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신 예수님 (막 6:1-6)
1. 고향에 가신 예수님입니다.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주 예수님도 고향에 가셨다니 좋으셨겠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편하고, 언제나 따뜻하고, 어제나 포근한 게
마치 친정엄마 품, 친정아버지 가슴 같지요
우리 한 장로님은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74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화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 예수님이 낙향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뜨금없이 자기 고향으로 가신 이유는
- 고향이 그리워서?
- 사역에 실패하여서?
- 귀농귀촌의 꿈이 있어서?
== 1.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1절에 ....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주님이 사람들을 피하신 일은 왕왕 있었습니다.
마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마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마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마 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마 19:15 그들(어린아이)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마 21: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주님은 사람의 힘이 과열되는 곳을 피하십니다.
인간 구원의 주로 오셨지만 사람의 힘이 득세하면 피합니다.
우리도 어디든 인간 냄새나는 곳을 피하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도 사람 잡음 나는 곳에서 벗어 나고 싶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은 – 주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곳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는 곳에 주님이 임하십니다.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주님이 임마누엘하십니다.
주 예수님이 계시기 원하십니까?
주 예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해 보세요
주 예수님을 요청하십시오.
주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신 이유는?
== 2. 고향의 구원을 위하여입니다.
1 고향으로 가시니
주 예수님은 고향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고향에 가셔서 무장해제하고 쉬고 친구 불러 놀고 아니함
주 예수님은 고향에 귀성객이 아닌 구원의 주님으로 가신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눈으로 보시면 고향에서의 주님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세계 열방 모든 민족, 모든 방언의 구원자이시지만
고향 나사렛에도 구원자로 임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주님의 고향이든 어디든 구원의 주님입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곳 세계 어디든 구원의 주님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이든 유다든 사마리아 땅끝까지도 구원의 주님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서울 용산이든, 여기 홍천이든 구원의 주님입니다.
우리는 이곳 홍천에서 구원의 주로 임하신 주 예수를 환영합니다.
사람이 모인 곳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3. 제자들은 따릅니다.
제자들도 따르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그들도 예수님 고향으로 간 것입니다.
고향으로 가시는 주님은 제자들이 따르도록 용인 한 것입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따름을 당연시 했고 되려 명했는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의 삶은 이미 자기 삶을 예수님께 빼앗겨 보입니다.
제자들의 삶은 자기 삶이 포기되고 예수님께 매여사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고향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따랐다?
- 예수님이야 ‘자기 고향이기에’ 라는 명분이 있지만
제자들은 왜 그곳에 갑니까? 그곳을 왜 따라갑니까?
제자들은 대부분 서른이 넘었고 가정도 있는 제자도 있는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이 따라오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을까요?
주님은 왜 제자들이 주님 따르는 것을 용납하셨을까요?
주님은 사람들은 피하시면서 왜 제자들은 따르게 놔두셨을까요?
== 그것은 제자들이 특별했기에입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특별했을까요?
= 제자들은 주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특별합니다.
= 제자들은 말 그대로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특벽합니다.
= 제자들은 그런 삶과 그런 인생으로 부름받음으로 특별합니다.
??이런 제자들은 행복했을까요? 불행했을까요?
== 제자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최고로
베드로와 제자들은 물고기 낚는 것을 포기 사람을 낚는자
마태와 제자들은 세무원을 포기 마태복음 등을 기록
자기 삶이 포기되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세상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는 사람입니까?
??여러분도 어디서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그런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특별한 여러분입니다.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하나님께는 특별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로서 특별합니다.
주 예수님을 배우는 제라로고 특별별니다.
주 예수의 사람으로 부름받음으로 특별합니다.
주 예수님의 생명과 구원이 여러분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가는 이 길이 좁고 험해도
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1.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보기에 좁고 험하며
찾는 이 매우 적어서 외로웁지만
이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셔
우리를 그 품에 안아 주시리
세상 사람들 우리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조롱하지만
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2. 우리는 함께 이길을 선택한 형제 자매요
영원한 주의 나라의 백성이기에
서로도우며 서로 손을 잡아주며
이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세상 사람들 우리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조롱하지만
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4. 예수님의 행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에는
- 그때나 지금도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그들에게나 우리게나
독 같은 애정과 보조와 능력으로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같은 일을 같은 능력으로 행하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주님은 행하셨고 많이 사람을 듣고 놀랍니다.
사람들은 놀라워 합니다.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합니다.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런 예수님의 놀라운 행하심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요.
예수님은 고향이라고 더하고 덜하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사랑과 권능으로 일하셨습니다.
같은 말씀 가르치고, 같은 능력으로 고치고, 같은 열정으로 천국선포.
주 예수님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님은 여기에 누구나 똑같이 사랑하고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 누구라고 더 사랑하고 이방인이라고 덜사랑? 없습니다.
- 믿은 지 오래되었다고 더 요구하고 초신자라고 덜 요구? 없습니다.
- 교회 직분이 있다고 더 주고 교회 직분이 없다고 덜 주고 없습니다.
주님은 누구나 다 크게 사랑하시고 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다 말씀하시고 응답하시고 요구하십니다.
다만 굳이 차이가 있다면?
심은 대로, 드린 대로, 충성됨의 차이입니다.
- 믿음으로 심은 것에는 심는 차이만큼의 더 거둠이 있고
- 믿음으로 드린 것에는 드린 차이만큼의 더 맏음이 있고
- 충성한 만큼의 차이가 열매로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만일 심은 자나 안 심은 자나 같다면 공평이 아닌 역차별입니다.
사회주의가 무조건 공평? 성경적이 아닙니다.
공의롭고 공평하시고 정확하신 하나님은
심은 대로 더 나게 하십니다.
드린 대로 더 받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심고 드리고 충성해야할 이유입니다.
이렇게 차별이 없으신 주님이시니 주님을 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평하신 주 예수임이시니 주님을 시험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공의로우신 주님이시기에 나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됩니다.
주 예수님께 내 삶의 모두를 드리고 매어 살겠습니다.
사람들은 늘 예수님은 오해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경험으로, 선입견으로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자기 생각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 자기 통념으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주님을 잘 모를수록 다 주님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실수하고 악에 처합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크게 오해합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예수님을 왜곡시켰습니다.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합니다.
‘그의 형제와 누이들이 여기 있지 않느냐’ 합니다.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3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을 배척한지라...’
얼마나 화나고 위험천만한 모습입니까?
우리는 나 자신을 부인할지라도 주 예수님을 멀리하지 맙시다.
우리는 죄는 배척할지라도 주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단은 배척해도 주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설령 맘에 안 든 사람을 배척해도 주 예수님 환영합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예수님은 사람 눈으로 볼 때 나와 상관 없어 보입니다.
목수의 아들, 이스라엘 청년, 정치적인 희생 양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눈으로 볼 대 예수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성경이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바
예수님은?
1. ‘성령으로 난 자’입니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 ‘나의 하나님’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성령으로 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이 말씀으로 오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배척될 때 예수님은 제한받습니다.
우리에게서는 예수님이 제한 없이 일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일하심에 제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우리에게는,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주 예수님이 제한 없이 일하여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존경하면 주 예수님은 제한 없이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면 권능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면 주님은 천국을 펼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이 언제나 어디서나 제한 없이 일하시기 원합니다.
주 예수님 우리 교회에 제한 없이 일하여 주소서
주 예수님 나에게 제한 없이 일하여 주소서
주 예수님 환영하오니 오셔서 나를 제한 없이 가르치소서
주 예수님 믿사오니 손 내미사 제한 없이 고치소서
주 예수님 의지하오니 말씀하사 제한 없이 천국을 선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