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발견
예고 없이 이웃에서 개척교회를 하시는 연로하신 목사님께서 찾아오셨다. '94년도 달력을 주문받아 인쇄소에 갖다 주면 어려운 생활에 보탬이 되기에 찾아 오셨다고 하신다.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 중 아내가 마실 차를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연로하신 목사님께서는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라고 하셨다. “어디가 그리 행복하게 보입니까?” 여쭈니 “사모님이 계시지 않소.”하신다. “사모님 없는 목사님도 계십니까?” 하니 “저는 사모가 없습니다.”하신다.
그 목사님은 사모님 없이 연로하신 어머님과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렇게도 살기가 어려울 줄은 몰랐다면서 눈물이 글썽거림을 감추지 못하셨다. “지금쯤 아내가 살아 있다면 교회도 많이 부흥 되었을 겁니다. 재혼하기도 그리 쉽지 않아요. 옛 말에 상처가 망처라 하지 않소.” 목멘 말씀을 들으며 우리 가운데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목사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나는 늘 옆에 있어 평범하고 마땅한 줄 알았던 아내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그 날은 연로하신 목사님을 통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한 날이었다. 주일예배 때 나는 아내가 있음을 감사하며 감사헌금을 드렸다. 헌금내역을 성도들에게 설명하였더니, 예배드리는 동안 남편이 옆에 있음을 아내가 옆에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는 성도들이 많은 것을 느꼈다. 항상 내 곁에 나와 함께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서로에게서 발견한 기쁨과 행복한 마음들이 넘쳐난다.
가장 소중한 보물
유대인의 지혜서인‘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적의 군대가 한 마을을 포위했다. 적군의 장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남자들은 모두 우리의 포로가 되어서 노예로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다 풀어주겠다. 여자들은 즉시 마을을 떠나되 각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 한 가지만을 지니고 가도록 허락하겠다.”
여자들은 각자가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을 하나씩 지니고 나섰다. 금반지를 들고 가기도 하고, 은수저를 챙겨서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한 여인은 몸집이 작으면서도 엄청나게 큰 보따리를 매고서 힘겹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검문하던 적군이 그 여인을 세워서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뜻밖에도 그 속에는 남자가 한 사람 들어 있었다.
적군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었다. “이게 도대체 누구야?” 여인은 솔직하게 답변했다. “예, 제 남편입니다!” 적군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왜 명령을 어기는가? 보물을 가져가라고 명령했지 언제 사람을 메고 가라고 했는가?” 여인은 지혜롭게 답변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제 남편입니다!” 적군의 장수는 여인의 지혜와 그 마음에 감동하여 남편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여인은 지혜로 남편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지혜가 부족한가?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했다(약 1:5). 지혜가 금은보화를 얻는 것보다 나음을 알고 지혜 얻기를 간구하자.
가장 오래 가는 향기
어느 아름다운 날, 한 천사가 하늘에서 산책 나와서 이 오래된 세상에 오게 되었다. 그는 자연과 예술의 다양한 광경들을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 되어서, 그는 금빛 날개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빛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 왔던 기념으로 무엇을 좀 가져갈까?"
"저 꽃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가! 저것들을 꺾어서 골라 꽃다발을 만들어야겠다."
시골집을 지나가며, 열린 문을 통해 어린이용 장미 빛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의 미소를 보고 그는 말했다.
"저 아기의 미소는 이 꽃보다 아름답다. 저것도 가져가야겠다." 바로 그때, 소중한 아기에게 잘 자라고 키스하며 그녀의 사랑을 영원한 샘물처럼 쏟아 붓는 한 헌신적인 어머니를 그는 요람 저쪽에서 보았다. 그는 말하였다.
"아! 저 어머니의 사랑이야 말로 내가 모든 세상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저것도 가져가야겠다!"
이 세 가지 보물과 함께 그는 진주 빛 문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기념품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름다운 꽃들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이미 시들어 버렸고, 아기의 미소도 찡그림으로 변해 있었다. 단지 어머니의 사랑만이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시들은 장미와 사라진 미소를 버렸다. 그러고 나서 문을 통과하는데, 그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보기 위해서 모여든 하늘의 천사들이 그를 환영했다.
그가 말했다. "이것이 지상에서 내가 발견한 것 중 하늘까지 오는데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존한,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가정
유명한 불란서의 농민화가였던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원래 70달러밖에 되지 않는 물감과 종이를 들여서 그린 것인데, 나중에 어느 미국인이 12만 5천 달러에 사 갔습니다. 얼마 후에 불란서 사람들이 이 명화를 다시 본국으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서 15만 달러를 주고 사다가 르부르 미술관에 걸어놓았습니다.
밀레의 "만종"은 어느 젊은 부부가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다가 멀리 예배당의 종소리가 들려 올 때에, 괭이와 삽을 놓고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 명화 속에 세 가지 신성함이 있는데 첫째는, 가정의 신성함이요, 둘째는 노동의 신성함이요, 셋째는 종교의 신성함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을 위한 계명 모음(김광환-청안교회)
1. 부부 십계
1,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2, 두 사람이 동시에 화를 내지 말자.
3. 집이 불이 났을 때 외에는 고함을 지르지 말자.
4. 눈이 있어도 흉을 보지 말고 입이 있어도 상대의 실수를 말하지 말자.
5.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6. 아픈 곳을 긁지 말자.
7. 화를 간직한 채 잠자리에 들지 말자.
8. 처음 사랑을 잃지 말자.
9. 결코 단념하지 말자.
10. 서로 숨기지 말자.
2. 행복한 부부 십계명
<남편의 십계명>
1. 결혼 전과 신혼 초에 보였던 관심과 사랑이 계속 변치 않도록 노력하라.
2.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잊지 말라.
3. 평소 아내의 옷차림과 외모에 관심을 보여라. 남편은 아내의 사랑스러움을 가꾸는 정원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아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말이나 행동으로 아내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라.
5. 모든 일을 아내와 의논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길러라. 결혼의 행복이란 부부간의 사랑보다는 평소에 부부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가에 달려 있다.
6.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농담이나 행동을 삼가라.
7. 가정에 불화가 있을 때, 남편은 한 걸음 아내에게 양보하라. 아내의 매력이 사랑스러움이라면 남편 의 매력은 너그러움이다.
8. 가정경제는 아내에게 일임하여 아내가 보람을 갖게 하라.
9. 아내의 개성과 취미를 존중해 주고 키워주도록 하라.
10. 하루에 두 번 이상 아내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즉시 일러줌으로써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습관을 길 러라.
<아내의 십계명>
1. 자기 자신과 가정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재치와 근면성을 길러라.
2. 음식준비에 정성을 기울이고 남편의 식성에 유의하라. 식탁은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고 대화를 나누 는 친교의 광장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꿈꾸는 희망의 산실이다.
3. 혼자만 말하지 말라. 남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 부부가 충돌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4. 남들 앞에서 남편의 결점을 늘어놓거나. 지나친 자랑을 하지 말라.
5. 남편에게 따져야 할 말이 있을 때는 그의 기분 상태를 참작하라.
6. 남편에게는 혼자만의 정신적 휴식식간을 갖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음을 잊지 말라.
7. 중요한 집안일을 결정할 때는 남편의 뜻에 따르라.
8. 남편의 수입에 맞춰 절도 있는 살림을 꾸려 나가도록 하라.
9. 모든 일에 참을성을 가져라.
10. 하루에 두 번 이상 남편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지적해 줌으로써 남편의 기쁨과 긍지를 갖도록 하 라.
3. 새로운 부부 십계명
<아내들이여->
1.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십시오.
2. '완전한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3. 남편의 독특한 성격과 필요한 점을 발견하여 만족시키도록 하십시오.
4. 부모님에 대한 의존과 친척들의 비평을 상관하지 마십시오.
5. 무엇을 요구하는 대신 칭찬과 이해를 해 주십시오.
6. 소유욕과 질투심을 버리십시오.
7. 불평이나 요구보다, 사랑으로 남편을 맞아들이십시오.
8. 비판이나 공격으로 남편을 바꾸어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9. 공주와 같이 되려는 꿈을 버리고 성장하십시오.
10.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남편들이여->
1. 아내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하십시오.
2. 많은 찬사와 확신을 주십시오.
3. 책임의 범위를 정하십시오.
4.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5. '작은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6. 아내가 늘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인정하십시오.
7. 아내에게 안정감을 주십시오.
8. 아내의 기분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9.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아내의 노력에 협조하십시오.
10. 아내의 독특한 욕망을 발견하여 그것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하십시오.
4. 아내의 십계명
제1계명 : 청결한 아내가 되라. 청결은 성결의 사촌이란 말이 있다.
겉옷보다 속옷을, 속옷보다 몸을, 몸보다 피를, 피보다 영혼을 깨끗이 하 라. 남편은 청결한 아내를 사랑한다.
제2계명 : 기다릴 줄 아는 아내가 되라.
임이 오시던 날/ 버선발로 달려가 맞았으련만/ 굳이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쳤음이오 리까/ 그도 저도 아니오이다
/ 그저 자꾸만 눈물이 나/ 문 닫고 죽죽 울었습니다. 노천명의 '임이 오시던 날'은 남편을 기다릴 줄 아는 아내의 진실한 모습이다.
제3계명 : 남편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고 작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남편은 밖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돌아온다. 그것으로 족하다, 편안히 쉬 게 하라. 집안 청소해 달라는 등
시장에 같이 가자는 등 명령식의 이런 작은 일에 기대하지 말라. 이런 일 해준다 해서 훌륭한 남편일 수 없고, 안 해 준다 해서 부족
한 남편일 수 없다. 오히려 작은 남편 만들기 쉽다. 남편이 자원할 때 그런 일은 아름다운 것이다.
제4계명 : 남편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하지 말라.
옛글 뜻풀이에서 아내를 '안 해'라 불렀다. 집안의 해는 흐려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남편이 집 에 들어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아내가 여보, 나 아파요 소리다. 바가지보다 더 나쁜 것은 무관 심이요,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은 아프다는 소리다. 남편은 80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아내는 50이면 경수가 끊어진다. 남편은 아내가 항상 건강하게 남편을 맞아주길 바란다. 동정 받 으려
말고 사랑을 받으라.
제5계명 : 바가지는 긁으라. 그러나 웃으면서 긁으라.
남편이 성자이길 기대하지도 말고 성자가 되려고도 말라. 부부가 함께 성자인 사람, 세상에서 본 적이 없다, 어느 가정에 부부싸움
이 크게 있었다. 화가 난 남편이 이렇게 싸우고 살기보다 서로 이 혼을 하자했다. 아내가 화를 내며 말하길 이혼하려면 왜 싸워요.
살려니까 싸우지요 했다 한다. 지혜로운 아내이다.
제6계명 : 경건한 아내가 되라. 아침에 남편이 눈을 떴을 때 아내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나, 성서를 펴들고 독경하고 있는 모 습을 보았
을 때, 퇴근길에 혹 아내가 부르는 찬송소리를 들었을 때 남편은 아내에 대한 경외심을 갖 게 된다.
제7계명 : 순종하는 아내가 되라.
간디의 아내가. 기자들의 간디에 대한 질문에 대해나는 남편을 따르는 것을 아내의 존엄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얼마
나 위대한 아내의 고백인가.
제8계명 : 남편의 짐을 함께 나누는 아내가 되라.
담배를 끊지 못한 남편을 위해 가족과 함께 금연 식을 가졌단다.
1. 개회사 : 지금부터 아버지의 금연 식을 시작하겠습니다.(아들)
2. 금연선서 : 나는 하나님과 가족 앞에서 금년만은 반드시 금연하기로 서약합니다(아빠)
3. 구호제창 : 금년에는 금연을! 금년에는 금연을!(다같이)
4. 화형식 : 담배와 성냥을 화형 시키다.(어머니).
5, 공약 : 아내 된 나는 금연한 남편을 위해 가장 좋은 영양식을 만들겠다. 자녀 된 우리는 아버지 구두 닦는 것과, 세면 후 수건을
챙겨 드리겠습니다.
6. 내빈격려사 :오빠의 금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결심 금년에는 변치 말길 바랍니다.(고모)
7. 축가 : 생일 축하곡에 맞춰 금연 축하합니다.(온가족)
8. 감사기도 : 통성으로
9. 폐회사 : 이상으로 우리 아빠 금연 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딸).
10. 피로연 : 한 달분 담배 값 정도의 액수로 피로연을 가진다(온 가족)
남편의 소감은 벌써 금연식이 여러 번인데 올해만은 금연해야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한다. 남편의 짐을 함께 지며 인내하는 아내의
지혜 속으로 한 가정의 행복을 엿볼 수 있다.
제9계명 : 모든 일에 감사하는 아내가 되라.
하나님은 우주를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게 될 것이다. 찬양하고 감 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불
평하고 짜증내면 마귀에게 영광이 된다.
제10계명 : 남편에게 의로운 선지자가 되라.
남편은 밖에서 불신앙과 접하게 된다. 남편의 신앙이 식어질 때 이끌어주고, 낙심되고 실망할 때 위 로 자가 되라. 함께 신앙이 식
어지면 누가 우리 가정을 일으키겠는가.
5. 남편의 십계명
제1계명 : 교회 앞에 충성하는 아내를 탓하지 말라.
아내를 나라는 것은 핍박이 되고, 핍박은 곧 하나님께 한 것이 된다. 하나님을 질투 대상으로 삼지 말라. 아내는 그대가 충성 못한
몫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후, 아내의 충성은 자녀에게 귀한 신앙의 유산이 되고, 그대 가정에
축복이 있으리라.
제2계명 : 아내를 사랑하라.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라.
병든 아내가 불쌍한 것이 아니다. 신앙으로 이기면 된다. 가난한 아내가 불쌍한 것이 아니다. 마 음만 넓으면 이긴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가 불쌍하다. 일평생 한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 는 행복한 것이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주라, 아내는 보람을 갖고 일
하리라.
제3계명 : 모든 일은 아내의 동의를 구하라. 전선이 끊어지면 동력은 소용없어진다.
소금은(NaCl)염산과 나트륨이라는 독극성 물질이 합쳐졌을 때 맛을 낸다. 부부도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될 때 행복의 맛을 낸다.
제4계명 : 아내의 모든 일에 칭찬과 감사의 말을 잊지 말라.
타미펠이필드 여사가 금혼식을 맞아 부부생활을 회고한 내용이다.
남편은 50년 동안 여전히 옷장 문 닫는 법 없고, 아내 또한 냉장고 청소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들이 나쁜 버릇을 서로 못 고 치
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게 잘못한 것 있으면 반드시 용서를 빌었다. 남편 대 답은 용서할 것 없어. 이미 다 잊어
버렸는걸. 항상 남편은 부인에게 식사 후 오늘 식사는 정말 훌륭 했어. 아내는 언제나 남편에게 당신은 정말 신사예요. 이들을 금혼
식까지 행복하게 살게 한 것은 이 40마디 정도의 칭찬과 감사의 말이었다고 한다.
제5계명 : 신앙의 족장이 되라. 가정의 왕이나 폭군이 되려하지 말라. 집안의 왕은 주님이시다. 신앙의 족장이 되라.
가정 제단 에서 예배를 집례 하는 그대는 가정에 행복을, 그대에게는 남편의 존엄성을 축복받게 된다.
제6계명 : 아내에게도 휴가를 주라.
일 년에 한두 주간씩 기도원에나, 친정에나, 친구 집에나, 계절학교에 보내라. 보고 배우는 것이 많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아내는 집이 그리워 아내가 정한 날짜보다 서둘러 돌아올 것이 다. 그대는 신혼 때처럼 아내를 맞게 될 것이다.
제7계명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아내임을 잊지 말라.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집에 있음에도 엄마 어디 갔어? 한다.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또 엄마 어디 있
어? 한다. 어머니가 밖에 갔다 오시면 애기 어디 갔냐? 하신다. 필 자도 밖에서 돌아오면 너희 어머니 어디 갔나? 하고 찾는다. 잠
시 동안이라도 아내가 안 보이면 아 이들과 온 식구가 울상이다. 이렇게 귀한 아내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세월은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아껴주라.
제8계명 : 아내 앞에 겸손 하라.
아내가 나와 만나지 않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과 만났다면 지금쯤 이보다 더 행복한 부인이 됐을 것 이란 것을 잊지 말라. 중세 성자
마카리우스가 나무를 해가 지고 내려오는데 사단이 낫을 들고 성 자 앞에 굴복하며 나는 너를 넘어뜨리려고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못하고 간다하기에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겸손이다 라고 대답했다 한다.
제9계명 : 처가 집에도 똑같은 사랑을 드려야 한다. 아내는 정에 약하다.
처가 쪽 식구들에게까지 도움과 사랑의 배려가 있을 때 눈물 나도록 아내는 감사해 한다. 모든 것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
이다.
제10계명 : 아내에게 의로운 선지자가 되라. 아담을 망친 것은 하와의 불신앙이었음을 잊지 말라.
아내가 영적으로 낙심할 때 남편이 신앙으로 이끌어주고, 신앙이 실망 속에 빠질 때 위로 자가 되라. 두 사람이 함께 신앙이 식어지
면 누가 그 대 가정을 일으키겠는가. 부질없는 소망 같으나 자기 목숨의 안전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평안했던 남편 아브라함
에게 그래도'주'라 하며 순종하고 따랐던 사라 같은 아내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아내를 보고그대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하며 입술로 범죄 앉았던 욥과 같은 남편이 만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한 얼마나 재미없을까 생각해 본다.
행복은 평온 속에서보다 고난 속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6. 가족 복음화를 위한 십계명
1.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임을 알라(마 28:18-20) : 예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최고의 명령은 전도이다. 전도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
을 구원하여 영생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2. 가족에 대한 나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라(고전 10:31) :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3. 가족 복음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행 16:31) : 가족은 말씀의 약속에 의하여 복음화 될 수 있다.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4. 복음전도의 환상을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라(행 1:8) : 당신은 전도하고자 하는 환상을 가지고 당신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라.
5. 가족복음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를 하라(마 7:7-8) : 가족들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라.
6. 결코 낙심하지 말라(갈 6:9) : 전도에 대한 낙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낙심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다.
7. 변화된 삶을 보이라(갈 2:20) : 당신의 전도 대상자인 당신의 가족에게 변화된 삶을 보이라. 당신의 변화된 삶은 말없는 간증이 될 것이다. 8.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전도하라(마 28:18-20) : 말씀을 펴서 영생의 말씀을 가족에게 전하라. 믿음은 들음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라.
9. 성도의 모임으로 인도하라(히 10:24,25) : 성도의 모임을 통해서 당신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람을 맛 볼 수 있다.
10. 가정예배를 드리라(행 10:1-2, 창 35:1-5) : 가정에서 당신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을 가지라.
7. 어버이 십계명
1. 계속적이고 줄기찬 애정으로 아이들을 보살펴라. 이는 음식물이 신체의 건강에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어린이들의 정신적 건강에 절대 필요
하다.
2. 아이들에게 관대하게 시간을 할애하해주고 깊은 이해를 보여줘라. 집안 살림살이를 원활히 운영하 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과 더불어 놀아
주고 여러 가지 유익한 것들을 읽어주라.
3.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출생 직후부터 당신의 아이들에게 무수한 언어의 세계 속에 파묻히게 하라. 이는 아이들의 정신성
장을 풍요하게 해 줄 것이다.
4. 아이들이 혼자,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놀 수 있도록 조장하라. 그들이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무엇이건 탐색하고, 모방하고, 건
설하고, 창조 하도록 유도해 주라.
5. 아이들이 이룩한 업적을 칭찬하기 보다는, 그들이 해보려는 노력을 더 칭찬하여라.
6. 아이들에게 점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라. 아이들의 모든 기교처럼 책임도 부단한 실천을 요구한 다.
7. 아이들은 모두가 특유한 특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래서 한 아이를 다루는데 적합한 방법 이 다른 아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8. 반대를 표시하는 방법도 아이들의 기질, 연령, 이해력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
9. 앞으로 사랑하지 않겠다거나, 쫓아내겠다. 등의 위협을 하지 말라. 아이들의 거동을 거부해도 좋으 나 결코 아이들 자체를 거부할지도 모
른다고 시사해서는 안 된다.
10. 아이들로부터 감사를 기대하지 말라. 당신의 아이들은 자기들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 니라 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다.
8. 부모를 위한 십계명
1. 너희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원이 됨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를 구해야만 모든 것이 그에게 더해지
리라는 것을 가르치라.
2. 너희는 너희 마음을 다하여 너희 자녀를 사랑하되, 그들의 최선의 이익을 너희의 것보다 앞서 생각 하라.
3. 너희는 자녀에게 지혜로운 교훈과, 친절한 충고와, 그리스도적인 모범으로 지도하라.
4. 너희는 자녀에게 어버이로서의 사랑과 가정의 연대 정신을 주라. 그러면 너희를 반드시 존경하리니 이는 너희가 진실로 자녀에게 평안을
주었음이라.
5. 너희는 자녀들이 생의 모든 문제에 직면할 수 있도록 잘 훈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연약한 자녀로 되지 않도록 피하게 하라.
6. 너희는 을(乙)의 능력을 가진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갑(甲)만을 하라는 요구하는, 자녀에게 대 하여 지나친 욕망을 가지지 말라.
7. 너희는 너희 자녀들이 취미도 느끼지 않고 맞지도 않는 방면에 억지로 노력하도록 밀어 넣지 말라.
8. 너희는 자녀로 하여금 자기의 능력과 동시에 그 한계를 결정하는 데에 도와주며, 자신의 생업을 택 해야만 할 시기에는 잘 판단할 수 있도
록 적절히 지도하라.
9. 너희는 너희 자녀에게 생활하기 위한 욕망만이 아니라. 생명을 뜻있게 만들려는 의욕을 키워주라.
10. 너희는 너희 자녀의 삶이 너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너희 자녀를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하라.
<윌리암. A. 워드>
9. 부모를 위한 계명
1. 너희는 너희 자녀를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그리고 온 정성을 다하여 지혜롭게 사 랑하라.
2. 너희는 너희 자녀를 너희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한 인격으로 생각하라.
3. 너희는 너희 자녀를 필요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말고, 존경하고 사랑할만한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 라.
4. 너희는 너희 자녀를 자기 발로 서기를 가르치고, 스스로의 힘으로 싸우기를 가르치라.
5. 너희는 너희 자녀로 하여금 미를 보고, 친절을 베풀고, 진리를 사랑하고, 친구와 더불어 교제하도록 가르치라.
6. 너희는 너희와 너희 자녀와, 너희 친구들과 자녀의 친구들을 위해 참된 집, 곧 하나님의 나라를 예 배하라.
가정마다 문제는 있다.
대구 지방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교인 중의 한 가정에 심방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부근의 중학교 교사인 남자 교인의 집이었는데 아들과 그 어머니도 착실히 교회를 다니기에 그저 화목하게 지내는 평범한 가정이라 여겼다. 그런데 생과는 달리 집안에 들어서니 집안에 여기저기 어지럽혀져 있고 뭔가 힘든 일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예배를 드린 뒤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잠시 주저하던 남자의 말인즉, 부인에게 옛날부터 조금씩 신경질환이 있었는데 요즘 그것이 심해져 우울증까지 겹쳐 집안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치료해도 차도가 없으니 무척 절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남편과 밖으로 나와서 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아는 대로 한 집 한 집 가리키며 사정을 얘기 했다. "저 집에는 부부 사이의 불화가 심각하고, 저 집에는 가정이 술주정뱅이고, 저 집에는 불구의 아들이 있고, 저 집에는 파산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집집마다 고민이 없는 가정이 없답니다."
가정에서의 부모의 위치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이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이다. 곧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현세적이고 영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며 이 세상에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한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다.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정의
에디 쉬이퍼는 가정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첫째,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곳이다.
둘째, 가정은 가족들의 피난처요 보금자리다.
셋째, 가정은 사람에게 필요한 돈을 벌고 쓰는 곳이다.
넷째, 가정은 문화를 창조하는 중심지다.
다섯째, 가정은 인간생활에 가장 귀중한 것들을 많이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박물관이다.
여섯째, 가정은 영원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출발하는 곳이다.
일곱째, 가정은 신앙의 출발지이면서 완성지다.
가정의 평화
최근 몇 십 년 동안에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는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가족이 핵가족화하면서 자녀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른바 '적게 낳아 잘 키우자'는 구호가 낯설지 않게 스며들어가고 있습니다. 한 둘 되는 자녀는 금지옥엽이 되어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 다니고, 늙은 부모는 과도기 속에서 소외되어 버려지고 있습니다. '잘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이야 변함없이 지극하여 밤을 새워 좋은 유치원에 집어넣고 '8학군병'을 앓으며 갖은 몸부림을 다 쳐보지만, 그 길이 자녀를 잘 키우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막막합니다.
자녀는 무엇보다 부모를 닮게 마련입니다. 얼굴이나 체격뿐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사람의 됨됨이도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부모의 훌륭한 삶만큼 자녀를 '잘 키우는'길을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보며 닮아가듯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닮아갑니다. 그분들의 삶, 가르치심을 하나하나 살피고 새겨보며 닮으려고 애써갑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린 자녀로부터 나이 많으신 부모에 이르기까지 부모, 자녀 관계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성경에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 어버이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이끄시는 모습대로 자녀를 교육하고, 그분을 섬기듯이 부모를 공경한다면 가정에 평화가 이룩되지 않을까요?
가정의 화목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미담이 있다.
한 색시가 시집을 가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며, 이것은 자기의 잘못 이라며 위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또 이유를 물었다. 그간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달려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심해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하였다. 그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나와서 이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릴 감싸주었다.
옛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家和萬事成’ 이라고 말한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집안이 화목하면 그 집안의 모든 일은 잘 되어 간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남을 위해 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가운데서 화목이 오고 그 화목 가운데서 만사가 잘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런 분위기가 사회에 충만할 때 우리 사회는 아름되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이란?
어떤 잡지사에서 '가정이란 무엇이냐'하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800여 가지의 답이 나왔다. 이 중 7가지를 소개해 본다.
1. 가정은 투쟁이 없는 세계요, 큰 자가 작은 자로 변하는 곳이다.
2. 가정은 작은 자가 크게 되고, 큰 자가 작게 되는 곳이다.
3. 가정은 아버지의 왕국이요, 어머니의 세계요, 자식들의 낙원이다.
4. 가정은 불행이 많은 곳이요, 거기 따르는 대우를 잘하는 곳이다.
5. 가정은 우리의 애정의 중심이니, 거기는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이요, 최선의 소원이 있는 곳이다.
6. 가정은 위가 하루 세 때 밥을 얻어먹는 곳이요, 우리 마음은 천 번이나 얻어먹는 곳이다.
7. 가정은 땅 위에 있어서는 인간의 허물과 실패를 달콤한 사랑 속에 숨겨 주는 곳이다.
가정 파탄의 원인
결혼의 파탄은 부부의 한 편이 다른 한 편의 자아, 즉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데서 생긴다. 이러한 원인으로 하마터면 행복한 결혼을 실패로 빠뜨릴 뻔한 [베티]라는 여성이 있다.
재간이 있는 베티는 여러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재치 있게 농담을 하여, 사람들을 곧잘 웃길 줄 알았다. 베티는 그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나, 가끔 남편의 흠을 재료로 삼아 농담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이 너그러운 남편 [봅]은 자기 아내의 이러한 농담을 조금도 탓하지 않고, 같이 웃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남편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아내와 같이 가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덧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한 여성에게 정도에 넘는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 직장의 여성은 봅을 추켜올리고, 존경을 표시했던 것이다. 봅은 자기를 노리개 감으로 취급하는 아내보다 추켜올려 주는 그 여성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다.
아내는 당황했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을 깨닫고, 그 때부터 남편을 노리개 감으로 하는 버릇을 딱 끊었다. 농담에 능하던 그 재치로서 이번에는 남편을 추켜올렸다. 한때 동요했던 남편의 마음은 다시 그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가정파탄은 한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써 곧잘 오는 것으로, 그것을 막으려면 칭찬과 존경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여, 1940년 제4차로 구속 되었다가, 1944년 4월 21일 순교한 주 기철 목사가, 최후로 산정현교회에서 한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설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 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는 때는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엉킨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주님 따라 가는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지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않습니다."라고.
실로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기 쉽고 이기기 어려운 것이 육정이다.
가족을 사랑하자.(엡5:33)
‘만종’이라는 그림은 밀레라고 하는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이라는 그림과 함께 세계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그림이 그토록 높이 평가받는 것은 미술적인 기법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 안에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다.
첫째는 일의 요소가 있다 - 그 그림에는 두 부부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게으른 자의 가정에 궁핍이 임하고 부지런한 자의 가정에 부요가 임한다. 뿌림이 없이 거둠이 없고, 노력 없이 성공이 없으며, 수고가 없이 영광이 있을 수 없다.
둘째는 사랑의 요소가 있다. 그림 속의 두 부부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물질만으로 행복할 수가 없다. 잘못을 했을 때에는 용서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서로 믿어주는 사랑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하나로 화합될 수 있으며 모든 식구들은 삶의 용기와 활력이 솟구치게 되며 사는 기쁨과 보람이 넘치게 된다. 거기에 희망이 있고 행복이 있다.
셋째는 믿음의 요소가 있다. - 두 부부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멀리서 종소리가 울려오니까 일손을 잠시 놓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니라”(잠16:9)
온 식구가 건강하고 환난 없이 평강을 누리는 일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어야 한다. 나약한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되듯이 연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돌보시고 은혜 베푸시는 가정에 참된 행복이 깃들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어느 가정보다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지만 자기 한 가정의 행복한 생활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창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생동적인 가정이다.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위해 사는 개인은 절대로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만족한 생애를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가정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오로지 자기 가정 밖에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던 바대로의 천국과 같이 풍성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맛볼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사해와도 같다고나 할까. 사해는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러 내 보내지 않기 때문에 사해 가 되었다. 사해에는 생물이 살 수 없다. 무엇이든지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개인이나 가정은 사해처럼 생명력을 잃고 만다.
스위스에서 라브리 사역을 하고 있는 프란시스 쉐이퍼 박사의 아내 에디스 쉐이퍼 여사는 “가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가정을 자물쇠와 돌쩌귀가 달 린 문이라고 했다.
가정이란 자물쇠가 달려 있기 때문에 한번 그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완전히 보호되고 분리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돌쩌귀가 달려 있어서 필요한 때면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생명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다. 무엇보다 영적 무장을 하고 있어서 이 세상이라는 물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떠내려 가 는 가정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영향을 주며 이 세상을 주도해 가는 가정을 말한다.
남편 매매
`남편을 헐값에 팝니다'는 미국의 한 신문 광고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즐기는 낚시 도구 사냥 도구, 그리고 사냥개까지 덤으로 얹어 판다는 이 광고를 보고 남편보다 사냥개를 보다 욕심내어 60여 명의 원매자가 나섰다 하니 더욱 흥미롭다. 웃어넘기면 그만이겠지만, 남편의 지체나 권위가 매매 대상으로까지 타락하고 그나마도 사냥개 한 마리만도 못하게 시세나 가치가 하락돼 있음에는 웃다가도 개운찮은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
유사(有史) 이래 남성에게 억압 받고 또 구박만 받고 살아온 여성들은 `여인국(女人國)'이라는 여성 상위의 이상향을 산 너머 또는 바다 건너 멀리에 상상하면서 살았다.
중국 고대 문헌에 보면, 오저(沃沮) 동쪽 바다 한복판에 여인국(女人國)이 있다 했고 해 돋는 나라인 부상국(扶桑國) 동쪽에도 여인국이 있다 했다. 표류해온 신라의 석탈해(昔脫解)도 여인국에서 버려진 사내아이로 돼 있다. 이 여인국들에서 남자들은 씨만 받으면 버려 버리거나 남첩으로 한 여자가 수백 명씩 거느리기도 한다. 그 남첩들이 지겹게 굴면 굴비 엮듯이 엮어 뱃사람에게 헐값으로 팔아넘긴다고도 한다.
이같이 상상 속의 나라에서 남편 매매를 함으로써 남성 상위의 현실에 저항하고 또 자위를 하곤 했다.
유럽에도 니베룬겐의 노래나 브룬힐트의 이야기에 여성 상위의 여인국을 설정하고 있다.
13세기경 서역(西域)에 있었던 몽고계 카이두 왕국에서는 실제로 남편 매매가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별나게 센 카이두 왕녀는 힘으로 자신을 이겨낼 배우자를 인근 3백여 개 나라에 광고를 했다. 이기면 시집을 갈 것이요, 지면 남첩으로 삼겠다는 조건이었다. 이 왕녀를 이겨낼 어떤 장사도 없었고 수백 명이나 되는 남첩을 한 사람 당 말 1백 필씩 받고 팜으로써 카이두 왕국을 서역(西域)에서 제일가는 부국(富國)으로 만들었다 한다.
이 남편을 팔아넘긴 카이두 왕녀가 70년대 미국의 맹렬 여성운동의 우상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성(性)의 정치학(政治學)'을 저술한 맹렬 여성의 기수(旗手) 케이트 밀레트는 그의 연설이 끝날 때마다 `카이두 만세'를 불렀다 한다. 또 맹렬 여성 단체인 SCUM(남성거세협회)에서는 카이두 왕국이 있었던 서역(西域) 마자리샤리프를 성지화(聖地化)하고자 유적 발굴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당 사회와 기생 사회에서 무부(巫夫) 기부(妓夫)등 기둥서방을 사고팔고 하는 습속이 있었다 한다. 기둥서방 소생의 자녀는 모계(母系)에 속했기에 서방 매매가 가능했음직하다.
이처럼 상상의 세상이나 특수 사회에서만 있었던 남편 매매가 한낱 중고 가구처럼 신문 광고에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세상의 남편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판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한 가정에 기도하는 어머니만 계신다면 그 가정은 분명히 하나가 될 것이다. 가정 예배를 통해 우리를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신 어머니께서는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에도 하나님을 가장 먼저 섬기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첫 번째 인턴 월급을 받아 어머니께 드렸을 때였다.
“종수야, 이것은 첫 열매이니 먼저 하나님께 드리자. 우리가 여태껏 고생했는데 한 달만 더 고생하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의 첫 월급을 몽땅 하나님께 바치셨다. 나는 어머니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했다. 하나님 안에서 온가족이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며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런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성경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셨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해도 우리는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가난한 조상을 탓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말씀에 “아니오.”라는 말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부모도 보이는 하나님이다”라고 가르치셨고 십계명의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라’하신 말씀은 절대 명령이기 때문에 복 있는 자는 그 말씀을 지켜야 되는 것이다.
대화의 길
몇 해 전에 나는 신문에서 비참한 모녀의 모습을 보았다. 어느 시골에서 15세 된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서울에 올라온 모녀는 각각 다른 집에 식모로 취직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딸이 몸 약하여 병이 들어서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 식모살이 하는 어머니를 찾아갔으나 어머니 역시 병든 딸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고, 이 모녀는 길거리에서 헤매다가 겨우 병이 나은 딸을 데리고 살 길을 마련하던 중 미군이 많은 곳으로 옮겨가 딸을 미군이 자는 방으로 들여보내고 어머니는 망을 보다가 경찰에 붙들려왔다. 말하자면 딸은 창녀, 어머니는 팸프 노릇을 한 꼴이 되어 경찰에 잡혀와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딸을 바로 길러야 했던 어머니가 아무리 길가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한이 있어도 자기 딸을 창녀로 만들어야 했던 모정은 분명 모녀간의 바른 대화의 길을 막히게 하고만 것이다.
두 가정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 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려 그의 사람됨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성이 풍부한 가정과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당신의 가정에도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신앙적인 원리가 당신의 가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가정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또 한 늘 영성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말과 소의 갈등
고후서 6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이는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황소와 말을 함께 묶어 마차를 끌도록 해보십시오. 말은 다리 가 길고 황소는 다리가 짧습니다. 그래서 마차가 제 자리에서 뱅뱅 돕니다. 말과 소는 서로 물면서 싸우기 때문에 같이 마차를 끌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과 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마차를 끌려고 하기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이 이와 같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미끄럼틀 위로 사람을 끌어올리기가 쉽겠습니까.
아니면 밑에서 끌어내리기가 쉽겠습니까. 신자는 미끄럼틀 위에서 불신자인 상대를 위로 끌어 올리려고 하고 불신 상대는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미끄럼틀 위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밑으로 끌어내리기가 더 쉽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교제할 때는 일단 결혼만 하면. 쉽게 예수 믿게 할 것 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 분은 믿지 않는 남성과 결혼하여. 십 수 연간 새벽마다 기도를 드림으로 마침내 남편을 예수 믿게 하였습니다. 그동안 그 여자 분이 겪었던 고통은 말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해로한다 해도 40. 50년인데. 그 기간의 ¼를 갈등 속에서 산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것도 결혼 후 깨가 쏟아져야 할 시기에 말과 소의 갈등처럼 그러한 갈등이 집안에서 벌어진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불신자와 교제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 교제를 당장 끊지 말고 결혼하기 전에 먼저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을 첫째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람을 만들고 난 후 에 결혼을 해야 합니다.
맹모삼천지교
이조 중광 때 김안국의 동몽선습에 맹모삼천지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으로 대성 공자 다음가는 아성이라 불렸던 유교학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처음에는 맹자의 집은 묘지 근처였었다. 그랬더니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 놀았다. 이것을 본 어머니는 어린이들의 교육상 좋지 못하겠다하여 다음에 시장 근처로 살림을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 맹자가 장사하는 사람의 흉내만 내며 다니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집을 다시 옮기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그 당시 중하게 여겼던 예절을 가리키던 유교 학교 옆에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맹자는 앞에서 그랬듯이 학교에서 가리키는 예절을 혼자서 반복하면서 지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이제야 자기 아들을 기르기에 알맞은 거처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했다.
못된 자녀로 키우는 10가지 비결
1.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무엇이든 다 주라. - 자신이 최고인 줄 알 것이다
2. 나쁜 말을 해도 웃으라. - 더욱 악한 말과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3. 교육과 훈련을 시키지 말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라.
4.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라.
5. 아이가 치우지 않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리해 주라. - 자기 책임을 미루는 사람이 될 것이 다
6. TV 나 책을 마음대로 보고 읽게 놔두라. -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자주하라.
8. 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주라.
9.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것 좋다는 것을 다 해주라. - 한번이라도 거절당하면 낭패한 사람이 될 것 이다
10. 아이가 이웃과 선생님과 대립할 때 언제나 아이편이 되어라. - 사회는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믿음의 모본
저는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간첩”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날 귀찮은 손님이 찾아와서 “주인 양반 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침에 일찍 나가셨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광경을 아이가 봤습니다. 그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어, 저럴 때 저렇게 거짓말을 하시는구나.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데도 안 계시다고 하는구나. 거짓말을 해도 되는구나.' 그래서 거짓말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화로 옆집 부인 흉을 봅니다. “우리 옆집 새댁은 어른을 봐도 인사는커녕 본 척도 안 해요.” 아이가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 전화로는 저렇게 남을 흉보는 것이구나.' 부모의 사소한 행동을 모두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려주면 아이는 '아니 어떻게 된 일이지? 아빠, 엄마는 안 그러시면서 흉보는 것이 사랑하는 건가 뭐'라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자녀 앞에서 위선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모른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똑똑합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때 첫째는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십시오.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당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많은 아버지들은 “교회 가서 손해 볼 것 없으니까 애들이나 데리고 가. 나는 안 갈래”합니다. 그것이 무슨 본입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바른 교훈을 할 수 있는 부모
유명한 설교가인 로버트 리 목사는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 파나마에 유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파나마에서 공부하며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파나마로 떠나기 전에 독실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네가 공부하기 위해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을 텐데 너는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아야 된다. 내 교훈을 잊지 말아라. 네가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네가 잘못했다면 그 모든 것이 네 눈동자에다 드러날 테니 명심해야 한다. 부디 깨끗하게 생활하거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나마에 가서 생활하면서 술집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나쁜 친구와 사귀어 노름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몸을 헛되이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의 교훈대로 살다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어머니 앞에 서서 “어머니. 제 눈동자를 보십시오. 어머니 말씀대로 살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른 교훈을 할 수 있는 부모가 자녀를 통해서 효성을 받게 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 효성을 받을 만큼 자녀를 사랑과 이해로 돌보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효성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정성된 마음을 가지면서 또 우리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아니하고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역할
가정에서 자녀를 위해 부모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관하여 좋은 참고가 될 미국의 한 가정을 소개합니다.
발리스키라는 부부의 가정은 10명의 자녀를 키웠는데, 그들 가운데 6명은 선교사가 되어 해외로 나갔고, 4명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선교활동을 도왔습니다. 발라스키 가정의 맏아들인 랄프는 부모로부터 강렬한 신앙적 영향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아름다운 기독교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둘째, 그들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힘들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셋째, 아버지는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허물없이 우리를 사랑해주셨지만 결코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의 결정은 대법원의 판결과 같았습니다.
넷째,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공평무사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잘못했을 때는 벌을 받았고, 잘했을 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과 삶이 일치 하셨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우리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훗날 다 성장하여 중년이 된 자녀들의 기억 속에 이와 같은 인상과 추억이 깊게 남을 수 있다면 그 부모는 경건한 부모로서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부엌과 남성
연산군(燕山君)의 선비 탄압이 바로 갑자사화(甲子士禍)다. 홍언충(洪彦忠)을 잡으러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식구들은 빨리 부엌에라도 몸을 피하시라고 권했다. 잡혀가 사지를 찢기면 찢겼지 장부가 어찌 부엌에 들어가느냐고 호통을 치며 제 발로 걸어 나가 포승에 묶였던 홍언충이었다. 비단 선비 집안이 아니더라도 전통 사회에서 사나이가 부엌에 드나든다는 것은 노소를 불문하고 흉이었다.
선비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한 가르침의 원점은 이렇다.
'군자는 포주를 멀리할지어다.'
바로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포주란 부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부엌이란 아녀자만이 드나드는 곳으로, 대장부가 출입하는 것은 천한 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내려온 위대한 오해였다.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백성을 편히 다스릴 만한 자질이 있는가고 .... 언젠가 임금이 제사에 희생되기 위해 끌려가는 소를 가엾게 여겨 양과 대체시킨 일을 상기하고, 그만한 연민의 정이 있으면 임금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군자는 살아 있는 짐승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애절한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이니 군자는 모름지기 부엌을 멀리해야 함이오.'
군자로 하여금 부엌을 멀리하라는 이 가르침의 원뜻은, 부엌이란 인간 본래의 자비심을 참을 수 없게 하는 현장이기에 멀리하라는 뜻이지 남존여비에서 나온 부엌 기피는 아닌 것이다.
고대 희랍에 있어 사나이가 상류 계급으로 공인받으려면 각자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요리 솜씨 하나씩을 피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로마의 가정에 초대받아 가면 요리 한 가지를 극구 칭찬하고, 그것을 요리한 것이 바깥주인일 때 새삼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 올림픽으로 왁자지껄한 바르셀로나를 한때 지배했던 부르봉 왕가에서는 가문 전래의 12 가지 육류 요리법을 왕자 왕손에게 터득시켜 법통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어느 역사 시기에 대국으로서 영화를 누렸던 나라일수록 요리 문화는 다 남자 손으로 유지, 발전되었다고 말한 것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 가건 명 요리사 하면 남자인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근간 일본에 '주부(主夫)'라는 신어가 유행하고 있다던데, 바로 남편이 주부(主婦) 대신 부엌일을 한다 하여 생긴 말이라 한다. 40 대(代)는 주부(主婦)대 주부(主夫) 비율이 70 대 30인데, 30 대는 50 대 50으로 똑같고, 20 대는 30 대 70으로 역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20 대 전후의 남자들이 요리학원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집갈 신부 수업생이나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요리학원의 예상 못했던 변신이다. 개중에는 요리사로서 직업을 가지려는 지망생도 없지 않으나, 다가오는 세상에 불가피한 주부업(主夫業)의 수업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무상(無常)하다.
불행한 가정이 되기 위한 10가지 주책
1. 항상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이 될 것
2.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든 가정에 와서 아내에게 풀 것
3. 돈은 쓰라고 있는 것. 실컷 쓰고나 죽자고 마음을 먹을 것
4. 지금이 항상 최악의 상태라는 강박관념 속에 한숨만 쉬고 있을 것
5. 교회에 다닐 시간이 있거든 잠이나 푹 잘 것
6. 여자란 팽이처럼 때려야 잘 돈다는 생각으로 사흘에 한 번씩 괴롭힐 것
7. 미래는 공상으로 즐기고 과거 속에 자신을 파묻고 살 것
8. 남의 눈치 볼 것 있나? 나만 위해 모두를 희생시킬 것
9.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니 손 하나 까딱하지 말 것
10. "우리는 애당초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자꾸 말할 것
사람을 거짓되게 하는 매질
황의정승이 어느 하루 집에서 쉬게 되었다. 복잡한 국사를 떠나 모처럼 집에서 쉬는 지라 긴장이 풀려 깜박 오수에 빠졌다가 잠결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운 채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선반 위에 쥐 두 마리가 무엇인가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쥐들은 선반 위의 접시에서 배를 운반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물에 불과한 하찮은 쥐들이 협동하여 지혜롭게 배를 운반하는 것이 신기하여 그냥 내버려두었다. 쥐들이 그 배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황희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계집종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었다. 계집종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경부인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네 짓이 분명하렷다!” “흑흑... 아닙니다. 마님! 제가 그러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선반에 있던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네 짓이 분명한데도 나를 속이고 있으니 바른말 할 때까지 치겠다.
정경부인의 매질은 계속 되었다. 계집종은 울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경부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계집종이 고통스럽게 매질을 당하자 황희는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배는 제가 먹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흑흑흑......“
그 소리를 들은 황희는 무엇인가로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황희는 그 길로 입궐하여 세종 임금을 배알하고 그 신기한 사건을 아뢰었다. 그러고 나서 갇혀 있는 죄인들 중에 죄진 등거가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방면해 줄 것을 주청했다. 그러자 세종은 즉시 죄수들 중에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방면했다. 황희는 그 신기한 쥐들의 사건으로 인하여 매(고문)가 없는 죄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에게 죄의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육체적 고통을 주며 신문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비민주적이다. ‘매에 項羽(항우)가 없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강한 사람이어도 매로 때리는 데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도 ‘고문에 못 이긴 허위자백’ 운운하는 것을 종종 본다. 아직도 매(고문)가 죄인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천안 파랑새 96. 8. 5.>
사랑과 관심으로 가르침
요한 웨슬리가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옥스퍼드라는 명문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웨슬리가 어렸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가 그녀의 15명의 자녀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치고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등 기독교적인 가정교육을 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태어난 지 몇 달되지 아니한 갓난아이에게 그 어머니의 마음으로 분노와 미움 등의 나쁜 감정을 지닌 채 젖을 먹이면 그 어린 아이는 모유를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고 설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모님들과 가정에서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로써 경건하게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사랑의 기적
금슬 좋아 보이는 부부가 집회를 마치고 탁자 정면에 서있던 나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가끔 서로 바라보며 웃기도 했는데. 남편이 자기들 생활에서 일어난 기적에 관해 내게 말하였다. “목사님. 오랫동안 저는 아내를 생지옥에 살게 했습니다. 저는 신의 없고 조급하며 독재적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예. 성가대 대장이었으니 물론 교회도 나갔지요. 사람들은 저희를 단란한 가정으로 보아주었습니다. 아내조차 말입니다. 저는 위선자였습니다. 아내는 이제 올 데까지 왔으며 저와 헤어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떠한 인간이었는지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변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변화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아내가 저를 멀리하였습니다. 이전에 저를 사랑한 것은 다 지난 일이며 다시 저를 사랑할 수 없노라 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은 그렇게 굳어 졌지만 저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에게 구혼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주님께서 절 도우셨습니다. 드디어 아내는. 이혼이 아내가 믿는 모든 것에 위배되므로 다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로 동의하였습니다. 저희는 함께 기도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결코 그러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은 죽은 것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십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렇게 하셨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이 일은 캘리포니아 사우샌스 오크스에서 열렸던 순복음 실업인대회에서 겪은 실화이다. 그 부부는 지금도 그 도시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있다.
사랑의 집
우리 가정에 사랑의 집이란 문패라 붙어 있는가? 최근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발표한 5세-6세 어린이의 부모상은 이렇게 나타나 있다. 아버지는 "밥 먹는 사람, 신문 보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어머니는 "밥 주는 사람, 옷 빨아주는 사람, 함께 잠자는 사람" 아이들의 머리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은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한국 어머니들의 이름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괜찮게 새겨져 있는데 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도 않다. 중.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들 청소년의 가정에 대한 최고의 고민은 "어머니의 잦은 외출"로 나타난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도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노인들의 행복은 거의 그 자녀들의 사랑이 결정한다. 부부의 행복도 결국은 사랑에 달려 있다.
페스탈로치(스위스의 교육가 1746-1827)는 말했다. "가정은 최상의 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과과정은 사랑이다." 헨리 포오드는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동차 사업으로 거부가 된 뒤에야 고향 땅에 주택을 지었다.
"백만장자의 집으로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하고 하는 친구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건물이 문제가 아닐세. 그 속에 사랑이 있으면 위대한 가정이며 사랑이 없으면 석조로 지은 대저택도 무너질 것일세."
사랑하는 법
사랑과 애정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숙해지면서, 육체적인 사랑의 표현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는 반면 말로써 하는 사랑의 표현을 받고 싶은 욕구를 점점 강하게 나타냅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린 아이의 발달에 대한 가장 뚜렷한 진리들 중의 하나는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입니다. "무딘 아이," "바보 같은 아이" 라는 말만 계속 들어온 아이나 "나쁜 아이," "아무 가치가 없는 아이" 라는 말만 계속 들어온 아이가 자기 자신을 바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반대로 부모들이 사랑을 보여 주고 말로써 사랑을 표현해 주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해 주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가정교육
한 선비가 한양을 다녀오다가 나루터에서 이웃마을 친구의 외아들을 만났다. 선비는 배에서 내렸고 외아들은 그 배에 올랐다. 배에서 내려 얼마를 걷던 선비가 산언덕에서 잠시 쉬며 강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그 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지며 이내 배도 사람도 모두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너무 놀랐지만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는 크게 탄식 하다가 이내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사실 조정에서의 꽤 높은 벼슬도 마다하고 고향에서 학문만 전념하여 살아가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니 그는 기뻤다. 즐겁게 친구를 환영하며 술과 안주를 준비시켰다. 그럴수록 선비의 마음은 무거워 졌다. 그래도 도저히 숨길 수 없어 선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목격한 사실을 얘기했다.
“저.... 자네 아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다네. 내가 워낙 멀리 멀리 있어서 도울 수도 없었고 그 못돼먹은 사공이 어찌 그리 많은 사람을 태우던지.... ”
선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죄이기도 한 양 말을 맺지 못하여 사공을 원망했다. 외아들의 아버지는 선비의 얘기를 조용히 들었다. 지극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에 눈가에 가벼운 경련을 보이다가 이내 원래의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들려주는 마지막 얘기에 귀를 세우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얘기를 빨리 들려주어서 고맙네. 그러나 너무 걱정 말게. 내 아들은 살아 돌아올 걸세. 그러니 술이나 들며 오랜만에 얘기나 나누세.”
선비는 친구의 이 태연한 모습에 크게 놀랐다. 그가 평소에도 인격 높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데도 태연하기만 하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이 돌아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죽었던 외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두 사람에게 조용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너무도 놀라 친구 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예 어르신을 뵙고 저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사공이 정원 이상으로 손님을 태우기에 그만 내렸습니다. 평소 저의 아버님께서는 ‘위험은 스스로 피해야 한다.’ 라고 제게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좇아 따라 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가정교육이 아니겠는가?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의 행동에 경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황필상, 천안 교차로, 96, 4,15.>
성공적인 가정생활
첫째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가정일수록 가족들 간에 감사하는 마음이나 말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이다. 불평이나 원망의 조건이 전혀 없는 가정이나 환경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말로 덮어 버리고 밝은 면을 보는 가족들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많이 갖는 가정들이 성공적인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함께 수고를 하고 함께 즐겁게 놀고 함께 음식을 먹는 가족들은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과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남겨 준다는 것이다.
셋째로, 가족끼리 서로 대화를 많이 갖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의 가정들은 여기에서 뜻하는 좋은 대화 보다는 잔소리와 불평의 대화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좋은 대화를 갖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신앙을 갖는 가정들이 아주 결정적으로 행복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이 조사와 연구는 40년 동안에 실시된 것인데, 그 기간 동안에 신앙을 가진 가정이라는 이 조건은 가정의 성공에 가장 크게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계속 꼽혀 왔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가정에 어려움이 올 때에 그것을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처리하는 가정들이다. 이런 가정은 역경이 닥쳐와도 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이 들어도 앞을 바라보고 서로 웃는 부부요, 어려움에 빠진 자녀들을 희망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부모였다는 것이다.
시집가는 딸에게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집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시아버지의 지혜
어느 날 한 목사님께서 믿음 좋고 덕이 많으신 장로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장로님이 가도 (家道) 대해 여러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훌륭한 시아버지가 되는 비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림이 서투른 며느리가 처음 시집와서 밥상을 들고 들어왔는데 밥이 좀 질게 되었을 때.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얘 아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진밥이 좋단다. 참 잘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며느리가 된밥을 해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때는 시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면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아가야. 진밥도 좋지만 때로는 된밥도 먹기가 좋단다. 참 잘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밥 속에 모래가 들어 있는 상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런 때도 시아버지는 곧바로 입 속의 돌을 입에서 꺼내어 상머리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을 생각해서 돌을 꿀꺽 삼켜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반복하면 언젠가는 좋은 시아버지와 훌륭한 며느리의 관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며느리를 위해서라면 돌이라도 꿀꺽 삼킨다는 정신. 그때 가정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그런 정신이 있을 때 교회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더 나아가 사회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나라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모든 공동체의 부흥과 발전 과 번영과 천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인의 처소
예쁜 새 한 쌍이 한적한 곳, 낮은 나뭇가지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집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마차에 볏짚을 가득 싣고 농부가 그 밑을 지나가면서 다 되어 가는 둥우리를 망가뜨렸습니다.
새들은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하여 그날 오후에는 거의 완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황혼 때 농부 한 사람이 지게에 나무를 가득 지고 그 밑을 지나갔습니다. 위로 뻗은 나뭇가지에 새 둥우리가 걸려 무너졌습니다. 새들은 다음 날 또 집을 지었습니다. 낮에 개구쟁이들이 그 밑을 지나다가 매미채로 새집을 무너뜨렸습니다.
한동안 숲속이 조용한 틈에 새들은 그곳에 둥우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시켰습니다. 귀여운 새끼 네 마리가 예쁜 주둥이를 벌리고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은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한 가정에 무서운 침입자가 찾아 왔습니다.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숲속을 지나가다 낮은 곳에 있는 둥우리를 보고 나무에 기어올라 새끼 네 마리를 모두 잡아먹었습니다.
몇 차례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 낮은 곳에 짓는 것이 위험한 줄 알고 높은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깨닫지 못했기에 엄청난 비극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말 못하는 새들만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낮은 곳에 집을 짓고 죄악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더욱 미련하다 할 것입니다.
높은 곳을 보지 못했던 새 둥지가 불행의 온상인 것처럼 땅만을 생각하는 신앙인의 처세는 심판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집은 높은 곳으로 옮겨지어야 하고 신앙인의 처소는 하나님 보좌 앞이어야 합니다. (창22:1)
아름다운 가정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려고 한 미술가의 전설이 있다. 그는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 아침에 일찍이 집을 떠났다.
맨 처음으로 만난 이는 목사였는데 그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목사는 서슴지 않고 "신앙이 제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어느 예배당으로 가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을 통하여 용서함과 희망을 발견한 그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것이 신앙인 것을 발견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화가는 다음 주일날 몇 교회를 찾아가 그들의 얼굴에서 신실함과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하루는 훌륭한 집 문 앞에 서있는 신혼부부를 보았다. 화가의 물음에 신부는 얼굴을 붉히며 "그거야 사랑이 제일 아름다운 것이지요" 했다. 화가는 즉시 캔버스를 내려놓고 그의 아름다운 얼굴과 그 얼굴에 빛나는 사랑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마음이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피곤한 군인을 만났다. 군인은 화가의 물음에 지체하지 않고 "평화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전쟁은 고약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화가는 일찍이 맹렬한 싸움이 있었던 전장이 황금같이 익은 곡식으로 덮이고 농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추수하는 장면을 기억했다. 그가 이러한 아름다운 장면을 그렸을 때 분명히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가 이상 하는 미를 그곳에서 찾지 못했다.
마침내 실망한 화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어린 자식들은 그를 보고 달려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반겨주었다.
그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설 때 그의 아내는 따뜻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해 주었다. 잠시 후에 그들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밖에서 무사히 돌아온 아버지를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사랑과 신앙과 평화를 볼 때 그는 확실히 지금까지 그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가정이라고 불렀다.
참으로 평화와 안위를 가져오는 사랑과 신앙의 참 가정을 가져본 이는 누구나 이것에 동감할 것이다.
아름다운 집
어느 교회에 이런 장로님 가정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당회에서 목사님과 이웃 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되는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장로님이 연합예배를 드리자고 하신 것 같은데. 연합 예배는 안 됩니다. 그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들을 통해서 며느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며느리 생각에는 모처럼 드리는 연합 예배가 그 지역에서 교회간의 협조와 사회에 대한 교회의 인상 면에서 좋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도 목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시어머니 말씀을 듣지 마십시오. 연합예배는 참으로 좋습니다. 연합예배를 추진하십시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이 가정에서는 권위 질서가 무너져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결정을 뒤집어엎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무례한 망동 이지만. 아내가 남편의 공적인 결정을 뒤집어엎는다는 것도 스스로 가정 이라는 “아름다운 집”을 허물어버리는 일입니다.
가정의 구성원 모두 아름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중한 마음과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지녀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도
어젯밤 나의 꼬마 아들 내게 와 어린이다운 잘못을 고백했다네
그리고는 내 앞에 무릎꿇고 눈물로 고백하겠지
"사랑하는 하나님, 나를 지혜롭고 강한 남자로 만들어 주세요. 아빠처럼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애가 잠들고 난 후,
난 그 애의 머리맡에 무릎꿇고 앉았지
그리고 깊이 머리 숙여 내 죄 고백하며 기도했네
"오 하나님, 나를 아이처럼 만들어 주소서-여기 이 아이처럼.
순결하고 솔직하며 신실한 믿음으로 당신을 신뢰하는 이 아이처럼."
아버지의 영향력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에도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부룩스 아담스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써왔습니다. 그가 28살적의 어느 날 일기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갔습니다. 나에게는 오늘이 최고로 영광스런 날입니다.” 그 후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서 아버지와 낚시 갔던 일을 잊지 못하고 그날 그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인상과 느낌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찰스 아담스는 훌륭했던 분입니다. 링컨 대통령 시절 영국 주재 미국 대사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찰스도 그날의 일기를 적었었는데. 그의 일기장에는 그저 “아들과 낚시를 가다. 하루를 몽땅 까먹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날은 까먹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소중함은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아들 브룩스에게 자기의 가장 훌륭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날이었으니 더없이 잘 보낸 하루였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하게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모이신 아버지들께서는 자녀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자녀들의 영적 양식을 마련해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녀들을 사탄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해주고 있습니까. 또 자녀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빠가 가는 곳
"얘! 네가 천국에 가면 맨 처음 누굴 만나겠니?" 교회학교 선생이 한 소년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천국에 가지 않을 거예요." 매우 총명한 눈을 가진 6살 된 소년이 조용히 대답했다. "왜 천국에 가지 않는다는 거지?" 깜짝 놀란 선생은 되물었다. "엄마랑 언니랑은 천국에 가겠지만 아빠는 못가요. 난 아빠가 가는 곳에 갈 거예요."
며칠이 지난 후 교회학교 선생은 소년의 아버지를 만나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어디로 가실 거예요?"
"내가 가는 길을 바꾸어야겠어요. 내 아들이 나처럼 될지 모르니까요. 나 때문에 내 아들에게 천국을 놓치게 할 수 없지요." 소년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부모님들이여,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시려는가?
아침은 오고야 만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었고 미국의 제 3대 대통령을 지낸 바 있는 토머스 재퍼슨이 이렇게 말한 적인 있다.
"내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했었던 순간들이란 그다지 많지 않은데 그것은 주로 가정에서 나의 가족들과 함께 지낸 경험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가정을 떠나서는 이 세상에 진정한 행복이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제퍼슨의 말과는 또 다른 의미의 말을 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공산당을 창시한 칼막스로서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오늘날의 가정, 부르주아의 가정은 어떠한 터전 위에 기초 되었는가? 그것은 자본이다. 사유 재산이다. 부르주아적 가정은 자본계급의 소멸과 함께 당연히 소멸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인데 너무나 대조적인 말을 하고 있다.
알프레드 노벨의 고독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주고 싶어 하고 또한 자신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 그는 정신적, 육체적 고독 속에 빠지게 된다.
여기 한 삶 알프레드 노벨의 예를 들어 보면 그는 스웨덴 태생으로 1866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함으로 인해 순식간에 거대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의 유럽각지에 자신이 거쳐할 주택을 마련해 놓고 여행을 다녔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백만장자의 부랑인"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 왜냐하면 그에겐 아내와 자식이 없었다. 그를 맞아줄 따뜻한 가정이 없었던 것이다. 명예와 온갖 물질적 혜택을 받고 누리던 노벨이었지만 그에겐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고, 그는 언제나 고독에 싸여 지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양육기관에 맡긴 1세 이하의 유아들이 거의 죽자, 실험조사에 나섰다. 결론은 어머니의 사랑의 결핍이었다.
미국 뉴욕 린 스피츠 박사가 비슷한 조건의 두 어린이 양육기관을 선정 사랑을 쏟는 양만을 달리하여 어린이들을 실험하였다. 처음의 경우는 가정과 같은 육아원으로 어머니들이 그들의 아기를 직접 돌보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기아 양육원으로 버린 어린아이들을 여러 명의 전문 보모들이 양육하는데 한 사람이 12명의 아기를 돌보는 곳이었다. 발달 계수로 그의 비교 측정치를 삼았는데 가정적 육아원의 경우 D.Q.가 101.5로 시작하여 1년 내에 105로 올라갔다. 양육원의 아이들은 124로 시작하나 2년 내에 45로 떨어지는 무서운 현상이 나타났고, 2년 내에 37%의 어린이들이 죽었으나 가정적 육아원의 아이들은 5년 동안 한명도 죽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토록 중요함을 나타내 주는 수치이다.
어머니의 신앙적 감화력
젊은 시절의 R.A.토레이는 어머니의 종교를 원망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해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가정에 싫증을 느끼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는 작별인사를 하며, 당부를 하였다.
"어디로 가든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때는 이 어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너를 도우실 것이다." 토레이는 집을 나간 후 방황하면서 죄 중에 깊이 빠졌다. 그는 곧 그러한 생활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돈도 떨어지고 깊은 실의 가운데 빠져 자살할 결심을 하고 싸구려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그때 주님께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그의 마음을 아낌없이 드렸고, 마침내 평화와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아들을 껴안은 어머니는 감격하여 말했다.
"얘야, 나는 다 알고 있다. 너는 세상을 헤매다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구나. 그때 주님을 불렀지? 그래서 주님은 나의 아들을 구하셨구나."
토레이는 훌륭한 목사이며 성경학자가 되었다. 그는 부모님의 신앙적 영향을 결코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와 자는 아기가 튼튼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자야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아기를 따로 재우는 서양의 관습이 도전받게 됐다.
미국 포모나대학의 제임스 메케나 박사는 최근 미 과학발전협회 연례회의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서 수면실험실에서 40쌍의 모자를 대상으로 절반은 아기 혼자 자게 한 결과 엄마와 함께 잔 아기가 혼자 잔 쪽에 비해 매일매일의 체중증가율이 높고 모유 수유 량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메케나 박사는 적어도 아기가 한밤중에 엄마 품을 찾게 마련인 생후 1년간은 함께 자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엄마 왜
"엄마, 왜 나하고 안 놀아줘?"
일곱 살 난 넬리가 물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시간이 없어요."
"왜 시간이 없어요?"
"직장에 나가 일해야 하니까."
"왜 일해야 해요?"
"돈을 벌기 위해서지."
"왜 돈을 벌어야 되요?"
"네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어야 하니까."
"아...! 하지만 나는 지금 배고프지 않은걸, 엄마!"
- 당신을 바꿀 100가지 이야기 -
엄지와 검지
얼마 전에 반포에 있는 어느 이비인후과에 들른 일이 있었습니다.
응접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뵙기 위하여 기다리는데 아이의 중이염을 치료하러 왔던 어떤 아주머니가 의사에게, “선생님. 얘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얘 담임선생님이 저보고 우리 아이가 겨울 방학 동안에 가장 즐거웠던 일이, 중이염이 걸렸을 때였다고 숙제로 낸 일기장에 기록했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끝나자 진찰실 내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가 그치고 의사 선생님은 “왜 아픈 게 가장 즐거웠을까요?”라고 다시 묻자. 그 아이 엄마는 “내가 아프니까 온 가족, 특히 엄마가 나에게 더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의사 선생님도 친절하게 해 주시던 그 일이 정말 즐거웠다고 기록했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겨울방학 때에 스케이트도 타러가고 여러 곳에 구경도 보내고 하였는데 하필 중이염이 걸렸던 일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기록한 것은, 오늘날 특히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관심의 결핍증에 대한 진단이라고 봅니다.
관심의 결핍을 느끼는 자들은 병이 들더라도 나에게 관심을, 사랑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이런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마 “군중 속의 고독이며 가족속의 고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심이 없는 곳에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는 곳에 원만한 성장이나 훌륭한 결실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관심이 지나치거나 잘못하여 과잉보호나 간섭으로 변질되면 이것이 어떤 때는 더 나쁜 독소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 뜻에서 관심이나 사랑은 언제나 교육적이요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자동차 바퀴처럼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창조적인 관심을 쏟아 성숙한 사회, 즉 성숙한 인간관계를 창조해 갑시다.
용기를 북돋워 준 사람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레나 루즈벨트 여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녀는 20세에 결혼을 하여 11년 동안 6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죽었을 때. 한 친구가 찾아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또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남아 있어." 그녀가 20세 때 결혼한 남자가 바로 루즈벨트입니다.
그는 젊고, 패기 있고, 장래성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관절염에 걸려 다리가 말라 버리는 불행에 직면케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쇠붙이를 다리에 대고 다리를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즈벨트가 엘레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불구자자 되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오." 그러자 엘레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그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한 줄 알았나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삶이예요."
이 말은 다리 불구가 된 뒤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루즈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1932년 다리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1936년에 재선. 1940년에 3선. 1944년에 4선까지 되어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불구의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던 엘레나. 그녀야말로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줄 알았던 가장 훌륭한 본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면 (정겨움(다정함),고부간의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불화하다는 것은 우리 가정이 안고 있는 고금의 고질이다. 따라서 그 고질을 해소하는 지혜도 적지 않았다. 시집가는 딸에게 가르치는 내훈(內訓)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시집가서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릴 때는 반드시 어머님이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꼭 붙이라는 것도 그 해소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테면 `장에 다녀오겠습니다' 할 때 `어머님 장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할 때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님.'한다. 인간적 내밀성(內密性)을 그 한 마디 말로 반복 자극함으로써 불화를 증발시킬 수 있음을 우리 선조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어머니 측에서도 그렇다.
며늘아기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붙여 말하면 된다. `며늘아가, 장은 내가 보아오마.' `설거지는 내가 하마. 며늘아가... '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딸 이름 부르듯이 며늘아기의 이름을 불러주면 더욱 정답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적 지위나 권력이나 권위를 떠나 인간적 접근을 뜻하기 때문이다.
징기즈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리더십의 비결 가운데 하나로는 그가 거느린 장졸들을 계급이나 직책으로 부르질 않고 반드시 이름을 알아 불렀다는 것을 들고 있다.
흥부가 놀부 집에 양식 얻으러 갔다가 죽도록 얻어맞아 걷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는데 놀부를 부를 때 형님이라 부르지 말고 놀부형님이라고 불렀던들 덜 얻어맞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 박 놀부의 누이동생이 있었다면 미스 박보다 박놀순 양이나 박놀순 씨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한결 정답다.
군대나 단체나 기업체에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명령체계에 의한 타율적 통솔이 아닌 인간적 체계에 의한 자율적 인화 측면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지금 일선 직장에서 여사원들이 미스 박(朴), 미스 김(金)... 하는 미스 호칭 거부 풍조가 일고 있다 한다. 한 보험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여사원들은 88 %가 미스로 호칭되고 있다 하고 미스로 부르면 대답 않기로 한 회사도 있고, 커피나 점심을 사는 벌금 물리기를 하는 회사도 있다 한다. 미스 호칭의 거부는 바로 이름으로 불려 인격적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인간선언이요, 이유 있는 반항이랄 수 있다. 이름을 불려준다는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꼭 들어맞는 한국적 인간관계나 한국적 리더십 정립에도 십상인 것이다.
이상적인 가정
이 세상에서 사랑에 굶주린 4종류의 사람들을 말한다면, 환, 과, 독, 고의 처치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환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 과는 남편이 없는 과부, 독은 늙어서 자녀가 없는 사람, 고는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사람인데, 이들은 세상에서 사랑에 굶주린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옛날 임금들이 왕도를 베풀 때는 위의 4종류의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거미는 홀로 집에 독처하고, 귀뚜라미는 만나면 혼자 남을 때까지 서로 싸운다고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서 자녀들은 공경하고,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며, 부부간에는 애정 깊게 살 때에 참으로 행복한 가정, 이상적인 가정이 될 수가 있다.
인격건설
최근 들어 학자들 사이에 우리나라의 국민교육헌장의 일부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내용이 얼마간의 투쟁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그보다는 국민교육이라지만 그 속에는 국민의 인격교육이나 인격건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얘기로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에게 어느 날 영국인 기자들이 "인도에서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인도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경제적 부강이나 사회복지의 건설이 아니라 국민들의 올바른 인격건설 입니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 인격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결코 아름다운 인격을 세워나가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자녀 교육
가필드 대통령이 히람대학 학창시절에 재단이사 한 사람이 이런 요청을 했다.
"내 아들이 이 대학에 재학 중이기 때문에 내가 늘 느끼는데 공부가 너무 심하고 수학연한이 너무 긴 것 같습니다. 교과과정을 단축할 의사는 없습니까?" 가필드는 이런 대답을 했다.
"하나님께서 느티나무를 만드시려고 하실 때는 1백년이 걸립니다. 호박을 만드시려고 하실 때는 2개월이 걸립니다.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이나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데 따라 연한이 결정됩니다.
아이들은 질문을 연거푸 한다. 15세가 될 때까지 약 50만 번의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절호의 인간교육, 신앙 교육의 기회이다.
자녀 징계 문제
초달(채찍)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신구약 성경의 자녀 훈육 방법 가운데 자녀를 책망하고 징계하며 채찍질하는 것이 있는데 그 징계의 신령하고 교육적인 원칙이 몇 가지 있다.
1.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2.노여움이나 낙심이 되지 않고 매를 때려도 아버지를 공경하도록 해야 하며(히12:9)
3.분노나 즉흥적으로 하지 말 것.
4.하나님께 양육을 위탁받은 가정의 제사장이며 목자로서 절대 사랑의 원리에서 할 것.
5.채찍을 때려야 할 때는 본인의 동의를 구하고 준비 기도를 하고 하면 건강하고 효과적이다.
내 친구는 15세인 아들이 누차 품행 사고를 냈을 때 아들에게 알리고 3일 금식기도한 후에 본인과 같이 서로 회개기도하고 종아리를 때리고 나서 다시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도를 드렸더니 그 아이가 아버지의 인격과 사랑에 너무 감동되어 통회자복하고 딴사람처럼 변화된 예가 있다.
자녀들의 파난처
매리는 아프리카 선교사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큰 선교 추진 사업의 지도자였던 부친이 가끔 가족들을 모아놓고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던 점들을 간증하곤 하던 것을 회상했습니다. 그 부친은 하나님과 그 가족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있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과 가족들을 향하여 고백했었습니다. 그 부친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불순종의 행위로 인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소멸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기를 원했으나 완전한 사람으로 행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서 계속 행하기 위하여, 죄를 깨달을 때는 언제나 고백하여 내뿜으며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들여 들이마시는 영혼의 호흡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부친은 가족들에게 삶 가운데서 성령을 근심케 하거나 소멸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나 다 나누어 함께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매리의 말에 의하면, 이 같은 아버지의 행동은 그녀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격려가 되었으며 그녀에게는 보다 큰 안심과 피난처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부친이 주님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부모가 보여준 본보기는 그녀에게 큰 감동을 주어서 그녀 역시 선교사가 되었으며, 지금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매리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이 인생의 어느 다른 때보다 안정감이 보다 부족하기 쉬운 시절에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의 가족들에게 그와 같은 안정과 피난처의 느낌을 제공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연합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것
억만장자 집에 태어난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사바나라고 하는 딸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어머니도 또한 아버지를 따라 저녁마다 파티에 나가느라고 분주한 생활을 했다. 어떤 때는 여섯 살짜리 사바나도 부모를 따라 파티 장소에 나가서 귀한 손님들을 만나야만 했다. 물론 그 집에는 식모도 있었고 아기를 봐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가정교사도 있었다. 필요하다고 하면 무엇이든 전화 한 통화면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딸 사바나의 얼굴에는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물어보면 [네 아버지, 네 어머니.]하는 식의 정중한 대답만 할 뿐 얼굴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 아이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다고 하면 텔레비전을 보는데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부모들이 자기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집에서 살 필요 없이 집을 나가자고 의논을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았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사바나도 부모 몰래 집을 뛰쳐나갔다. 공원 쪽으로 갔다가 문이 열려 있는 아주 낡은 고물 자동차의 뒷자리에 숨어 버렸다.
그 자동차는 형무소에서 탈옥한 두 명의 죄수들이 숨어 다니는 자동차였다. 그 두 죄수들은 여섯 살짜리 사바나를 키우게 되었다. 그들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사바나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 주었다. 돈이 없어 장난감을 사다줄 형편이 못되었고 간혹 훔쳐다가 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 사이에는 인정의 꽃이 피게 되었다. 웃음을 모르던 사바나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즐겁고 행복에 겨운 웃음이었다.
부모가 억만장자이면 무엇하며, 사회에서 명성이 높고 권력을 한 손에 쥐었으면 무엇하랴? 자식이 귀하다고는 하면서 자식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사라지게 한다면 그 가슴에는 시커먼 멍이 들어 있지 않을까?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자녀의 일생을 망치는 열 가지 비결
1. 자녀가 사달라는 대로 다 사준다.
2. 실용성 있는 옷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한 옷을 늘 사주고 그것으로 크게 만족한다.
3.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만화 좋아하는 TV프로 등 좋아하는 것만 배려해 준다.
4. 인내로 기다리는 것보다 조급하게 결과를 얻는 것을 가르친다.
5. 친구와 싸울 때 자녀 편만 들어주고 친구의 부모를 공격한다.
6. 성실하게 일해 대가를 얻는 것보다 단시일 내에 일확천금을 얻는 방법만 가르친다.
7. 이웃을 위해 공부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사리사욕을 위해 공부해서 큰 사람이 되기를 가르친 다.
8. 매를 들지 않고 무조건 감싸준다.
9. 베풀기보다 소유하는 방법만을 가르친다.
10. 경건한 인생을 위해 고난당하는 삶보다 세속적인 인생을 위해 편하게 사는 삶을 가르친다.
정규진 장로의 가정
어떤 날 정 장로님 댁에 손님이 오셔서 하루 밤을 유숙하게 되었다. 며느리가 저녁식사 상을 가지고 손님이 계신 사랑방으로 들어오다가 문 옆에 쌓아둔 곡식 가마니 귀에 걸려 상을 뒤엎었다. 그때 시부되시는 장로님이 "얘, 내가 가마니를 거기 쌓아 두어서 그렇게 되었구나." 하니 시모님이 계시다 "아니요. 그 상을 제가 들고 갔어야 할 것을 며느리가 들고 가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니 며느리는 말하기를 "아니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의 잘못이 없어요. 제가 부주의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할 때, 그 손님은 그 상을 받아 식사를 맛있게 먹은 것보다 더 좋은 기쁨을 얻었다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이사했다
영국 동부의 작은 시골에서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한 가정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했으나 그 가정은 화목하게 지냈으며, 또 마을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를 하였다. 그 마을 전체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깨끗하고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가뭄이 들던 해 이 가정에도 궁핍이 찾아들었을 때 마침 런던 시에서 보수가 좋은 일자리가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들이 이사 간 곳은 런던 시 서쪽에 위치한 몹시 환경이 불경건한 빈민가였다.
이사하고 난 얼마 후 그 가정은 경제적으로 얼마간 풍족해졌다. 하지만 그 풍족함은 우리를 잃고 말았다. 그 가정의 자식들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지혜로운 순종
내가 사랑하는 한 친구가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녀는 결혼 후에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토요일 저녁에 그녀가 남편과 함께 술집에 가는 것을 중지했을 때 분노하며 속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그녀가 남편에게 불순종한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많은 기도와 말씀의 묵상 후에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내가 이제 크리스천이며 내가 가서는 안 될 장소들이 있음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에게 순종하려고 합니다. 만일 당신이 토요일 밤 당신과 함께 술집에 나도 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면 가겠어요. 내 옆에서 당신이 옳은 행동을 하시리라고 믿어요.” “정말이요.” “정말이지요.” “그럼 좋소. 나는 토요일 밤 당신과 함께 가기를 원하오.”
그 토요일 밤 그녀는 진지한 기도로써 버티며 그녀는 술집에서 술집으로 남편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녀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그를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온화하고 조용한 기분으로 남편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음주에나 점잖지 못한 이야기들에 끼지 않으면서 남편의 친구들에게도 친절히 대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녀는 그 후 다시는 술집에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녀의 조용한 순종은 남편 자신을 꾸짖게 되고 드디어 그 남편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여인
영국의 평론가이며 역사가인 카알라일의 아내 웰시 여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모의 여인으로 재능과 명성을 겸한 시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카알라일과 결혼하게 되자 그녀의 친구들은 불행한 결혼이라고 수군거렸다. 왜냐하면 카알라일은 결혼할 당시 두뇌는 뛰어나게 좋았지만 성품은 유난히도 괴팍하였고 괄괄했으며 재산도 없고 장래성도 보이지 않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카알라일이 프랑스 혁명사와 크롬웰전과 같은 고전적인 명작의 저자로, 명문 에딘버러 대학의 명예총장으로, 영국의 평론가로, 역사가로 그 명성을 떨치며, 전 런던 시민들의 우상처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웰시 여사의 숨은 봉사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웰시 여사는 카알라일과 결혼한 후 남편의 조력자로만 전념하기 위하여 시를 쓰던 붓을 꺾어버리고, 남편이 저작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쓸쓸한 시골로 내려가 손수 바느질을 하면서 검소한 가정의 주부로 생활을 했다.
또한 만성위장병으로 늘 우울해하는 남편을 간호하며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저작은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남편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들과 가까이 지내려는 노력과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고, 남편으로 하여금 인류 역사에 크게 공헌할 수 있도록 내조하였던 것이다.
성경에서도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
언젠가 내 친구 두 사람이 부활절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며칠 동안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게도 함께 가자고 권해서 같이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길을 가던 도중에 친구 중 한 사람이 모자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자를 우리 집에 놓고 왔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집으로 편지를 해서 아내에게 좀 부쳐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 아내에게서 받은 편지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절이 나에게 특히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집을 지붕 꼭대기에서부터 아궁이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모자는 보지 못했고, 제가 발견한 것은 그분들이 남기고 간 축복 보따리뿐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느낍니까? 당신은 축복을 남깁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까? 당신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까, 고통을 안겨줍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도 대단히 유익할 것입니다. "나는 평안을 주는가, 아니면 분란을 남기는가?" "나는 용서하는가, 아니면 원한을 남기는가?" "나는 기쁨과 사랑을 주는가, 아니면 좌절과 증오를 남기는가?"
어떤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에 자신들의 흔적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과거 자기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남을 존중해주고 격려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
미국에 있는 한 교포 가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미국으로 건너가서 부모들은 경제적 기초를 잡느라고 어린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자랐는데, 그중 고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뜻밖에도 불량배 속에 끼이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기도도 하고 여러 가지 말로 달래 보는데.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적인 쉬운 대화는 통하지만 다소 심도 있는 이야기나 신앙적인 내용은 전혀 전달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스앤젤리스에서 영어에 능통한 교포 2세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 집회가 있었습니다. 고등학생들만 약 2천여 명이 모여든 대집회라서 아들을 겨우 설득하여 그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젊은 목사님은 같은 교포 2세이면서 같은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고등학생들이 잘 사용하는 언어로써 설교하여 이 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하더니, 아버지 품에 안기면서 “아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아버지와 아들은 비록 한 집에서 함께 살았지만 그 관계는 남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새롭게 아버지를 부르는 이 순간. 비로소 부자지간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폴 틸리히는 “하나님의 임재가 뚫고 들어가지 못할 인간의 상황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군대가 가지 못하는 곳에 선교사는 갈 수 있습니다. 어떤 굳은 마음에도 복음은 역사하고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서. 복음 안에서만 진정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과 가정
한 영리한 어린 소녀가 호텔 로비에서 짐더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책상 위에 서서 숙박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한 부인이 동정심어린 눈으로 소녀를 쳐다보며. 도시에 사는 친척을 방문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아니에요. 우리는 집을 마련할 때까지 이 호텔에서 살려고 해요. 저희 아빠가 새로운 직장을 얻으셔서. 살던 집을 팔고 이사해야 했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곧 이어 “오. 가정이 없어 참 안됐군”하는 친절한 부인의 말에 소녀는“아니. 우리는 가정이 있습니다. 다만 그 가정을 둘 집이 없을 뿐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청부업자가 당신의 집을 지어줄 수 있습니다. 부동산업자가 당신의 집을 팔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당신만이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당신은 벽돌과 나무 그리고 석회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집을 한 가정으로 만드는 데는 사랑, 인내, 용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버지니아 제인스 강둑에 살았던 초창기 거주자 중 한 사람이 죽은 아내를 기념하여 묘비를 세웠습니다. 그 곳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발로 버지니아의 땅을 만져서 황무지를 가정으로 만들었다.” 집은 나무판자와 회반죽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가정은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 봉사하며 살아갑니다.
집은 떨어져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주 페인트칠을 해야 하고 부서진 곳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서로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강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첫 번째 의무
한 사람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이야기 좀 하자고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의 목회를 통해 최근에 그리스도께로 나온 좋은 친구였다. 점 심식사를 하면서 그는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말했다. “당신의 가족들도 그리스도인입니까.” 잠시 망설이다 그는 말하기를 “제 아내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집에 가 아내에게 증거하십시오. 또한 예수님을 당신의 구세주로서 만난 교회에 나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당신의 가정에서 역사해주시기를 위해 기도드리십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자기가 원했던 대로 순회전도사역에 참여하기로 결정해버렸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조직해 지방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찬양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아 불행하게도 그의 가정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설교 현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렸던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기쁨에 즉시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가정에서 그가 먼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와 함께 갈 수 없다. 너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네 가족과 다른 이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행하신 큰일을 이야기하라. 이것이 바로 네가 해야 할 첫 번째의 의무이다.”
친과 효
한자에는 묘한 뜻들이 있습니다. 시골에는 닷새 만에 장이 서게 됩니다. 장이 서면 아들은 그동안 모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장터에 팔러갑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뜰 안의 여러 농사일들과 집안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은 장에 간 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갖고 간 물건을 팔았는지. 올해는 넘기지 말고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등등, 마침내 저녁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녁을 다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동구 밖까지 나가봅니다. 언덕에 올라보니 장터에 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들은 보일듯 말듯 합니다. 마침 언덕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에 올라가서 멀리 장터를 향해봅니다. 이 애틋한 마음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 이라 합니다. 어버이 친자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여기에 버금가는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아들은 갖고 간 것을 늦게까지 다 팔고서 고등어 몇 마리와 어머니께 드리려고 화장품 한 곽을 사들고 오는데 동구 밖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머니, 다리 아프실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저의 지게 위에 타십시오.” 그래서 지게 위에 태워오는 모습이 한자의 효도할 때의 효자입니다. 즉 노인을 업고 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한자의 모습, 친자와 효자가 가정에 있을 때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고 했습니다.
큰집보다 소중한 가정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실하게 자기 삶을 개척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헨리 포드다. 포드는 거부가 된 다음에도 옛날 농사꾼의 아들로 뛰놀며 자란 농촌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집이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포드는 웃으며 [나는 집을 짓기보다는 가정을 만들기 원하네]라고 대답했다.
그의 방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자기의 손으로 장작을 패 불을 지펴라. 두 배로 따뜻해진다.]
평생토록 계속되는 헌신
내가 보기 좋아하는 광경 가운데 하나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여러 사람 앞에서 서로의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식당 의자에서 자기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관절염을 앓는 무릎과 굽어진 어깨로 그는 은발의 아내를 위하여 의자를 들어다 식탁 곁에 놓아준다. 그 할머니는 천천히 일어나 미소를 지으면서 남편의 손을 잡는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 손을 붙들고 살아왔다. 그 팔은 그녀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일생을 곁에서 도와준 바로 그 팔이다. 그 팔은 그녀가 면사포를 쓰고 주례자 앞에서 “예”라고 서약하면서 큰 기대감을 가지고 붙들었던 손이다. 그 팔은 갓난아기들을 안아주었던 팔이다. 그 팔은 한 번도 그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팔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힘찬 팔로서 거기에 있었다.
나는 그 노부부들이 걸어가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 공주마마.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이러한 정경들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가운데 일원이 된 것을 기쁘게 만드는 생활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들이 별로 많지 않다.
최근의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의 가정생활에서 첫 번째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평생토록 계속되는 헌신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우리의 수고에 대한 상급은 아내와 평생토록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가정생활의 전부이다. 이것은 이 땅 위에서 잠깐 동안 머무는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가장 큰 축복들 가운데 하나이다. 평생토록 서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생활은 많은 교훈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의 보호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과 미시건 대학의 공동 연구진이 그 학교 출신 중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는데,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교육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열매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행복이 넘쳐나고, 웃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행복을 여는 비결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가장 인기 있던 과목은 제임스 해취 교수의 '결혼생활'이었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 몇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과 사람이 행복하려면 '귀를 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태도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고, “듣는 자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입을 열라'입니다. 입은 대화의 문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침묵을 좋아했고, 과묵하면 무조건 점잖은 걸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식탁에서도 그렇고 모임에서도 말이 잘 오가야 합니다. 대화의 단절은 서로를 패망케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은 '마음을 열라'입니다.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일수록 속을 읽을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 마음을 꽉 닫아놓는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계획을 세우라'입니다. 행복하려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하는 계획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계획과 아내의 계획이 따로따로이면 금실은 깨지고 맙니다.
해취 교수가 꼬집은 대목은 서로 연애할 적에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오순도순 대화도 잘 나누며 마음도 터놓고 함께 재미있는 계획을 더불어 즐기다가 결혼 후 세월이 지나면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바로 이때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불안이나 가정을 병들게 하는 현대인의 고민은 서로의 마음을 닫는 데 있습니다. 솔직하게 서로의 가슴을 여는 대화가 오늘을 복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행복한 모습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기로 결심하고 화구를 준비해서 나섰습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까 생각 하다가 개선장군이 말을 타고 승리의 입성을 하는 장면을 그려보았고 또 두 젊은 남녀가 꿈에 부풀어 결혼식을 하는 장면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썩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또 농부들이 밭에서 추수하는 광경을 그렸지만 이것도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의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을 위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한 사랑하는 아내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기도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때 그 화가는 그 모습을 그렸고 이제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다고 만족했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모습은 바로 우리의 가정에 있습니다. 뿔뿔이 헤어져서 하루의 모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용서와 사랑의 보금자리가 바로 가정입니다.
서로 인내하며 노력하는 가족들의 정성이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고 기쁨의 모닥불을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