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관 - 과학박물관의 탄생 인류와 미래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3. 15.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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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관 - 과학박물관의 탄생 인류와 미래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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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05:40조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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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과학관
과학박물관의 탄생
인류와 미래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
알렉산드로스 대제는 어렸을 적에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각종 동물을 해부하는 수업을 받았던 덕에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헬레니즘 왕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정복하는 지역마다 자신을 기리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이라크를 비롯해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터키 등 한때 알렉산드리아는 70여 개가 넘었다.
오늘날 알렉산드리아 중에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서쪽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이집트의 두 번째 도시다. 이집트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는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였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1)가 있었던 항구 도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3세기경에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이곳 알렉산드리아에 아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무세이온(Museion)을 설립했다. 인류 최초의 도서관 겸 박물관인 이곳은 학예를 관장하는 여신의 집을 의미했으며,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세이움(Lyceum)이나 플라톤의 아카데미(Academy)와는 규모나 내용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였다. 오늘날의 종합적인 학문 연구 기관에 해당하던 이곳에는 양피지 70만 두루마리(약 50만 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장서가 구비된 도서관이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의 모든 책을 다 모으겠다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하는 선박에서 발견되는 모든 책을 필사하도록 했으며,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중동을 넘어 인도와 아시아 문명권의 문헌들도 모두 모았다.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신플라톤주의의 플로티누스, 천문학자 에라스토스테네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등은 모두 무세이온에서 활동하고 연구하면서 그 결과를 남긴 대표적인 고대의 과학자들이다.
무세이온에는 또한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천문대와 동물의 생체와 사람의 사체를 연구하는 해부실 그리고 식물을 기르며 관찰하는 식물원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동시에 수학과 천문학 및 자연과학에 관한 연구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원후 389년에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무세이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수학과 천문학 및 동식물학 등의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은 서적들과 천체 관측 기구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도구를 수집하고 보관하면서 전시하는 곳을 과학박물관이라고 정의한다면, 세계 최초의 과학박물관이 소멸되어 버린 셈이다.
16세기가 되어 런던에서 활동하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2)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선언했다. 사후에 출간된 저서 『새로운 아틀란티스』3)에서 그는 고대 학문의 정점이랄 수 있는 플라톤에 반하여 지식을 얻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주창했다. 이른바 4대 우상설을 통해 그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을 제거할 것을 설파하였고, 실험과 관찰의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을 것을 강조했다.
이 새로운 방법을 따를 때 유토피아, 즉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도달할 것이며,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과학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과학자이며 동시에 그 결과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었던 세계는 모든 사람이 과학적 결과물의 생산자이자 동시에 수혜자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과학적 지식이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실험과 관찰을 강조한 탓에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각종 실험 도구와 다양한 결과물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처음 조직되었던 실험 아카데미는 회원들이 사용한 실험기구들을 한곳에 모아 ‘호기심의 상자(cabinet of curiosities)’라는 이름으로 보관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개인주의와 상업주의가 만나 부를 획득한 상인이나 귀족들이 새로운 동식물 표본들을 수집했다. 이들은 지리상의 대탐험을 통해 얻은 특이한 것들을 별도의 공간에 보관하고 ‘놀라운 방(wonder-room)’으로 꾸며 신분을 자랑하는 데 이용했다.
도미니코 렘스 作 ‘호기심의 상자’(1690)
이러한 현상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고, 특이하거나 희귀한 동식물의 표본에 점차 실험용 도구와 기계류가 더해졌다.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은 한스 슬로안 경(Sir Hans Sloan)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컬렉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특히 영국 국왕 조지 3세는 진공 펌프와 정교한 시계 등 18세기 과학을 대변하는 과학 기구를 많이 소장했는데, 그의 소장품들은 오늘날 런던 과학박물관 3층 특별 전시실에 전시되어 화려했던 18세기 영국 과학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산업화 경쟁은 새로운 과학과 기술 관련 컬렉션을 대규모로 획득하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영국에서 처음 일어난 산업혁명은 증기를 뿜어 대며 돌아가는 공장의 부품들과 각종 기계류, 특허받은 모형들을 새로운 컬렉션으로 변모시켰다.
1794년 파리에 설립된 국립 기술 공예 박물관(The Musèe des Arts et Mètiers)은 세계 최초의 과학기술 박물관으로 특허받은 기계류와 발명품, 과학 도구와 천체 관측 기구 및 실험 장비들을 수집하고 전시했다. 프랑스 대혁명기라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개관될 수 있었던 이곳은 공화국의 기술과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던 기계, 엔진 관련 모델, 설계 도안 및 그림, 산업 용품과 발명품들을 전시하며 기술자들에게 기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거나 교육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근대적 의미의 과학박물관이 본격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1851년에 영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세계 엑스포(World EXPO) 때문이다. 유럽의 15개국뿐만 아니라 멀리 인도와 중국까지 참가하여 각 국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과 예술 및 산업 작품을 선보였던 엑스포는 이후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교대로 개최되었다.
토마 아벨 프리오르 作,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의 1851년 런던 엑스포 개막식을 하는 빅토리아 여왕’(1851)
해를 거듭할수록 엑스포는 최고의 발명품을 선보이는 창의성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실제로 1851년에 런던 엑스포를 찾았던 관람객은 모두 600만 명이었는데,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 인구를 모두 합한 인구의 약 30%, 당시 런던 인구의 2배에 해당하는 아주 엄청난 숫자였다. 영국 북부 허더스필드 지방에 살던 한 공장 노동자의 일화는 당시 엑스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잘 보여 준다.
“그 노동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 재산 6센트 중, 5센트를 런던행 삼등칸 야간열차 왕복권을 사는 데 썼다. 한쪽 주머니에는 나머지 1센트를 넣고, 다른 쪽 주머니에는 끼니로 먹을 샌드위치를 넣은 채 그날 밤늦게 노동을 마치고 허더스필드를 떠났다. 흔들리는 야간열차에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다음 날 아침 피곤함도 잊은 채 하이드파크까지 걸어서 갔다. 그러고는 남은 1센트로 입장표를 사고 엄청난 기대감을 안고서 박람회장에 들어섰다. 놀라움과 기쁨으로 박람회장을 둘러보다가 배가 고파진 그는 주머니 속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고, 중앙 분수에서 솟아나는 물로 갈증을 해소했다. 시간을 아끼며 하루 종일 박람회장을 둘러본 그는 그날 밤 다시 허더스필드로 되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밤새 야간열차 안에서 시달린 그는 아침도 거른 채 곧바로 작업장으로 달려가 하루 일을 시작했다.”4)
건립 당시에는 프랑스 정치인들에게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미관을 해치는 역사상 최악의 쓰레기’라는 혹평을 받았던 에펠탑 역시 1889년 파리 엑스포 때 첫선을 보였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예술성과 공업성, 추함과 아름다움을 놓고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에펠탑을 두고 한 수학자는 3분의 2 정도 공정 단계에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탑이 무너질 것이라 했다. 또 유명한 소설가 기 드 모파상,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작곡가 샤를 구노 등 유명 예술인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뉴욕 코니 아일랜드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 역시 1900년 파리 엑스포 때 첫선을 보였다. ‘경사진 엘리베이터(Inclined Elevator)’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현한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에 ‘계단’이란 뜻을 가진 라틴 어인 ‘Scala’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생겨남으로써 건축은 물론 사람들의 행동 패턴도 크게 변모되었다.
19세기 과학박물관의 본격적인 등장은 세계 엑스포에서 선보인 산업 기술 발명품들, 물리학 · 화학 · 생물학 · 지구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견, 아시아 · 아메리카 · 아프리카 등을 탐험하고 얻은 새로운 동식물 표본들을 임시적으로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곧 가건물이 아닌 과학 박물관을 위한 전용 공간이 생겨났고, 수집된 전시물들을 보관뿐만 아니라 연구하고 전시하는 기능도 새로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런던 과학 박물관이나 런던 자연사박물관이 이렇게 탄생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박물관은 한편으로는 국가의 결집과 위상을 드러내는 장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단위 여가활동을 위한 장소로 변모되었다. 특히 1930년대부터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과 교육의 기능을 강조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는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과학 센터가 출현했다. 소장품을 보관하고 일방적 전시를 통해 내보이던 과학박물관은 작동하는 전시품을 통해 과학의 숨은 원리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과학 센터로 대체 혹은 보완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은 아예 ‘만져 보는 과학’, ‘체험하는 과학’을 표방하며 출발했고, 이는 북미와 아시아 ·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호주의 퀘스타콘(Questacon)이나 캐나다의 온타리오 사이언스 센터(Ontario Science Center)는 런던 과학박물관이나 도이체스 박물관과 차별화되는 과학 센터인 것이다.
호주 퀘스타콘
캐나다 온타리오 사이언스 센터에 전시된 운석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과학박물관과 과학 센터는 또다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갖게 된 본질적인 이중성이 있다. 과학기술은 지난 200년 동안 어려운 질병과 빈곤퇴치, 풍요로운 먹거리와 편리한 생활 등을 가져다주며 인류의 삶을 질적으로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물 부족, 새로운 질병, 에너지 고갈, 식량의 불균형이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새로 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과학기술이 유일하지는 않지만 매우 결정적인 열쇠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과학박물관과 과학 센터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바로 필즈-온(Feels-On Science) 개념이다. 이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보거나(Eyes-On) 즐기거나(Hands-On) 이해하는(Minds-On)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 참여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기 때문에 과학박물관과 과학 센터는 시민들에게 과학적인 소양 함양을 그리고 청소년에게는 과학 교육을 위한 장으로 변모되어야 하는 것이다. 곳곳에서 기후변화나 물 부족 등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회가 기획되고 개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 있는 과학박물관 혹은 과학 센터는 ‘당신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곳’, ‘호기심을 채워 보세요’ 등의 모토를 내걸고 오늘도 다양한 전시와 교육 그리고 문화 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다. 전시물은 전혀 없고 오직 19세 이상의 성인만이 먹고 마시면서 과학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과학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로봇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 모든 것을 보여 주는 테마형 과학박물관도 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세계의 도시와 그 도시에 있는 과학박물관이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과학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남겨 놓았는지 차례차례 살펴볼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과학박물관의 탄생 - 인류와 미래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 (세계의 과학관, 2015. 10. 25., 조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