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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남극과 뉴질랜드 이외 지구의 전지역에 살고 있는 설치류 동물로서, 포유류 가운데 가장 큰 목(Order)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쥐는 집쥐로 원래는 서남아시아 원산이었으나, 15~18세기 해양문화의 발달과 함께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문헌에 쥐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신라 때 사금갑(謝琴匣) 이야기이다. 쥐의 예언으로, 거문고 갑 안에 숨어 있던 내통자들을 잡아 나라의 위기를 막았다는 설화이다. 보다 사실적인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혜공왕 때 강원도 치악현에서 8천 마리에 이르는 쥐들이 이동하는 괴변이 있었는데, 그해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김유신 장군 등 능원에 새겨진 12지신상이나 양산 통도사의 12지신상 그림에도 쥐가 등장하고 있다. 고려 때의 것으로는 무덤의 현실내부 벽화나 밀랍으로 된 소형 12지신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쥐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겸재 정선의 <서투서과>에 수박을 갉아먹는 쥐가 나오고, 신사임당도 쥐 그림을 남긴 바 있다. 이밖에도 쥐를 소재로 한 미술품이나 생활용품들이 많으나, 대개는 12지신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쥐가 신앙물로 등장한 것은 12지신에 들면서부터이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12지신앙에서 쥐는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쥐는 음양오행상 음(陰)과 수성(水性)에 들어 있다. 방위로는 북쪽이고, 시간으로는 밤11시에서 새벽1시에 해당한다.
쥐는 다른 설치류처럼 상하의 문치(앞니)에 치근이 없어서 계속 자라나므로 그때마다 무엇인가를 갉아서 닳게 해야만 한다. 꼬리는 몸집에 비해 매우 길고, 털이 적고 비늘이 덮여 있어서 병 속으로 집어넣어 기름을 핥아먹기에 알맞도록 되어 있다. 행동이 매우 민첩하고 잔꾀도 많다. 종족끼리는 질서가 분명해 부부침실과 새끼방·화장실과 식량창고 등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쥐는 화산이나 지진, 또는 홍수나 산불 등 자연재해를 미리 예고해주는 영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쥐가 집안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어부들은 배 안에 쥐가 보이지 않거나 쥐 울음소리가 들리면 불길하다 하여 출어를 삼갔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지방에서는 배 안에 배서낭을 모시고 쥐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어느 부잣집에 쥐가 대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하루는 무너져 내려 그대로 두면 주인네 식구가 모두 죽을 위기였다. 그때 어른 쥐가 나서서 여태껏 자기네들을 잘살게 해준 주인네를 구해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훤한 대낮에 집안에 든 쥐를 모두 마당으로 불러모아 찍찍 소리를 내며 춤추게 했다. 그러자 집안 사람들이 이 괴변을 보러 모두가 밖으로 나왔다. 집이 무너진 것은 그때였다. 이렇게 주인네 식구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새해들어 첫 상자일(上子日)에는 특히 근신하는 날로 여겨 모든 일을 조심하였다. 특히 이날은 길쌈하거나 의복을 짓지 않았다. 이는 쥐가 무엇이든 잘 쏠기 때문이다.
쥐는 다산(多産)의 상징이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상자일에 곡식의 씨를 태워 비단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상자일에는 쥐불놀이도 행해졌다. 이날 청소년들은 마을 부근의 밭두렁을 태우면서 한해의 건강을 빌고 마을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때 불기운이 세면 풍년이 든다하여 밤들이 쥐불놀이를 하였다. 쥐는 다복(多福)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당사주에서는 쥐띠를 자천귀(子天貴)라 하여 식복과 함께 다복한 운명을 타고난다고 하였다. 이는 쥐가 선천적으로 눈치빠르고 어려운 여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습성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다 생태적인 해석까지 달아서 밤에 난 쥐띠는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음력 8·9·10월생은 대체적으로 신수가 고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쥐는 농작물을 해치고 곡식을 훔쳐먹는 해로운 동물이며 더러운 곳에 사는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도 탐관오리들을 쥐로 묘사하여 노래한 바 있다. "들쥐는 구멍 파서 이삭 낟알 숨겨두고, 집쥐는 이것저것 안 훔치는 것이 없네.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 기름말라 피말라 뼈골마저 말랐다네." 또 한말의 선비였던 황현의 <매천야록>을 보면, 순종 3년(1909년)에 쥐로 인한 전염병이 돌아서 각 항구마다 외국 배들을 검역하였으며, 쥐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돈도 3전씩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로부터 농가에서는 쥐를 내쫓는 풍속이 많았다. 상자일 자시(子時)에 방아를 찧으면 쥐가 없어진다 하여 집집마다 방아소리를 냈다. '쥐주둥이 그스르자 쥐주등이 그스르자'며 콩볶아 먹는 풍습도 쥐를 내쫓는 풍속이다. 그러나 쥐의 날이나 동물의 왕인 호랑이의 날에는 쥐가 아무리 많아도 함부로 잡지 않았다.
쥐는 덩치는 작지만 번식력이 왕성하다. 집쥐의 임신기간은 21일, 즉 출산후 몇 시간만 지나면 금방 발정하여 교미한다. 한쌍의 쥐가 한배에 10마리씩 연간 5회새끼를 낳을 경우 3년 뒤에는 3억 5천만 마리로 불어난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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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쥐띠해에 후손을 번창하듯 사업 번창하시고 부자되세요..
항상 좋은자료 감사감사...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 모두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