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표
인생에서 삶의 목표가 없으면 방황하거나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다. 많은 사람이 선각자나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경전의 말씀을 지표로 삼는다. 이스라엘은 ‘탈무드’가 그들의 생활 지침으로 어린아이에게 가르치고 있다.
인생은 주어진 삶에 자기의 노력과 뜻대로 사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능동의 삶에서 한계와 벽을 만나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즉 능동의 삶에서 수동의 삶으로 바꾼다. 나는 오십 전후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나를 있게 한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려고 방향 전환을 했다.
우리는 절대자의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분의 모습으로 태어났기에 각자가 거룩한 존재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주어진 능력을 다 하면서 사는 게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성을 쌓아 신의 본성에 다가가는 삶이 목표이고 목적에 이르는 삶이다.
새롭게 변화하는 부활과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정경의 말씀은 삶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기쁜 소식이다. 나는 그 말씀을 삶의 지표로 내세우며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자주 그 말씀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시다.(필리 2,13)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낸다.(로마 5,3-4)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聖殿)이다.(2코린 6.16) 깨어 있어라(마태 24,42)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예수께서 마지막 떠나시면서 사도들에게 부여한 사명은 왕직, 사제직, 예언직이다. 우리는 평신도로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명을 받았다. 봉사의 삶, 기도하는 삶,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삶이다. 이스라엘 왕은 기름부음받은이로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백성에게 봉사하는 직이다. 우리도 공동체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제의 주 임무는 미사를 집전하며 봉헌하는 삶이다. 우리도 함께 참여하여 봉헌하고 있다. 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아 실천하고 있다.
나는 예언직을 수행함에 있어 ‘문서 선교’를 하고 있다. 우리 일상의 삶을 신앙과 결부하여 글을 쓰고 있으며 카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문서 선교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초대에 응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작성하여 올리고 있다.
믿음은 혼자 집에서 조용히 하면 되지, 왜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까? 신은 세상의 피조물을 만들어 서로 조화와 친교, 사랑을 나누라고 했다. 그 말씀은 혼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친교니 조화, 사랑이 필요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나 혼자 잘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선의 목표를 삶의 지표로 삼아 서로 조화와 친교,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삶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