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그리고 청소년 대회 우승맴버
[사진:크로아티아의 영웅! 보반 밀란당시의 모습] 크로아티아란나라는 모두들 잘 알것이다. 우리나라의 반에 반밖에 되지 않는 4분의1 이라는 작은 면적, 그리고 내전과 긴장감이 감도는 "안정되지 못한 나라"이다. 거지들이 돌아다니고, 총성과 화약연기가 끝없는 나라. 하지만 그곳에서는 98 프랑스 월드컵 3위를 이룬, 영웅들이 자란곳이였고, 그 불멸의 땅에서도 천재적인 선수들이 나왔다.
보반, 98 프랑스 월드컵때, 수케르 선수가 득점왕으로 빛을 볼때 그 후방에서 게임을 조율했었던 천재적인 미드필더였다.
보반은, 1968년 10월 8일 크로아티아의 Imotski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보반의 집 역시, 다른 구 유고의 집안처럼, 가난했고, 주위에는 내전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보반은 축구에관한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86년 보반은 현 크로아티아 명문 클럽인 Dynamo Zagreb으 주장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리더쉽, 그리고 그의 능력을 높게 보아서 이다.
그리고 그는 87년 칠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대회 우승맴버로도 유명한대, 당시 우승맴버로는 전 유고의 간판 스트라이커 미야토비치가 있다. 보반은 주장의 역활을 담당했다. 보반의 활약은 단연 뛰어났다.
많은 명문 클럽이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밀란은 그를 1년간 바리에서 뛰게하고, 1992년 밀란으로 대리고 왔다. 당시의 밀란의 스타는 말이 필요 없는 네덜란드의 간판 스트라이커 "밀란제네레이션"의 반바스텐, 얼마전 페에노르트 감독직을 맏은 루드 굴리트등이 있었다.
보반은 이런 대형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탈리아의 명문클럽에서 뛸수 있게 되었다. 그의 작은 소원이 이루워 진것이다.
무너진 나라, 그리고 무너진땅 "크로아티아" 보반과 "밀란"
[사진:치열한 공 다툼을 하는 보반 밀란더비] 94년, 그들은 "크로아티아"라는 국가로 미국월드컵에 참여할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내전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발목은 잡았다. 그들의 첫 월드컵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보반에게만은 특별했다. 유명선수들이 한두명씩 떠나갔고, 보반은 밀란의 주전자리를 차지할수 있었다.
보반은 밀란에서 점점 중심선수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현란한 드리블 역시 슈퍼카이져 "레돈도"와 상당히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보반은 점점 대형선수로 자라갔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힘든 내전이 끝나가고는 있었지만, 크로아티아의 경제는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보반은 해가 지날수록, 밀란에서 중심선수로 자라났다. 그는 95/96시즌 우승을 차지 했고, 골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꿈이 있는 무대가 다가온다. 바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을 달수 있게 되었다.보반,그리고 많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열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날만을 기다렸다.
월드컵의 영웅 수케르!, 보반의 명언
[사진:크로아티아의 영웅 보반!] 국가는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반은 말한다.
"설령 그러면 또 어떤가. 크로아티아 유니폼을 입고 크로아티아인으로서 경기하게 된 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크로아티아 사람답게 얼마나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보반의 말 처럼, 크로아티아는 잘해낸다.
여러 강호들은 물리치고, 수케르, 그리고 한때 발렌시아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었던 블라오비치와 함께 16강을 넘어, 8강, 4강까지 진출했다.그렇게 루마니아, 독일등을 넘어 만난상대는 바로 프랑스. 특히 독일전에서 2골을 기록한 수케르와 보반의 활약은 가히 대단했었다. 크로아티아는 끝까지 싸웠지만, 수케르가 1골을 기록하고, 튀랑에게 2골을 허용하여 2:1로 무너지고 말았다.
결승까지 갈순 없었지만, 크로아티아의 돌풍은 대단했다. 국가의 지원없이도 그들은 강했다. 그들은"크로아티아"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싸웠다. 마지막 경기 네덜란드전. 당시 네덜란드는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강했다. 크로아티아가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젠덴의 동점골.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수케르가 득점왕에 등극하는 결승골을 터트리면서, 크로아티아는 역사에 남을 3위를 기록한다. 보반은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시의 행복이였다. 보반은 월드컵이후 더욱 밀란의 간판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밀란으로, 그리고 마지막 보금자리
[사진:밀란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낼 당시 보반] 보반은 98/99 시즌 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월드컵 3위의 꿈이 가시기도 전에, 보반은 그렇게 행복한 축구 인생의 연속이였다. 크로아티아는 유로 2000에 출전할수 없었다. 보반은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메이져 대회다 1998 프랑스 월드컵이였고, 3위라는 영광을 가졌다. 밀란은 변화의 물결을 가져왔다.
조지 웨아, 비어호프,바,레오나르도 등의 선수들은 은퇴 또는 이적을 하였고, 보반 역시 01/02 시즌에 정들었던 밀란을 떠나 스페인 무대에 들어왔다. 바로 스페인 셀타비고에 자리를 잡았다. 셀타비고에서의 02/03 셀타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낸다. 바로 보반의 마지막 선물이였다.
보반은 한/일 월드컵에서 출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크로아티아는 16강 좌절이라는 이름표를 남겼다. 크로아티아의 축구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보반은 그렇게 마지막을 스페인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는 밀란에서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모두들 보반을 "마지막이 아쉬운 선수"라고 말한다.
나 역시 보반이 마지막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희망이 없는 땅으로 여겨지던 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는 당연한 결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누구 보다 불행했지만, 천재적인 스타 Boban-
Soccer Street 김상준
제 홈피 널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