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서울신문 / 글쓴이: 김문이 기자 / 20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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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파바로티, 테너 조용갑 씨 가족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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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노래하는 아버지 프로 권투선수에서 오페라 가수로 인생역전을 이룬 조용갑 씨의 이야기가 언론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감동을 주었다.
드라마 같은 그의 노래와 이야기에서 희망과 생명력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아내 최에스더 씨는 남편을 누구보다 아끼고 지원하는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축제 같은 인생 드라마를 쓰고 있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글 김문영(편집부) 사진 김기현 프롤로그 그는 2011년 10월 SBS「스타킹」에서 아이돌 여가수 수지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어 화제가 되었고, 지난 2월 tvN「오페라 스타 2012」에서 오페라 가수에 도전하는 스타들의 멘토이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정통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조용갑 씨의 인생이야말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반전드라마라 할 수 있다. 올해 발간한 그의 책「희망 오페라」에서 그는 ‘꿈과 희망은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결연한 의지의 연속극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에게 노래는 삶의 호흡법이고 인격의 표현이다. 무대 위로 올라선 화려한 이력보다 웅장한 소리를 받쳐주는 그의 지난한 인생 여정 가운데 깎이고 다듬어진 인품에 매료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열두 살 연하의 아내 최에스더 씨(31세)는 남편이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운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 그의 노래와 이야기에 실린 꿈과 희망의 무게를 잘 알기에, 그와 함께 하는 일이 그녀의 꿈이고 희망이다.
희망은 꿈꾸기를 독려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세차부터 철공소 용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혈혈단신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가야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희망’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타향살이 설움이 클수록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는 기도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야간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짝꿍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들에게 복수하고자 권투를 시작했는데, 그 작은 사건이 또 다른 무대를 열더군요. 제대를 하면서 프로권투로 전향했고,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앞뒤 안 가리고 연습에 매진하며 경기를 치렀습니다.
당시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는데, 퉁퉁 붓고 찢기고 멍든 얼굴로 나와서 찬양하는 저를 보고 교회 어르신들과 목사님께서 많이 우셨지요. 아들처럼 여기시며 제가 잘 되기를 기도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되고 힘든 날이 계속되어도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쳤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목사님께서 제게 권투보다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시고 성악 공부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하이(High) C의 왕’이라는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해서 듣고 있던 터라서 매우 놀랐습니다.
최고의 고음역대를 자랑하는 파바로티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미친 듯이 연습했는데, 점점 자신감도 생겼고 재미가 붙더군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제 안에 있는 열망은 가능성을 향해서만 움직였습니다. 마지막 챔피언 리그에서 판정승으로 무참히 깨지고 나서 권투를 접었고, 목사님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수미 씨가 졸업한 산타체칠리아(Santa Cecilia) 음악원을 졸업했고, 세계적인 거장 테너 쟌니 라이몬디(Gianni Raimondi)와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토(Renata Scotto)를 사사했습니다.
2000년에 ‘라보엠’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해서 300회가 넘도록 유럽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했죠. 국내에서는 2011년 7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맡아 첫 공연을 했습니다. 희망이 절망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그렇게 저는 온몸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책임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해준 건 사랑하는 아내, 에스더입니다. 아내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왔을 때가 열아홉 살이었죠. 로마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띠 동갑이라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진 못했어요. 그런데 지인의 댁에서 긴 치마를 입고 음식을 나르는 그녀의 참한 모습을 보자 설레더군요. 그렇게 지켜만 보다, 어린이주일 야외행사를 위해 물품을 사러 함께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잠깐 마트에 들렀다가 차에 올랐던 그녀는 안전벨트를 맬 틈도 없이 앞쪽으로 튕겨 나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요. 저희 둘 다 응급실로 급히 실려 갔고, 행사장에서 기다리던 교인들이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오셨답니다. 상황이 좀 정리가 되자 교인들이 “에스더가 머리를 다쳤다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조 선생님이 책임져야 해요.”라고 농담을 던지셨습니다. 은근히 그 소리가 좋더라고요, 속으로 ‘책임지라면 져야지!’ 했습니다. 그때부터 통원 치료를 같이 받으면서 급격히 친해졌죠.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최고의 선물
장모님의 전적인 지지로 결혼할 수 있었고, 아내는 어린 나이지만 속이 깊고 착해서 항상 “우리 남편 천재!”라며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붕어빵 딸 수아(7세)와 아들 나단(3세)까지 선물로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듯합니다. 정말 좋은 남편,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삶이 아이들에게 원칙과 기준이 되길 바랍니다. 저희 부부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애쓰는 이유지요. 아내는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엄마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어디 애들뿐이겠습니까? 아내는 제게 최고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위기의 때에 부르게 된 마음의 노래
그동안 소리를 함부로 다루어 왔던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이미지를 통해 아름답게 소리 내는 법을 터득해갔지요.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찬송을 불러보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아무리 애를 써도 나오지 않던 노래가 무리 없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정말 놀랍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기보다, 노래에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게는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난해 로마에서 오페라 활동을 한참하고 있을 때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친 적도 없는데 고름이 나오고 피부가 까맣게 썩어갔지요. 한국에 들어와 여러 병원을 다녀봤는데 무릎을 절단해야 한다, 90% 피부암이라는 등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자력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어려운 고아와 노인들을 돕겠다고 했던 다짐이 떠올랐습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한이 있어도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일을 당장 해야 한다.’라고 결단하고 나서, 병원에 갔더니 ‘마데카솔만 발라도 낫겠다.’는 겁니다.
황당했지만 삶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죠.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돈이 없어서, 목이 망가져서 꿈을 포기하려는 유학생들을 설득해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서 길을 갔습니다. 이제 제가 나누어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은혜와 노력의 합작품’입니다. 희망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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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나 가난한 환경과 처지를 탓하기만 하며 자랐어요. 가슴에 뜨거움이 있었죠. 지금
은 그 불길의 성격이 바뀌었어요. 세계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와 음악 덕분이라 믿어요`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기보다 노래에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게는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얼마 전 처음 가거도에 다녀왔는데 모든 일에 목숨을 걸어야 살 수 있는 곳이더군요 남
편 특유의 열정과 생명력이 이 외딴 섬에서 나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속에서 남편이
훈련을 받고 자랐구나 생각하니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한이 있어도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일을 당장 해야 한다’라
고 결단하고 나서 병원에 갔더니 ‘마데카솔만 발라도 낫겠다` 는 겁니다 황당했지만 삶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죠`
자성귀의불 _()()()_
좋은 소식에 땡큐 ! ()
몇년전 부턴가 사회적으로 어디에나 힐링힐링 하며 심지어 힐링호프라는 간판까지 등장하는 와중에 쌍벽을 이루는 또하나의 붐이 바로 스토리텔링 같습니다. 스펙쌓기식의 스토리텔링은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치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시점에 잘 하려고 애쓰기 보다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른다는 조용갑님의 인생이야기는 진정한 마음의 힘이야말로 살아있는 감동의 스토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