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순희의 손이 고길수의 바지 지퍼를 열고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를 뿌리치고
일식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맹순희를 좋아한 적도 없는 고길수였다. 늘 맹하던 그녀가 섹시하고 야성적으로 변했다고 해서,
호국 전자의 사장이라고 해서 그녀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 배신하면 계속 배신하게 되는 게 생리였다.
짧은 인생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길수씨,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어. 호국 전자 사장으로서가 아니라
길수씨를 좋아하는 여자로서 말이야.'
이천으로 돌아가는 고길수의 휴대폰에 맹순희가 보낸 문자가 찍혔다.
고길수는 한참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지웠다.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일주일이 흘렀다.
대일 전자 본사 직원들은 물론 지사 직원들 역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정말이세요?"
전화를 받던 이소정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오후 3시까지 가겠습니다."
지사 직원들이 일제히 흥분한 이소정을 쳐다봤다.
"변 대리님, 계약하재요."
매사 의욕을 잃어 의기소침해 있던 변강호의 귀가 번쩍 열렸다.
"어, 어디서요?"
"동해 건설이에요. 계약서 준비해서 오늘 3시까지 오랍니다."
변강호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발랑 뒤로 넘어졌다.
"사실입니까?"
변강호는 오주영과의 섹스 사건으로 인해 동해 건설 계약건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변강호는 임달호와 함께 계약을 하기 위해 강릉 동해 건설로 향했다.
지사장인 변정아는 서울에서 아예 출근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동해건설 회의실에 도착해보니 사장을 비롯해 임원들과 함께 오주영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변강호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오 부장의 적극적인 추천이 아니었으면 성사되지 못했을 겁니다."
계약이 성사된 기념으로 저녁 식사 자리가 만들어졌다. 횟집으로 정해졌는데 방으로 들어서는
순서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면서 우연찮게도 오주영이 변강호의 곁에 앉게 되었다.
"고마웠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할 거 없어요. 빌트밥이 매력적이었을 뿐이니까."
오주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변강호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주영의 손이 잠깐 떨렸다.
그녀는 변강호의 손을 슬며시 밀어냈다.
대일 전자의 '빌트밥'이 동해 건설 아파트에 빌트인 된다는 사실이
국내 모든 경제 신문에 대서 특필 되었다.
'빌트인의 새로운 신화 창조 - 대일 전자 새롭게 태어나다.'
동해 건설과의 계약이 성사된 후 변강호는 수없이 축하 전화를 받았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건 병상에 있는 변승우가 직접 축하 전화를 한 것이었다.
동해 건설과의 계약은 변강호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줄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변장수는 의자에 앉아 스모그로 뿌옇게 물든 서울을 내다보고 있었다.
중국에 론칭한 '꼬까'라는 의류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팔리고 있었다.
건설 경기가 침체일로를 걷고 원단과 의류가 활성화되면 대일그룹의 회장 자리는
따놓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게 있다면 누구보다 경계했던 변강호가 과장으로 진급된 후
서울 전자 본사로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천 지사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전자 본사
기획실로 올라왔고 지사장으로 있던 변정아는 그대로 이천에 남게 되었다.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변정아를 공미라는 가볍게 생각했다.
"사장님, 양 사장이라는 분이 오셨는데요."
"들여보내."
양동탁이 안으로 들어왔다. 변장수가 그를 아래위로 한 차례 훑어봤다.
"…사고 낸 말레이시아 인부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현장 인부들 말만으로 확인해 봤을 땐 사고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양동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변장수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아냐, 뒤가 구려, 구려도 한참 구려. 황 상무 조사는?"
"매달 일정액을 대학에 있는 어떤 여자 아이한테 송금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직접 만나는 건 목격을 못했지만 친인척 관계가 아닌 걸 보면 은밀한 관계라는 건데…."
양동탁이 여자의 사진과 이름 등이 적힌 서류를 변장수에게 내밀었다.
"공미라는?"
"워낙 공부만 한 사람이라 좀 조사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남자관계는 아주 깨끗했습니다.
뒤로 숨긴 재산도 없었습니다.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추측하건데 혹시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나는 남자는 없는데 만나는 여자들은 좀 있습니다."
양동탁이 사진과 함께 여자들의 신상조사서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말을 끝맺었다.
변장수의 눈가에 희미하게 웃음이 서렸다. 그는 속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양동탁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은 양동탁이 그의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변정아가 득달같이 뛰어 들어왔다.
"오빠,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오빠 말만 믿고 나 이천에 가서 있었어. 그런데 이게 뭐야?
다른 사람들 다 서울로 올라오는데 나만 이게 뭐냐고?"
"자업자득이야. 그러게 누가 놀러만 다니래?"
"놀러 다니다니? 누가 그런 소릴 해. 나도 전자 살리려고 사방으로 뛰어 다녔다고."
변장수는 귀찮다는 듯 자신의 책상으로 가 앉았다.
"낙동강 오리알 됐으면 오빠가 책임져야할 거 아냐."
"그럼, 그만 둬."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아버지한테 이야기 해봐야 욕만 먹을 거다."
변정아가 소파에 털썩 주저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미라 이 계집애를 내가 가만히 두나 봐."
변장수의 계산이기도 했다. 사사건건 공미라의 일을 변정아가 방해하도록
만들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이천 공장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원가에서부터 하청 공장 유통구조 등을 파헤쳐 본 전략영업부 직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기적에 가까운 대책이 필요했다.
'설마 회장님께서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모르고 계셨을까?'
변강호는 그게 의문이었다.
반면, 심각한 부서 분위기와는 달리 신정하는 혼자서 신이 났다.
신정하는 이천공장에 서 있었던 변강호의 활약에 대해 과장되게 떠벌리고
다니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정말로 열 명이 한 순간에 나가떨어졌다니까.'
'나는 우리 변 대리님이 장풍이라도 쓰는 줄 알았어.'
말이란 게 돌고 돌면 부풀려지기 마련. 신정하의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까지 덧붙여 또 다른 사람에게 변강호의 얘기를 전했다.
그 덕에 변강호는 하루아침에 장풍을 쓸 줄 아는 영웅이 되어있었다.
"장풍으로 조폭들을 물리쳤다면서요, 저도 장풍 좀 배울 수 없을까요?"
총무부의 한 대리가 심각한 얼굴로 변강호를 찾아와 그렇게 물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지만 변강호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영웅 대접을 받으며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었다.
우선은 망해가는 대일 전자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본사에서는 대일전자의 부도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듯했다.
어찌 보면 하루라도 빨리 골칫거리인 대일 전자를 정리하고 싶은 게 본사의 의도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변강호에게 오기가 생겨났다
다 망해가는 회사에 자신을 보낸 것도 형님들의 술수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변강호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라고 있었다. 변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천공장을 살려내고야 말겠다! 변강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성대근이었다. 기획실로 발령받아 올라간 뒤로 처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성대근은 변강호와 대학 동기이면서 입사 동기이기도 했다.
한때는 서로 라이벌이었는데 지금의 성대근은 변강호를 저만치 따돌리고 혼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판이었다.
"어쩐 일이냐?"
변강호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야, 변강쇠, 내일 HSH 모임 있는 거 알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변강호의 별명이었다. 성대근이 별명을 부를 땐 대단히 사적인 모임이라는 뜻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내일 몇 시?"
"요즘 우리 강쇠 어른께서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이네. 이번에 네 차례인데 설마 잊은 건 아니지?
천하의 변강쇠가 설마 여자 하나 못 꼬드기겠어? 요즘 전략영업부가 소란스러워서 혹시
잊어버렸을까봐 연락 주는 거니까 너무 고마워하진 말고. 내일 거기서 보자."
전화를 끊으며 비웃는 성대근의 얼굴이 그려졌다. HSH란 두 달에 한번 정기 모임을 갖는
'호색한 클럽'의 약자였다. 클럽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여자를 꼬드기는 것이었다
동해 건설 담당 과장과 통화를 끝낸 변강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델하우스에 계약하러 왔던 입주자들의 빌트밥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서 난리랍니다."
변강호가 기획실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기획실에는 지사 직원들과 새로 두 명의 사원이 더 보강되었다.
둘 다 여자였는데 공미라가 아끼는 인재들이었다.
컴퓨터 아트를 전공한 나희라와 심리학을 전공한 김은주가 그들이었다.
"변 과장님, JC홈쇼핑엔 언제 가실 거죠?"
"허, 참. 갑자기 바빠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내일 저녁에 갑시다. 약속 좀 잡아 주세요."
"몇 개 안 들어간다고 해서 뉴타운 일반 주택 단지도 소홀히 하지 마. 돈 많은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소문 내주면 그게 대박날 수도 있거든."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임달호가 변강호에게 말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나를 왜 기획실로 끌고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영업이나 하라고 하지."
변강호는 싫지 않았다.
"바람이 없는 판국에 누가 기획하고 누가 영업하고가 어딨어."
임달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사장도 영업을 위해 뛰어 다니고 있었다.
변강호는 일정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독주택 사업자들과 약속이 잡혀진 때문이었다.
"변 과장님, JC쇼핑과 약속은 모레 저녁 5시로 잡았습니다."
이소정이 변강호에게 일렀다.
'이게 다 까다로운 오주영이 덕인데 무슨 변덕이 나서 계약을 성사시켰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건 아닐까? 분명 뭐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정신없이 지내느라 그제야 변강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오주영을 다시 만나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막 본사 사무실을 나오고 있는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성대근이었다.
"내일 약속 시간 한 시간 늦어졌다."
호색한 클럽 멤버인 삼송그룹 우수영의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가 있었다.
"난 절대로 장가 안 간다. 왜 그 지옥엘 뛰어 들어 가냐."
변강호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아무튼 내일 8시야."
변강호는 성대근과 통화를 끝낸 후 전동차 역사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전동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서서 담배를 꺼내 무는데 휴대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변 대리? 아니 이젠 승진했으니 변 과장이라고 해야지? 축하해."
큭, 하성애였다.
"부산에는 빌트밥 팔러 안 와?"
"다음 주에 출장이 잡혀 있습니다."
"해모수 건설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부산에서 일어나는 일 모르면 하성애가 아니지. 안 그래?"
어쩐 일인지 그녀의 전화를 받고도 그다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건설업자들과 어울려 술 먹고 쓰린 속을 달래느라 변강호는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고 있었다.
홀로 휴게실로 들어서던 임달호가 변강호를 발견하고는 못 본 척 다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차장님."
변강호가 임달호를 불렀다. 임달호가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변강호 곁으로 다가와 섰다.
변강호는 슬쩍 임달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 군데군데 상처를 감춘 밴드가 붙어 있었다.
"차장님, 얼굴이 왜 그래요? 얼굴에 상처도 생기고 며칠 전부터 수상했습니다.
혹시 바람피우시는 거 들켜서 사모님한테 할퀸 상처?"
변강호가 농담을 지껄였지만 임달호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사실 나 이혼했어."
커피를 마시던 변강호는 사레가 들어 연신 기침을 해댔다.
"언제…."
"나 차장으로 승진하던 날 도장 찍었어."
"그럼 진짜 사모님한테 들킨 겁니까?"
임달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동탁의 사주를 받은 이강재가 임달호를 협박했지만 소용없었다.
조폭의 마누라임을 알게 된 후에 임달호는 오히려 더 숙희를 절절히 사랑하게 된 게 문제였다.
얼굴의 상처도 양동탁의 수하들에게 얻어터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며칠간 임달호는 걸음도 이상하게 걸었고 매사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얼굴이랑 갈비뼈 아픈 건 참을 수 있어. 마음이 아파서 안 만날 수가 있어야지.
그 놈들 그런 후에도 만났지.
그랬더니 마누라한테 숙희씨하고 같이 있는 사진을 보낸 모양이야. 그래서…."
"아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차장님, 그 놈들 연락처 있어요?
엄연히 법이 있는데 그런 양아치 같은 놈들을 그냥 놔뒀어요?"
변강호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임달호가 피식 웃었다.
"어쨌든 나한테도 책임은 있지. 하지만 그 놈들이 나를 숙희씨한테서 떼어낼 순 없어."
"조폭이라면서요?"
"난 그런 놈들 하나도 두렵지 않아."
당차게 이야기하는 임달호의 눈이 이글거렸다. 변강호는 문득 그가 부러웠다.
"숙희씨는 뭐래요?"
"만나진 못했어. 전화 통화만 했는데 그냥 미안하다면서 울지 뭐….
어떡하든 그 조폭 같은 놈 손에서 숙희씨를 빼낼 거야."
조용히 주먹을 쥐는 임달호의 각오가 단단해 보였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통화를 시작한 임달호의 얼굴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창백해졌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더러운 놈들이 글쎄 전 마누라와 딸아이를 납치했다는 거야."
"납치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던 변강호는 서둘러 제 입을 막았다
호색한 클럽 멤버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단순했다.
순번이 돌아오면 클럽 멤버들이 지적하는 여자를 꼬드겨 침대로 데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실패하면 그날 술값을 모두 지불해야 하고 성공하면 나머지 멤버들이 술값과 호텔 숙박비를 지불했다.
변강호는 한 동안 여자를 꼬드겨 본 일이 없어 적잖이 걱정이 앞섰다.
그러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S라인 에스테틱'에서 근무하는
검은 원피스의 여자. 강남에서 안국동 본사로 부서가 옮겨진 뒤 한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와 말 한마디 못 해보고 강남을 떠나온 것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나도 나이를 먹나? 불같은 열정아, 다 어디로 갔냐.'
변강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뭐든 쓰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인데.
성대근이 전화까지 한 걸 보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했다. 지난 모임 때는 성대근이 순번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멤버 중 물건이 가장 크다는 성대근이 여자를 유혹하는데 실패했다.
그렇게 좋은 물건을 가지고도 여자에게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변강호가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 경종을 울리듯 임달호가 소리쳤다.
"고길수씨, 이 엄청난 재고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 그 묘책을 먼저 생각하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겁니까?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겁니다."
서류를 내미는 고길수를 올려다보던 임달호가 책상을 꽝 내려쳤다.
"최소한 코드 공급하는 공장이랑 금형 공장을 바꿔야 뭐든 새로운 제품이 나오겠는데요.
쓸 만한 하청 공장 직접 찾아다니며 확인한 후 리스트를 뽑아 본 겁니다.
유비무환 아니겠습니까. 미리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고길수가 직원들을 둘러봤다. 변강호를 비롯해 다른 직원들은 아예 고개를 처박고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맹순희만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과장님, 고길수씨 말도 일 리가 있는데요."
맹순희가 고길수를 거들고 나섰다. 변강호는 더 큰 사단이 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변강호, 너는 어디 가? 화장실 가냐?"
"점심 먹은 게 영 이상해서요."
고길수나 맹순희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싶은지 임달호는 변강호를 걸고 넘어졌다.
변강호는 슬금슬금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옥상으로 올라간 변강호는 서울 시내를 둘러보았다.
담배를 꺼내 무는 변강호 옆으로 이소정이 다가왔다.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변강호는 가슴 파인 옷을 입은 그녀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봤다.
이소정의 얼굴이 어두웠다.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신정하 뿐이었다. 고길수나 맹순희 역시 매일반이었다.
"대일 전자를 살릴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들이 아니라…."
이소정은 고개를 저었다. 대일 그룹의 회장인 변승우가 아직도 전자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살아날 가능성도 있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오늘 과장님께서 군기가 빠졌다고 회식 하신다던데요?"
"술 마시면 뭐 나오겠습니까? 전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잡혀있어서."
아쉽지만 이소정을 옥상에 남겨둔 채 변강호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ㅋ 여기서 맹순희가 왜 나와요 무슨 전자 사장이라면서요ㅠㅠ 집중이 안되는데 읽는 나도 ㅋ 여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