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톨릭주보에 좋은 글이 실려서 이를 소개합니다. 깊이 뿌리내린
화해와 평화를 꿈꾸며
카톨릭 신부가 쓴 글이라 생소한 부분도 있을 것인데 이해를 바랍니다.
견원지간이든 독일과 불런서의 위대한 화해와 이의 기초를 놓은 불란서의 쉬망, 아데나우어 그리고 양국의 문화적 에토스를
바탕으로 한 협력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일관계도 안보와 미래를 위하여 이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역대 정권에서 쌓아올린 양국 협력관계가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죽창가나 부르고 국제간 신의를 헌신짝같이 내다버리는 종북.종중 주사파가 재집권하는 날이 만일에 다시 온다면 그 날은 대한민국의 종말이 시작되는 역사적 비극의 날이 될것이라 걱정됩니다.
우리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나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래도 오늘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만... - khc
[도서] 깊이 뿌리내린 :
화해와 평화를 꿈꾸며
2023-04-16
독일과 프랑스는 어떻게 화해해서 유럽연합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유럽에서 얼마 지내보니 더 와닿게 된 물음이었습니다. 두 국가는 1871년 보불 전쟁부터 제1차, 2차 세계대전까지 끔찍한 전쟁을 세 차례나 치른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1951년 유럽석탄철강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유럽경제공동체를 거쳐서 형성된 오늘날 유럽연합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국가가 바로 독일과 프랑스입니다. 이 둘의 화해와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래서 유럽의 여러 동료들과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다양한 답변을 들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역사 인식. 독일은 역사적 반성을 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적대감을 넘어 상생해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를 인식한 것이죠.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입니다.
둘째, 문화적 토양.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에는 용서와 화해라는 에토스, 즉 공동체적 정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유럽의 문화적 토양이죠.
마지막으로 정치 지도자의 역할. 프랑스의 로베르 쉬망과 독일의 아데나워와 같은 이들의 활약이 중요했습니다. 1950년 5월 9일 ‘쉬망 선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쟁 방지와 세계 평화에 대한 독일과 프랑스의 비전은 물론이며, 초국가적인 기구 설치, 아프리카의 발전 도모, 하나의 유럽을 만든다는 계획을 담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쉬망의 보편주의적 비전은 가톨릭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그는 유럽연합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유럽연합에 대한 물음 이면에는 ‘동아시아 평화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먼저 떠오릅니다. 일본의 역사 반성은 독일과 다릅니다.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뿐 아니라 미·중의 패권 경쟁은 화해와 평화 건설보다 진영 논리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신뢰와 복지는 줄고 군비는 늘어나는 미래를 후손에게 남기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미래입니다. 쉬망 같은 정치 지도자가 어딘가에 있을까요? 국가 경쟁을 넘어서 화해와 평화라는 에토스나 사랑과 자비라는 종교적 전통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요?
이런 측면에서 교회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지도자에게만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평신도의 사회적 사명이 중요합니다.
쉬망을 소개하는 책이 『깊이 뿌리내린: 로베르 쉬망의 잊혀진 비전』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망각되는 것을 우려하며 개신교 입장에서 쓴 책입니다. 쉬망이 가톨릭 신앙과 사회관을 어떻게 공적인 삶에서 실천했는가 엿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 토마스의 『동양평화론』이나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이라는 공의회 문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쉬망은 2021년 가경자로 선포되면서 시복시성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는 정치를 하느님 뜻에 따르는 소명과 봉사로 여기고 살아간 평신도의 모델입니다.
김우선 데니스 신부 |
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