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중간 지대’
노고봉은 곤지암 리조트 덕분에, 그리고 태화산은 그 크기와 높이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 반면, 이 산과 봉우리의 중간에 있는 몇 개의 포인트들은 그 둘의 그림자에 가려져 그저 단순히 “스쳐가는” 산과 봉우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고봉 바로 옆에 있는 정광산은 정상에 아무런 정상석이나 표지가 없어서 이곳이 과연 산의 정상인가 싶을 정도였다. 다만 정상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정보 통신기기인 휴대폰과 트랭글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산을 조금 비약해서 비유하자면, 덕유산 정상은 향적봉이지만 리조트에 가까운 설천봉이 더 많은 조명을 받는 것처럼, 정광산 역시 노고봉에 그 자리를 내어 준건 아닌가 싶다.과거에는 정상의 영화를 누리고 있다가 리조트가 건설 되면서 지형도 바뀌고 또한 봉우리와 산의 위상도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산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 날 갑과 을이 바뀌고, 부모와 자식 간의 위상도 바뀌고..
정광산을 지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난 것 같은 모양을 따서 이름을 지은 것 같은 벌덕산이라는 곳도 있었고,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휴양봉이라는 곳도 있었다. 한자까지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이 휴양봉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휴양”이라는 단어에서 원용된 것 같다. 왜냐면 가까운 곳에 용인시 휴양림이라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지도에는 휴양봉이라는 곳이 없고, 동일 위치에 “큰 산”이라고 명기 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휴양봉이다. 정상석은 있지만 오래되지는 않은 느낌이다. 아마 예전에는 “큰 산”으로 불리운 것 같다. 이건 마치 건너 마을 ‘개똥이’와 같은 개념이다. 그렇게 불리우다가 불러야 할 대상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런 지칭 대명사 수준의 단순 이름으로는 변별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무슨 이름을 붙일까 하다가 근처에 휴양림이 있으니 휴양봉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뜬금없는 예상도 해본다. 그런데 휴양봉을 큰 산이라고 불렀다면, 이 근처에 있는 더 큰 산들은 무엇이라고 불리웠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걷는 맛도 재미있다. 산을 오를 때 다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힘들고 지칠 때 이런 상상을 하며 걸으면 조금 수월해 지는 것 같다.
정광산처럼 정상석도 없는 마락산도 지났다. 마락산 정상에는 누군가 노란 안내 리본에 수기로 마락산이라고 적어 두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리고 트랭글 마저 없었다면 정상인지 알지 못했을 것 같다. 비록 수기이지만, 그런 정성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원주 굽이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봉우리에 올랐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길을 따라 봉우리 이름을 내내 붙이고 다닌 것 같다. 원주 굽이길 내내 자신의 닉과 봉우리 이름, 그리고 고도를 하얀 종이에 프린트하고 비닐에 씌워서 나무에 붙여 두었다. 딱 보아도 한 사람의 “역작”이었다. 그 프린트된 종이를 볼 때마다 반가웠고, 또한 그 사람과 같이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은 뭐하시나?
마락산을 지나면 마구산이다. 이곳 정상에는 제대로 된 나무 데크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큼지막하게 산 이름의 유래도 적혀 있었다. 마.구.산. 그런데 이 산의 이름의 유래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어서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었다. 산의 모양새가 말의 입처럼 생겨서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좀더 근사한 유래나 스토리가 있었으면 재미있었을 뻔했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 살짝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산 위의 “교통” 측면에서는 매우 중요한 교차 포인트였다. 이 곳에서는 원래 계획했던 태화산과 미역산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길로 갈리는데 용인시의 시내 방향으로 천천히 고도를 낮추면서 하산할 수도 있는 곳이다. 만일 이 종주 길이 초반부터 아주 힘들었다면 Plan B로 이 방향으로의 하산을 염두 해둔 지점이었다. 그렇지만 Plan B는 고려할 필요가 없어서, 원래 방향대로 가기로 했다. 태화산을 가려면 조금 하산했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또 다시 업 & 다운을 해야한다.
Up & Down 할 때마다 좋아하는 영화 배우인 Robert Redford과 Michelle Pfeiffer가 주연한 영화 “Up & Close Personal”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었다.. 아~ 세월이다…
[11] 태화산 & 미역산
드디어 태화산에 올랐다. 이름처럼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었고, 정상석 역시 큼지막했다. 그리고 커다란 정상석에 걸맞게 글씨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지리산으로 따지면 마침내 천왕봉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천왕봉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좀 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마 중봉 즉 미역산에 다시 올라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 내서 조금 쉬어 볼까 싶었지만, 지붕 있는 쉼터는 앞서 오른 6명의 등산객들에게 “누워 있는” 상태로 선점(!)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천왕봉 정상석이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로 늘 분주한데, 그런 의미로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조금 다른 형태였지만…^^
그래서 미역산으로 바로 직행하기로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 싶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보다는, 그냥 관성의 법칙으로 계속 엑셀을 밟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마지막에 있는 미역산 역시 600미터가 넘는 산이었다. 그래서 다시 미쉘 파이퍼를 생각하고… ^^ 드디어 이번 종주의 마지막 산에 올랐다. 그런데 미역산은 앞서 달려온 산들에 비하면 무척 높은 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상에는 정상석이 따로 없었다. 다만 검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미역산이라고 적힌 나무 팻말 만이 미역산 정상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 태화산과 미역산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하산하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버스를 타고 곤지암역으로 이동하면서 머리를 돌려 태화산과 미역산 방향을 보았는데, 저렇게 크고 높은 산을 어떻게 올랐는지 그리고 내려왔는지 스스로 놀라기까지 했다. 한북정맥의 광덕고개, 소백산의 죽령, 그리고 덕유산 육구종주의 시점인 육십령, 오대산 종주의 시점인 진고개, 그리고 설악산 종주를 위한 한계령 등이 모두 어느 정도 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들머리 포인트 지점인데 반해, 태화산 아래의 시점은 고도 거의 제로인 지점이었다. 그래서 거의 순수하게 600여 미터를 오르고 내려야만 하는 산이었다.
[12] ‘하산’
하산을 해야하는 거리는 오름보다 상대적으로 짧았다. 다시 말해 경사가 크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산은 늘 즐겁다. 특히 요즘 하산에 대한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찰을 방문하여 샘물 마시기다. 이 즐거움은 지난 설악산 방문 때부터 생겼다. 마등령 삼거리를 내려와 설악산을 하산하며 들른 오세암과 영시암, 그리고 백담사의 샘터에서의 꿀맛 같은 물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종주 길을 걷는 동안 물 생각이 날 때면 생각나는 곳은 딱 두 군데였다. 마실 물이 그리울 때면 지리산 연화천 대피소의 샘터가 생각났고, 발 담글 물이 생각날 때면 소백산 어의곡 계곡물이 떠올랐다.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가장 최상의 샘터와 계곡을 경험한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광주 알프스 즉 미마 종주에는 걷는 내내 산속에는 어떤 종류의 샘터도 그리고 계곡도 없었다. 다만 마지막 남은 히든 카드는 바로 은곡사의 샘터였다. 그리고 그건 역시 보증수표였다. 부처님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가는 것이 즉 절보다는 샘터에 관심을 두는 것이 부처님과 사찰에 매우 죄송 했지만 은곡사의 지붕이 보이는 순간, 샘터가 어디 있지? 하고 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샘터는 산길 바로 옆, 인접한 곳에 있었다.
가져온 물 두 병 중에 아직 한 병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이렇게 하산 길에 사찰에서 마시는 물 맛은 참으로 별나다. 빈 병에 물을 가득 물을 담아서 한번에 마셨다. 천왕봉에서 내려오면서 마셨던 법계사의 물맛, 설악산에서 하산하며 마셨던 오세암, 영시암과 백담사 물맛은 모두 같았다. 비록 화학적 성분은 다를지라도, 하산의 즐거움이 깃든 물은 동일 했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물맛의 평가 기준을 누군가 정한다면, 그건 노벨상 감이 아닐까?...
[13] ‘추억’
출발 지점은 경기도 광주역으로 정하고 출발을 했지만, 돌아오는 교통편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 왠지 근거 없는 믿음이 생긴 탓이다. 대한민국 안이라면, 뜬금없이 출발해도 왠지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겠지 하는… 그런 믿음? 그리고 그런 믿음은 계속 작동했다. 지난 소백산에서도 증명이 되었다.
그것 때문일까? 이번에는 아예 돌아오는 차편을 찾아보지 않고 출발했다. 그런데 그 믿음에 보답하듯이 미역산을 조금 지나 만난 안내목에는 친절하게도 “유정리(버스 정류장)”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하산하여 5km 정도 떨어져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는 늘 걸을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도 2.6km 정도만 걸어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어느 날에는 한번 크게 당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모드가 계속 되면 앞으로는 가는 차편만 고려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곧 버스 정류장 근처의 삼거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3km나 5km 등 커다란 산의 하산길을 자주 다녔더니 이제 2.6km 정도는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마침내 종주를 마치고, 이제는 홀가분하게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몸을 턴한 순간, 갑자기 앞에 펼쳐진 광경이 매우 낯이 익음에 놀랐다. ‘아 여기가…. 어디서 많이 본… 아니 이곳은?’ 이곳은 약 15~20년 전쯤, 몇 번 다녔던 곳이었다. 삼거리에서 저수지를 끼고 광주시 추곡리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에는 아시아나 CC가 있고 그 방향으로 조금 가면 금호 연수원이라는 곳이 있다. 오래전 그곳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기업이 서울과 멀지 않은 경기도의 수려한 곳에 연수원을 만들고, 자사 임직원뿐 아니라 타 기관에 단기로 임대해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한 일주일 동안 그리고 시간을 두고 그렇게 한 3~4번 정도 일 주일 동안 숙식을 하면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연수를 받는 동안 저녁 때면 사람들끼리 차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 어느 산 아래에 있는 맛집 순례를 하곤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 산이란 바로 백마산을 포함하여 이 종주길 아래에 있는 음식점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기억해보니 거의 15년 만에 오는 곳이었다.
그 때 연수원 저 너머로 까마득하게 높아 보이던 산을 나도 모르게 오르고 내린 것이었다.
….
추억의 장소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래전의 추억을 반추하고 있으니, 30여분이나 남은 버스 시간이 금새 지났고, 그리고 근거 없는 믿음은 아직도 작동을 하며 버스는 곧 도착했다. 또한 버스가 곤지암 터미널로 간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승차를 해보니, 마침 곤지암역이 종점이었다. 아니… 이런 행운이… 이건 마치 지리산 하산 후 중산리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바로 오는 직행 좌석버스를 탄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제로 시작했던 경기도 성남 알프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그 어떤 산이든 산행이 주는 즐거움은 늘 한결 같았고 또한 특별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또 하나의 족적과 기억, 그리고 추억의 마침표를 남겼다.
지리산… 이제 조금 잊을까 싶어 걸었더니, 연화천 샘터도 무릇무릇 생각나고, 또한 가곡 선생님이 올리신 작년 지리산 종주 후기도 보이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미마” 또는 “마미” 아니 “미니(mini) 지리산”을 걸어보니 역설적으로 다시 지리산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그 푸른 겹겹의 산들이……………###
첫댓글 이번 소그미님의 미마, 마미 종주의 백미 아니 태백 종주의 가장 높은 백마산보다 거의 100m나 더 높은(게다가 해발 0m에서 들고 날고) 태화산 정상을 찍고 하산한 스토리로군요.
이름 모르는 산 봉우리 마다 인쇄해 비닐로 감싸 걸어 놓은 '역작'을 보는 상쾌함이 있었네요. 참 고마운 산사람입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평화누리길 리본 뒤에다 유성 매직으로 이름과 싸인, 다녀간 날짜를 적어 놓은 아주 몰지각한 도보'꾼'이 있어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더이다. 완전 대비되는. 이번 연산행의 끝이 미역산이었군요. 마구산보다는 조금 더 멋있는 산 이름이지 싶습니다만.
미역산이라는 이름을 보면 아마 누구라도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아래 계곡이 좋아서 멱감는데 좋아서 그렇게 지었나? 하고 살짝 생각도 해보지만, 그냥 미역산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미끈덩 미역, 미역이 미끄러우니 조심조심해서 내려 갔습니다. 알지도 못했던 산, 이렇게 조금씩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산이라면 절대 쳐다보지도 않고 거길 왜 가서 고생하느냐 싶던 적도 있었는데…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역산이라..
여주 여강길 제1코스(옛나루터길)를 역방향으로 걷다보면 첫 산길이 아홉사리과거길인데요. 조선시대 때 경상도 지방의 과객(고시지망생)들은 경북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으로 갔는데, 이유인 즉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에 '문경(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미역산 하산할 때 미끄럽지 않던가요? 그리고 15여 년 전에 그곳 금호(그룹)연수원에서 집합연수 받았었군요. 저도 MBA 학위 취득 후, 광은리스금융 창립멤버로 공채되었었기에 친근한 금호 아시아나.. 입니다.
네 지금은 금호 그룹이 왔다갔다 해서 아직도 그 연수원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는 그곳 땅이 아시아나 CC를 포함해서 거의 금호 그룹 지역인 것 같았습니다. 그 연수원을 따라 계속 가면 산을 넘게 되고, 그리로 내려가면 무슨 돌 박물관이든가 그런 곳이 있었고 곧 이어 영동고속도로 양지 CC가 나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으로 오래 전 추억의 장소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복있는 사람은 다름니다. 하산에서 귀가하는 교통편까지 완벽합니다. 산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의 산하에 약 5200개의 산이 있습니다. 이름도 가지가지 다는 오르지 못해도 산에서의 추억거리를 하나하나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훗날 큰 추억거리로 남을 것입니다. 후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그 산이 그렇게 많나요? 그렇다고 마냥 산만 다닐 형편은 아니라서.. 그냥 콕 찍어서 좋다고 하는 산만 다니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꾼들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산을 걷는 것은 늘 힘든 일이지만, 조금씩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서울 근교의 산들, 어떻게 하든 집에 올 수 있으니, 어떻게 하든 한번은 걸어볼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좀더 젊을때 산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ㅋ
이제는 산행은 오름길이 힘들고 젊은 사람들과 산악회 따라 다니려니 민폐가 두렵고...
하여 둘레길 누리길 등을 걷고 있지요.
지금도 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언제나 마음뿐이지요.ㅋ
그러나 무슨 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대충 알지요.
거의 밟아 보았으니까요. 사실 고도가 낮은 산들은 안 가게 되드라구요.
이번 마미종주로 많은것을 배우셨지요?
높으나 낮으나 산은 늘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데 낮은 산이면 우선 얕보게 되고
긴장감이 덜하여 흥미가 없어지는건 왜일까요?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 때눈일까요?ㅋ
소그미님은 지금 산행이 장족의 발전을 하고 계시는겁니다.
점점 빠져들고 산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름다운 중독이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ㅋ
좋은산행 이어 가세요.
장마철 건강 조심하시고 계획하신 곳 즐 안산하세요.
수고 하셨습니다.
아고 별 말씀을요. 지금도 휙휙 다니실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해 보이십니다.
지난 평화 누리길 10, 11코스 반을 완주하시는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산은 자그마하거나 크거나, 모두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산을 찾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오른쪽과 왼쪽이 행정구역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산의 위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장족까지는 아직 부족한 것 같고요.
좋아하니 발걸음을 자주하게 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선생님들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산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