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지 10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이니
어린 총각들 틈에서 따라할 수나 있으려나 여러가지가 불안 불안 ~
그 불안감은 나에게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기초가 되어 주었다
없는 돈에 학비내고 망신만 할까봐 전전긍긍하느라
뱃속에 있을 때나 출생했을 때나 늘 경황이 없었던 나는
우리 둘 째 이 놈이 도대체 언제 컸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다니는 아줌마로서 시간 부족이 그 첫째 이유이고
네 살짜리 엄마이면서 뱃속에 금방 태어날 또 한 아이가 있으니
정말 이 과정을 끝낼 수 있으려는지, 등록금만 내다 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했던 것이다
첫째 학기는 6개월을 휴직계를 내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서
다시 의지를 가다듬으면서 공부를 했다
아침에 해만 뜨면 집 근처 구립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나면 어찌나 졸리는지 마구 마구 졸다가
나중엔 아예 책상위에서 늘어지게 자고야 말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늘 그랬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차라리 맛있는 것이나 먹고 마음 편하게 쉬기나 할 걸
괜히 부산을 떨었다 싶다
일생에 겨우 한 두번밖에 없는 소중한 기회이고
또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바로 아기의 내장기관이 생길 때가 아닌가!
그 부산을 떨었으니 먹는 건 열심히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생아의 몸무게는 겨우 2.7kg!
하마터면 인큐베이터에 들어 갈 뻔 했다
그런데 요 놈은 키워보니 뱃속에 있을 적에 제 엄마의 행동을 본 듯이 따라 한다
'길에서도 책 보기'
(시간이 없던 나는 영어단어건 뭐건 암기과목은 무조건 오고 가는 길에서 해결)
'책상위에서 엎드려 자기'가 주 전공이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니 그렇게 까지 공부할 건 또 뭐가 있으랴?
그런데 이 놈은 공부를 하고 또 하고 한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고, 교회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 보다가 그래도 찾는 책이 없으면 자기 돈으로 산다
요 놈은 구두쇠다 유일하게 책에 관련된 것에만 돈을 쓴다
'소설 책 사기'와 '만화책 빌려보기' 두 가지에만 돈을 쓰는 듯하다
그러니 용돈이 줄지 않고 늘기만 한다
같은 책을 보고 또 보고 하기에 전번에 본 책이 아니냐고 물으니
"엄마 출판사 마다 번역한 사람마다 내용이 조금 다르네요"
에그머니나~
쟤가 뱃속에 있을 때 해 본 일
그와 비슷한 일을 똑 그대로 따라하네~
돈도 없던 새 댁시절
밖에 나와 사서 먹는 밥이라 반찬은 자연히 부실해 지기 쉬워서
태중의 아기 영양상태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입맛과 상관없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아니면 제육볶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이유식을 떼자 말자 매운 김치찌개를 먹어서 식구들을 놀라게 하더니
요즘도 제육볶음을 아주 좋아한다
이상하기도 해라
그 뿐이랴
시킬 사이 없이 공부를 하고 또 하고 하는 이 놈은 책상이 침대다
밤이 깊어 불이나 방마다 꺼야지 하고 집을 돌아 보다가 보면
이 놈은 제 책상 위에 엎드려 꿈나라로 직행이다
제 방에 들어가 편히 자라고 하면 이 놈은 눈을 부비며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자고 다시 해야 할 일이 남았어요"
뱃속에 있을 적에 제 엄마인 내가 했던 행동을 어찌 그리 잘 아누?
구립 도서관에서 공부할 적의 내 마음이다
잠은 쏟아지지만 그래서 잠만 퍼부어잤지만 그래도 할 일은 많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가 마음편히 이부자리 펴고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
참 이상도 해라~
이 모든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는 성취에 관심을 집중하기보다는
편안히 쉬고 누리고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정반대로 했다
할 일을 챙기고 대충 먹고 그저 '미래'를 위해 '전진'만을 꿈꾸었다
이 놈이 꼭 그렇다
먹기에는 관심도 없고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저 혼자서 늘 바쁘다
학원도 어학원 하나 밖엔 다니지 않지만 이 놈은 늘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한다
고등학생인 언니가 말하기를 제 동생은 학생이 아니라 마치 학자 같다고 말한다
큰 아이는 제 아빠를 닮아 이국적인 풍이 있는 반면에
요 놈은 나를 많이 닮았다
학교 교무실을 찾아가니 어떤 선생님이 내게로 다가와
"혹시 **엄마 아니세요?"하신다
"어떻게 아세요?"하니 "엄마 꼭 닮았는데요"하신다
좋기도 한 반면에 "에구 아빠를 닮았으면 훨씬 유리했을텐데......."
그래도 울 남편은 요 놈을 아주 이뻐한다
요 놈은 20년을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시어머니의 연인이다 친구다
서로 아주 죽고 못 산다
첫댓글 이쁜 따님 두셨네요....
이를 어쩌나~ 전 우리 애 뱃속에 있을때 해리포터만 주구장창 읽었었는데... 나중에 빗자루타고 다닌다면 어쩌죠?
염장글. 공부 열심히 하는 딸, 애교많은 딸 두어 좋겠어요. 부럽당1```
님도..어쩜 이리도 글을 재미나게 쓰시는지.....잘 읽고 갑니다.....^^
빗자루타는 아기라~ 창의력이 있겠군요 앞으로의 시대엔 가장 중요한 요소네요! 생활의 잔잔한 기쁨에 관한 내용이라면 일기쓰듯이 매일 올릴 수 있지만. 즐거움에 관련된 내용은 괜히 조심되어서요
오호..그래요?? 나도 태교를 공부로해야겠군..내아이 학자하나 만들어볼까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