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바시 브라더 (Calabashi Brother)
한 명자 (Violet Han)
어르신이 벽면 가득 채운 서적들을 조금씩 가방에 넣어 일요일마다 건네 주시는 횟수가 벌써 일년이 되어간다. 며칠 전 90세 생신 축하연이 있었으니 거의 50 여년을 그 어르신과 함께 하였을 책들이다. 쓸만한 책은 간직하되 필요 없는 책은 알아서 처분하라 하시니 귀한 책을 만나는 행운에 감사하여 식사 대접을 한다. 책의 종류가 다양하고 분량이 대단하다. 명심보감, 맹자 그리고 몇몇 수필집을 제하곤 거의 영어 원서들이다. 많은 서적들을 헌납하고도 어르신이 계속 전해주신 책들이 쌓여간다. 헤밍웨이의 단편집은 같은 제목의 책이 두권이나 있어 그분에게 여쭈었다. “헤밍웨이를 좋아하시나요?” 이 질문에 그분은 헤밍웨이를 너무 좋아해서 그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지냈던 미국 아이다호 주 케첨에도 다녀왔다고 하신다.
식사 시간은 그분 생애의 역사 시간이다.
중학교 3학년, 15세에, 캄캄한 야밤의 야음을 타고 몇몇 어른들과 압록강을 건너 남한에 성공적으로 넘어온 야반도주의 이야기가 시작이다. 어두컴컴한 강줄기를 따라 뱃전에서 숨죽이며 엎드려 있던 압록강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신다. 남한에 내려와 사촌 형의 친구를 찾아 돈암동에 주거지를 정하고 가정교사를 하여 돈을 벌어 고등학교를 마치고, 학비가 비교적 저렴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확에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형님 친구의 소개로 P 목사님을 소개받았다. 그 목사님이 하와이로 파견되며 어르신의 이민 수속을 도와주게 되었다. 이민을 위해 하와이의 안 ㅈㅅ 씨가 재정 보증인이 되 주었다. 그러나 수속이 1차, 2차, 3차 모두 거부당하고 거의 포기상태에서, 4차 재 신청해서 겨우 허가되어 이민선을 타게 되었다.
하와이에 도착하여 먼저 와 계신 목사님의 도움으로 하와이 대학을 졸업하고 카네오헤에 있는 고등학교에 교편을 잡게 되었다. 본래는 이북에 계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천주교인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이민의 도움을 주신 감리교 목사님을 따라 감리교에 나가며 이따금씩 가톨릭 성당에도 다니셨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동산 중개인, 이발사 등 주말 직업으로 부수입을 벌어 두 자녀를 명문 사립학교를 보내고 피아노를 가르쳐 미주 전체 콩클 대회 1등 수상의 영예를 얻은 따님, 건장한 아들, 이제 부러울 것 없고 살만큼 잘 살았다고 하신다.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데 이제 다리가 약해지고 체력이 나이를 말한다고 씁쓰름하게 웃으신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시애틀로 이주한 마가렛이 생각난다. 우아한 96세의 텍사스 토박이 할머니가 할머니라 불려지지 않는 멋진 여인, 그녀가 주고 간 아름다운 구슬 상자가 응접실 TV 옆에서 반짝이며 앉아있고, 그녀가 주고간 유머집이 책장에서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혹시 그녀가 노란 수선화를 던져 놓을지 몰라 항상 열어놓고 있는 부엌 창문,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꾸 열려 있는 부엌 창문을 바라본다. 편지를 보냈으나 한번 답장이 온후 연락이 끊어졌다. 전화를 해 보았으나 남자 목소리의 녹음만 나와 96 세 그녀의 안위가 걱정스럽다.
헤밍웨이 어르신도 마가렛도 연세 90을 넘긴 노령이지만 그 분들처럼 지성적이고 멋진 젊은이를 본적이 없다. 유머가 있고 마음이 따뜻하다. 남편 에드워드를 여의고 훌훌 떠난 마가렛의 모습이 아름답고 손 때묻은 귀한 연인 같은 장서들을 하나씩 처분하며 버리고 있는 헤밍웨이 어르신의 모습이 쓸쓸하지만 멋지다. 어르신의 식사량이 너무 적어 보인다. 건강을 위해서 좀 더 드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쭈니 “뭐 살만큼 살았는데 여한이 없어요.” 하며 씩 웃으신다. 주위에 자꾸 저 세상으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웃는 모습이 왠지 쓸쓸하다.
바로 이틀 전까지 문자 교신하며 안부를 나누던 젊은이가 병실에서 퍼런 멍으로 얼룩진 얼굴에 죽음의 모습을 드리우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을 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이럴수가 있는가. 인간이 언제, 어떻게 사멸할지 만능 박사 컴퓨터에 물어볼까? 108번뇌를 말하며 인간은 고해라고 한 불가의 말이나 인생은 마치 거센 파도위의 배와 같다는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은 우울하다. 고해나 번뇌보다 더 허무한, 인생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이 완벽한 진실앞에 인간이 얼마나 왜소하고 나약한 존재인가.
그러나 누가 말했던가. “모든 좋은 것들은 생명이 유한하다.” 심장의 멈춤으로 시작되는 인간의 사멸, 생명의 종말은 끝남이 아니며, 분열이후 그 후손의 생명으로 존재한다. (구인회 교수.) 결국 인생은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우울한 세계가 아니고, 종족 보존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예수나 석가의 또 모든 선한 이들의 사랑으로 충만한 축복의 세계인 것을. 마가렛도 헤밍웨이 어르신도 좋은 후손들을 곁에 두고, 살만큼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고 하는 말씀이 평화롭고 자애롭다.
“칼라바시 브라더”란 말 알아요?” 식사가 끝난후 어르신의 질문이다.
칼라바시 브라더, 인테넷을 찾아보니 1986년도 중국 TV 시리즈와 영화로 큰 각광을 받은 기획물로
호리병박 형제의 이야기이다. 하와이에서 이를 의형제를 뜻하는 속어 (SLANG) 로 사용하며 비교적 젊은이들이 사용한다. 칼라바시 형제, 의형제. 머리 결 하나 없는 빈 머리에 모자를 쓰며 어르신 께서 말씀하신다.
“세실리아 (제 천주교명)는 내 칼라바시 시스터요. 책 많이 읽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졸지에 의형제 오라버님이 생겼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맙습니다 라고 회답하는 말에 얼굴 가득 주름을 자글자글 지어내며 웃으신다.
햇빛이 따뜻한 오후, 커피를 내리고 어르신의 책가방을 열었다. 책들 사이로 손바닥 크기의 박스가 있다. 열어보니 레녹스 상표의 커피잔이다. 가볍고 촉감이 좋다. 커피 박스를 싸고 있는 선물 포장지에 먼지가 켜켜이 묻혀있는것으로 보아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을 열어보지도 않고 오랜 세월 장서의 책들과 함께 묻혀있다가 버려지는 임종을 맞는 비운의 책들과 함께 내게로 왔다. 커피잔의 그림에 레녹스의 로고인 나비가 잔잔한 나뭇잎과 밀담중이다. 두꺼운 영어 원서들 사이에서 반 페이지 크기의 얇은 책을 집어 들었다. 무기와 인간 (Arm and The Man), 3막으로 돼있는 버나드 쇼의 코미디 작품인데 어른신께서 간간히 노란 밑줄까지 치셨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커피를 마신다. 비어가는 찻잔을 기울이니 잔속에서 꿀벌이 벽돌색 이탤릭체 글자를 머리에 이고 메시지를 친다.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세요.” Be Grateful For Today.
칼라바시 브라더, 오늘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야자수 잎들을 흔들어댄다. 저녁 햇볕이 산허리에 내려 앉아 있다. 늦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