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삼거리 흥, 그리고 독립기념관 2013.6.14(금) 천안삼거리공원 天安三距離公園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 있는 공원. 민요 ‘흥타령’으로 유명한 천안삼거리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천안삼거리는 예로부터 북쪽으로는 서울, 남쪽으로는 경상도인 대구·경주 방향과 서쪽으로는 전라도인 논산·광주·목포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알려진 곳이다. 천안삼거리공원이 위치한 곳은 예전 삼거리가 있었던 장소에서 약 500m 정도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70년대부터 조성한 면적 9만 6,000㎡의 공원에는 곳곳에 능수버들이 있고, 연못가에는 조선시대 화축관(華祝館)의 문루(門樓)로 추정되는 영남루(永南樓,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2호)가 있다. 그밖에 삼룡동 삼층석탑(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호)· 독립투쟁의사광복회원기념비·천안노래비 등이 있다. 또한 천안삼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천안시는 당시 북한군과 미군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고 있다. 1950년 7월 8일 이곳에서 전사한 미군 대령의 이름을 따 마틴공원으로도 부르고 있다. 길안내 1. 경부고속도로 - 천안IC, 목천IC 2. 서해안고속도로 - 포승 IC - 천안 3.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1번국도 이용 삼용사거리에서 병천, 진천방향도로 이용 0.5k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내용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이번엔 한번도 가 보지 않은 민요속 흥타령의 고장인 천안 삼거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천안에 가서 물어 볼 요량으로 일단 천안행 지하철을 타고 천안역까지 갔다. 천안역전 버스정류장에서 어느 청년에게 물으니 400번 버스가 천안삼거리를 경유해서 독립기념관까지 가는 버스라며 친절하게 알러 주어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상상속의 천안 삼거리를,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기까지 한 천안 삼거리를 먼저 둘러 본 후, 독립기념관으로 향하기로 하곤 천안삼거리공원 앞에서 하차했다. 천안역에서 15분소요로 도착했다. 마치 내 집 마당을 거니는 듯, 잘 꾸며진 공원을 평온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며 산책도 즐기고 풍경도 즐기며 디카에 찰칵찰칵 담는 일도 즐겼다. 그럼 담아 온 사진을 함께 보시지요. '천안 삼거리' 민요의 전설 옛부터 삼남(三南:충청, 전라, 경상)의 요로였던 천안삼거리는 민요 '흥타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옛날처럼 번성된 모습을 요즘은 찾을 수 없지만 전라도 고부 고을 선비 박현수와 기생 능소와의 애틋한 사랑이 얽힌 전설은 천안삼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능수버들의 유래를 잘 말해준다. 요즘처럼 봄이 시작되면 어느 나무들 보다 먼저 녹색을 띠며 휘휘 타령춤이라도 추듯 가지를 늘이는 능수버들엔 능소와 관련 된 아픈 전설이 있다. 옛날 홀아비 한 명이 능소라는 어린 딸과 가난하게 살다 변방의 군사로 뽑혀가게 되었다 한다. 그는 변방으로 가다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더 이상 어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막에 딸을 맡겨 놓는다. 홀아비는 딸 능소(綾紹)에게 '이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다시 너와 내가 이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라며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홀로 떠났다. 어린 능소는 이곳에서 곱게 자라 기생이 되었는데 미모가 뛰어난데다 행실이 얌전해 그 이름이 인근에 널리 알려졌다. 이때 마침 과거를 보려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가 주막에 들렸다 능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박현수는 그후 장원급제하여 삼남어사를 제수 받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이곳에서 능소와 다시 상봉하자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 하고 춤을 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변방의 군사로 나갔던 능소 아버지도 별탈없이 돌아와 곱게 성장한 딸을 다시 만나게 되니 경사가 아닐 수 없어 잔치가 벌어지니 그곳에서 흥타령이 시작되었다 한다. 천안삼거리 공원엔 유달리 버드나무가 많다. 이렇게 버드나무가 많은 것은 능소와 헤어질 때 능소의 아비가 꽂았던 버드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퍼진 것이라 한다. 천안삼거리에 휘휘 가지를 느리고 있는 버드나무들은 이래서 능소버들 또는 능수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내용출처:네이버지식in 쌍사자 석등 영남루 천안삼거리 영남루(永南樓 문화재자료12호). 원래 천안 관아 안에 있었던 것을 1959년에 공원으로 이전했다. 2012년 영남루는 천안흥타령축제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고 영남루 주변은 새롭게 단장됐다. 느림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천안삼거리공원의 산책을 마친 후, 다음일정인 독립기념관으로 향하기 위해 공원앞 버스승차장으로 되돌아 와 400번 버스를 또 한참만에 타게 됐다. 약 30분 소요로 독립기념관에 닿았으니 천안삼거리공원에서 그리 멀진 않은 곳이어서 별 무리는 없었다. 독립기념관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독립기념관은 아주 오래전에 몇번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세월이 지나 기억속에서 많이 잊혀져 모두가 새로움으로 잘 찾아 왔단 생각이 들었다. 역사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독립기념관 獨立紀念館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목천읍 삼방로 95) 3·1운동의 만세 소리를 다시 듣는 곳 1987년 국민모금운동으로 건립한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모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민족의 전통문화와 국난 극복사를 모아 전시해 놓은 겨레의 뿌리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국가로 발전하려던 한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상과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겨레의시련관,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으로 대표되는 구한말의 국권회복운동을 다룬 나라지키기관, 1910년대의 독립운동과 3·1운동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겨레의 함성관과 만주를 중심으로 연해주 각지에서 이루어진 독립군과 광복군의 무장 저항 운동을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물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나라되찾기관,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민중의 항일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새나라 세우기관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항일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체험 전시관인 함께하는독립운동관 등 모두 7개의 전시관을 둘러보고 입체영상관에서 첨단 디지털 4D 시스템을 통해 입체애니메이션 영상물을 감상하게 된다. 야외 전시장에는 독립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애국 선열들의 시와 어록을 새긴 어록비 그리고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염원의 동산이 조성되어 있으며 철거한 조선총독부 건물을 옮겨 와 전시해 놓은 공원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을 위한 휴식 공간도 잘 갖추어져 있어 2.6㏊의 규모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연못과 솔숲쉼터 등에서 쉬어 가기 좋으며 698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영장도 갖추고 있다. 워낙 규모가 커서 이동 중에 태극열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식당과 매점도 이용하기 편리하다. 아우내장터와 병천순대 유관순 열사가 3·1운동 당시 만세를 부른 곳으로 유명한 아우내 장터는 지금도 1일과 6일 장이 서고 있다. 이 장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병천순대. 독립기념관에 들렀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명소다. 내용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무료입장이다. 독립문 독립협회에서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고 자주 민권과 자강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1897년 11월에 건립한 독립문 모형.(실물 1/2.5 축소모형) 독립협회는 서재필의 발의로 독립문의 건립을 결성하고 관료, 농민,지식인, 학생 등 각계각층 백성들의 보조금으로 건립되었다. 독립문은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쳐 1897년 11월 완공되었는데,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웠으며,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방하였다고 한다. 독립문의 기본 설계는 서재필이 담당하였고 세부 설계도는 주한 독일공사관 소속 스위스인 기사가 담당하였으며, 그 공역은 한국인 기사 심의석이 담당하였다. 한편 독립협회에서는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명명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 및 사무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의 주변공지에 식수하여 독립공원으로 꾸몄다. 실제 크기가 14.28m, 너비 11.48m인 독립문(사적32호)은 성산대로 공사로 인해 1979년 7월 13일에 원 위치에서 서북쪽의 70여m 떨어진 지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이전하였다. 무빙로드 을사늑약 전문 The Preamble df the 1905 Eulsa illegal Treaty 1905년 11월 17일 일왕의 칙사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내각에 강요하여 외교권을 빼앗은 불법협약 강제로 맺어진 불법협약이었기 때문에 늑약이라 칭한다. 독립기념관 해설사언니로 부터 의병의 무기제조를 듣는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 경청하는 모습들이 자못 진지하다.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명동촌(明東村)은 1899년 김약연, 김하규, 남도천, 윤병규, 김하현의 다섯 가문의 142명이 두만강을 넘어 북간도에 세운 한인마을로써 이 마을에 세운 명동학교에서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 항일운동가들을 양성했으며 우리나라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윤동주, 나운규, 송몽규 등이 모두 이 곳 출신이다. 윤봉길 [尹奉吉]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에서 일본의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있는 윤봉길 의사 윤봉길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알아본다. 본명은 우의(禹儀),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윤봉길은 1908년 충청남도 예산 아버지 윤황, 어머니 김원상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덕산보통학교에 입학, 1919년 3ㆍ1운동이 발발하자 일제식민지 교육에 저항하며 자퇴하였다. 이후 1921년(14세) 마을 인근의 유학자 매곡(梅谷) 성주록 선생이 개설한 서당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과 사서삼경 등 중국 고전을 두루 공부하였다. 1926년 오치서숙을 마칠 때 즈음 성주록 선생으로부터 매헌(梅軒)이라는 호를 얻었다. 오치서숙을 마친 1929년 농촌 발전을 위한 '부흥원'과 농촌 자활을 위한 '월진회' 등을 조직하여 농촌계몽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의 어려움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다짐하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 이라는 신념인 담긴 편지를 남기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만주로 향하던 중 선천(宣川)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45일간 옥고를 치른 후 만주로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근거지를 모색하였다. 그러다가 1931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그 후 1932년 1월 8일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이 일본 동경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1월 28일 일제가 고의로 일으킨 상하이사변을 계기로 도발한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식 겸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을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윤봉길은 거사를 계획하였다. 드디어 1932년 4월 29일 기념식 행사에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숨겨 들어온 윤봉길 의사는 기념식 도중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상하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 2명이 즉사하고, 군 수뇌부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거사로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으로 옮겨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그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시신은 1945년 5월 한국으로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윤봉길의사는 당시 중국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왕생일 기념행사때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의 원흉을 척결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던진 것이 도시락폭탄이 아니고 물통폭탄이었고 자결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도시락폭탄이었는데 우리들에게는 도시락폭탄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공원에서 열린행사였기 때문에 도시락과 물통이 반입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중국정부를 감동시켰고, 이 의거는 중국 국민당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상하이에서 일본탄압으로 중국각지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했을때 교통기관으로 이용했던 쪽배 모형물이다. 외국인 관람객들이 관람을 마치고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 꽃명?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데 태극열차는 늦은 관람객을 태우고 달린다. 다음 카페의 ie10 이하 브라우저 지원이 종료됩니다. 원활한 카페 이용을 위해 사용 중인 브라우저를 업데이트 해주세요. 다시보지않기 Daum | 카페 | 테이블 | 메일 | 즐겨찾는 카페 로그인 카페앱 설치 GS칼텍스 퇴직사우회(한솥회) https://cafe.daum.net/gssawoo 검색 카페정보 GS칼텍스 퇴직사우회(한솥회) 실버 (공개) 카페지기 김승태 회원수 145 방문수17 카페앱수2 카페 전체 메뉴 ▲ 카페 게시글 목록 이전글 다음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답글 수정 삭제 스팸처리 자유게시판 스크랩 천안삼기리 ,흫,독립기년관 원두네 추천 0 조회 42 14.03.12 08:36 댓글 0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출처: ♡ 황혼의 낙원 ♡ 원문보기 글쓴이: 고봉산과 메라리 댓글0 추천해요0 스크랩0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 댓글내용 댓글 작성자 검색하기 연관검색어 환율 환자 환기 재로딩 최신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 스팸처리
출처: ♡ 황혼의 낙원 ♡ 원문보기 글쓴이: 고봉산과 메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