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뜻깊은 28회 한겨레 주주총회에 즈음하여 한겨레 신문의 발전을 희구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진 창간주주의 한 시람으로 고언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석현입니다. 한겨레신문에 blog. hani. co. kr/ hsh012라는 불러그를 가진 한토마 논객이며 인터넷 신문 시사뷰타임스 오피니온 뉴스 컬럼기자이기도 합니다. 향년 여든 다섯의 기독교 명예장로의 한사람이지요. 한겨레 신문사에 현재 400주의 주를 가진 소액 주주입니다.
연부역강한 나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할 처지에 제제다사(濟濟多士)와 부레인 트러스트들이 즐비한 속에서 불청객으로 뛰어들어 참견을 하자니 쑥스럽습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의 버튼을 이어 받아 짝통 대통령 행세를 하며 민주주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고 있는데 대한 비분감개를 달래지 못한 나머지 우리 한겨레가 사회공기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몇가지 주문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오늘 역사적인 주주총회에서 한겨레신문에게 드릴 첫 번째 당부의 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족벌신문이 뜻있는 한국인들에게 증오와 수원수구의 대상이 돼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성찰하여 수치스러운 실패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편작의 의술로도 고침받기 어려운 불치 난치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 원조정은 한국의 박근혜 일당의 정권찬탈로 빚어진 자업자득의 결과이지만 춘추 필봉을 휘둘러 권력 남용을 질타하고 감시해야할 신문이 ‘재4부’로서 언론이 수행해야할 본연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악의 수렁에 빠져 그 장단에 덩달아 춤추어 생겨난 난기류라고 많은 사람들이 진단을 합니다. 그 말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데마고그이ㅓ나 와전(訛傳)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 데스크나 경영 기획부 등에서 일하는 중진들에게 묻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늙쟁이일 뿐이지만 지난 대선이 박근혜가 이명박과 짜고 부정으로 치러진 선거라는 정황을 포착하고 대선을 치른지 나흘만에 ‘충격의 리포트! 박근혜 정권찬탈!’ 이라는 주제의 글을 아고라에 올린 바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카락 안보이게꼭꼭 숨기려 하였으나 이 노기자의 후각에 걸려필자는 이를 세상을 향해 거리낌없이 외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겨레신문에 불러그를 가졌던 제가 한토마 아닌 아고라에 글을 올렸던 것은 대선 후 한토마가 글을 올리는 절차를 바꿔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일 한토마 논객 하나가 아고라에 올렸던 필자의 글을 퍼날라 “한석현 목사의 글!“이라며 한토마에 올린 것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약 반년만에 부정선거 항의로 청계 광장에 수만명 인파가 들끓을 때까지 한겨레신문에서도 부정선거에 관한 기사를 어디에서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민완 기자 등 수백명의 조직원을 가진 언론매체가 부정선거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까? 아니면 인지하고서도 입을 닫아야할 어떤 환경적 제약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부정선거로 이남종 열사가 분신 자살하고 춘몽선생이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리고 검찰권을 바르게 행사하려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황교안 법무와 부정 당선자 박근혜에게 찍혀 까닭 없이 직을 물러났을 때 한겨레는 어떤 역할을 담당 수행했으며 얼만큼 그 아품에 동첨하여 심층 보도를 하였습니까?
부정선거 백서발간은 주권을 도둑맞은 민주시민으로 결코 유보당할 수 없고 유보해서도 안되는 기본권에 속한 사항입니다. 선관위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후 경찰조사 결과 무혐의 처리된 한영수 김필원 양인을 무단히 구속 기소하여 4년 징역을 선고한 것을 우두커니 강건너 불보듯 바라보았던 것 아닙니까? 아니 하녀레 창간정신은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조응 목사 사건은 박근혜 정권이 인면수심의 파락호 정권임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준 상징으로 손꼽혀져야 할 하나의 중대한 국헌 문란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바근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조응 목사가 가다듬어지지 못한 박근혜의 사생활의 비밀을 폭로한 행위는 박근혜 리스크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오늘의 각다분한 정정(政情)과 빗대어 생각해 볼 때 선견지명에 밝은 우국충정의 발로였음을 직감케 합니다, 나라의 주인이 머슴의 사생활의 비밀을 폭로한 것이 도의적 법적 정치적으로 무슨 하자가 된다는 말입니까?. 그???일이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구속사유가 되다니...
그럼에도 80세 고령의 조웅 목사가 아프리카 티비와의 인터뷰 도중 두 사람의 수사관읗 보내어 마치 중죄인이기라도 하듯이 두손에 수갑을 채워 개처럼 끌어다 명예 훼손죄로 구속 기소하여 일년반 옥고를 치르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와 이혼시키고 자식들과 연을 끊게 한 것은 인륜도덕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패룬의 악행이며 민주 국가에서는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할 것입니다.
이 하나의 단위 사건만으로도 박근헤는 중대한 국헌문란 사건으로 정죄돼 탄핵소추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요 대통령 이하 전 공무원이 공복자라는 관점에 비춰 볼 때 황당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박근혜의 행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팔십 고령의 노인이 죄인아닌 죄인이 돼 복역을 마치고 나온지 2년의 세월의 여과를 거쳤습니다. 현 시점까지도 도청, 미행, 감시, 게좌 추적, 전화 요금 위장 예금 빼가기, 사업방해, 살인미수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와 곤혹을 안겨주는 박해가 계속중이라는 전갈입니다. 이것이 국민을 일시동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어 뫼시고 섬겨야할 대통령이 자국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며 응당히 베풀어야할 도리일 수가 있겠습니까?.
신문이 사회의 목탁(木鐸)이요 공기(公器)라면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인권문제는 중점 기획 보도대상이 돼야 신문이 공신력을 인정받고 국민이 믿고 기댈 언덕이 될 수 있으며 그것만이 진정한 강자의식의 발로라 함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명분이 밥먹여 주냐?” 며 민주주의와 대의명분을 저버리고 왜곡 해석하여 불의한 권력과의 야합이나 외압에 주눅들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한겨레가 창간정신으로 무장하여 국민의 카타르시스를 맛보여 주실 것을 간망하는 바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계층간 세대간 격차가 심화일로에 있습니다. 우파 정권이 1 퍼센트에 의한 오로지 1 퍼센트만을 위한 정치에 올인하여 부자(富者)들에게 경도(傾倒)-치우치는 정치를 함으로써 빚어진 현상이지만 “명분이 밥먹여주냐?”며 조선일보 등이 올인해온 정통성 없는 유신정권과의 권언유착의 결과라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한겨레신 가족에게 드릴 당부의 말이 있습니다.송건호 선생의 창간정신으로 굳건히 무장해 권언유착을 물리침으로서만이 한국 사회에서 공신력을 확고히 인증받을 것이라는 점인 것입니다. 돈 너무 좋아하지 말고 권력에 너무 굴하지 마십시오!.사람은 한번 먹은 마음 변치 않는 민들레 마음으로 변덕없이 갈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는 법이며 한번 변절한 인간은 살아 있으나 죽은거와 아무 진배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겨레 가족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은 “유교의 선비 정신”과 기독교의 성결 정신의 접목“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본받아 행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되풀이되는 강조로도 도리어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유신과 결착하여 광화문에 고층빌딩을 세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그렇게 부럽습니까?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하늘만큼 땅만큼 많은 박근혜가 부럽습니까?
얼빠진 인간으로 살지말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가 시꺼먼 탄가루의 합성물이며 진주가 병든 조개 껍질속에서 나온다는 것,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학교조차 못나온 에이브라함 링컨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불후의 명작이 눈물겨운 작가적 수련을 거친 토대 위에서 쓰여졌다!는 사실 인식의 바탕위에서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지 말고 고차원의 시계를 내다보도록 권유를 드리면서 저의 이야기를 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