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광교박물관......
세사대 조경답사를 위해 이곳으로.....
하지만, 나는 급한 일정때문에 동행하지 못하고, 박물관 근처를 둘러봅니다......
혜령군 이지의 묘
혜령군 이지(1407~1440)는 1438년(세종 20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파견돼 여러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한 공을 인정 받았던 인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타계했습니다.
혜령군의 묘소는 처음 수원시 동문 안쪽에 위치해 있었으나, 3년 뒤, 억울하게 죽은 장인 심온의 묘를 왕자의 묘와 함께 나라에서 관리하길 원했던 세종의 명으로 영통구 이의동 산 234번지로 옮겼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광교역사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안효공 심온 묘소의 서쪽 능선 옆으로 또 한 번 이전했는데.......
이곳에는 혜령균 묘를 비롯해 부인 '무송 윤씨(낙안군부인)'의 묘소가 나란히 쌍분으로 조성돼 있는 것은 물론, 혜령군의 아들인 예천군과 손자 축산군 묘소 등 모두 4기의 왕족 묘가 위치해 있습니다.
수원광교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은 광교신도시 개발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에 이르는 각 시기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수원 출신의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과 학창시절을 수원에서 보내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소강 민관식 선생의 기증유물을 통해 근·현대 유물을 전시하여 보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있습니다....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오픈시간이 아니라 살~짝 훔쳐보고 올께요......ㅋㅋ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은 수원 출신 서지학자이자 자료수집가다.
고서점을 운영하며 일제강점기 자료와 유물, 독도 관련 기록들 수집에 평생을 바친 분이다.
사료관은 선생의 유족이 수원시에 기증한 2만여점의 자료중 일부를 전시한 공간이다.
전시실은 엽서(기증 유물 중 일제강점기때의 엽서만 7천여점에 이른다) 콜렉션, 금강산 콜렉션, 일제강점기 기록물 콜렉션 등으로 나뉜다.
조선 중기 명사들의 편지를 모은 간찰첩, 윤경립이 1604년 명나라 사신(동지사)으로 갈 때 친구들이 써준 송별시를 모은 <조천증행록>, 취당 홍순인이 금강산 풍경을 그린 10폭 병풍 등이 볼거리다.
자원봉사 해설사 변재성씨는 <조천증행록>의 펼져진 페이지에 대해 “이 부분 글은 석봉 한호와 당시 명필로 쌍벽을 이뤘다는 김현성의 시”라고 설명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료들이 발길을 잡아끈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관습과 역사, 물산 등을 세밀하게 조사해 작성한 <관습조사보고서>와 18세기 일본인이 그린 <삼국접양도>가 그렇다.
<보고서>는 일본인들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 아래 이 나라를 지배했는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자료다.
삼국접양도는 1785년 일본인 하야시가 그린 한·중·일 삼국 지도인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명백하게 표시하고 있다.
민관식(Min Kwan Sik, 閔寬植)
1918년 개성에서 태어난 민관식은 경기고의 전신인 경성제일고보(1937)와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후 일본에 건너가 교토제국대학 농예화학과를 졸업했다.
6·25전쟁이 끝난 후 고려시보사 사장(1953~1967)으로 언론계에 투신한 그는 1954년부터 1967년까지 서울 동대문구에서 3·4·5대 민의원과 6대 국회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에는 문교부장관에 임명되어 관계에 진출했다가 1978년 12월 10대 총선 때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중구에서 공화당후보로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특히 민관식은 체육계와 오랜 기간 깊은 인연을 맺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렸는데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를 앞두고 대한체육회 회장에 취임해 1971년까지 한국체육계를 선도했다.
또한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겸하며 1966년 무교동 체육회관과 태릉선수촌을 건립해 한국스포츠 근대화의 토대를 이루었다.
생전에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을 가장 자랑스러운 공으로 내세웠던 그는 “선수촌을 지으려면 태릉으로 가보라”는 꿈을 꾸고 난 뒤 태릉의 부지를 물색했다는 일화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축구와 육상, 테니스, 탁구, 정구협회 등 5개 종목에 걸쳐 단체장을 맡았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 마니아로 1973년 자신의 아호인 소강(小崗)을 딴 “소강배 전국남녀중고교테니스대회”를 창설해 약 40년 동안 개최해오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인생 전부를 잃는다”는 생활신조를 지녔던 그는 미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운동을 즐겼으며 마지막까지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기원하다 2006년 1월 16일 타계했다.
수원역사공원.....
심온선생의 묘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의 아버지로 영의정에 오른 심온(?~1418)의 묘이다.
심온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조선 왕조 창업에 참여하였다.
1392년(태조 1) 조선 개국 후 병조, 공조의랑을 거쳐 대사헌, 호조,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에 올랐다.
1418년(태종 18) 사은사로 중국 명에 갔다가 귀국할 때 옥사가 일어나 의주(義州)에서 피체(被逮)되고 수원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이 사건은 그가 왕비의 아버지로서 세력이 커짐을 염려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朴訔:1370~1422)의 무고로 밝혀져, 후에 문종은 관직을 복위시키고 안효(安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묘역은 장대석을 이용해 상하 2단으로 구분하였다.
상단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묘비와 상석이 배열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장명등과 그 좌우에 문석인 1쌍이 배치되었다.
묘비의 비문은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 이용이 썼다.
묘역에서 약 100m 떨어진 마을 입구의 신도비는 9대손 심하단이 찬하고, 서명균(徐命均:1680~1745)이 글을 쓰고, 심과육이 전액(篆額)을 써서 1737년(영조 13)에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