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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여행기 (張家界 旅行記)
명나라 말기 탕임천(湯臨川)이 이르기를 以死而生(이사이생)하고 以生以死(이생이사)면 此謂之有情(차위지유정)이라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살고 살아가면서 죽는다면 이것이 이르되 낭만이다. 이사이생이 좋은지 이생이사가 좋은지 판단은 미묘하지만 이 말을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천지차가 있다. 이 사이에 낭만이 생겨나는 것이다.
구름은 강산을 싸고 해는 은빛날개에 번쩍인다.
서해를 가로질러 중국 남방 장사에 다다랐다.
대국이란 옛날부터 묘연하여 그 속셈을 알 수 없다네.
고요함이 깊어지면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나는 4월 22일 개나리 져가고 연분홍 진달래 봉오리 터질 때 인천 국제공항을 기점으로 대한항공KE9837 편으로 황해를 가로질러 중국 호남성 한(漢)나라 태수 손견이 기거하던 곳이고 그의 아들 손권이 오나라를 세웠던 장사공항에 도착했다.
각지에서 다투어 찾아온 여행객으로 분주하고 벅찬 감동이 사람마다 만면에 환하게 피어났다. 2005년 12월 26일 개통된 308km 장가계 고속도로 상 미니버스 안에서 고향이 함경도로 주소가 연변인 26세의 젊은 가이드는 한국인의 관광 수요 덕에 가이드로 생활할 수 있어 고맙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관광일정과 설명에 덧붙여 중국인의 상술에 조심할 것을 부탁했다. 차창 밖 모내기 풍경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고 습기가 많아 농촌가옥이 모두 2층집을 소유한 것이 특색이다.
시간과 시절이 합의한 덕으로 50대의 이 몸이 잠시 청춘의 마음을 빌렸으니 뒤돌아 추억을 더듬으면 이순간이 고마울 따름이다.
차창 밖 4월의 화초가 내년에 다시 비슷하게 피어날지라도 그 때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금의 사람이 아닐 것이요. 한 봄의 즐거움은 영원할 수 없는 법 아름다운 미인도 얼마안가 흰머리 능수버들 되어 어지러이 날릴 것이니 원컨대 젊은 날에 이 여행이 즐거움을 다하여 뼈 속 깊이 내 스스로 감동받기를 바랐다네.
밖에는 흐린 날에 바람은 깨끗하다.
시간이 흐르자 도화원에 도착했다. 도화원이란 현판이 선명한 입구를 들어서자 수천 년 전 복숭화 나무는 오간데 없고 10년 남짓한 복숭화 나무 몇 십 그루가 명승지 도화원을 지키고 있다. 평지는 걷고 가파른 계단은 가마를 이용하며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감상했다. 지나간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현문명시를 감상할 시간적 여유가 적어 아쉬웠으나 얼핏 시 한수 눈에 들어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이곳 지방은 상중(喪中)에는 가무를 즐겼다 한다.
親戚或餘悲 他人亦已歌 死去何所道 埋體同山阿(친척혹여비 타인역이가 사거하소도 매체동산아)후렴 생략.
친척들은 혹여 슬픔이 남아있고
타인들은 또한 이미 노래가 끝이 났구나.
죽은 이 몸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무릉도원 언덕에 이 몸을 묻었다네.
인생의 덧없음은 고금의 같은 이치이니
살아생전에 즐거움을 다해야 하느니라.
(도화원 비문에서)
현대인에게도 가슴을 적시는 詩句가 무릉도원의 정감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인생은 희로애락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희로애락에 구속된 인생이 무릉도원에 거한다고 벗어날 수 없음을 노래한 글귀가 있으나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도연명이 자칭 오류선생전이란 시를 쓴 글귀가 적혀있다.
先生 不知何許人 亦不詳其姓字 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 閑靖少言 不慕榮利 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意會 便欣然忘食 性嗜酒 家貧不能常得 親舊知其如此 或置酒而招之 造飮輒盡 期在必醉 旣醉而退 曾不恡情去留 環堵簫然 不蔽風日 短褐穿結 簞瓢屢空 晏如也 常著文章自娛 頗示己志 忘懷得失 以此自終.
贊曰黔婁有言不戚戚於貧賤不汲汲於富貴極其諺玆若人之儔乎酣觴賻詩以樂其志無懷氏之民歟葛天氏之民歟. (도화원 비문에서)
선생(도연명)은 어디사람인지 모르고 姓과 字도 자세하지 않으나 집 옆에 버드나무 5그루가 있어 그것으로 號(호)를 삼았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말이 적고 명예나 실리를 바라지 않았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깊은 이해는 바라지 않았다. 뜻에 맞는 글이 있으면 즐거워 식사도 잊었다. 성품이 술을 좋아하지만 집이 가난하여 항상 마실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이와 같은 처지를 알고는 때때로 술자리를 마련하여 그를 초청했다. 마실 적에는 다 마셔버려 반드시 취하고야 말았고 취한 후에는 물러나는데 가고 머무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좁은 방은 쓸쓸하기만 하고 바람과 햇빛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짧은 베옷을 기워 입고 밥그릇이 자주 비어도 마음은 편안하다. 항상 문장을 지으며 스스로 즐기면서 자못 자신의 뜻을 나태 내려 하였다. 득과 실에 대한 생각을 잊고 이러한 상태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려 하였다.
찬문(贊文)을 지으며 齊(제)나라 검루에 대해 말하기를 빈천을 두려워 하지 않으셨고 부귀에 급급하지 않으셨다. 고 했다. 그 말을 잘 새겨보면 검루는 오류선생과 같은 무리이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지음으로서 자신의 뜻을 즐겼으니 무회씨 시대의 사람인가? 혹은 갈천씨 시대의 사람인가?
오류선생전은 도연명 자신을 오류선생이라 號(호)하고 자신의 인생관 생활관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문장으로 무릉도원에 새겨져 있어 이를 게재하였다. 현대적 감각으로는 무미건조하지만 인생의 해학적임을 알 수 있고 인생의 가치 중심이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 있음을 간파한 것으로서 복잡한 시대에 현대인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안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의미 있다 하겠다.
무릉도원의 복숭화는 옛날에 자취를 감추었고
수천 년 전 풍류쟁이는 비석에 구슬 같은 글귀만을 남겼구나.
지금 누가 푸른 이끼 덮인 비문을 알아 볼 것인가
봄빛은 현재 무릉도원의 복숭아 이파리에 따스하고
지는 해는 노을을 머금고 무릉도원 하늘이 아름답네.
이곳을 떠나려니 그윽한 정취에 아쉬움이 있구나.
술 취한 도연명은 다섯 그루 버들에 봄바람 노래하고
줄 없는 비파(琵琶) 소리가 도화원을 맴 도네
몸은 죽었어도 영혼은 비문에 살아있구나.
(06, 4, 22, 도화원에서 )
무릉도원을 빠져나와 상도-장가계간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해는 넘어가고 주위는 어두웠다. 가는 길 한 시간 30분 버스는 달리고 피로에 잠든 실내는 등마저 꺼졌다. 달리는 버스에서 눈을 감고 잠시 중국이란 나라에 상념에 젖었다. 장가계가 있는 사회주의 국가 중화 인민공화국은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지내왔다. 수 천 년 간 수많은 나라가 생하고 멸하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러 현재의 중국의 좌표를 설정했다. 사회주의국가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100년 전 동북아 3국은 시대의 적응여하에 따라 운명이 바뀌었다.
한국과 중국이 전근대 반봉건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사이 일본은 명치유신 기치아래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세계의 시간에 동참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식민국가가 되었고 한국은 식민지 중국은 반식민지가 되었다.
중국은 50년간 (1895년 청일전쟁에 패하고 1945년 일본항복)일제 반 식민 상태에 이어 30년간 공산독재 속에서 기아와 기근이란 전근대적 용어를 달고 살았던 인식을 탈피하고 요즘 크게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100년의 역사를 40년 단축했다면 중국은 한국의 40년 역사를 20년 단축하며 달려가고 있다 한다. 이러한 중국을 만든 지도자들은 누구인가? 혁명가 모택동, 지도력 있는 주은래, 실천가 등소평, 사심 없는 주용기 총리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등소평은 문화혁명을 부정하고, 정치투쟁논리를 배격하고, 4인방 집권을 저지했던 중국 현대사에 위대한 인물이다.
중국은 韜光養晦(도광양회)라는 구호아래 몸을 낮추고 있다가 和平屈起(화평굴기)의 자세로 세계를 둘러보고 유소작위(有所作爲))의 모습으로 바꿔가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동북공정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1000년 이상 된 한국의 고대사를 200년도 안된 근대 국가적 관점에서 배타적이며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온당치 못하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 1882년 3000명의 군대로 조선을 사실상 침탈했다. 1895년 청일전쟁 패전으로 물러간 뒤 1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 속에 종속시키고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중국의 1개의 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속셈을 꾸미고 있다. 이것이 단적으로 19년 전 등소평이 한국을 본받으라던 중국당국의 눈에 이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온고지신해야 하며 구습을 탈피하고 세계 속으로 들어가 세계인과 동참하여 국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진실로 중국의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고속도로상 버스에서 )
어둠속을 달리던 버스가 장가계 통다호텔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 겸 중국산 한 잔술에 시름 잊고 스트레스 날리고 낭만에 가슴적시며 취해봤다.
이곳에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인 신비한 누각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과거 소수민족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지금은 후손들만이 찬란한 과거를 가슴에 묻고 선조의 은덕으로 지금은 찾아오는 이들의 도움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는 듯하다.
해진지 오래라 이국땅엔 구름도 보이지 않네.
따스한 봄바람 부드러운 바람 안고 신비한 누각으로 들어가서
바비큐에 술잔이 곁들여지니 이 마음 즐거움을 노래하고 싶네.
한때의 즐거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월 따라 연륜 따라 그 격이 다름이 안타깝다네.
(06, 4,22일 호텔에서)
이튿날 천문산 케이불카를 타고 신비로운 장가계 협곡을 날라 간다. 시야에 아름다운 봉우리와 깍아지른 수천 길 낭떠러지위로 치솟는다. 아래는 현기증을 느끼고 위로는 장엄한 절벽에 악! 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신비한 절경 장가계 풍광에 눈은 놀라움에 동공이 커지고 몸은 굳었네.
비경에 평지는 자취를 감추고 운무 낀 하늘은 조용했다.
경건한 햇빛이 반사하는 이곳은 신선이 가무를 즐기던 곳
기암 기석 봉우리 위 수 천 년 묵은 소나무에 얕은 바람 불고
해는 유유히 서쪽으로 달려가는구나.
웅대한 산수화를 묘사하는데 몇 억년 걸렸는가?
그 옛날 시성 두보가 지필묵을 내던지고
시선 이백이 붓 자루를 꺽은 것은
장관에 걸 맞는 글자 없음을 통탄했기 때문이네
먼 훗날 명인이 나타나 탄복할 시 한수 남기기를 유언 했다는데
수천 년 지난 지금 그 곳이 어드메뇨 호남성 절대선경 장가계라네.
(06, 4, 23일 장가계에서 )
천문산 상천제 999개 계단에 숨이 차고 심장 박동이 격해지는 이곳 입구에
莫謂山高空仰止此中眞有上天梯(막위산고공앙지 차중진유상천제)라는 금빛글씨가 번뜩인다.
산이 높아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말하지 마라
이 가운데 진실로 하늘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라고 해석되는 이곳은 곡예비행기가 통과했던 곳으로 높이 131m 너비57m 깊이 60m의 맞뚫린 이곳이 천문동이다.
삼국시대 오나라 영안 6년에 홀연히 절벽이 열려 문 같은 구멍이라 천문동이라 일컬으며 역사에 가장먼저 기록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종유굴로 자연의 걸작품이라 한다.
인생 80년에 또한 수명을 즐겁게 할 것이니
무엇 때문에 세속에 어울려 마음을 수고롭게 할 것인가?
유한한 인생에 심신을 영달케 할찌니
어찌 과욕으로 이풍진 세상을 달게 겪겠는가?
부귀를 누리는 분들은 그 만한 어려움을 감내한 이들이고
민초들은 바람을 피해 풍광에 깊은 숨 들이 쉰다네
(06, 4, 23일 천문산에서 )
이어서 장가계의 산정호수 보봉호를 찾았다. 그윽한 주위 봉우리들과 어울려 햇살은 호수위에 움직이고 풍광은 호수 속에 춤을 춘다.
길이 2.5km, 수심 평균 72m, 최대수심131m, 로 숲 속에 비취알맹이가 박혀 있는 느낌을 주는 무릉원의 수경(水景)중 수작이라 한다. 선착장에서 40분간 배 유람이 기가 막히다.
유람선에 몸을 실어 보봉호를 거스른다.
선상에서 호숫가 기암절벽을 바라보는 눈에 즐거움이 충만하다.
오늘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느 때를 기다릴 건가
즐기자면 마땅히 제때에 미치도록 즐겨야한다
어찌 두고 온 생각을 들춰 걱정근심 할 손가
다시는 장래 이런 기회 흔치 않을 것이니
좋은 술 마시고 입에 맞는 안주 겯 들이면
가히 시름하는 마음 풀 수 있으리라.
인명은 100년도 차지 못하거늘
천년의 걱정 품고 그 삶을 수고롭게 할 것인가
흰 물살 가르며 모퉁이를 돌아서니
구성진 노래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감동을 전하고
산은 조용한데 물속의 산은 거꾸로 박혀 출렁인다.
묘산이 호수를 만나 비경을 이루니 자연의 신비에 한계를 느낀다.
뒤돌아 흘러가는 뱃전에 취향대로 노랫가락 물결위에 굴리니
산수가 비경을 이루고 구성진 노래가 버무려져 환상의 뱃놀이네
비취빛 호수에 원주민 총각의 노래 가락이 호수위에 굴린다.
찾아줘서 고맙고 돌아가시는 그 길이 부디 행복하길 노래했다네.
원주민의 가무와 풍광이 쏟아지는 폭포와 어울려 서산가는 해를 멈췄다
인생의 덧없음은 고금의 같은 이치이니
살아생전에 즐거움을 다해야 하느니라.
무릉도원의 시 두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06, 4, 23일 보봉호에서 )
보봉호 비취물결 흰 물살 가르는 유람선이 반환점을 뒤돌아 오는 선상에서 나름대로 각자 한 곡조 즐기는 시간에 동승한 부인에게 시 한수를 나는 이렇게 읊었다네.
살아온 날들이 정으로 채우지 못하고
사랑으로 표현 못한 흘러간 세월 30년
지난날 숙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함께 걸어온 세월 표에
당신의 주름이 적혀 있소.
지나간 세월은 남가일몽이었고
오는 세월은 우리에게 희망되길 바란다오,
마음 따라 같이 가는 길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아쉬움은 없소.
영원히 사랑하고자하나 나이가 허락지 않을 것이고
처음같이 사랑하고자하나 세월이 타협하지 않았소.
비취빛 보봉호 속에 비경의 산수화가
영원히 아름답게 반사되듯
맑은 하늘 넓은 대지 속에 우리의 사랑이
영원히 아름답게 비춰지길 바란다오.
청춘이 된 마음은 호수위에 뛰놀고
당신과 함께한 사랑은 즐겁기만 합니다.
험한 길 같이한 당신에게 감사하고
가는 길 외롭게 되지 않길 신에게 비옵니다.
몸은 변해도 마음은 처음처럼 영원히
진실로 영원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4, 23 보봉호 선상에서)
나의 자작시가 핸드 마이크로 감정을 호소하듯 마치자 갑자기 물결이 거세지고 흔들리는 뱃머리로 올라온 아내가 내 볼에 입 맞추고 환희의 함성과 즐거움이 어울려 유람선은 흰 물살 헤치며 풍류쟁이 낭만을 싣고 비취빛 호수를 미끄러져 갔다. 신선한 바람 안고 보봉호의 비경과 선경사이를 흘러가는 우리는 잠시 신선된 기분으로 선착장에 닿았다. 이곳은 자연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곳이다.
장가계의 진수 원가계 해발1334m의 천자산에 오르니
깍아지른 수천 길 절벽위로 천자산 삭도가 힘차게 솟구친다.
수 천 길 낭떠러지가 가물가물한데 삭도는 아직도 하늘로 치솟는다.
삭도주위로 펼쳐지는 기막힌 풍광과 웅장함에 감탄사!
삭도 철탑지지대를 바라보는 탑승객의 물음표?
해발1200m 삭도종점에 하차하는 안도의 마침표.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노옹)
사람으로 태어나서 장가계를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대자연의 미궁 지구의 기념물 이라는 장가계 주변 수려한 풍광은 웅대하면서 아름답고 기이한 산세에 넋을 잃고 만다. 원래는 대융시였는데 1994년 중국국무원에서 장가계시로 승격시켰다는 이곳은 20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면적 9563평방km로 약 3억8천 만 년 전 망망한 바다였다 한다.
기이함과 수려함 야성의 미가 혼합된 천자산의 풍경은 시야가 광활하며 기세가 웅장하여 주 봉우리 해발 1250m에 오르면 웅장한 계곡이 한눈에 들어와 마치 천군만마가 포효하며 달려오는 기세이다. 하룡공원, 선녀산화, 천하제일교, 십리화랑 등의 절대선경의 풍경구가 있다.
옛날 태백산에 노닐다 서해 바다건너 중국남방 천자산을 오르는데.
하늘로 푸르게 솟은 것이 태백산은 이곳 명산 반열에 들지도 못하겠네.
신선이 수정을 박아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가 바다를 이루고
수정 같은 신묘한 봉우리들의 높이는 구름도 오르기 힘든 높이라네.
천신이 향연을 베풀던 자리엔 하룡장군의 6톤 동상이 차지하고
신선이 산수화를 그린 붓을 거꾸로 꽂아 어필봉이 되었고
선녀가 꽃 뿌리며 춤추던 바위엔 선녀산화란 글씨만 붉네.
신선이 거닐던 천하 제일교는 높이가 몇 만 척인가
절경에 탄복하고 선경에 혼을 빼는 미혼대는 구름 속에 희미하네.
신묘한 바다를 이루며 천 겹의 봉우리가 수 천 년생 소나무를 머리에 이고
우굴대는 인간을 구경하며 옛적의 신선만 못하다 속삭이는 듯하네.
기암절벽에 백룡 엘레베이터는 하늘과 지상을 이어 놓고.
신선화가들이 산수화를 천자산에 뿌리고 떠났다가 지금까지 무소식이라네.
기암절벽을 끼고 도는 안개구름 아득히 흘러가니
이곳은 애시 당초 별천지지 인간세상은 아니로세.
황석채(凰石寨) 는 한나라 장량이 은거하며 고통을 당할 때 사부인 황석공에 의해 구출되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해발1200m로 장가계의 진수다. 3련케이불카를 타고 구름위로 치솟으면 구름위에 육기각(六奇閣)이 나타난다. 육기각 전면에 張家界 森林公園 記에 적힌 글을 해석하면 *장가계는 옛날에 푸른 언덕으로 봉우리가 연이어져 하늘이 은은한 산세와 수려한 유산을 남겼으며 염주 구슬 같은 산의 기이함, 방울져 흐르는 비취빛 물의 신기함, 유유자적하는 구름의 신기함. 기암기석의 돌의 신기함. 수 천년된 나무들의 신기함, 그리고 새와 짐승의 소리를 내는 미증유의 사람 같은 괴물이 신기하다하여 6기각이라 고 명명 한다*고 記의 서두는 시작하고 있다. 記가 적힌 안내문을 촬영했으나 비 오는 날이라 물 흐름으로 인해 사진이 선명치 못해 서두의 몇 자 외는 글자를 알 수 없어 내용을 해석하지 못했다.
신선이 노닐던 황석채 높은 6기각
비 온 뒤 물안개 누각을 에워싼다.
운무를 머금고 주악을 울리던 신선의 가무가 시작 되었나
아름다운 6기각 처마 끝에 황석채 구름 피어오르고
구름아래에는 비가 내리네.
한가로운 구름 봉우리에 감돌고
해는 중천을 향한다.
이 같은 명경을 몇 번이나 묘사 했나
누각안의 장사꾼은 1000원 만을 외치네.
난간 밖 비구름은 사방을 가리며 흘러가고
이곳 떠나는 이 마음도 무심히 흘러가네.
호남성 박물관내 마왕퇴한묘 관람을 끝으로 장사공항으로 이동 12시40분발 대한항공 인천행 KE9838편으로 3시간 후 귀국했다.
중국의 무한한 관광자원에 놀랐고 아직도 미발굴이 상존하고 있어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가 크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인면이 놀라웠다.
등소평의 흑묘백묘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정책이다. 06년 4월 21일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는 위싱턴 시애틀 오찬모임에서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라는 당나라시인 장곡의 행노난 시를 인용했다. *바람을 타고 물결을 깨트리는 그 큰 때가 오리니 구름 속에 돛 높이 세워 푸른 바다 건너리라* 라는 뜻으로 이는 어렵고 위험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을 향해 나가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의 현주소다.
장가계 조망은 성찬을 즐긴다. 오밀조밀한 기암기석의 실루엣과 장쾌한 스케일을 한꺼번에 담은 세계 최고의 조망 처다. 나와 같은 무지한 인생도 낭만은 있다. 시골 태생에 반도의 옹졸함이 중국의 산수화의 진본을 체험하는 환상적인 자연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이란 쪽마다 대단한 비경을 담아서 관중에게 보여주는 신비한 팜플렜이다. 인간이 그 격을 훼손시켜 작품을 망쳐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을 여행한 감상을 이렇게 적어 기이한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여 내 자신과 진달래 친구에게 후일에 기념되고자 기록하고자 한다.
2006년 4월, 24일
율 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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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고로, 요즘 뜨는 인물인 걸그룹 피에스타(FIESTAR)의 차오루(曹璐)가 장가계 출신임...
오! 그렇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산세가 기묘하니 기묘한 인물들이
나오는가 봅니다
장가계 경관은 정말로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차오루(曹璐, Cao Lu)는 한족(漢族, Han Chinese)이 아니라 먀오족(苗族, 묘족, Miao people)이더군요. 장가계(후난성)에도 먀오족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근데, 더 찾아보니깐 먀오족의 중국 영내의 주요 분포 지역은 구이저우 성, 후난 성, 쓰촨 성, 윈난 성, 광시 좡족 자치구라고 하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장가계가 있는 후난성에는 투자족(土家族, Tujia people)도 꽤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