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나라(cafe.daum.net/humornara)
메일주소(ton0735@hanmail.net)
Definitely, Maybe....................... -일곱번째 이야기
"우와~~~~~~~~~~~~ 진짜 끝장이었어요!!! 왠만한 가수들보다 노래 더 잘부르고!!!!
연기도 장난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수 있지?"
젊음과 낭만의 거리...라기 보다는 이제는 번잡한 유흥가 정도로 변해버린 대학로를 걸으면서 김현진은
그 혼잡한 곳에서도 절대 자신의 목소리가 묻히면 안된다고 다짐한 사람처럼 잔뜩 흥분해서는 거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큭큭.....뮤지컬 처음 본 사람처럼 왜 그래. 이제 좀 진정 하시죠 아가씨."
"처음 봤어요!!! 옛날에 어린이 뮤지컬 한번 본 적은 있지만 그건 잘 기억도 안난다구요!!"
"에? 그래?? 넌 제대로 연기 하고 싶다는 애가 이 쉬는 기간에 도대체 뭐 하는거야.. 놀러만 다녀?
쇼핑 갈 시간좀 줄여서 연극 보러 다니고, 뮤지컬도 보고 그러면서 공부좀 해라! 그런게 다 거저
얻어지는줄 알아??"
"에이~ 왜 또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러세요~~ 헤헤. 그래도 영화는 자주 보러 가잖아요."
"너 영화관 가면, 꼭 팝콘 먹고 싶어서 간 사람같애.. 그렇게 팝콘만 아그작대고 있으니 제대로
볼 수나 있어??"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그러니까 자주 데리고 와주면 되잖아요..헤헤"
"어휴...자, 내가 내돈까지 투자해서 비싼 수업 시켜줬으니 어디 한번 감상을 말해보시지. 지금까지처럼
비명은 지르지 말고, 차분하게."
"노래가 너무 멋있었어요~~~ 노래로 대사를 하는데도 감정이 그렇게 잘 전달될 수 있다니!!!!
조명도 엄청 화려했구요~~ 세트도 엄청 좋았던거 같아요. 그렇게 작은 무대 위에서 수십가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후와.......... 그리고 배우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까 더 신기하더라구요."
"흐음............"
"왜요???? 나 뭐 잘못 말한거 있어요?"
"아니, 내가 원한건 관객으로서의 감상이 아니라 동료 배우의 시각으로 본 후기인데."
"아...음.... 음... 대단한 것 같아요. 영화배우들보다 더 멋졌어요."
"큭...됐다, 됐어. 아무래도 처음 온거다 보니까 이런저런 볼거리에 눈을 뺏겨서 막상 봐야 될 거는
잘 못봤나 보네. 그 사람들이 노래를 잘하는 거나 춤을 잘 추는 거에 대해선 니가 별로
그렇게 감탄할 필요는 없어. 그거야, 뭐 재능만 조금 있으면 연습 꾸준히 하면 나아지는 거니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안되는 사람도 있다구요. 히잉... 난 왜 이렇게 노래를 못하지.."
"너 가수 시킬려고 여기 데려온거 아니니까 쓸데없이 풀 죽지 말고, 여기서 니가 배워야 될건
감정 조절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오늘 봐서 알겠지만, 뮤지컬 배우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정말 대단해. 관객 코앞에서 호흡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는거지.
어떨땐 객석에서 숨소리도 안날 정도로 애잔하게 어떨땐 무대를 다 휘몰아 치듯이 강하게..
관객에게까지 그 감정을 투영시키는거야. 영화배우들 중에서도 굉장한 연기파가 많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난 무대에 서는 사람들 연기가 더 좋더라고. 왠지 신선해 보여서."
"신선?"
"영화는 좋은 장면이 나올때까지 수십번이고 재촬영 하잖아. 편집도 멋지게 잘 하고.
물론 바탕에 좋은 연기가 없으면 어림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왠지...음... 뭐라고 해야하나.
고급 일식집에서 먹는 초밥 느낌 이랄까?"
" 그럼 좋다는 거잖아요~~"
"좋지, 좋기야.. 근데 뮤지컬이나 연극은 내가 낚시가서 직접 잡아서 뜬 회같아. 너도 알겠지만,
바로 건져 올리자마자 먹는 회 맛이 정말 일품이거든. 일식집에서 먹는 것 보다 모양도 별로일
때가 많고 일식집에서는 취급도 안하는 싼 생선이 올라올때도 많지만 그 신선함이 더해지면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맛있을 때도 있다구."
"흐음....."
"그냥.....그렇게 무대에서 실수도 하고... 나도 같이 웃고, 울고.. 그걸 코앞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짜릿해져.
특히 오늘같이 대어를 본 날은 더 기분 좋고."
"대어요?? 또 누구 발견 한거에요?"
"음...몇번 더 와야 될것 같은데. 제대로 보려면.. .. 오늘 본게 맞다면 아마도 일월달 스폐셜로 나가겠지."
"누군데요~~~ 말해 주세요~~"
"싫은데요. 몇번 더 와야 된다니까... 그건 그렇고, 너 안추워?"
"저요? 전 괜찮은데... 오랜만에 걸으니까 너무 좋아요."
"뭐가 안추워. 코가 빨개 졌는데. 모자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목도리는 안매냐. 그거까지 하면
얼굴 다 가려지겠는데."
"남자들한테 미안하잖아요. 이쁜 얼굴 다 가려 버리면."
"동의는 안한다만, 남자들한테 미안한 짓 하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뭐 오늘 한번 더하지 뭐."
난 내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러 꼬맹이한테 둘둘 돌려 매주었다.
"큭... 이렇게 하니까 진짜 눈만 보이네."
"에... 답답해요!!"
"감기 걸려서 첫 촬영부터 펑크내고 싶어?"
"감기 잘 안걸려요~~ 튼튼하다구요."
"비 좀 맞았다고 쓰러져 버린게 저번달이다. 아직 안 잊었다구."
"헤헤... 근데, 남자들한테 미안할 짓을 많이 했다니요?"
"미안하지 안 미안하냐. 잘생기고 매너있고, 능력까지 있는 최진우 라는 사람 존재 자체가
남자들한텐 재앙인거지... "
"웩...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우리 부모님한테 사인은 제대로 전해주세요."
"뭐라고 해드릴까?"
"대량의 어이 상실로 뇌 기능 정지 뭐 이정도?"
"하하..............뭐, 그럼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그렇게 생겨서 집안도
그냥 그런 놈이 차서연이란 최고 여배우랑 사귀다가 지금은 김현진이라는 최고
기대주와 같이 걷고 있는 이 엄청 미안한 일들...이 정도로 해두지."
"흐음...."
"왜 또."
"많이 변했어요 아저씨."
"뭐가?"
"전엔 차서연 선배 얘기만 나와도 얼굴색이 바뀌었었는데, 이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농담도 다 하고...."
"풉......그런가. 그건 그렇고, 이번달 말부터 촬영 들어가면 크리스마스 때도 바쁘겠네."
"네. 아마 그럴꺼 같아요. 뭐, 그나마 다행인건 비중이 얼마 안되잖아요..헤헤 잘하면 조금은
늘려 주신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모르죠 뭐."
"만약에............."
"네?"
"만약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쉬게 되면... 그러면 같이 트리 보러 갈래?"
"네!!!!!!!!!! 근데, 안쉬면 못보러 가요??????"
"뭐..굳이 보자면야 촬영 끝나고 밤에 가도 되겠지만, 뭐 그러면 피곤할테니까.."
"괜찮아요!! 안피곤해요!! 그러니까 우리 꼭 보러가요!! 네?"
"내가 피곤한데?"
"아씨~~ 뭐, 밤 새자는것도 아니고 잠깐 트리보는 건데 뭐가 피곤해요!!"
"큭큭....아무튼 어떻게 될진 그때 보자구."
"네. 근데, 아까부터 이 벨소리, 아저씨꺼 아니에요?"
"어? 아...정말이네. 시끄러워서 잘 안들렸다. 여보세요."
- 형!!!!!!!!!!! -
"아, 깜짝이야. 응, 이삭아. 왠일이야?"
-형, 지금 밖이면 잠깐 여기로 와줄수 있어요??"
"거기 어딘데?"
- 여기, 홍대 나루. 진환이가 완전 인사불성 되서는 형만 찾네."
"진환이??? 수호가 아니고 진환이가 뻗을 정도로 마셨다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고 며칠전부터 죽을 상이여서 매니져 형이 오늘은 좀 쉬라고
저녁 스케쥴만 비워줬거든요. 그래서 한잔 하러 온건데, 말리지도 못할 정도로 막 퍼마셔서..-
"음..차 안막히면 십오분 정도 걸리겠다."
-기다릴께 형~ -
"꼬맹아, 어쩌지? 나 어디좀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아, 급한 일 생긴 거에요? 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보세요."
"후... 이 동네에서 지금 시간에 너 혼자 보내기는 좀 그런데... 그럼 같이 갈래?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데, 갔다가 그녀석 얼굴만 보고 나오면 되거든."
"사실 혼자 가기는 좀 심심한데..... 그냥 저도 꼽사리 껴서 가도 되요???"
"그럼, 차있는데로 가자.. 꽤 많이 걸어와서 차까지 꽤 되겠는데. 신발이 그런데 발 안아파?"
"에이, 이정도 걸었다고 발아프면 안되죠. 이런 신발 신고 다섯시간 쇼핑도 가능한데..헤헤."
"쇼핑할때 여자들은 정말 괴력을 발휘한다니까. 대단해 정말."
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최대한 빨리 달려 도착한 나루에서 난 바닥에 볼썽사납게
누워있는 진환이를 볼 수 있었다.
"형~~~~"
"켁켁,..놔라 임마, 누가 원숭이띠 아니랄까봐 달라붙는거 좋아하기는...수호는?"
"지금 화장실. 근데 소개 안시켜주나?"
"아, 여기는 내 제자 김현진, 그리고 여긴 내가 진짜 좋아하는 동생 이이삭."
"반가워요. 실제로 보는건 처음이네요? 형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내가 오빠니까 말 놔도 돼죠?"
"네? 네! 제 친구가 오빠들 다 엄청 좋아해요!!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팬인데."
"하하..넌 우리 팬 아니라고 돌려 말하는 것 같네?"
"아니에요!! 저도 엄청 좋아해요!!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응응~ 근데, 이시간에 두사람 뭐하고 있던 거에요 형?"
"아..그때 말했잖아. 연기좀 봐주고 있다고. 뮤지컬 보고 나온 길이었어."
"흐음......"
"어이, 또 이탐정 불법영업 개시 하시네. 이상한 소리 말고, 너도 꽤 마신거 맞지? 대리운전
불렀어?"
"지금쯤 도착 했을껄. 내가 진환이랑 같은 방향이니까 진환이 데려갈께요. 이자식은 이렇게
뻗어버릴 꺼면서 왜그렇게 애타게 진우형만 불러댄거야.. 속으로 짝사랑이라도 하고있나?"
"반대일 수도 있는거지. 나한테 뭔가 원한 있는거 아냐 이자식?"
"혀어엉~~~~~~~~"
"켁켁.. 오랫동안 본 사이들이니 닮아가는게 당연하겠지만 이런건 좀 지양해주라. 넌 원숭이띠도
아니면서 왜이렇게 엉겨붙어!!"
"에이~~ 좋으면서 내숭은! 어? 김현진? 맞죠, 김현진!"
"네!! 안녕하세요."
"와~~ 반가워요. 데이트 하던 중이었나봐요?? 에고..미안해라. 우리가 괜히 불렀네."
"데이트는 무슨. 뮤지컬 보고 나온거야."
"저녁은 안먹고?"
"보기 전에 먹었지 일찍."
"밥먹고 뭐든 보면 그게 데이트지!!!!!!!!! 헤헤, 현진양, 아니 형수님, 어때요? 진우형이
잘해 줘요?"
"시끄럽다~ 어쨌건, 진환이 잘 데려가고.. 무슨 할말이 있던건지 아님 그냥 주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임 얼마 안남았으니까 그때 보자고 좀 말해주고. 난 꼬맹이 데려다 줘야 되서
먼저 갈께."
"응, 형 잘가요~~ 현진이도 안녕~ 담에 보자."
"현진이는 무슨!! 형수님 이라니까!! 형, 형수 잘가요~~~ 조심해~~ 알라븅~~"
계속 손을 붕붕 흔들어대는 수호를 뒤로 하고 꼬맹이를 데리고 얼른 나루를 빠져나왔다.
좀만 더 있었다간 결혼날짜는 언제로 잡았냐는 질문까지 들을 뻔 했네, 휴~
"아저씨 저 오빠들하고 진짜 친한가봐요!!"
"어? 응...뭐 오랫동안 본 사이니까.."
"에이, 진작 좀 말해주지!! 나 싸인좀 받아다 주면 얼마나 좋아요~~ 담에 꼭 받아줘야 되요,
알겠죠??? 오늘 운수 대통했네!! 진환오빠 술취한 것도 보고~ 이삭오빠랑 수호오빠도 보고~"
난 차에 타고서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싸인 받으러 뛰어 갔다 올까 말까를 고민하는
꼬맹이를 보면서 피식 웃다가 갑자기 알아낸 사실에 확 인상을 구겼다.
"야, 꼬맹이, 너 잠깐. 너 지금 계속 걔네들 오빠라고 부른거 맞지?"
"네."
"어떻게 걔넨 오빠고 난 아저씨냐???"
"만나자 마자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아저씨 대학교 다닐때 난 초등학생 이었다구.
생각해 보니까 내가 육학년때 쓴 위문편지, 아저씨가 받았을 수도 있는 거라구요! 그럼
아저씨지 뭐에요."
"내가 너한테 아저씨라는건 정말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내말은 왜 저 녀석들은 오빠냐 이거야."
"그럼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쟤네 나랑 두세살 밖에 차이 안나!"
"어쩔수 없어요.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죠~ 중학교때부터 오빠였는데, 어떻게 아저씨로 변해요."
"우와,..이거 뭔가 굉장히 배신감 드는데??"
"헤헤.....근데, 원래 저 오빠들 성격이 그래요??? 수호오빠는 대강 저럴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삭오빠가 저렇게 촐싹댈줄이야......"
"큭큭... 그건 그렇고, 인터넷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거 좀 알아보고 다녀와. 대학로 소극장 공연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심하게 비싸지도 않고 좋아. 너무 자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달에 두번은
가야지."
"한달에 두번이요???? 그래도 몇만원씩은 하는데, 너무 비싸잖아요!!"
"어이, 꼬맹이. 너 이번 드라마 출연료 얼마로 계약했어?"
"한회에 백만원 이요."
"소속사에서 반쯤 가져간다고 쳐도 그돈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알지?"
"알죠..아는데..."
"니 또래에서는 굉장히 많이 버는 거겠지, 아니.. 왠만한 직장 다니는 남자들도 두달에 그만큼 못버는
사람이 더 많아. 나도 그렇고. 그럼 너 그 돈으로 피부관리실 다니고 명품으로 휘감고 외제차 굴리면서
그렇게 쓸꺼야?"
"아뇨...그건 아닌데.."
"그거 다 니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돼. 그거 시청자가 너한테 투자한거야. 김현진 이라는 배우한테 다음에
더 좋은 연기 보여달라고 지금 그만큼 투자해 준거야. 내가 뭐 불우 이웃돕기 해라 명품은 사지
말아라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야. 최소한 니가 연기활동에 쓰는 돈만큼은 아끼지 말라는거야.
적어도 한달에 두번씩은 꼭 공연 보러 다니고, 영화는 한달에 네번. 극장 가는거 부담스러우면 DVD 라도
잔뜩 빌려서 집에서라도 꼭 봐. 가수들도 제일 처음 하는게 목터지게 소리 지르는게 아니고 귀가
닳도록 듣는거야. 남의 걸 먼저 보고 거기서 니껄로 바꿔야지. 발음, 발성 교정은 집에서 꼭 한시간씩
하고. 그렇게 하면 분명히 다음 작품 들어가면 무언가는 더 나아져 있을꺼야. 그렇게 보답해야지.
그게 니가 해야 되는 일이야. 알겠나??"
"네에~~~ 온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정도로는 안해도 되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있는 주제에 행사장이나 패션쇼에만 얼굴
비치면서 어쩌다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오히려 퇴보한 연기만 보여주는 그런 몹쓸 선배들만
안따라가면 돼.. 뭐..지금 마음가짐 처럼만 하면 절대 그럴일은 없겠지."
"헤헤.....역시 우리 아저씨는 배우 얘기할때 제일 멋지다니까~~"
"네네. 일절만 할테니 마음에도 없는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네요. 벌써 아홉시가 다되가네.
요즘 맨날 늦게 들어온다고 안혼나?"
"우리 부모님은 그런건 절대 없으세요. 너무 개방적이셔서 탈이라고 할까... 그래도 연예계
발을 들여놓고 부터는 걱정도 많이 하시죠. 워낙 이상한 소문들이 많잖아요."
"그럴꺼야. 나중에 한번 뵙게 되면 잘 말해줄께. 걱정하시는 그런일 없을 거라고."
"헤헤.. 고마워요."
"뭐..발육이 제대로 됐어야 누가 응큼한 생각을 품든지 하지..이건 뭐.."
"아저씨!!!!!!!!!!!!!!!!!!!!!!!!!!!!!"
"야야!! 흔들지 마! 꼬맹아, 너 누굴 죽이려고!"
"도대체 그 발육 잘 된 몸매의 기준이 뭐에요? 나도 어디가서 별로 빠지지는 않는 몸매라구요!"
"유치원에서? 아아..알았어 알았다구. 흔들지좀 마."
이번엔 진짜 삐쳤는지 꼬맹이는 집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조용했고, 난 집앞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꼬맹이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는걸 알았다.
"어이, 어이 꼬맹아, 일어나봐."
"...어?? 벌써 다왔어요??"
"응. 아홉시 조금 넘었는데 벌써 졸고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
"네에....조심해서 가세요."
난 행여나 꼬맹이가 자기가 삐쳐있었단 사실을 기억해낼까 싶어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왔다.
하도 시끄러운 거에 귀가 단련이 됐나... 뭔가 조용하니까 또 그게 이상하네.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난 흘끔 옆자리를 돌아보았고, 요즘 들어 옆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고 꼬맹아...너때문에 나 못된 습관만 느는구나.
그러고보니 너랑 같이 있지 않는데도 니 생각 하는 버릇도 생겼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피곤해서 그런지 집에까지 가는길은 꽤나 지루했고
집에 도착해서 주차를 해놓고는 즐거운 기분으로 차키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현관으로 걸어가던
나는 경비실 옆에 서있는 익숙한 인영을 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차를 타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제 오셨네요 진우씨. 오래 기다렸는데.. 술한잔 같이 하죠?"
벌써 꽤나 마시고 왔는지 독한 술냄새를 풍기면서 손에 들은 봉지를 흔드는 안영준.
"벌써 한잔 하고 오신 것 같은데요. 우리, 이렇게 자주 볼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일주일
전쯤 본 거 같은데."
"그러게요. .. 그렇게 됐네요. 우리..... 그러니까 술한잔 해요."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 택시 불러드릴께요. 잠시만요."
"그러지 말고 우리 술한잔 하자니까요!! 내가 사왔다구요 이거. 집에 들이기 싫으면..음...
그냥 여기서 먹죠, 뭐. 자요."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듯이 다짜고짜 바닥에 앉아서는 소주를 따서 건네는 이사람..
도대체 뭐가 진짜 성격인거야 이 자식은.
볼때마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없잖아. 설마 이 놈 다중인격자 뭐 이런거 아냐?
"후우.....이 날씨에 거기 앉아있으면 엉덩이에 동상 걸리겠네요. 올라가죠. 무슨 할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영준은 순순히 일어섰고, 그렇게 꼭 술을 마셔야 겠다고 떼를 쓰더니 막상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이십분째 말도 안하고, 술도 입에 안댄채 석상처럼 앉아있다.
"저........안영준씨. 그쪽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내일 일을 나가야 하는 사람이라 특별히
할 말 없으면 이만 좀 자고 싶은데요."
"................"
"택시를 불러드릴까요, 이불을 갖다드릴까요."
"........"
"안영준씨."
"..헤어 지쟤요. 서연이가."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기대하고 온겁니까."
"글쎄요.....무슨 말을 듣길 원해서 온게 아니고 해주러 왔지요. 내가 안하면... 그 바보같은
여잔 절대 말 못할 테니까요...하하...."
"그게 무슨 말 입니까."
"임신 했어요. 서연이."
"....................................."
"서연이, 임신 했다구요....... 이 빌어먹을 자식아."
정말 당신을 존경해..
어쩌면 이렇게 볼때마다 날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진거지?
우리, 전생에 뭔가 대단한 인연이 있었나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인연이었나봐.
이렇게 더럽게 꼬인 관계로 만나게 된걸 보면........
"의심하나 보군요. 나를...... 그것 때문에 헤어진 겁니까?"
"의심? 하아..... 그런 의심으로 헤어지자고 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두사람 다시 만난거 알면서도
청혼하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
"그럼...왜 헤어졌다는 겁니까."
"서연이가 그렇게 하길 원해.........당신한텐 어짜피 김현진이 있으니 못가고, 다른 사람 아이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로 내 옆에 있을 수도 없대."
"서연이....옛날부터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고 생리통이 심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피임약 먹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매일 밤마다 정해진 시간에 약 먹어야 되지 않습니까."
".......작년인가. 정기점검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이제 피임약 그만 먹는게 좋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먹지 않고 있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보낸 시간은 더 길지만 그 사실을 몰랐다면
당신이 아빠 후보로 더 유력하겠군..킥킥..."
"무슨 말을 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서연이랑 한번 얘기해 봐야 겠네요.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그 순간 이었다. 건조한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던 안영준이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잡은 것은.
"최진우. 내가 저번에 왜 찾아왔는지 알아? 내가 왜 그렇게 자존심 다 버리고 당신한테
왔었는지 아냐고!!!"
"손 놔."
"똑똑히 들어둬. 서연이 며칠동안 앓아누워서는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당신 이름만 불러댔었어.
잠한숨 안자고 옆에서 밤낮으로 있었던 나한테 너무 잔인하게....내 이름 단 한번도 안부르고 당신
이름만 불러대더라.. 그리고 또 어떤지 알아? 서연이가 웃지를 않아............. 그렇게 사랑스럽게
웃는 여자가.. 당신이 없어지고 나서는 단 한번도 진심으로 웃지를 않아....."
"......................."
"그래서 찾아간거야. 제발 다시 서연이 좀 웃게 해달라고. 근데 당신이 나 다시 돌려보냈잖아.
그렇게 혼자 멋있는거 다하고, 그렇게 돌려보냈잖아... 근데 왜 또 내가 당신이 새벽에 서연이
집에 데려다 주는걸 봐야해!! 왜!!!!!!!"
그거였군. 식당에서 내내 그렇게 차갑게 굴었던 이유가.
"....집앞에서 마주쳐서 데려다 준게 전부야. 괜한 오해 하지마."
"하..하하.... 오해라....... 그때는 나도 임신사실을 몰라서 무작정 화가나고 불안하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얘기 하러 갔던 거겠지. 왜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영준은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는 다시 스르륵 주저 앉아 중얼거렸고,
난 그때 꽁꽁 얼어있던 서연이의 손이 떠올랐다.
설마 그때 오랫동안 거기에 서 있었던 걸까.................
그럼 김현진하고 나가는 나를 봤을수도 있겠구나...... 그런거야?
"서연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축복해 줄수 있다고..그렇게 말했었지.
난 그게 서연이를 향한 사랑이 커서 그런줄만 알았었어... 근데 식당에서 보니 꼭 그런것 같지만도
않더라고... 서연이 앞에 두고 다른 여자 꼼꼼히도 챙겨주고 같이 웃는 모습을 보니 아주 가관이던데?
당신, 그정도밖에 안되는 남자였나?"
"...웃기는군. 지금 나한테 자기 여자를 왜 더이상 사랑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거야?"
"하나만 묻지. 김현진하고 그렇게 다정했던거.. 본심이야, 아님 서연이 의식해서 연기한거야."
"난 사람 앞에 두고 연기같은 거 못해. 김현진하고 다정하게 보였다면 그것도, 서연이 챙겨준것도
모두 다 본심이야."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리며 웃는다 싶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내 턱이 돌아갈 정도로 쎄게
한방을 먹이는 놈.
"이보세요 최진우씨.....나 당신 굉장히 멋지게 봤어... 굉장히 멋진 남자인거 같애..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랑 서연이랑 만든 애기...그 애기도 참 예쁠 것 같아. 그러니까...........난 좋은
아빠 되줄 수 있어. 당신아이던, 내 아이던...아니, 내가 아빠가 되주기로 마음먹고 서연이가
허락만 해준다면 그 순간부터는 누가 뭐래도 그 아이는 서연이랑 내 아이가 되는 거야..
딱 지금뿐이야. 평생 통틀어서, 딱 지금만 주는 기회니까.........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고
나처럼 당신 아이던 내 아이던 상관없이 사랑해줄 자신 있으면... 그러면 서연이 만나봐.........
인정하긴 싫지만.........서연이가 당신 찾아왔던 걸로 봐선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아마
당신한테 승률이 조금 더 높을꺼야.. 빌어먹을...."
"............................"
"근데 만약에 그럴 자신 없으면, 그럼 이 얘기 바로 잊어 버리고 다시는 떠올리지도 마. 서연이한테
아이 얘기 아는 척 하지도 말고 나중에 아이 앞에 나타나지도 마. 꼭 약속해."
"약속.........하지."
안영준은 씨익 웃더니 그대로 문을 꽝 닫고는 나가버렸다.
잠깐 문이 열렸다 닫혔을 뿐인데도 찬 바람이 가슴까지 파고 들어왔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예전이었다면, 아니...한달 전쯤만 해도 난 분명 뛸듯이 기뻐했을거다.
그런 식으로라도 서연이를 다시 내곁에 붙잡아 둘수 있다면 누구의 아이일지는 중요하지 않은채
그렇게 그녀와 함께 평생 행복하고 싶었을거다.
하지만 서연이의 임신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떠올린건 그동안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했을 서연이의
지친 모습이 아니라 정말 환하게 웃던 꼬맹이의 얼굴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장면이었기에 난
자괴감에 빠져야 했다.
하......하하하............... 정말 안영준 그사람 말대로 나란 놈 이거밖에 안되는 거였나 결국......
그렇게 혼자만 대단한 사랑 하는 척 굴었는데...결국 다른 사람이 다가오자 바뀌어 버리는
가벼운 마음이... 정말 사랑이긴 한건가.
근데 나 더 웃긴건.. 그렇다고 서연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어.
..........큭.......... 너도 그랬지 서연아?.... 너도 이런 마음으로 나와 안영준 사이에서 고민한거지?
아쉬움이나 미련일지도 몰랐을 나와 연민, 고마움, 또는 미안함일지도 몰랐을 안영준..
지독한 버릇일지 집착일지 모르겠는 차서연과 새로움과 설레임을 준 꼬맹이...................
있지.. . 다른건 잘 모르겠는데, 이거 하나는 알겠다.
우리 지독히도 닮았다는거 말야.............큭큭...........
근데 혹시 서연아........내가 떠밀어서 간 길이, 혹시 니가 찾던 길이 아니었던 거야? 다시 돌아오고
싶었는데....그런데 내 옆의 다른 사람 보고는 다시 못돌아 온거야?.......
나 있잖아........너한테 부담주지 않으려고 이별의 이유도 묻지 않은채 깨끗히 헤어져 줬었어....
다시 돌아온게 마냥 기뻐서 모른척 하고 있었지만, 널 잘 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니가 안영준도
그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너 떠밀었었어.........................
근데, 나 지금까지 계속 병신짓 했던건가봐.......
오히려 난 니 마음은 하나도 모른채..무너져 내리는 니 마음같은건 보지도 못하고 계속 그러고
있었나봐...
윤희랑 잘 되라고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때처럼.......... 나 편해지라고 안영준하고 사귄
것처럼........ 혹시 너.........................정말 혹시......................... 너...
내가 꼬맹이 생각하는 마음 알아채고,...그냥 그렇게 빠져 준거야?..................................
......그렇다면 나............ 그렇다면 나 꼬맹이한테도 갈 수 없잖아........
너 그렇게 아프게 하고 우리 둘만 행복할수는 없어..그렇게 될수가 없잖아. 나 그러면 안되잖아..
끝까지 이기적 이면서도 자기가 이기적인지 조차 몰랐던 나같은 놈이 니 옆에 있는 것 보단
안영준 그자식이 훨씬 낫겠지..
근데말야...... 혹시 이런 결심조차도 내 멋대로 결정한거면 어떻게 되는거지?...
이렇게 이기적이고 멍청한 나라도 니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난 또 병신짓 하는 거잖아.
나 정말 어쩌면 좋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난 마감을 핑계로 꼬맹이의 전화를 다 피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우리 집 현관 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꼬맹이를 보고는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젠장..요즘 이게 새로운 유행이라도 된건가.. 왜이렇게 무작정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차라리 경비실 옆에 있었음 보고 도망이라도 가지..이거, 현관 앞에 떡하고 대기하고 있으니 원 참..
"아저씨!!!!!!!!!!!!! 헤헤~"
"뭐야...급한 일 이라도 있는거야?"
"나 내일부터 촬영 들어간다구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동안 문자 한통 없길래 왔죠. 제자한테
기 전수 정도는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헤헤.. 들어가요. 맛있는거 사왔는데."
난 어쩔수 없이 현관문을 열었고, 통닭을 잔뜩 벌려놓고 연신 먹으란 말을 해대며 맛있게 뜯어먹는
꼬맹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녁 먹고 온 거에요?? 그래도 맛이라도 좀 보세요~ 여기 유명한데라 줄까지 서서 사온건데.."
"생각없어...."
"치이..나중에 대빵 후회해라!!! 흥!..."
".................꼬맹아."
"왜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그 사람은 자기가 난을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어..그래서 배려하겠답시고
자기 먹을 물도 다 주고..햇볕 나는 자리는 일부러 양보하면서 그렇게 난을 이뻐했었어. 자기 희생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잘만 자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말야.."
"흐음...난 그거 키우기 어렵다던데..얌얌.."
"그렇지...그래서 그 멍청이는 잘못 키우고 있었던거야.. 그렇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뿌리는 다
썩어버렸고 잎의 끝이 말라버렸지.."
"내가 그래서 화분을 안키운다니까요! 말 못한다고 그렇게 갖다만 놓고 죽어버리면 불쌍하잖아요."
"근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은 고민을 하게 된 거야... 난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한테
갖다줘야 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실수를 알았으니 다시 잘 보살펴야 하나..."
"흐음..그래서요?"
"아직 결정 못했대... 왜냐면, 그 난이 주인이 그렇게 뿌리도 썪게 하고 잎을 말라버리게 했어도
한번도 불평한적 없이, 오히려 늘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다 견뎌낼만큼 주인을 좋아했거든."
"거짓말."
"응?"
"난이 좋아하는지 안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말도 못하는데. 그거 다 주인이 보내기
싫어서 하는 변명이지요!!! 그 주인, 정말 끝까지 잘난척이네."
"아....... 아..그렇구나.. 그렇구나..쿡쿡..."
꼬맹이야 별 생각없이 한 말 이었겠지만 난 이상하게도 조금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이
머리가 맑아지는게 느껴졌다.
이러니까 널 이뻐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다니까....
난 아직도 닭다리를 뜯어먹는 꼬맹이의 머리를 버릇처럼 쓰다듬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라 얼른 손을 떼어 버렸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최진우..
일 들어가기 마지막 날이라고 더 놀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꼬맹이를 억지로 택시를 태워 보내고는
나도 잘 준비를 했다.
그래...끝까지 잘난척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물어봐야겠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난은 말을 할 수 있거든..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내일또와-유나연재
[연애]
Definitely, Maybe............7
산달래
추천 0
조회 46
08.02.14 00:2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