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산업의 구조와 목적마저 변화시킨다. 마차,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예로 들자. 이들 제품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하드웨어의 발전은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났다. 마차나 초기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는 마부와 운전사의 노련한 경험과 판단력이 전부였다. 반면 최근 생산되는 자동차는 소프트웨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결합되면서 자동차산업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가전 전시회인 ‘CES 2014’에 BMW, 아우디, 벤츠 등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들 기업이 자동차를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2014 제네바모터쇼’ 에 등장한 린스피드의 ‘X체인지(XchangE)’나 아카(AKKA)가 출시한 ‘링크&고(Link&Go) 2.0’ 등은 자율주행차량으로 소프트웨어가 핵심 경쟁력이다. 이들 차량은 사람이 운전하는 차와 달리 사고를 내지 않는 차로, ‘교통사고 0’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교통사고가 안 생기니, 응급실 환자가 안 생기고, 장애인이 안 생기고, 자동차보험회사가 필요 없게 되고, 운전학원, 면허시험, 음주운전단속, 택시기사, 대리기사 등 많은 것이 사라질 것이다.
이처럼 IT 신기술은 기존산업의 몰락과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새해가 되면 도로교통지도를 새로 샀지만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 도로지도 산업은 몰락했다. 2010년만 해도 아침 출근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던 무가지를 비롯하여 PMP, MP3P, 휴대용게임기 등도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모두 몰락한 산업이 되었다.
자율주행차량도 기존 산업의 강자를 몰락시킬 것이다. 사고가 안 나는 차니 무거운 쇠 대신에 가벼운 강화섬유나 플라스틱으로 차를 만들어도 되므로 철판공급업체가 망하고 포드자동차 현대자동차가 몰락하게 된다. 전기에너지를 쓰고 휘발유를 안 쓰게 되므로 SK에너지 엑손모빌 같은 정유회사도 매출이 급락하게 된다. 자동차에 기댄 수많은 중소기업도 몰락할 것이다. 전기차 시대가 오더라도 엔진이나 조금 바뀔 뿐 에어컨, 운전대, 백미러 등 차량용 부품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많다. 하지만 2014년 5월에 구글이 내놓은 자율주행차량을 보면 이런 예상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차는 운전대도 없다. 어차피 차가 알아서 운전할 것이라면 사람이 운전대를 잡거나 클러치나 브레이크, 액셀을 밟을 일도 없고 백미러도 필요 없다.
테슬라나 X체인지, 구글차가 보여준 것처럼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량의 기술은 이미 완성된 상태다. 경제성도 확보했다. 이미 전기차는 1유로의 돈으로 100km를 주행할 수 있고, 한 번 충전으로 400km를 달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남은 것은 정치적 문제다. 과연 한국 정부가 한국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현대자동차와 정유사들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량의 빠른 보급에 투자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변화는 이미 시작된 상태다. 최근 유럽과 서울시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우버(Uber)는 이런 변화의 징조다. 파리의 택시기사는 우버 서비스가 시작된 후에 수입이 40%나 줄었다면서 우버를 성토했는데, 스마트폰이 기존의 택시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비게이션, 하이패스, 자동항법장치, 우버, 자율주행차량, 전기자동차와 같은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교통산업과 문화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기술적 장벽이 아니라 정치적 장벽이라는 사실이다.
아마존의 ‘프라임 에어(Prime Air)’를 계기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드론도 기술적인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다. 아마존의 프라임 에어는 최대 2.3kg의 물품을 16km까지 운반할 수 있는 드론(무인항공기) 시스템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없고 남은 것은 항공법 등 기존 법규와 관련된 정치적 이슈가 남아있을 뿐이다. 프라임 에어를 허락할 경우 기존의 유통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재편될 수밖에 없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정치적 문제가 가장 큰 장벽이다. 부품이 소형화되고 스마트폰의 네트워크 기능과 협업이 가능해지면서 구글글래스, 조본업(Jawbone Up), 핏빗(Fitbit), 삼성기어, 스마트반지와 같이 몸에 걸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대중화가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구글글래스는 이미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정판매 되었으며, 앞으로는 레이밴이나 워비 파커와 같은 선글라스 소매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도수 있는 렌즈를 끼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구글이 인수한 뷰들(Viewdle)은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및 증강현실(AR) 전문업체로 구글글래스의 카메라가 상대방을 보는 순간 얼굴인식을 통해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에서 뒤져서 표시하거나,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내 폰의 주소록에 저장할 수 있다. 이미 구글글래스는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상태고 간단한 음성명령으로 동영상 녹화나 사진 촬영 영상통화 등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도 현대엠엔소프트가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인 맵피를 구글글래스와 연동시킨 상태다. 안경보다 좀더 넓은 차 앞유리에 표시하는 기술도 계속 진화 중이다. 영국 위틀리에서 열린 ‘재규어랜드로버 테크놀로지 쇼케이스’에서는 재규어 랜드로버는 ‘지능형 자동차(Self-Learning Car), 자율주행(Self Driving), 가상 윈도스크린’ 등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특히 가상 윈도스크린은 게임처럼 차량 앞유리를 이용해 다양한 정보가 표시되어 마치 게임하듯이 운전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IT 기술 발전속도는 이처럼 빠르지만 기존산업의 보호, 사생활침해 및 보안 등 많은 정치적 이슈가 산적해 있다. 구글글래스의 경우 상대의 허락 없이 얼굴을 촬영하거나 안경을 쓰고 다니는 동안 자동으로 모든 것이 기록되는 행위가 바른 행위인가 하는 문화적 합의점이 필요하다. 미국의 이모션트(Emotient)가 개발한 구글글래스용 앱인 ‘감정 분석 글래스웨어(Sentiment Analysis Glassware)’는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매장에서 고객이 상품에 만족하는지 불만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데, 고객 입장에서는 상대가 자신의 감정까지 파악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보안 문제도 골칫거리다. 보안이 필요한 기업의 경우 과거에는 카메라와 노트북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썼는데, 근시 사용자가 착용한 도수 있는 스마트안경이나 스마트렌즈를 착용 못하게 막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IT 발전이 사생활침해, 보안, 기존산업의 보호 등 여러 가지 사회 정치 경제적 이슈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마차가 자동차로 바뀔 수밖에 없는 것처럼 결국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량, 드론, 공유경제 등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변화다. 늦게 받아들일수록 경쟁에서 뒤질 뿐이다. 캘리포니아 주가 2018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의 4.5%를 가스배출량 제로(Zero-Emission)인 차로 대체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전기자동차를 밀기 시작한 점을 한국정부도 주목해야 한다. 기존 산업 보호를 위해 미래에 대한 논의와 투자를 미루었을 때 우리에게 올 결과는 어두운 미래일 수밖에 없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신기술에 대한 논의와 제도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