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통대회
박상률
팔순 아버지 세상 떠나 장례 치르느라 고향집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재 너머 황토밭에 아버지 집 하나 봉긋하게 지어드리고 장례 때 마음 써준 마을 친구 집에 들렀다. 삼십 리 안짝 사는 옛 친구들 몇 더 모여들어 농촌살이 팍팍함 늘어놓는데,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친구들 한결같이 술은 사양이다. 벌써 몸이 술을 거부하고 그 대신 달디단 커피가 당긴단다. 커피를 홀짝이는 친구들, 내 아버지 유택보다 처음 본 친구의 새 양옥집이 더 궁금하다. 이사했단 말은 들었는디, 이렇게 좋은 집인 줄은 몰랐소. 친구 부인, 가슴께까지 올라가 있던 커피 잔 내려놓고 자기네가 이 집에 살게 된 연유 털어놓는다. 다 이 가슴 덕이지라우. 무슨 소리라요, 제수씨? 소문 못 들었다요? 금시초문인디. 아따 지난 정월 대보름에 농협 젖통 대회 있었잖이유, 그때 나가서 부상으로 이 집 탔단께요. 그럼 젖통으로 집 장만했다는 사람이 제수씨였소? 진짜 몰랐소? 젖통 크다고 집을 준다는 것이 쪼깐 거시기하단 생각은 했제만 제수씨가 탄 줄은……. 이 집 본디 주인 뜬금없이 살던 집 허물고 농협에서 빚 얻어 양옥집 좋게 지었지만 촌살림에 이자 감당이 어려워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했단다. 농협서도 이 집이 팔리지도 않고 사글세로도 살겠다는 사람이 없어 관리하기에 골치깨나 아팠는데 마침 조합원 대회 때 상품으로 내놓자는 의견이 있어 젖통 대회 부상이 되었단다. 나도 아그들 생각하믄 쪼깐 민망합디다만 집 욕심에 두 눈 딱 감고 나가부렀소. 처녀 적부터 고것 한나는 수박통맨치로 컸은께! 허, 그랬구만. 듣고 있던 한 친구 녀석 눈 반짝이며 친구 부인 가슴 슬쩍 훑고 나더니 입맛 다신다. 그런 줄 알았으믄 고등학교 댕기는 우리 셋째 딸년도 내보낼걸. 우리 집 여자들 가운데선 고년 것이 가장 크거든. 제수씨하고도 막상막하였을 틴디. 작년 읍내 마트 행사 때 젖통 대회 나가서도 세탁기 탔잖소. 아직 크는 녀석이라 그새 더 커졌을 것인디……. 글씨, 이참엔 부인들만 출전 자격을 주었는디라. 그라고 갸만 한 것은 인자 쌔고 쌨습디다. 작년까정만 해도 여자들이 여럽다고 그런 대회에 안 나와서들 갸가 세탁기라도 탔겄제. 올 같었으믄 어려웠을 것이요. 그래요? 내 참, 갓난이 같으믄 세 자녀 혜택이라도 받을 것인디, 공부 취미도 없는 우리 딸년 인자 뭐 갖고 상 타제?
- <실천문학> 2010. 봄호
* 박상률 : 1958년 전남 진도 출생.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까치학교>,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구멍 속 나라>, <내 고추는 천연기념물>,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등이 있으며, 소설로는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나를 위한 연구>, 그리고 시집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등이 있음. 계간 <청소년 문학> 편집주간.
첫댓글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그 통이 우리들의 고향이겠지요...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