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혜의 책읽기/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헬렌 니어링 《소박한 밥상》

[류인혜]

연재수필 / 문학시대 / 류인혜의 책읽기 9 / 2020년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 헬렌 니어링 지음, 공경희 옮김, 《소박한 밥상》, 디자인하우스, 2016.

류인혜

주부가 담당하는 큰일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식구를 먹이기 위해서 만들던 요리는 심각한 의무였다. 주변에 널린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조리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만들어낸 음식들은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바에는 턱없이 멀었다. 그런데도 주부의 역할에 충실히 하려고 애를 썼다. 많은 요리책을 읽으며 만들어진 요리를 상상했고, 잘 만들 수 있다는 의지도 갖췄다.

이제는 내가 먹기 위해서 상을 차린다. 점점 통과하기 쉽지 않은 난관이 생긴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을까, 시급한 일이 되었다. 당장 먹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함께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기 위해서 큰 냉동고까지 장만했다. 혼돈의 시간을 보내며 이 책이 생각났다. 혼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고 싶었다는 마음에서다. 간단하면서도 필수 영양분이 균형을 이룬다면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01년에 발간된 초판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이미 절판이 되었다. 2006년쯤에 샀던 그 책은 이미 우리 집 서가에서 사라졌다. 얼마 전 다시 중고서점에서 사 온 책은 2016년에 발간된 1판 24쇄 본이다. 2018년 새로운 편집으로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책을 읽기 원한다면 가장 최근에 나온 개정판을 권하고 싶다.

저자는 요리책을 발간한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내 요리책에 포함될 조리법은 가능한 밭에서 딴 재료를 그대로 쓰고, 비타민과 효소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낮은 온도에서 짧게 조리하고, 가능한 양념을 치지 않고, 접시나 팬 등의 기구를 최소한 사용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기로 했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또 날 것일수록 좋고, 섞이지 않을수록 좋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준비가 간단해지고, 조리가 간단해지며,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된다. 그러니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소탈한 음식에 관해 기술하고, 문명화된 도시를 무리 지어 떠날 새로운 세상의 젊은 미국인들을 위해 경험과 시간, 돈, 재료가 부족해도 영양을 잘 섭취하며 살아나갈 방법을 전수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 될 것이다.

저자의 목적 속에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많다. 준비가 간단하고, 양념을 치지 않아 조리가 간단하며, 소화가 쉬우면서 영양가는 더 높고, 건강에 더 좋고, 돈도 많이 절약되는 음식들. 덧붙인다면 음식물 쓰레기가 없거나 아주 소량으로, 쉽게 조리가 가능한 요리를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해온 요리책은 좋은 종이와 지면을 꽉 채운 큰 사진들이 담긴 화려한 편집이다. 또 음식 재료의 정확한 개량이 필요한 듯 주눅이 들었다. 어느 유명한 요리연구가의 새로운 조리방법은 번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사진과 번거로운 과정이 많은 요리책과는 달리 이 책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소신 있는 생활방식에 대한 철학과 먹을거리에 대한 겸손한 마음이 들어있다.

저자는 또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이미 발간된 수많은 요리책을 찾아내는 수고를 하였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을 수없이 인용해 두었다. 그것들은 적소에 잘 배치되어 본문의 내용을 보완해주고 구체화한다.

내용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소박한 사람들을 위한 소박한 음식>, 2부는 <소박한 음식 만들기>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외국의 채식인이 권하는 음식들에는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끊임없는 갈등을 준다. 저자가 썩은 음식이라고까지 하는 고기를 계속해서 먹을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단백질이 필요하다는데, 채소만 먹고도 건강하게 잘 사는 저자의 주장을 심각하게 들어볼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와는 음식을 먹는 방법이 다르고 자연의 조건이 다른데 책 속에 나온 수많은 낯선 채소는 어디에서 얻으며, 이 사람이 주장하는 생활방식을 따르려고 식생활을 무조건 바꾸어야 할 것인가?

또 저자가 주의하라는 음식은 지금 우리들의 현실인 간편식이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인이 건강에 좋지 않고 수상쩍은 음식인 ‘간편식’을 매일 대한다는 게 큰 문제다. 슈퍼마켓에 갔을 때, 조리된 감자나 도넛, 인스턴트 푸딩, 샐러드드레싱, 소금 절임 한 음식, 탄산음료, 방부제, 피클, 튀긴 음식, 조미로, 흰 밀가루로 잔뜩 부풀린 빵, 백설탕, 사탕류는 구입하지 말자. - 84쪽에서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 속의 요리와 살아가는 방법을 다 따라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처한 환경에서 소박하게 간단히 살겠다는 큰 계획만 세우고 세세한 부분은 생략하면 된다. 구하기 쉬운 가까이 있는 것들로 최소한의 조리법으로 식성에 맞추어 만들어 먹으면 된다.

헬렌 니어링은 또 채소를 다듬고 씻는 법과 조리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그녀 조리방법을 조금만 배워보자.

나는 개수대나 식탁에서 신문지를 펴고 채소를 다듬는다. 흙이나 자른 부분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퇴비 더미에 던진다. 신문지를 재활용하고, 개수대와 하수구를 깨끗이 쓸 수 있으니 환경보호에도 좋다.

잎이 있는 채소는 가능하면 흐르는 물에 씻는다. 채소를 오랫동안 물에 담그면 안 된다. 잎을 툭툭 떨어서 곧장 체에 밭치거나 냄비에 담는다. 당근이나 감자는 물에 담근 채 손이나 솔로 흙을 씻어 낸다. 무에 묻은 흙을 씻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껍질에 상처가 생기면 나중에 조리할 때 색이 변할 염려가 있다. 셀러리와 근대는 줄기 밑면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씻어 낸다. 아스파라거스는 흐르는 물에서 문지르고, 양쪽 끝을 자른다. 대파는 찬찬히 살펴서 파 안쪽에 흙이 남아 있지 않도록 꼼꼼히 씻어야 한다. - 174쪽에서

채소는 가능하면 자체의 수분으로 익힌다. 어떤 채소는 두툼한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어 찌면, 물에 씻을 때 잎에 남아 있는 수분만으로도 조리가 된다. 예를 들면 시금치, 양배추, 케일, 비트, 겨자잎, 근대, 무청이 그렇다. 소금기 없는 물을 최소한 이용한다. 콩 같이 마른 종류나 뿌리채소류는 찬물을 붓고 끓이는 게 좋다. - 176쪽에서

음식물의 재료를 직접 길러서 먹고 있는 저자가 소개하는 대부분 음식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골고루 들어간다. 당근 수프를 끓이는데도 당근과 함께 셀러리, 양파, 토마토가 들어가고 토마토 주스를 넣어 국물을 잡는다.

가장 간단한 수프는 완두콩으로 끓인 것이다. 완두콩에 물을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조리하는 중간에 골파를 다져서 넣고 한 번 더 끓이다가 블렌더(도깨비방망이를 사용하면 쉽다)에 갈아 걸쭉하게 만들어서 물을 조절한 후 남겨둔 콩으로 장식하여 먹으라고 한다. 재료가 많지 않은 음식물을 원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것이다.

그런 수프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신 국을 끓인다. 멸치의 비린내를 날리고 물에 넣어 끓이다가 된장을 풀고 배추를 넣는 가장 간단한 조리법이다. 나중에 잘게 썬 파를 넣으면 끝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요리를 간단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백 선생의 당근 팥죽을 보았다. 제주도 특산물인 당근을 잘게 썰어 익힌 후 갈아서 끓이다가 쌀가루로 농도를 맞추어 간을 한 것이다. 그 위에 팥 삶은 것을 얹어 섞어 먹는다. 이 요리도 저자의 완두콩 수프처럼 간단하다.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들어 두어야 하고 팥을 잘 삶아서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숨어 있지만 그래도 아주 간단하다.

《소박한 밥상》에서는 스스로 경작한 채소를 먹으면서 가장 자연과 가깝게 산다는 것이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한다. 저자가 살던 시대는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의 남편 스콧 니어링도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저자 헬렌 니어링에 대한 소개다.

1904년, 뉴저지 릿지우드의 중산층 지식인인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고 채식을 실천하는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채식인으로 성장한다. 1928년 헬렌은 남편 스콧 니어링을 만난다. 그는 왕성한 저술과 강연으로 존경받는 교수 출신이었으나,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반전 운동을 벌인 명목으로 당시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다.

마음을 합한 그들은 도시를 떠나 1932년, 버몬트의 한 낡은 농가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연과 하나 되는 ‘조화로운 삶’을 살기 시작되었다. 그러나 항상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삶의 매 순간을 치열한 각성 속에서 살아갔던 그 두 사람의 생활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귀농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때, 도시에서 매연과 함께 간편식을 먹으며, 언젠가는 조용한 시골에 가서 편안하게 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생활은 잔잔한 희망을 주고 있다. 최소한의 식자재를 가지고 만족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소박한 밥상》을 수시로 뒤적거리며 읽는다.

그 책을 읽어가며 내 생활에 적용한 것은 음식 재료를 남김없이 사용하는 일이다. 먼저 뿌리와 껍질까지 다 먹어치우는 용기를 내었다. 먹을 수 없는 거친 부분들은 모아두었다가 육수를 낼 때 사용하고, 단단한 줄기는 가늘게 잘라서 찌개에 넣고, 배추 대도 버리지 않고 다져서 볶음밥에 넣는다. 땅에서 나온 그대로 모든 채소를 남김없이 먹는 훈련을 하고 있다. 물론 좋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고기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