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길가의 섬 '애시드' | |||||||||||||||||||||||||||||||||
<삼덕동 술집 골목 이야기3 > 카페 [ACID]..."홀로이나 홀로이지 않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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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난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이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Ile)의 어원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인간들. - 장 그르니에 산문집 <섬> 중에서 - ‘애시드’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반들이 있었지만 포크 계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솔깃한 원판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종일 진을 칠 만큼 넉넉한 공간도 아니었지만, 왠지 누군가의 소중한 무엇을 침범하는 느낌은 괜히 쭈뼛거리며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했었다. LP 생산이 중단되고 시내에 대형 음반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LP를 찾는 사람이 극소수였던 시기였기에, 거의 홀로 가게를 지키는 주인의 모습은 쉬이 그러한 마음을 갖게 했을 터다. 대중음악 평론가 권오성씨는 말한다. “애시드 갈 때는 한 장 건질까 하는 기분이었지. 좋은 음반이 많았잖아. 내공이 상당한 사람이었어.” “한국에 청년 문화라는 게 몇 번 있었지. 청년문화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양식을 가진 세대들로 이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문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게 사실이지. 그런데 청년문화는 항상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유는 주류 문화가 재미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 태생적인 이유와 돈이 없다는 이유일거야. 그리고 돈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지. 김민기, 한대수가 등장했을 때는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됐고, 산울림을 거쳐 들국화가 등장했을 때는 허리춤에 차고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카세트 하나만 있으면 됐잖아. 뭐, 서태지 등장 이후로는 청년문화라는 말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90년대 초반, 주류는 너무 강했고 비주류는 상대적으로 더욱 더 변방으로 밀려났다. 주류를 목도하면서 끊임없이 변방을 기웃대며 탐하던 돈 없는 대학 초년생인 나에게 애시드는 하나의 섬과도 같았다. 시원한 자유와 황홀을 경험하게 하면서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아 턱! 숨 막히는 섬.
흔히 우리가 '애시드 재즈'라고 부르는 것은 영국의 레코드 레이블 이름으로 그 레이블을 통해서 과거의 재즈 음악을 샘플링하고 힙합과 라운지 뮤직 등 현대적 리듬을 가미해서 만든 레이블적 성격의 음악을 애시드 재즈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 시대 60년대의 포크와 락 등이 사회를 노래하고 시대정신을 표현했던 황금기를 그리는 애시드이지 약물 또는 애시드 재즈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애시드>라는 공간은 이름에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97년 영화 <접속>이 개봉되고 나서 잠깐 LP판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특히 벨벳 언더그라운드 앨범이 고가에 팔려나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말 찰나라 할 만큼 잠시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60년대 중후반, 시인 지망생인 루 리드가 현대 음악 작곡법을 연마한 스털링 모리슨, 그리고 존 케일을 만나 결성한 그룹으로 그들과 깊이 관련되었던 팝 아트의 기수 앤디 워홀의 영향력과 함께 짧은 기간 동안 팝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레코드판들이 붙어있던 투명한 유리에는 벽이 쳐졌다. 그리고 그 위에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사진을 붙였다. 사진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빛바래고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말려 올라가 있지만 소름끼치도록 청아하던 여가수의 목소리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일단 비틀즈부터 듣고 나서 이야기하자" 90년대 말 대학 초년생이었던 이현정(30)씨는 “그때는 음악을 많이 알고 싶었던 때였어요. 학교 동아리에서도 음악을 들었지만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싶었었죠. 알고 싶고, 목마르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 애시드를, 준영 아저씨를 알게 되고, 줄창 드나들었죠. 이 사람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말해줄 것 같다, 그래서 물었어요. 뭐부터 들어야 하나요? 일단 비틀즈부터 듣고 나서 이야기하자 그러셨죠. 아저씨는 참 심한 대구 사투리를 썼었잖아요. 매일 가든, 1년에 한번 가든, 같은 표정, 같음 말투로 ‘왔나?’ 그랬었죠. 늘 같은, 한결같은 사람이어서 편했어요.”라 이야기한다. 박준영씨와 꽤 가까웠던 권오성씨는 “애시드라는 공간은 청년문화의 역사와 현재를 읽을 수 있는 곳이었어. 모인 사람들의 면면도 당대의 청년문화의 중심에 있었거나 용기 없이 변방을 기웃거린 사람들이었고 세대와 관계없이 음악 하나만 가지고 밤새 이야기 나누던 곳이었지. 뭐, 주인장이 원채 음악광이기도 했지만 나만 해도 대구 시내에 나와서 맥주 한 잔 하다보면 종착지가 애시드였을 정도로 애시드는 한 잔 하고 음악 듣기에 좋은 곳이었어. 그러다 옆 사람들 이야기 간섭도 좀 하면서 친해지기도 하고.” 라며 기억을 풀어놓는다. 2003년, 박준영씨는 가게를 떠났다. 예전 애시드를 드나들던, 역시 음악광인 박진우(35)씨가 지금, 만 4년 째 그곳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들러 보니 예전보다 청소 상태가 훨씬 좋아졌던데.(^^) 옛날에는 나이가 조금 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주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오는 것 같더라. 잠시 비주류의 세계로 이동해 보는 거지. 준영씨는 그곳에 계속 음악 공간이기를 바랬었어. 내 생각에도, 적당히 장사가 좀 되면서 줄곧 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는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2007년 2월 7일 오후 8시 애시드. 나는 낯모르는 젊은이가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와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아, 용기를 내기 위해 필요한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주인에게 슬며시 말을 거는 모습을 본다. “저 그저께 왔었는데... 혹시, 희망가 있나요...” 이원재가 부르는 희망가가 흐르자, 나는, 1997년의 내 모습인 듯 했고, 까뮈의 저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 애시드라는 섬에 앉은, 홀로이나 홀로이지 않은 이 젊은이가 뜨겁게 부러웠다. 알튀세의 말처럼,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이 글은, 2007년 2월 8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
지금은 사라진 삼덕동 카페 "ACID"의 추억
첫댓글 내 기억으로는 2007년 가을쯤에 문을 닫은것으로 기억함!~ ㅠ.ㅠ
아.. 아... ㅠ.ㅠ 제 홈피엔 2004년도 3년만에 에시드에 들린 걸로..
그 사이 준영아저씨는 접으셨고 다른 이에게로 가게 물려주시고 알바가 자리 틀고 있었고...
에릭 앤더슨의 쉴라를 신청했더니 주인장 아저씨가 아끼는 엘피라 갖고 가셨더라구요.
너무 아쉬웠고 우연히 삼덕동을 지나가다.. acid cafe가 안보여서 눈을 비비고
앞 뒤를 살펴봐도.. 있어야 할 자리엔 다른 술집이.. 무척이나 슬픈 사건이었죠.
우린 그 거리를 마이너리티한 거리라도 명명했었고 우리 맘 속엔 메이저였지요.
맞은편엔 우드맥이란 중고엘피 가게도 있었고..
카페 사라지고 검색해 봤더니 민트님 올리신 요 기사를 보고 한 번 더 짠해 하고..
프랑스와즈 아르디!
오랫만에 들렀을 때 찍어두길 잘했죠.. 가끔식 보고.. 추억해요~ㅠㅠ
아!~ "우드맥"도 기억나요!~
혹시나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경대정문쪽에 음악카페 "우드맥"이 쨘!~ ^^a
위에 언급한 미드윈터의 곡만 갖고 뮤지션과 제목 찾으로 헤매다 만난 acid cafe! 위 기사에 언급된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가 문틈으로 새어나오던 그 창고같이 허름한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신세계를 만났고..뻘쭘해하며 이어폰을 주인장한테 건네고 이곡 누구건지 혹시 아냐고 ㅡ.ㅡ; 그분 통해 뮤지션 확인하고 이후부턴 단골이 되었어요. 지난번 우주님과도 acid cafe 애기 나눴는데 저보다 1-2년 전에 먼저 다니셨더군요
엘피가게 때부터.. 저랑 마주쳤을 수도~ 저한텐 죽을때 까지 기억될 만한 곳입니다. 기억할만한 공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무척이나 슬퍼요..
http://durl.me/3kikcg
PLAY
어제 김광석 노래 나오던데.. ^^
ㅋㅋㅋㅋ 기억의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