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소주, 항주, 동리) 여행기
황포강가에서
임오년 춘 4월4일 우리는 상해로 날라 와
해지고 불 켜진 밤에 황포강가를 거닐게 되었다.
비바람에 몸은 움츠러들고 누런 강물은 물결이 거세었네.
강둑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 명주탑은 하늘을 꿰뚫었고
그 위상은 오월과 수당의 금대옥루를 무색하게 하는구나.
흐르는 황포강물 물빛은 흐리고 일렁이는 물결만이 부딪치는데
누런 배 띄워 흙탕물 거스르는 황포선은 없고
이름만이 황포강을 노래하는구려.
천군만마의 조조가 황포강을 피로 물들이고
동파 소식이 적벽 아래에서 요조의 시를 읊조릴 때
격동과 고요의 한세월을 말없이 흘러 보낸 누런 강물
그 황포강을 바라보는 눈에 이슬이 맺히는 구려
천년 뒤 황포강은 찬란한 문명의 등불에 반사되고
수천인의 시선을 먹음은 채 오늘도 도도히 흘러가는구나.
역사는 기록의 뒤안길이고 살아 흐르는 것은 황포 강이로다.
2002년 4월 5일 오전10시 버스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임오년 4월5일 우리는 상해를 뒤로하고 서주 가는 차 안에서
비바람에 흘러가는 변함없는 물결 황포를 노래했지요.
결혼 23년 차 되는 오늘 당신과 나는 서주 땅을 달리고 있소.
뒤돌아보는 영욕의 세월엔 욕됨이 많았고.
같을 수 없는 환경과 정서 속에 서로 만나 애로가 많았소.
사랑보다는 무관심이 깊은 정 보다는 고통만을 주게 됐구려.
조각구름 바라보는 이 가슴엔 추억의 눈물이 수건 적시고
다시는 꽃다운 청춘 돌아올 기약 아득함을 느끼오.
바라건대 달빛과 같은 은은한 사랑을 노래하고
태양과 같은 찬란한 여생과 별과 같이 반짝이는 꿈을 꾸며
꽃과 같이 남은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고 싶구려.
하오니, 부디 저버리지 마시고 영원히 같이 있어주길 바라오.
23년간을 변함없이 사랑했고 영원토록 사랑 하겠습니다.
2002년 4월 5일 소주가는 버스에서
졸정원을 관람하고
정원 연못가 버드나무는 서늘한 그늘 이루고
길은 굽이져 펴지며 걷는 이의 운치를 겯드리네.
아담한 누각과 섬세한 정자는 아름다움을 다투고
만개된 꽃송이는 없는 벌 나비 부르려하네.
연못에 목선 띄워 부초를 걷어내는 졸정원의 여인네야
연못을 사랑하는 네 마음이 착하고도 가상타만
부초 없는 연못속의 부부동반 금잉어를 생각이나 해봤는가.
연못 속에 비친 누각 용왕의 별궁 같고
별궁속의 금잉어가 사랑에 꼬리치면
물결 따라 춤을 추는 누각을 볼 수 있네.
옛 부터 정원이란 미인 위해 지었는데
주왕은 달기를 좋아하여 하나라를 망쳤고
서시는 합려를 꼬드겨 오나라를 망쳤으니
어찌 현종비 양귀비를 나쁘다 할 것인가.
사람은 죽고 옛 전각만 남았는데 공연히 연꽃만 피어오르고
전각은 물속에서 물고기와 다정한데
그 옛날 영화는 오간데 없구려.
이를 생각하면 아득한 꿈결 같으니
보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구나.
맑은 하늘 밝은 달빛 추억의 별을 향에 비파행을 읊었다면
죽은 이백이 기절하고 잠자는 두보가 놀라 달아날 것일세.
2002년 4월 5일 졸정원에서
호 구 탑
임오년 4월5일 흐르는 물살 헤쳐 소주성에 당도하니
수백의 인파가 오나라 전설에 숨을 죽이고
수천의 꽃송이가 찾는 이를 유혹하네.
이 길은 천 년 전 오나라 궁궐 가는 길
한 여인이 길옆 누각에 앉아 24현의 비파를 뜯고 있는데
곡조는 망국의 한을 안은 합려를 노래하고
애틋한 가락은 미인 서시의 구슬픈 하소연 일세
합려와 오자서가 회자되는 오나라 궁전에 이르니
방석만한 바위가 피 빛을 발하면서 천년을 내려왔네.
합려의 명에 의거 인부 천명의 목을 베었으니
목을 친 바위는 천년을 두고 피가 흐르고
원한은 하늘에 사무쳐 은암 사탑을 기우렸네.
오나라 영화를 핏빛에 날린 통한을 비파에 실어 천년을 울리고
오나라 백성의 가슴 저민 비통은 만년을 두고 한이 된다네.
죽은 합려는 그 무덤을 알리지 않았으나
오나라 백성은 성을 오 씨라 칭하며 천년을 내려왔네.
나무는 무성해 잎은 바람에 너울대고
서슬 퍼런 오왕의 묘는 存 不를 시비하며 천년을 내려왔네.
인생무상은 죽은 합려를 말하고
역사는 은암사탑을 기우렸구나.
2002년 4월 5일 호구탑에서
서 호
항주 땅 이름난 곳 서호가 일품일세.
잔잔한 물결헤쳐 떠가는 배를 타고
못 가운데 흘러가니 해는 중천을 지났네.
그 옛날 이백이 물에 비친 달을 사랑하여
너울대는 물결 속에 춤을 추는 달을 보며
시한수를 읊었으니 이름 하여 월명가가 아니더냐.
한 잔의 술이 흥취를 더하여 말술을 마다하랴.
한해에 한 섬의 술을 마셔야 술을 먹었다 할 것일세.
유람선은 탔지만 술 없음이 한이로세.
양은 적다만은 두어 잔은 즐긴다네.
사방을 둘러보니 남녀들은 때를 다투어 즐기고 있네.
마침 좋은 철을 만나 여인의 짙은 화장은 물가에 아롱대고.
동승한 백선엽 장군이 고향을 묻고 삼장 대화를 하자 하시네.
용맹한 장군상은 어디 갔나 귀는 어두워 팔십삼세가 서럽다네.
귀 어둔 노장군에 언성이 크다보니 서호의 물결이 출렁이고 .
장군의 청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마음은 만수무강을 기원했네.
흘러가는 배에 몸을 기대 저 멀리 인공 섬의 누각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달에 비친 서호를 감상 했다네.
밝은 달빛이 서호에 가라앉아 비파와 어울려 뱃전을 두드리면.
한 두곡의 춘풍가가 나옴직도 하다만은
그래도 풍류를 즐기고 싶다면 술을 안고 비파행을 노래하고
친구와 잔을 부딪쳐 누각에 앉아 꽃잎을 날려야지.
바람에 버들잎 하늘거리고 오가는 여인은 아름다움을 다투고
서산가는 해는 나무 사이에 걸려 서호에 너풀대는 부초를 비추네.
2002년 4월 5일 유람선에서
항주비단
항주에 이르러 비단 공장에서 면사 솜을 샀다네.
쌍 원앙새도 아름다운 꽃무늬도 없는 맨 비단 솜이라오.
헤어지지 말라고 꼭꼭 매듭져 들기 좋게 만들었네.
한양가 홋청 떠서 그 속에 항주사랑 잊지 말자 항주 솜을 넣으면
포근한 중년 부부 가볍고 부드러운 행복의 밤 이불 될 것이니
누가 감히 원앙금침 수놓은 비단 천을 부러워하리.
2002년 4월 5일 항주에서
육화탑
전단강을 바라보는 육화탑에 당도하니
그 장엄하고 대단함에 입 다물 줄 몰랐었네.
지붕을 올려다보기엔 고개가 아프고
중간을 바라보기엔 머리가 어지럽네.
서있는 동자상의 전설을 듣노라니
아련히 전설에도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하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질 않고
살아 이별은 언제나 슬프기만 한데
만년을 두고 전단강에 목숨 바친 자 수천이 되고
천년을 두고 전단강을 원망했으니
하늘가 뜬구름은 천년을 오갔으나.
죽은 뒤의 일은 쓸쓸하기만 하다네.
2002년 4월6일 전단강가에서
영은사
네 몸 안에 부처가 있나니 이름 하여 관자재 보살
이러한 글자가 새겨있는 영은사 입구를 지나니
수 백 년 된 나무들이 숲을 이뤄 하늘을 덮었고
만년을 흐른 물줄기가 맑은 빛을 띄우며 소리 없이 흐르네.
왼쪽 벽에 새겨진 수백의 불상들은 영은사 불전을 높이 모시고
대웅보전의 거대한 불상은 수 백 년 간 수만의 분향객을 맞았으니
영험함은 구천에 미치고 신묘함은 생사의 영혼을 안락케 했네.
수천리길 날아와 만복을 기원하고 효험 있길 바랐었지.
수 백 년 간 수 만 명 다녀갔지만 수 백 년 간 분향 한이 하나도 없어
생사의 피할 수 없는 젊은 청춘에 찾아오는 백발을 어이할고.
2002년 4월 6일 영은사에서
중화 인민공화국
우리들은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땅을 밟게 됐다. 수 천 년 동안 우리나라와 불가분의 관계에 존재했던 중국이 구각을 탈피하고 현대화의 개혁개방을 치고나온 배경과 그 주연(主演)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글귀가 있다.
翻身不忘 毛澤東 (번신불망 모택동)
致富更思 鄧小平 (치부갱사 등소평)
중국의 변혁을 이룬 모택동을 잊지 말고
중국을 부자로 만든 등소평을 다시 생각하자는 이 구호는 쓰촨성 광안시 등소평 생가 입구에 붙었다 한다. 이 글에 번신은 몸을 뒤집는 다는 뜻이지만 중국인은 이를 제 발로 서고, 지주의 족쇄에서 벗어나 땅과 가축과 집을 얻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혁명이 아닌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가(舊家)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휘호가 있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이 말은 본래 나라가 망해 서쪽 위(魏)나라에 억류된 양나라의 사신 유신의 탄식이었지만 여기서는 나라 잃은 백성에게 조국광복을 잊지 말라는 김구선생의 간곡한 호소다. 바로 치부사등(致富思鄧)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차용인 듯하다.
중국인은 누구나 번신(翻身) 즉 혁명의 모택동과 검은고양이 흰 고양이로 대변되는 치부(致富)의 등소평이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개혁개방의 주연(主演)이다.
중국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지금은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거명한다.
“중국은 잠자는 거인이다. 중국을 자게 하라. 중국이 깨면 세계가 떨 것이다.” 2백 년 전 나폴레옹의 이 경고는 황열(yellow fever)공포와 겹치면서 서양인들의 뇌리에 가공할 불안으로 새겨졌다. 바로 이 문명충돌의 점괘가 아니 그런가? 중국에 무슨 일이 있으면 서양은 거인이 잠을 깬다면서 두려운 척 했다. 그러나 저들의 시비와 달리 그것은 축복일 수도 있다. 중국이 밥을 해결하면 세계인구의 1/5이 기아를 모면하고 중국이 부자가 되면 세계인구의 1/5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을 깨서 그런 축복이 온다면 어서 깨게 하는 것이 인류의 축복이다. 중국은 대단한 대국이다.
이론가이며 혁명가이고 이상주의자인 모택동, 실천가이며 개혁가이고 현실주의자이며 개방과 시장경제를 주창한 등소평, 냉전의 와중에 미국과 수교를 과감히 선택한 전 총리 주은래, 중국의 고질적인 부패를 척결한 전 총리 주용기(주룽지), 총리 원자바오 등은 시대의 인물이며 중화민국의 구원자다. 사회주의가 목표이고 시장은 수단일 뿐이라는 기치아래 등소평의 신경제론을 좇아 국가가 부자는 되었지만 빈부격차에 사회주의 이념의 실천의 共有는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공산주의의 하급단계인 사회주의에서는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력 발전이 필수적이다. 모택동의 사회주의는 계획을 수단으로 삼았지만 등소평의 사회주의는 시장을 통해 부자가 되려는 노력이다. 등소평의 구도에서 계획과 시장은 모순이 되지만 사회주의와 시장은 공생 관계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산당 자본가도 정상이 아니지만 자본가 공산당은 무슨 말인가? 이 최첨단 이론을 마르크스가 들었다면 아마도 즉석에서 졸도했으리라. 중국은 우리들이 관광해본 바.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에 가깝다고 느꼈다. 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학교에서 배운 이론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개념이 된 것 같다.
이 율천
첫댓글 10여년전 여행을 회상하며.....
10여년전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