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에 숨은 사연,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진도 아리랑의 고향 진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진도대교는 떠오르는 아침 해와 지는 해가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는 이 진도의 초입 명량鳴梁이 역사 속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즉, 노량대첩, 한산도대첩과 더불어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명량대첩을 주제로 만든 영화 <명량>이 1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이곳을 우리말로 울돌목이라고 부르는데, 울돌목은 그 이름에 걸맞게 바닷물이 쏜살처럼 흘러간다. 이곳 울돌목에서 임진왜란 당시 큰 싸움이 벌어졌다.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평을 받고있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무찔렀던 명량해전을 이중환은 <택리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임진년(1592)에 왜적의 스님인 현소가 평양에 와서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있는 임금에게 편지를 보내며 “수군 10만 명이 서해로 오면 마땅히 수군과 육군이 함께 진격할 것인데, 대왕의 수레는 장차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당시 왜의 수군은 남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그때 우리나라의 수군대장 이순신이 바다에 머물면서 쇠사슬을 만들어 여울을 가로막고 기다렸다.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왜의 전선(戰船)은 여울 위에 이르러 쇠사슬에 거꾸로 엎어졌다. 그러나 다리 위에 있는 배에서는 낮은 곳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들은 배들이 엎어진 것을 보지 못하고 여울을 넘어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간 줄로 생각하다가, 모두 차례차례 거꾸로 뒤집혔다. 또 다리 가까이엔 물살이 더욱 급하여 배가 급류에 빠져들면 돌아나갈 여유가 없으므로 5백여 척의 배가 여울 위에서 전부 침몰하여 갑옷 한 벌도 남지 않았다.
바로 이곳 울돌목에서 이곳의 지형을 잘 파악하고 급한 물살을 이용해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크게 이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참혹한 전쟁터였던 울돌목에 진도로 건너가는 진도대교가 놓였고, 언제 그러한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물살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천천히 걸어서 지나는 진도대교에 바람은 미세하게 불었고 진도대교를 건너면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접어든다. 지형에 사슴의 뿔처럼 생겼기 때문에 녹진이라고 지은 이 바닷가 마을에 있는 돌굴산은 해발 90m밖에 안 되는 작은 산인데,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엉으로 이 산을 덮어서 노적가리처럼 만들어 왜적을 놀라게 한 뒤 울돌목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그 옆에 있는 망금산은 이순신 장군이 왜적들을 울돌목으로 유인한 뒤 마을의 아녀자들로 하여금 떼를 지어 강강수월래를 불러 왜적의 넋을 빼앗아 왜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듯 진도대교 아래에 이순신 장군은 큰 칼 옆에 차고 서 있고, 명량의 바닷물은 쏜 살처럼 흐르고 있으니,
2024년 5월 23일
첫댓글 이순신장군의 상징인 울돌목 개인적으로 가끔 답사하면서 벽파진 전척비까지
현장을 살펴 보면서 당시 세상으로 상상을 하고 돌아오는곳 명랑해전 울돌목
새삼스럽게 저의 마음을 달램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