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 1-11절 "허무하고 새것이 없는 인생, 반복되는 삶의 허무"
(묵상)
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헛된 세상일까요? 연말연시면 자신의 지난 한 해를 돌아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년 초에 세웠던 목적들을 얼마나 성취했는지, 일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시기입니다.
먼저 글을 읽지 전에 지난 인생은 후회 없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삶의 목적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그 목적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전도서는 처음부터 세상에 대한 무의미함을 말합니다. 전도서가 기록한 의도는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비관주의(pessimism)에 빠지도록 인도한 것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읽어야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부분만 읽고 나면 염세주의(厭世主義)에 빠지기 쉽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면 하나님의 깊으신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전도서에서 말하는 무엇이 그렇게 헛된 인생일까요? 그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잠언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전도서(설교서)는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전도서는 잠언과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잠언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교훈이 중점으로 기록되어 있고, 전도서는 인생무상과 염세주의가 그리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서 중 하나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지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라는 것입니다.
1-2절 솔로몬은 자신의 소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겸손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기록자인 솔로몬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전도자(설교자)라고 소개합니다. 전도자의 개념에 대해 12장에서 9절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절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전도자인 솔로몬은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고 위대한 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정도로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전도서 전체를 통해, 솔로몬은 헛되다는 말은 38번이나 기록합니다. 그럼 헛되다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저 언덕 넘어 있는 무지개와 같다는 뜻입니다. 무지개는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것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후진국보다는 자살률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어 행복할 것 같은 사회 부유 지도층들의 자살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풍부함이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성취했지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절 전도자 솔로몬은 ‘헛됨’에 대해서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헛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 천지만물은 변함없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자연 법칙에 따라 하루 24시간과 사계절은 변함없고 산천 만물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유한(有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왔다가 또 조상들처럼 그 길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유한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무엇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모든 것들 즉, 시간 물질 그리고 젊음 등을 투자합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같이 명성을 얻는 진시황제나 알렉산더 대왕, 스티브 잡스 그리고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게 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죽고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 영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수많은 것을 투자합니다. 예를 들어서 보면,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해 좋은 화장품, 좋은 보약, 몸매를 고정시키는 기능성 속옷,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수술 등이 있습니다.
더 나가서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를 찾습니다. 옛날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 서불에게 명하여 500명의 선남선녀를 대동하여 불로초를 찾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모양만 다르지 불로초를 찾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제도 50세도 못되어서 죽은 아이러니컬한 일을 만났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다 누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만 대부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것들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쉼 없이 수고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것들을 얻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피해의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각 사람들에 따라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처럼 귀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쓰레기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소유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만들어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정말 귀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4절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사람의 유한함을 비해 땅은 영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역하던 땅과 길들은 변함없이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왔다 갔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사람의 연수가 길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시 90:10). 그 후에는 죽어 땅에 묻힘으로써 그 존재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땅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라는 말은 태어나고 죽는 일이 계속됨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지만, 한 인간의 삶은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명시합니다. 사람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태어나고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들이 무한한 만물을 향해 탐욕을 불립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수중에 넣을 것인지, 더 많은 것을 누가 획득할 수 있는지, 수많은 보석, 많은 땅, 높은 직위, 많은 학식 등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만물은 피곤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이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큰 재앙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5-7절 전도자는 땅과 비교해서 인생의 유한함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현상에 눈을 돌립니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해는 뜨고 짐으로써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고 끝나지만 실상 오늘은 어제와 같은 하루의 반복일 뿐입니다. 바람은 임의로 이리저리 불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자연 현상의 변화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전도자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덧없음과 단조로움, 즉 아무런 목표도 성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8-10절 아무리 좋은 컴퓨터를 구입했더라도 6개월 후에 새로운 제품이 나와서 후회스럽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것들 중에는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굉장히 새로운 것 같지만, 겉모습만 바꾸어질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새로운 유행과 새로운 스타일을 찾습니다. 새로운 아파트, 새로운 가구, 새 전자제품, 새 주방용품, 새로운 자동차, 첨단 컴퓨터 등등... 그러나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진짜 새로운 것은 무엇입니까?
자연 현상조차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가 반복되는 것일 뿐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던 전도자는 이러한 만물의 덧없음을 가리켜 “만물의 피곤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에게 만족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를 가리켜 전도자는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관계된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감각이나 욕구는 늘 새로운 자극이나 만족을 원하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 즉 그 존재의 유한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솔로몬이 이렇게 말한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의 것은 아무런 쓸모없으니깐, 이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이나 기도원으로 가라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에 목적으로 두고 세상의 것에 낙을 두는 사람들은 ‘헛된 것’을 쫓아가는 거란 것입니다. 무지개를 좇는 사람들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11절 기억은 불멸을 가능한 하나의 형식입니다. 따라서 ‘이전 것들에 대한 기억함’과 ‘그것을 실천해야 할 세대들은 없습니다. 우주의 영원성에 대비되는 인간의 무상성을 극명하게 다시금 자각하게 합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간구하고 있습니까? 혹시 솔로몬이 체험한 후에 ‘헛되다’고 한 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바울사도도 이러한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8). 당신은 이 배설물을 얻기 위해 좇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삶속에 적용]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만족하십니까?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빈 공간을 예수님으로 채울 때에 그때 주님이 내 마음에 좌정하셔서 나의 인생을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바꿔주시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쫓아왔습니까? 영원히 편지 않고 진정한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마지막 때까지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까지 당신에게 남아 있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찾아 떠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202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