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해인사 홍제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인사 산내 암자 홍제암은
본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6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00년 9월 28일 보물 제1300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산내암자입니다.
《홍제암 부도탑과 탑비》
《자통홍제존자 석장비》
《사명대사 부도 》
창건연대 및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왕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우게 하였습니다.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1614년에 혜구대사(慧球大師)가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기 위하여 영당(影堂)을 건립하였습니다.
《석장비에서 홍제암 들어오는 문입니다》
《영자전》
《홍제암》
《서래당 요사채 》
《서래당 앞마당에서 부도탑쪽으로 바라봄》
👉홍제암은 해인사의 서편으로 일주문에서 한 이백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이며, 특히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속세 나이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스님의 비를 세웠습니다.
《보승문》
《인법당 (홍제암), 보물 제1300호 》
《영자전》
《서래당》
《감로수각》
《서래당 앞마당 화단에 왠 치미가 있었습니다》
《요사채》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하였습니다.사명대사의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더 잘 알려진 석학 허균이 지은 것으로서, 문장도 아주 빼어날 뿐더러 대사의 행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사적으로서의 값어치가 높습니다.지금의 홍제암 건물은 최근에 신축한 것이며, 암자 안에는 청허, 사명, 기허대사를 비롯한 뭇 큰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영자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뒷동산에는 평범한 석종의 모습으로 만든 사명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홍제암 내부》
현존하는 당우로는 100여 평에 달하는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영자각(影子閣)·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인법당에는 「홍제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보물 제130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법당 내에는 지장보살 및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영자각에는 16명의 고승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이 영자각은 영조 때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표충사라고 했으나 밀양의 표충사에도 사명대사를 모신 곳이 있다고 하여 이곳을 폐하였다고 합니다.
《영자각 내부》
현재 영자각에는 청허(淸虛)·사명·영규(靈圭)·하운(夏雲)·화곡(華谷)·장섭(仗涉)·송파(松坡)·평신(平信)·정월(淨月)·부환(賦還)·보응(普應)·돈암(遯庵)·모은(慕隱)·예봉(禮峰)·회은(晦隱)·해활(海活) 등의 영정이 있습니다.
또한 이 암자에는 1612년(광해군 4)에 허균(許筠)이 비문을 쓴 사명대사의 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1943년 일본인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비문의 내용이 한국인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네 조각을 내어 길가에 방치하였습니다.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 (보물 제1301호)》
광복 후 이 비문을 명월당에 보관했다가 1958년에 철봉으로 속을 연결하고 파손된 부분을 석회로 때워서 현재의 위치에 세웠으며, 사명대사 부도와 함께 보물 제130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이 3.1m, 너비 1.2m이며, 사명대사의 전기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되고 정확한 것입니다.
또 암자 뒷산에는 높이 1.8m, 둘레 3.32m의 평범한 석종형 부도가 있는데, 사명대사의 부도라고 전합니다.
《홍제암 보승문입니다. 》
홍제암은 (보물 제 1300호)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대왕의 하사로 1608년에 창건하여 수도하다가 입적한 곳입니다.
《서래당》
1614년 (광해 6년)에 혜구(慧球)스님이 영자전을 지어 서산(西山), 사명(四溟), 영규(靈圭)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674년에 현종(顯宗)께서 홍제당(암)을 사액하였으며 그 동안 6차례 보수하였는데, 현존건물은 당시 故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예산 조치로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습니다.
《자통홍제존자 석장비 (보물 제1301호)》
《사명대사 부도》
경내에는 보물 제1301호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가 있습니다. 사명대사 부도 및 탑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1612년(광해 4년)에 건립하였고,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파손하였던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습니다.
부도는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로서 1610년 입적하신 해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견각(산신각) 가는길》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부도는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로서 1610년 입적하신 해에 세워졌고, 비석은 1612년(광해 4년)에 건립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깨뜨린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습니다. 부도는 고려의 승탑형식을 계승하여 3단의 연화대좌와 종모양의 탑신, 둔중한 지붕돌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견각》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 옆에 세워져 있는 임창순 국역, 배재식 쓰고, 경상남도 세운 석장비 국역 번역비를 참고하였움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는
대사의 이름은 유정, 자는 이환 호는 사명 또는 송운(松雲)이라 하였고 성은 풍천 임씨(豊川任氏)입니다.
《정견각 내부》
1544년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였고 13세에 직지사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되었습니다. 1561년에 선과(禪科)에 합격하였고 특히 시를 잘지어서 당시의 문인대가들과 이를 교환하여 명성이 크게 떨쳤습니다. 1575년에 선종(禪宗)의 주지에 추대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묘향산에 들어가서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서산은 그에게 마음을 닦는 공부를 서서히 주었습니다. 대사는 크게 깨닫고 지금까지 흥미를 붙여온 문학과 학문에 대한 모든 상념을 버리고 마음공부를 체험하기 위한 고행의 수행을 3년동안 지속한 뒤에 다시 국내 여러 명산을 두루 다니어 수행을 계속하였습니다.
《약사여래와 지장보살 석불》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대사는 유점사에 있었는데, 그 절에 침입한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을 설득하여 민인을 살상치 못하게 하였다. 선조가 의주에 피난했음을 듣고 수백명의 승군을 모집하여 순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때 서산대사가 전국의 승군을 총지휘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늙었으므로 이 책임을 대사가 대신 맡도록 나라에 추천하여 대사는 이 승군을 거느리고 명나라 장군과 합세하여 평양을 수복하는데 참가하였고 다시 도원수 권률의 후하에 들어가서 경상도 의령에 주둔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나라에서는 대사에게 '당상관'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1594년 봄에 명나라 장군의 지시를 받고 부산에 있는 일본군 진영에 들어가 적장 청청과 세번이나 회담하여 그의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이 때 청청이 "조선에 보물이 있느냐?"고 물으니 대사는 서슴치 않고 "우리나라에는 보물이 없고 당신의 머리가 곧 우리의 보물이다."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대사는 군무에서 떠나지 않고 어떤 때는 팔공산과 금오산에 성을 쌓았고 또 명나라 장군 유정 아귀 등을 따라 전공을 세우기도 하고 .. 힘주기도 하였습니다. 나라에서는 대사에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관직을 내렸습니다. 1601년에 사절로 일본에 가서 가강과 만나 협상을 마치고 우리의 포로 일천육백여명을 찾아서 돌아왔습니다.
뒤에 가야산에 들어가 있다가 1610년 8월에 6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골은 해인사 서쪽 기슭에 부도를 세워 안치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를 올리고 대사의 화상을 모신곳을 홍제암이라 하였습니다. 대사가 지은 시들이 많았으나 분실되고 제자들이 수정한 사명집(四溟集) 칠천권이 있습니다.
1612년에 짓고 이를 세웠는데 이를 한글로 요약하여 이 비를 따로 세운다.
서기 1979년 12월 임창순 국역. 배재식 씀
경상남도 세움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파손하였던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석장비는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새긴 석조물로서 1612년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명의 비신 귀부와 이수 부분을, 부분으로 촬영해 보았습니다.
부도는 고려의 승탑(僧塔) 형식을 계승하여 3단의 연화대좌(蓮花臺座)와 종모양의 탑신(塔身), 둔중한 지붕돌을 갖추고 있다.
홍제암 대웅전과 조사실 모습입니다.
홍제암 대웅전 대웅전 벽에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조사전으로 왔고 조사스님들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불화를 만날 수 있었고, 특히 사명당 유정과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삼화상의 진영 불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홍제암 조사전에는 사명대사 진영을 위시하여 임난 삼화상 진영을 비롯하여 여러 스님들의 진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사명대사가 수행하고 입적한 해인사 홍제암🔶️ 해운대 반야선원🔶️불기2568년(2024)1월21일🔶️삼보종찰순례 중 다녀왔습니다 🔶️
https://youtube.com/watch?v=vFVOi-5t6Kw&si=Tl2KaQ_sNFSs1mQA
https://youtube.com/watch?v=vFVOi-5t6Kw&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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