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 변명희
“차렷, 선생님께 경례.”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르신의 구령에 따라 우리는 첫인사를 했다. 두서넛 씩 모여 왁자하고 어수선한 교실에 들어섰다. 모두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 슬금슬금 나를 탐색하며 벼루와 먹물을 챙기고 화선지를 펼친다.
스무 명 남짓한 시선이 나를 향해 집중되어 있다. 거의 백발이거나 모자로 흰 머리를 반쯤 가린 분이 대부분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을 말똥말똥 굴리며 바라보는 모습이 새 학년을 맞이한 풋풋한 학생들 같다. 차렷, 경례라. 뜻밖의 상황이다. 새내기 교사로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마냥 잠시 쫀쫀한 긴장이 흐른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모습도 여느 교실 풍경과 다름없다. 어르신 사군자四君子반이다.
모두의 진도는 다르다. 매화 둥치에 가지를 붙이는 사람, 난을 치는 사람, 국화 대나무 그리기까지 다 마치고 복습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수준에 맞춰 체본을 그리며 설명을 곁들인다. 오래 배웠는지 사군자를 벗어나 소나무를 그리는 사람도 있다. 밤송이처럼 그려놓은 솔잎 더미는 내가 처음 배울 때를 생각나게 해서 오히려 친근감이 든다. 솔가지에 작은 왜가리 한 쌍을 곁들여 주니 “와~ 선생님 멋져요.” 하며 가슴에 손을 모은다. 부부가 함께 왔다며 씩씩하게 남편을 소개하는 분은 국화 진도가 한참 나간 듯하다. 수묵화만 그리던 그에게 보라색 들국화 몇 포기를 그리고 가운데 노란 꽃술을 찍어주니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나 보다. 첨삭지도를 하고 있는데 건너오는 말이 다감하다. “선생님, 그만 끝내고 쉬세요. 커피도 드시구요.” 반 대표를 맡은 어르신이 자리를 정돈케 하고 일어나 또 큰 소리로 구령을 붙이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다가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정중하게 말한다. 출석부는 알아서 챙길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이 층 사무실에 오고가는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그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아버지뻘 되는 어르신께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황송하다. 모자 밑으로 희끗하게 드러난 흰 머리가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게 한다.
신혼시절, 시댁에 가면 가끔 아버님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셨다. 변명희 선생님, 변명희 선생님, 벙글벙글 웃으며 자꾸 나를 불러 보았다. 학교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터라 당신의 며느리가 선생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나 보다. 곰살맞거나 살갑지도 못한 나는 낯선 상황이 어색해서 별 대꾸 없이 어영부영 피하곤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화분에 실국화를 키우며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갖은 정성을 쏟으셨다. 탐스런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튼실한 분盆을 몇 개씩 안겨주려 하셨지만 들국화나 산국을 선호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선생며느리였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분별력 없는 알량한 선생이었는지 모른다. 내 서예 작품으로 족자를 만들어 방마다 걸어놓고 자랑하시던 분, 순진한 소년처럼 온 얼굴로 웃을 때면 골 진 주름이 꽃 이랑처럼 너울거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며 내 관심과 우선순위에서 부모님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자연스레 먼 남녘까지 찾아뵙는 일도 뜸해졌다.
어느 날, 자식 바라기에 지쳐 상경하신 부모님을 마중하러 영등포역에 나갔다. 김 멸치 미역 보퉁이 몇 개를 받아들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순간 휘청하며 아버님이 바닥에 쓰러졌다. 부축해 일으키니 괜찮다며 엉거주춤 일어나 걸었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마른 삭정이가 바지자락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걸음마 연습하는 아이처럼 뒤뚱거리며 계단마다 한 발짝씩 내딛었다.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야 상황 판단을 하게 되었다. 치료 시기를 놓쳐버린 관절염은 이미 손을 쓸 수 없었고 바깥출입도 어렵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씀도 입에서만 맴돌 뿐 대화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런 아버님을 두고 어머님이 먼저 가셨다. 당신이 계신 요양원에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대해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지어미의 생사도 모른 채, 코로 주입되는 유동식을 들이켜던 그 처연한 모습은 차마 보기 힘들었다. 가끔 웅얼대는 입 모양이 “느그 어머이는?” 하고 찾는 것 같았다. 우리가 두루뭉술 둘러댈 때면 멀뚱히 바라보는 퀭한 눈가에는 썰물이라도 빠진 듯 갯고랑 같은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하늘 끄트머리에서 손짓하는 어머님을 보았을까. 날마다 창가에 바투 매달려 먼 하늘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움이 눈물로 맺었는지, 꼬깃꼬깃한 환자복 소매로 슬며시 눈가를 훔치곤 했다. 어룽거리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고 말 때에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희뿌연 눈발과 함께 홀연히 떠나셨다. 충격을 받더라도 어머님의 부음訃音을 전해야 했을까. 화사한 실국화 한 점 그려서 침상 옆에 걸어 드릴걸, 함께 한 모든 것들이 언제나 내 삶의 배경인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부질없는 회한만 밀려든다.
차렷, 경례는 메아리가 되어 내게로 돌아온다. 반듯한 어르신의 뒷모습이 내게 선명한 속긋을 긋는 것 같다. 어쩌다 선생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내가 더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새싹 같은 속그림이 그려지며 소소한 다짐들이 그분을 따라간다.
‘그래, 다음 시간에는 체본을 더 성심껏 해 드리자. 매화꽃 가운데 황금색 꽃술도 이쁘게 달아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