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펄 시스터즈가 스타덤에 올라 활약하자 신인 가수 지망생들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18세였던 김추자는
아는 후배를 통해 찾아왔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김추자는 다른 지망생들처럼 매일 사무실에 찾아와 대기했다.
당시 나는 바쁜 관계로 거의 3주 동안 오디션을 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시간을 내 김추자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김추자는 온 힘을 다해 불렀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박자가 틀렸고, 떨리는 목소리도 냈다.
그러나 김추자의 목소리가 좋다고 느껴 바로 합격시켰다. 이후 김추자를 위해
신곡을 쓰기 시작했고, 연습에 이어 녹음에
착수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렸다. 데뷔 앨범을 발표한 당시의 김추자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 동양방송(TBC)의 ‘님은 먼 곳에’라는 드라마에서 같은 제목의 주제가를 불러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우리 가요계에 대형 스타로 발돋움했다.” -신중현 회고록중-
신중현사단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김추자의 역사적 데뷔음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늦기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비롯,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는 ′나뭇잎이 떨어져서′ 수록.
LP의 B면에 수록되었던 충격적인 김선의 ′떠나야할 그사람′의 최초버전,
소윤석의 ′소야 어서 가자′는 필청의 싸이키델릭 트랙!
이 음반은 1969년 10월 그룹 ′덩키스′의 반주로 제작된 김추자 데뷔음반이다.
1969년 여름, 김추자는 신중현의 아는 후배를 통해
당시 삼각지에 있던 신중현의 작업실을 찾아왔지만, 늘 그랬듯이 신중현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려 3주를 사무실 구석에서
앉혀놓았다. 그후 신중현은 그냥 테스트나 해보자는 생각에 노래를 시켜보았다.
김추자의 목소리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이에 신중현은 김추자에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작곡해 데뷔시키게 된다.
1951년 1월 2일 춘천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춘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응원단장,강원도 배드민턴·
기계체조 선수였다.춘천향토제에서전통 창인'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하였다.
1969년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다.
대학교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하였고,그 해 신중현의 녹음실로 찾아갔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곡을 주었고,
1969년 데뷔 음반이 발표되었다.가창력과 섹시한 춤을 겸비한 김추자는 197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담배는 청자,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음악적 스타일로 보자면 대부분 신중현이 작곡한 김추자의 음악은 신중현이 추구하던 한국적 록이었다.
사이키델릭 록처럼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와 차별되는 현대적인 음악에 한국적인 요소를 섞은 음악이었다.
예를 들어 데뷔곡 '늦기 전에'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소울과도 같지만 후반부에는 판소리 창법이 도입되었다.
주먹세계에 꽤나 알려진 전 아마추어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인 소윤석도 신중현의 곡으로
김추자 데뷔엘범 B면에 세곡을 실어 데뷔했는데,
후에 김추자의 애인겸 매니저를 자처하며 이른바 그 유명한 김추자 소줏병 테러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탔고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김새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저음이 인상깊다.
음반 B면은 뭐니 뭐니 해도 김선의 "떠나야할 그사람"이라 말할수 있는데,
7분이 넘는 사이키델릭 대곡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수 있겠다.
음원- 김추자 데뷔엘범(1969)LP 초반 추출곡
1. 김추자 -늦기전에
신중현 작사.작곡/신중현과 덩키스 연주
2.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이하. 클릭/재생)
3. 나뭇잎이 떨어져서
4. 가버린 사람아
5. 나를 버리지 말아요
6. 알수없네
7. 떠나야할 그사람(김선)
8. 잃어버린 친구(소윤석)
9. 소야 어서가자(소윤석)
10. 웬일일까(소윤석)
첫댓글 ㅎ. 저도 이음반 지금 작업중입니다. ^^
사려 보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