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 '세계관(Universe) 마케팅'...제품보다 '브랜드 스토리' 팔아라
“‘카카오 유니버스(Kakao Uni verse)’가 활성화돼 전 세계인을 관심사 기반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면 장기적으로 ‘비욘드 코리아’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 6월 7일 온라인 기자간담회)
“신세계만의 디지털 생태계인 ‘신세계 유니버스’를 만들어 그룹의 콘텐츠와 자산을 모두 연결해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올해 신년사)
최근 유통 업계에서 ‘세계관 마케팅(Universe Marketing)’이 대세로 떠올랐다. 너 나 할 것 없이 ‘○○○ 유니버스’를 내세우며 브랜드만의 자체 세계관을 선보인다.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가치관을 보여주고, 이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팬덤을 형성,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단, 차별화된 세계관과 충분한 콘텐츠 없이 남용하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세계관 마케팅이 뭐길래
▷제품·서비스에 담긴 브랜드 내러티브
세계관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적 세계와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다. 한마디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며,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도 내포한다.
반면 브랜드들이 펼치는 세계관 마케팅은 ‘내러티브(서사)가 있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메타버스(가상 세계)’라 할 수 있다.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 철학이 투영된 캐릭터나 서사를 내세워 독자적인 가상 세계를 구축하거나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세계관 마케팅의 대표 주자로는 애플과 무인양품이 꼽힌다. 애플은 다소 비싸지만 고급스럽고 혁신적이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을, 무인양품은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이 같은 브랜드 세계관은 이들이 선보이는 제품에 일관되게 투영돼, 늘 ‘애플다운’ ‘무인양품스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브랜드가 세계관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러운’에 동의하거나 호감을 갖는 소비자로 하여금 브랜드에 팬덤을 형성하게 해 충성 고객으로 ‘락인(Lock-in)’ 되는 효과를 노리는 것. 특히, 애플은 ‘앱등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과 기능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은 브랜드에 대한 팬덤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는 경쟁사에 비해 제품이나 가격 경쟁력이 다소 떨어져도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세계관을 반영한 굿즈를 팔거나 신사업에 진출해 부가적인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일례로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벅스의 경우, 굿즈 매출이 전체의 약 1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관 마케팅 나선 기업들
▷유니클로 카페·구찌 식당 ‘체험 공간’
상황이 이렇자 국내외 기업들은 잇따라 세계관 마케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유형은 여러 가지다.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 세계관이 담긴 물리적 공간을 운영하는가 하면, 세계관이 투영된 이종 제품을 선보이거나, 때로는 신사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전자의 예는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일본 의류 대기업 유니클로는 지난해 9월 도쿄 긴자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을 리모델링 후 재개장하면서 건물 최상층(12층)에 ‘유니클로 카페’를 선보였다. 7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제과점 ‘긴자 웨스트(Ginza West)’와 협업해 두 종류 커피와 버터 쿠키(200엔)를 판다. 특히, ‘게이샤 핸드 드립 커피’를 450엔에 판매하는데, 긴자에서 파는 같은 품질의 커피 대비 절반 이상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유니클로의 세계관이 투영된 단면이다.
구찌가 ‘구찌 레스토랑’을 열고 구찌 버거를 팔고, 루이비통이 ‘루이비통 레스토랑’을 열어 루이비통 꽃비빔밥을 파는 것도 마찬가지다. 각각 구찌다운, 루이비통스러운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쇼룸’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가구 회사 이케아도 비건 요리를 파는 카페에 이어 최근 대형 천막집을 선보이는 등 ‘이케아스러운’ 가치 전하기에 한창이다.
무인양품도 지난 2018년 ‘무지 호텔’과 ‘무지 카페’를 선보였다. 호텔은 무인양품 가구와 생필품으로 채워진 체험 공간, 카페는 합리적인 가격에 건강한 식자재를 파는 공간이다. 마쓰자키 당시 무인양품 대표는 “사실 호텔 사업이 무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고객에게 새로운 무지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우리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관 바탕으로 신사업 도전
▷니토리 다이닝·무지 자율주행차
단순히 브랜드 세계관을 보여주는 쇼룸에 그치지 않고, 공통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신사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일본의 이케아’로 불리는 가구 기업 니토리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이종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지난 2019년 여성 의류 브랜드 ‘N Plus(N+)’를 내놓고 올 3월까지 17개 매장을 열었다. 향후 5개 매장을 더 오픈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니토리 다이닝, 모두의 미식(ニトリダイニング, みんなのグリル)’이라는 이름의 식당도 선보였다. 240g 치킨 스테이크와 치킨 그라탕이 단돈 500엔(약 4800원)으로 역시 가성비를 중시하는 니토리 세계관과 이어진다. F&B 공간을 선보인 것은 유니클로 카페와 비슷하지만 쇼룸에서 나아가 신사업으로 키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키오 니토리 회장은 “의류, 식품, 주택 사업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무인양품은 지난 2018년 핀란드의 한 자율주행 기술 업체와 손잡고 직접 디자인한 자율주행버스 ‘가차 셔틀(Gacha Shuttle)’을 시범 운영했다. 자율주행버스는 ‘생활의 기본이 되는 제품을 판다’는 무인양품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쓰자키 당시 대표는 “세계 고령 인구가 많아지며 대중교통과 자동주행이 필수가 될 것이다.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업으로 계속해서 확장시켜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카오도 ‘카카오 유니버스’를 선언하고 나섰다. 기존 카카오톡과 차별화된, 새로운 세계관을 선보였다. 관심사 중심으로 비(非)지인 간 소통을 연결하는 ‘오픈링크’가 핵심이다. 텍스트 중심인 오픈채팅 기반으로 카카오 버전 메타버스를 구축하겠다는 것. 기존 카카오톡이 ‘지인 간에’ ‘목적이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면, 오픈링크는 ‘모르는 사람 간’ ‘비목적성’ 커뮤니케이션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신사업에 맞는 새로운 세계관 구축에 나선 사례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 카카오톡 프로필도 대대적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이용자가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스스로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나만의 펫을 키우는 기능도 제공한다. 장기적으로는 멀티프로필을 업그레이드해 프로필을 통해 멀티페르소나를 표현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다.
카카오는 “예를 들어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카카오브런치에 방문한, 미식에 관심 있는 이용자들은 해당 브런치에 연결된 오픈링크를 눌러 음식에 대한 관심사를 나누고, ‘맛집 투어’ ‘쿠킹 클래스’ 등 이벤트를 직접 만들어 즐길 수 있다. 또, 한국 웹툰을 좋아하는 외국인은 카카오웹툰 내의 오픈링크에 들어와 국내 팬들과 웹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카카오맵의 특정 장소를 방문한 이용자는 오픈링크에서 해당 장소에 대한 최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멜론의 인기 곡 내 오픈링크에서 팬들 간의 감상 소감과 응원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서사 담긴 이(異)세계 구축
▷구울레옹·심삿갖·빙그레우스 ‘눈길’
아예 서사가 담긴 허구의 이(異)세계를 구축하고 마치 SF나 판타지 영화를 보듯, 구체적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것도 최근 세계관 마케팅의 새로운 흐름이다.
굽네치킨을 운영하는 지앤푸드는 ‘바사삭 유니버스’를 구축했다. 지난해 12월 브랜드 캐릭터 ‘구울레옹’이 기름에 튀긴 치킨을 상징하는 ‘튀길레옹’과의 전투 서사를 담은 ‘불금치킨’ 광고를 선보였다. 이 광고는 한국광고주협회 주관 ‘제30회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 TV 부문 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구울레옹의 명을 받고 완벽한 바삭함을 찾는 ‘콜럼바삭’ 캐릭터를 치킨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애니메이션 광고로 제작, 한 달여 만에 280만 조회 수를 넘기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태용 지앤푸드 대표는 “콜럼바삭은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더욱 확장하며 선보이는 캐릭터다. 앞으로도 꾸준히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젊은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면세점은 자사 브랜드 초성(ㅅㅅㄱㅁㅅㅈ)을 딴 ‘심삿갖’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스토리텔링에 나섰다. 조선시대 명례방(현재 명동)에서 상단을 운영하던 중 우연히 타임슬립한 거상인 심삿갖이 신세계면세점 홍보 담당자로 취직 후 공식 SNS 채널 운영을 맡게 된다는 설정이다. 심삿갖은 인스타그램과 독음이 비슷한 한자어 ‘인수타구람(人手打慦濫·사람들이 손뼉을 탁 칠 만큼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미)’을 선보이는 등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Funsumer)’ MZ세대를 겨냥한다.
빙그레는 지난해 2월 꽃미남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마시스’를 선보였다.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로 ‘바나나맛우유’ 왕관, ‘빵또아’로 만든 바지, ‘끌레도르’로 만든 신발 등 빙그레의 대표 제품을 착용한 모습으로 설정했다. 빙그레우스는 삭막한 세상을 웃게 하는 ‘빙그레 메이커’를 자처한다며 근엄한 재판장에서도 폭풍 아재 개그를 쏟아낸다. 투게더리고리경, 옹떼메로나브루쟝 등 자사 제품을 의인화한 캐릭터도 ‘빙그레 왕국 세계관’ 구축에 힘을 보탠다. 이 같은 세계관 마케팅에 힘입어 빙그레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18만명으로, 이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밖에도 종합 식품 기업 하림은 지난 5월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된 기업 서포터즈 ‘하림 유니버스(H-Universe)’ 발대식을 가졌다. 하림은 “자기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즐기는 Z세대들이 하림이라는 기업과 브랜드를 주제로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맘껏 펼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처음 시도하는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을 통해 트렌드에 민감한 MZ 소비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BGF리테일은 지난 4월 보도자료를 통해 “멤버십 앱 ‘포켓CU’를 리뉴얼 오픈하며 ‘CU 유니버스’를 온라인으로 확장한다”고 전했다.
▶세계관 마케팅 주의할 점은
▷스토리텔링 지속할 콘텐츠 갖춰야
전문가들은 세계관 마케팅이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 특징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지만, 충분한 콘텐츠 없이 남용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세계관 마케팅은 아이돌 콘셉트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게임 산업에서 주로 활용되던 개념이다. 여기서 확장돼 요즘 MZ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관과 연계된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시즌제로 펼쳐나가면 주목을 끌 수 있을 듯하다. 단, 충분한 준비 없이 지속성을 갖는 스토리를 만들기는 어려운 만큼, 콘텐츠 준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칫 기존 캐릭터와 스토리를 모방하거나 식상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주윤황 장안대 온라인쇼핑과 교수의 분석이다. 매경이코노미, 2022.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