 잘 보라고 압박감을 줄 필요는 없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교육감이 말했다. “가급적 집에서 우리말을 사용하십시오.” 한 마디라도 영어를 더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말을 쓰라니 의아했다. “한국 부모들이 급한 마음에 잘 되지도 않는 영어를 아이에게 사용하는데 그러면 아이의 어휘력이 줄어들고 영어를 더 못하게 됩니다. 우리말을 잘 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잘 하게 됩니다. 우리말이라도 확실히 잘 하게 하세요” 무슨 뜻인지 알 듯했다. 그 후 두 아이와 생활하면서 교육감의 말뜻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큰 애가 모르는 영어 단어를 물으면 우리는 어려운 우리말로 대답해주었다. 큰 아이는 금새 알아들었다. 아이의 어휘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갔다. 작은 아이가 단어를 묻기에 우리말로 대답을 했더니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엄마, photosysthesis가 뭐야?” “광합성 작용”
“그게 뭔데?” 우리말 어휘력이 부족한 작은 아이에게는 우리말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단어의 의미를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해야 간신히 알아들었다. 대학시절 TOEFL공부를 할 때였다. 미국 선생님은 영한사전 대신 영영 사전을 보도록 했다. 미국 유학시절 내내 나는 영한이나 한영사전이 없었다. 영영사전 하나로 버틴 것이다. 그 후 귀국해서 학위논문을 번역하는데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머릿속으로는 어렴풋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우리말로 정확한 어휘를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그 때부터 영한사전을 들고 씨름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교육감의 조언이 일리가 있다. 한 가지 언어를 제대로 하면 그 다음 언어는 기계적으로 잘하게 된다. 언어는 의사표현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도 결정하게 된다. 언어에 역사, 문화, 관습 등 모든 것이 스며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미국사와 영어를 연결해서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세계사와 영어를 같이 배우기도 한다.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 혁명을 배우면 영어 시간에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발장” “두 도시 이야기” 등의 소설을 배운다. 따라서 두 언어를 동시에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 가지 언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한 언어에서의 성숙이 다른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른 손으로 배드민턴을 잘 치는 사람은 몇 시간만 연습하면 왼손으로도 잘 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갔으면서 영영사전만 보았다는 말은 한국어에서의 언어성숙도를 조금도 활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국제학부 학생 입시면접에서 실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외국에서 다니다 이화여대에 역유학 오기를 희망하는 학생을 상당수 만난다. 이 아이들은 영어 발음은 조금 나을지 몰라도 사고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많은 엄마들이 국제학부 입학생들은 특혜를 받는 거라며 불만을 나타낸다. 부모 잘 맞나 외국에서 학교 다닌 덕분에 공부도 못하면서 영어 조금 해가지고 이대에 쉽게 입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커다란 오해다. 국제학부가 영어 작문과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는 하지만 영어만 잘 하는 아이를 뽑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이면서 분석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지를 본다. 외국에서 영어만 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사용하는 어휘나 사고력에서 수준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몇몇 직장에서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특채했는데 우리말은 못하고 영어만 하는 경우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이중언어 사용자가 아니면 회사에서 활용도가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휘력도 부족하고 고급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미국에 사는 친구 딸의 경우도 다른 공부는 아주 잘하는데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어휘력이 미국아이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이 아이는 고급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어려운 영어 단어를 들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큰 아이가 미국 가서 고생한 이유는 영어 토플이나 SAT 준비를 전혀 시키지 않고 데려간 때문이다. 미국 가면 자연히 영어를 잘하게 될 텐데 미리 막대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쓰기가 가능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에 유학 갔다 돌아오면 영어실력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10살이 넘을 때 유학해야 성인이 될 때까지 영어가 유지된다고 한다. 물론 이중언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13살 이전에 외국어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하니 9살에서 13살 사이가 외국어 시키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거나 어린 아이들을 방학 중 홀로 연수를 보내면서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어보아야 그리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시간에 국어공부를 제대로 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큰 애가 미국에서 갑자기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자 영어가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큰 애는 돈 아끼느라 영어 공부 안시킨 부모를 원망하지는 못했다. 자신이 유학반을 거부하고 영어 공부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유학반에 한 번 보내봤더니 그 아이들과는 한 시도 같이 지낼 수 없다며 탈퇴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미국에서 몇 년씩 살다온 그 아이들의 영어실력을 미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4개월 다닌 것이 고작인 큰 아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아이가 유학반이 싫은 표면적인 이유는 유학반 아이들이 사고에 깊이가 없고 유아스러우며 산만해서 같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고에 깊이가 없다는 불만은 국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금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물론 유학반 아이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양쪽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1 때 그 단계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감안할 때 이중 언어를 하는 아이는 아무래도 한 가지 언어만 집중적으로 한 아이들에 비해 사고의 깊이가 떨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큰 아이가 영어 때문에 고전을 한 또 하나의 이유는 국어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 방학 내 학교에서 언어 영역 보충수업을 받고 미국에 갔는데 뭘 배웠느냐고 물어보니 생전 써보지 못한 무슨 품사 분류를 배웠다는 것이다. “맙소사! 30년 전 우리가 자랄 때와 교육내용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 작은 아이가 미국에서 영어교육을 받는 것을 보니 거의 모든 시간을 쓰기, 읽기, 말하기에 투입하고 있다. 한 문단을 주고 3줄에 요약하는 법, 제목 잡아내기, 책 읽고 각 장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기 등이다. 외국인을 위한 영어 과목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한 작은 아이가 2년 만에 자신의 자서전을 두 페이지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글쓰기 훈련을 받았는지 모른다. “첫 문장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글을 쓸 때에는 마치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묘사해야 한다. 적절히 직접 화법을 쓸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17년 6개월간 교육을 받으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교육이다. 솔직히 나도 글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글쓰기 교육을 정식으로 받아본 적이 없다. 요즘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국어교육을 이렇게 시키면서 대학입시에 논술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국어공부의 핵심은 말하기 듣기 쓰기에 있다. 국어학자, 선생님들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국어교육이 얼마나 엉망인지는 굳이 증거를 대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전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나 강조점, 맥락은 무시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처럼 받아들여진다. 논술교육을 따로 시킬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국어교육을 시키면 논술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왜 국어교육과 논술교육이 따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영어도 중요하고 외국어도 중요하지만 국어 못하는 사람이 고급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어가 국제경쟁력이라는 주장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영어는 국제경쟁력 고로 한국어 경쟁력을 높이자?”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너무도 정확한 주장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국어 경쟁력이 낮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어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지금 영어 광풍에 휩쓸 릴 때가 아니다. 나는 대학원 이전에 미국에 가본 적도 없지만 대학 1학년 때 토플 듣기 3개월로 귀가 틔였고 말문이 열렸다. 지금 국제대학원에서 영어로 가르치며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이보영 씨 같은 일류 영어강사는 미국 땅을 밟은 적도 없다고 한다. 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많은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도 영어를 쉽게 마스터할 수 있다. 별도의 논술교육도 필요 없다. 국어 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수위의 영어몰입식 교육이 위험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교수 2005년 ~ 2006년 2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2004년 이화여대학교 국제정보센터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학부장 저서는 '마법에 걸린 나라' '한국은 시민혁명중'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등 다수. 현재 다수의 정치칼럼을 쓰고 있다..http://cafe.naver.com/cho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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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03:08] ⓒ참말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