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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사례를 작성하시는 분의본 정보를 작성해주세요.
· 연령 : 43세
· 성별 : 여
· 직업 : 음악강사. 트럼펫연주자· 통증부위 : 목, 어깨, 등, 허리, 골반, 꼬리뼈, 무릎통증등
· 통증 원인 : 잘못된 생활습과, 틀어진 자세, 오래 앉아 있기
· 병명/수술여부 : 없음· 처음 SNPE하게 된 계기 : 출산후 우울, 불안, 공황, 불면, 꼬리뼈 다침· 운동 참여 기간 : 2015년에 처음 시작하였으나 중간 중간 사정상 꾸준히 운동하지 못함
· 1주 평균 운동횟수(일) : 2~3일· 운동목표 : 건강한 삶
· 사진 첨부 시, 촬영 날짜와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신체적&심리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세요.· 효과가 나타난 시기를 명시 해주시기 바랍니다.(본 체험사례는 한국바른자세연구원에서 SNPE 효과 검증 관련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체험사례 시작
안녕하세요.
동국대 87기 반송미 입니다.
동국대 지도자 과정을 끝내고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지도자 과정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흙탕물이 심하게 올라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시험을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당시의 몸 상태론 체험사례를 올리는 것도 그렇고
시험을 준비 할 마음의 여력도 몸도 따라 주지 않는 것 같아 천천히 가기로 마음 먹고 지내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핑계 같기도 하고 조금더 단단히 마음을
먹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렇게 지금이라도 체험 사례를 올릴 수 있어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1. 시련과 마주하다
2014년 4월 19일. 너무도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둘째를 낳고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6살 큰아이를 챙기며 둘째의 꼬물꼬물 작은 몸짓과 예쁜 미소에 웃음 지으며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들을 보내던 날들이었습니다. 둘째가 50일쯤 되던 날, 친한 친구가 아기를 보러 온다며
집으로 놀러와 맛있는 점심도 시켜먹고 오랫만에 이야기 꽃도 피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습니다.
분명 별일 없이 즐겁게 잘 보낸 하루였는데, 갑자기 그날 부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전날만 해도 졸음이 쏟아져 밤중 수유를 하다 그냥 잠이 들어버리기도 하고 아기가 울어도 세상도
모르게 잤었는데, 잠이라면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들고 깨우지 않으면 다음날까지도 계속 잘 수 있는
잠보였는데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고 입면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아상하다 왜 갑자기 잠을 못자는 거지 하고 버티다가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못자서인지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가슴이 두근 거리며
어지럽고 비현실적인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숨쉬기가 힘들며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누군가 심장을
꽉 잡고 있는 것처럼 누르는 기분이였습니다. 특히 가슴 두근 거림은 이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공포와 불안감을 가져왔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증상이라 왜 그런지도 무엇이 잘 못 된건지도
모른체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도 돌보지도 못하고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기만 했습니다.
처음엔 가족들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점점 이상증세를 보이며 변해 가는 제 모습에 모두들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고 신경정신과를 가봐야 겠다는 제 말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화장실 가기도 무서울 정도로 방안에서 한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예뻐하던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고 인지력 상실이 온 것인지 머리를 감으려 해도
샴푸하는 방법이 생각이 안나서 울면서 나오기를 반복하고 옷을 매칭하기가 어려워 옷장의 옷들을 다 꺼내놓고
뭘 입을지 몰라 펑펑 울었습니다. 완전히 나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였고 숨쉬고 버티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결국 큰아이와 둘째는 시댁으로 보내졌고 저는 친정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백일도 되지 않은 둘째를 모유에 익숙해져 젖병을 거부하고 분유를 먹지도 않는 아이를 어쩔수 없이 눈물로
떼어놓고 저는 가족들 손에 이끌려 청주에 있는 신경정신과를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병원마다 병명도 다르고 약이 듣지를 않아 치료가 쉽지 않았습니다. 신경정신과 약이 효과를 보려면
1주일에서 2주일이 지나야 약효과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기간을 버티며 약을 바꾸고 또 바꾸다 보니 증세는 더
심해져 결국에는 끊임없는 자살충동과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했고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정신을 차리면
제 기억에도 없는 자살시도를 하곤 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마음은 너무도 살고 싶고 빨리 건강을 다시 찾아 예전처럼
아이들과 평범하게 오순도순 살고 싶었는데 그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계속 죽어야 한다 죽어야 끝난다라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착란처럼 모든 소리들이 저를 미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라디오 소리, 티비소리,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자동차 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조차도 들을 수가 없고
온 방에 커텐을 치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전 이쁜 딸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혼자서는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불안과 초조에 종일 휩싸여 하루를
이를 악물고 버티어 내는 한번도 상상 하지도 못했던 제 모습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자살 시도에 가족들도 감당하기 어려워 지고 병원에서도 저에게 맞는 약을 찾지 못하자 대학병원의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전 그렇게 둘째 아이를 낳고 6개월만에 충북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제게 맞는 약을 찾는게 일과 였습니다. 심전도 검사부터 뇌파검사, 부정맥 검사, 임상심리검사와
심리상담까지 다양한 검사들도 받았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엔 충북대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출산후 급격한 호르몬 변화로 인한 산후 우울, 불안, 공황장애였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대의학으론
어떤 호르몬에 의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는 아직 알아 낼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한달 정도의 입원 생활을 하면서 저에게 맞는 약을 찾아 증상을 억누를 수 있었고 장기 입원을
권유 받았지만 처음의 얘기와 다르게 면회도 전화도 마음대로 되질 않자 가족들이 퇴원 결정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약물로 증상들을 누르긴 했지만 아침, 점심, 저녁, 자기전에 먹는
약까지 많은 약을 먹어서 인지 늘 약에 취해 있었고 머리 들기도 힘들고 멍하고 몸도 천근만근 늘어져 종일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아이들도 시댁에서 7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너무도 달라져 있는 엄마의
모습에 큰 아이는 절 낯설어 했고 너무 어릴때 엄마랑 떨어진 둘째는 제가 엄마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큰아이는 자기가 동생을 낳아달라고 해서 자기때문에 엄마가 아픈거라고 생각 하며 저를 힘들게 할까봐
모든 행동을 스스로 조심했습니다. 아직 7살밖에 안된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애 어른 처럼 행동을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생이 생기자 마자 엄마랑 헤어져야 했던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그마저도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이렇게 무기력 한 모습으로 있으면 안되겠다 어떻게는 이겨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지했던 저는 온 갖 치료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영양제를 먹는 다고 생각하며 약을 장기
복용하라고 얘기 했지만 이렇게 약에 취에 사는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다고 생각하며 두개천골 요법부터 기치료,
체형교정, 카이로프랙틱, 수기치료, 사혈, 우울증과 불면증에 좋다는 한의원들의 침치료와 한약, 산야초, 생채식,
호르몬요법, 해독프로그램등을 받으며 어떻게든 약에 의존하지 않고 예전처럼 건강해지길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결과는 똑 같았고 그때서야 아픈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며 상처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치료 방법도 없고 정확한 원인도 알지 못하니 그저 막막하고 암담하고 힘들었습니다.
2. 또 다른 시련과 전환점을 만나다
스스로 잠들지도 못하고 약을 하나라도 줄이면 두근거리는 증상들이 다시 올라와 약을 줄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들에 신랑이 약을 먹어도 너무 잠을 못자는
제 모습이 안타까워 전신 마사지샵을 예약해 주었습니다. 처음 마사지를 받으러 간 날 제 이야기를 들은 마사지샵
원장님이 꼬리뼈가 안으로 너무 말려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며 갑자기 꼬리뼈를 빼주겠다고 했습니다.
살면서 꼬리뼈가 어떤지 생각도 해보지도 않았고 콕스 무브가 항문을 통해서 이루워 진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저는 엎드려 전신 마사지를 받으면서 겉에서 만져주는 건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전신 마사지때에는 가운만 살짝
걸치고 옷을 다 벗은 상태이기에 전 무방비 상태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콕스 무브를 받았고 엎드려 있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고 놀랐습니다. 마사지샵 원장님은 콕스 무브를 받으신 분들은 모두
만족해 하시고 몸도 더 좋아지셨다며 자부심이 크셨지만 저는 그날 부터 허리를 구부리지도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도 허리가 당기면서 아프고 바로 누워서도 꼬리뼈가 바닥에 닿아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붙이고 온다는게 이런 걸까 싶으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원망스럽고
나 자신에게도 너무 화가났습니다. 콕스 무브를 받고 나타난 다른 증상들은 생리가 끊어지고 시선을 돌리면
마치 흑백 필름이 촤르륵 돌아가듯이 모든 사물들이 분활되어 보여서 어지러증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사지샵에서는 그럴리가 없다며 다시 꼬리뼈를 넣어주겠다고 오라고 했지만 다시 그 곳에 가 제 몸을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콕스무브를 다시 받는 거라 생각한 저는 그날 부터 미친듯이 콕스무브를 검색하며
부산으로 성남으로 유명 하다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미 잘못된 꼬리뼈를 위험 부담 때문인지 쉽게
교정해 주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혼을 내거나 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우연히 꼬리뼈 검색에서 snpe 체험사례를 읽게 되었습니다.
바로 경지혜 선생님의 체험사례였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저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고 본원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게 되었고 엑스레이를 찍어서 최중기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 가던 날도 저는
버스에 앉아 있기가 힘들어 거의 앞의자에 몸을 기대어 간신히 올라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합니다.
그렇게 교수님을 만나 뵙고 엑스레이를 보신 교수님께서는 그동안 안으로 꺽여 있는 꼬리뼈 사진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일자로 서있는 꼬리뼈 사진은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콕스 무브는 누구나 쉽게 배워서
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 마사지샵 원장님이 같이 호흡하면서 부드럽게 풀어줘야 하는데 그냥 힘으로 들어 올려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면서 콕스무브로 다시 안으로 넣어 주면 된다고 겁먹지 말라고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안좋은 소리만 듣고 절망감에 빠져 있던 저에게 교수님의 말씀은 희망과도 같았고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면담 내내 어찌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교수님께 콕스 무브를 받고 또 마침 체엄사례로 읽은
경지혜 선생님이 본원에 계셔서 도구 체험과 몇가지 운동 방법을 지도 받고 교수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까지
감사하게 받아들고 청주로 내려왔습니다. 서울로 올라 갈때만 해도 의자에 앉지도 못했는데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었고 저는 아 어쩌면 이 운동이 꼬리뼈와 함께 다른 증상들도 고쳐 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주에 내려오자 마자 바로 청주와 제일 가까운 대전 청사점에 등록을 하였고
문화연 선생님께 개인 교습을 받으며 일주일에 두번씩 대전으로 운동을 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운동을 하며 생식을 시작했습니다.
3. 내자신을 돌아보다.
대전에서 운동을 하면서 저는 제 몸이 이렇게 굳어있고 망가져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위가 약해서 잘 체하고 소화가 힘들어 위경련이 자주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늘 손발이 차긴
했지만 그리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자신을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하면서 엉덩이 힘이 실력이다 생각하며 온 종일 앉아서 생활하였고
늘 무거운 악기를 한쪽 어깨에 메고 다녔으며 학생때에는 연주가 있을때 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의자와 무거운
타악기들을 날랐습니다. 관악부 생활을 하다보니 행사가 많아서 늘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퍼레이드며 시골길을
행진하는 것이 일상이였고 한번 합주를 시작하며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움직이지 않고 연습을 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 강사생활을 할때도 아이들 레슨을 하면서 늘 한쪽 엉덩이만 걸쳐 앉고 틀어진 자세로 생활하였고
늘 짝다리로 서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팔자걸음이 심해서 늘 지적을 당하면서도 고쳐지지가 않았고 잠도 늘 왼쪽
옆으로 누워서 자는게 편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개를 옆으로 갸웃뚱하게 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고개를
바로 잡으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런 자세가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개인 교습을 받으며 흙탕물이 심하게 올라와 허리를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서 차에 실려 운동을 하러
갈때도 있었습니다. 그럴때 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마음이 흔들리고 또 잘못된 선택을 해서 시간과 돈만 낭비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상처만 받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고 주저 앉고 싶기도 했지만 더 이상 타인의 손에 내 몸을
맡기고 싶지도 않았고 늘 snpe의 원리를 잘 설명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문화연 선생님이 계셔서 마음을 다독이며
계속 운동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무지하게 방치해 둔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기서
멈추면 이상 갈 곳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해 나갔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고관절 골반 벨트를 차고 꾸준히 걷고 특히 구르기는 꼬리뼈가 까져서 아팠지만 매일 꾸준히 200번씩 구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인 병인데 운동을 해서 좋아질 수 있겠냐며 다시 병원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병원에서의 치료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저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방법임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또 나 자신이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몸을 고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적과 같이 조금씩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치료를 받아도 늘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snpe운동을 시작한 후 한달만에 끊어졌던 생리가 다시 시작되었고 고개를 돌리면
촤르륵 촤르륵 필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증상들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좋아졌습니다.
구르기를 하나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허리통증도 꼬리뼈 통증도 점점 좋아졌고 약을 먹지 않으면 전혀 잠을
자지 못했는데 도자기 손으로 경추를 이완하다 보면 어느순간 살짝 살짝 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약을 끊는게
좋을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약을 조금씩 줄여 나가도 더 이상 가슴 두근 거리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만에 모든 약을 끊고 수면시간도 6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있던 몸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비틀어진 척추를 바로 잡아나가기 시작하니 전혀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병증들이 해소가 되면서 척추의 중요성을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비록 가야 할길이 멀었지만 아팠을때의 저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했고 snpe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였습니다.
4. 동국대 87기 지도자 과정을 듣다
몸이 점점 좋아지자 그동안 잘 돌보지 못했던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전에서의 운동을 접고 집에서 혼자 운동을 하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다시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몸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어서 멀어도 꾸준히 운동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전으로
다시 운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좀더 몸을 알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동국대
지도자 과정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꾸준히 선택 집중 반복을 하면서 제 몸을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나빠졌던 수면의 질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안좋아지면서 찌기 시작했던 살들이
자연스럽게 빠지고 근력이 늘어나고 틀어져 있던 골반과 척추가 바로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흙탕물들이 올라와 힘들기도 했지만 변화해 나가는 과정임을 알기에 잘 견뎌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일상 생활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졌고 몸이 좋아지자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제 욕심이 커서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놓친 것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큰 흙탕물을 겪게 되면서 예전의
증상들이 조금씩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잠이 오지 않고 공황 증세가 나타나 버스를 타기도 힘들어지고
숨쉬기도 힘들고 가슴이 두근거림과 어지럼 증상들로 동국대 수업에 간신히 참여 하기도 했습니다.
지도자 과정을 마무리 중이였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흙탕물이 크게 올라오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
습니다. 몸이 좋아지고 컨디션이 한창 좋아질때 마주한 흙탕물이라 더 힘들게 느껴지고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버겁고 지쳤습니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기도 했지만 안좋은 증상들을 이겨내는
방법은 snpe뿐이라는 생각에 더 운동에 집착하고 내 자신을 몰아 부쳤던 것 같습니다.
결국엔 차근 차근 다시 되집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는지 그 동안 참았던
눈물들을 펑펑 쏟아내고 서럽게 울고 또 울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힘들게 힘들게 버티며 산 중턱까지 간신히
올라왔는데 다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가 밑도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였고 그 앞에 마주한 산은 더 넘기
힘들고 올라서기 힘든 산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로 마음을 다잡고 단시간에 끝내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시간이 걸리는 마라톤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포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 말씀 처럼 조금 천천히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시험도 미루기로 결정하고 다시
제 몸에 집중 하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체험사례 발표도 하고 시험도 보고 다 해내고 싶었지만 제 욕심인걸 인정하고 제가 할수 있는 몸 상태에
맞춰서 조금씩 다시 시작했고 다행히 포기하려 했던 수료식 참석과 동기쌤들과 척추 댄스 발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몸이 안좋아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해 중간 중간 실수도 있었지만 동기쌤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어
감사했고 내색 하지 않으려 했는데도 제 얼굴이 힘들어 보였는지 조용히 절 안아주시고 다독여 주셨던 동기쌤들이
계셔서 너무 큰 힘이 되었습니다. 87기 동기쌤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지도자 과정 내내 저를 응원해
주시고 힘을 주셨던 대전 청사점 문화연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어쩌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여도 이해하지 못하고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 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를 다잡아
주시고 원리를 이해시켜 주시고 함께 고민하며 아파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셔서 너무도 큰 믿음과 사랑을 받았고
감사했고 새 삶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멋지고 매력적인 snpe운동을 창안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신 최중기 교수님과 늘 열정적으로 수업을
지도해 주신 윤지유 교수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중기 교수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씀 한마디가 절 snpe로 이끌어 주었고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절 벗어 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늘 곁에서 묵묵히 절 지켜
주었던 가족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돌아 보니 한분 한분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5. 나로 살아가는 기쁨
수료식을 마치고 저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흙탕물이 올라 온것을 다스리기 위해 꾸준히 운동도
계속 하였고 지금은 흙탕물로 올라왔던 증상들도 다 사라지고 수면 상태만 조금씩 몸의 상태에 따라 흔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전처럼 두려워 하거나 겁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감정의 기복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타인의 치료에 의존 하던 때와는 달리 스스로 방법을 찾고 움직이며 운동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나 자신에게 더 충실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며 하고 싶었던 일들에
도전하며 나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전에는 당연시 했던 나로 살아간다는 기쁨..
내 스스로 선택하고 내 의지로 결정하며 내 삶을 누릴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정말로 소중하고 또 소중한
순간임을 잊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snpe와 함께 영원히~~~
6. 변화 된 모습들~
- 꼬리뼈가 변화 된 사진입니다.
동국대 지도자 과정 당시 어깨의 라인이 달라지고 쇄골의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다시는 저 티를 입지 않겠다며 버릴려고 하다가 혹시나 나뒀었는데..역시나 나두길 잘했네요..ㅎㅎ
- 복부의 변화..아직 복근이 생기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먹는 걸 생각하면 다행입니다~^^;;;
- 견갑골의 변화와 꼬리뼈 라인의 변화..견갑골이 좁아지고 꼬리뼈의 라인이 바르게 잡혀가는 모습입니다.
- 척추 라인의 변화..전 이사진을 보고 가장 놀랬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던 사진입니다.
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
- 운동 자세의 변화..아직 갈길이 멀었지만 그리고 3번 동작은 여전히 힘이 들지만 작은 변화들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의 중심선 변화를 보면서 그 동안 내가 한 노력들이 날 속이지는 않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초심의 마음을 잊지 않고 꾸준히 수련해 나가겠습니다. 짧게 써야지 했는데 체험사례가 이렇게
구구절절 길어질 줄은 몰랐네요..줄여 보고 싶어도 뭘 어찌 줄여야 할지 모르겠고..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고 모두들 snpe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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