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선루 - 충북 유형문화재 제 110호
망선루는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이다. |
▲ 청주압각수
청주압각수 - 충북 기념물 제 5호
압각수는 고려 청주목의 객사문 앞에 있었던 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
▲ 병마절도사영문
▲ 병마절도사영문 정면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 - 충북 유형문화재 제 15호
이 건물은 청주읍성 안에 있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이다. |
▲ 박춘무기적비 전경 (문화재미지정)
▲ 조헌전장기적비 전경
청주조헌전장기적비 - 충북 유형문화재 제 136호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주성을 탈환한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적비이다. 처음 숙종 36년(1710)에 청주성의 서문 밖에 세웠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청주성 전투는 조헌과 박춘무가 이끄는 의병군과 영규대사의 승군이 참여하였다. 의병군은 1592년 8월 1일 왜군이 점령한 청주성의 탈환작전을 별여, |
▲ 조헌전장기적비
▲ 조헌전장기적비
▲ 척화비
청주척화비 - 충북 기념물 제 23호
이 비는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이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고종 8년(1871)에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대원군은 고종 3년(1866)에 프랑스 함대가 침략한 병인양요와 고종 8년(1871)에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신미양요를 물리친 후 더욱 쇄국을 다지고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경계토록 하였다. 비문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뜻의 열두 자를 큰 글씨로 새겼다. 일본 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 이 척화비도 버려져 석교동 하수도 뚜껑으로 쓰이던 것을 1976년에 자리의 자리로 옮긴것이다. |
▲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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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 평안하시온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