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실 하나가 장경왕후가 죽고, 자순대비가 왕후를 간택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후궁출신들을 왕후로 점지해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자순대비 경진 박씨는 성질 때문에 후덕한 국모의 이미지를 발할 수 없다고 하여 왕후에 제외가 되었고, 희빈 홍씨의 어미는 홍경주의 첩실, 즉 기생첩이었기 때문에 혈통이 좋지 못하다 하여 제외가 된 사례가 있었지요.
그러다 윤임이 파평윤씨가 다시 왕후가 된다면 천년만년 사직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청하여 자순대비는 결국 당시 15세의 나이였던 문정왕후를 왕후로 간택하게 됩니다.
분명 기록상에는 희빈 홍씨는 서녀출신이 맞고, 어미는 홍경주의 기생첩이라는 사실을 제가 본 적 있는데 그렇다면 자순대비가 어째서 희빈 홍씨를 왕후 간택자리에서 제외시킨 것일까요?
아래 창빈 안씨가 궁녀 출신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창빈 안씨는 안탄대 선생이 공신 4등으로 책봉이 되었을 때 희빈, 경빈과 같이 공신의 딸들로 구성이 되어 처음 입궁이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평소 아버지 안탄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현숙하기 그지 없는 여성이었다고 하죠.
숙의 나씨는 제가 알기로 경빈의 몸종이었다가 미색이 뛰어나여 중종의 승은을 입은 궁녀라고 알고 있습니다.
허나 현재 숙의 나씨에 대한 정보는 실록에도 기록이 없으며 출신 성분이 미미하다고 적혀져 있죠.
숙의 나씨는 경빈 박씨의 모녀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해왔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해 죽고 그 자리에서 옹주 역시도 태어나자마자 울음한번 터트리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희빈 홍씨를 정실부인의 딸이라 알고 계신다면 찾아보기기 바랍니다.
아마도 찾기는 힘이 들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
서녀들은....
원래 궁녀들을 선발하려면 서민가의 여성들보다는 서녀출신이나 중인 계급의 여성들이 가장먼저 궁녀 대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서녀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궁녀도 서민출신의 여자들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하죠.
조선에서 조혼이 유행을 하게 된 이유는 궁궐에서 서녀들을 상대로 궁녀 선발이 잦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궁녀 선발은 보통 3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이뤄진다고 하죠.
그 중 학식이나 신분을 보고 그에 걸맞는 직위를 주는데 주로 서녀들이나 중인 계급의 여성들이 종5품 상궁의 직위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순조 이후로 궁녀들의 수는 차츰차츰 줄어들었다고 하고, 세종대왕과 현종대왕은 궁녀 500명을 방출하는 혁기적인 계획을 하기도 하였지요.
궁녀들은 평생 죽어도 임금이 여자일 수 밖에 없으니 궁궐에 들어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가거나 혹은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그 때문에 세종대왕과 현종대왕은 궁녀들을 500명씩 방출을 했다고 합니다.
원래 궁녀들은 서녀나 중인계급의 여성들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게중에는 집안의 강여로 서녀가 아니더라도 양반가의 여식들도 임금의 잠자리 시중을 위해 궁녀가 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창빈은 분명 궁녀출신이 아니라 공신봉록 4등을 안탄대 선생이 받을 때 홍경주로부터 모종의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분명 안탄대선생은 거절을 했다고 나와있는데 어찌 궁에 들어갔는지 연유는 알수 없지만 분명 궁녀출신은 아니구요, 제가 알기로 창빈은 처음 숙용의 지위를 받았다고 나와있지 숙원이나 특별상궁에
첫댓글 궁녀가 아니면 창빈이 어떻게 특별상궁이 되었고 , 숙원이 되었지요?
희빈홍씨는 서녀가 맞는 듯 합니다만요
창빈은 분명 궁녀출신이 아니라 공신봉록 4등을 안탄대 선생이 받을 때 홍경주로부터 모종의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분명 안탄대선생은 거절을 했다고 나와있는데 어찌 궁에 들어갔는지 연유는 알수 없지만 분명 궁녀출신은 아니구요, 제가 알기로 창빈은 처음 숙용의 지위를 받았다고 나와있지 숙원이나 특별상궁에
봉해진 기록은 없습니다. 분명 자세히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안탄대 선생은 당대의 무인으로 공신봉록 4등을 받은 전례가 있다고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