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시 큰형수의 집(북실리 주공아파트)에 나와 애산리에 있는 하나로마트에서 큰형수는 알타리 등 장을 봤고 작은 누나부부는 정선사과 등 장을 봤으며 매형이 큰형수를 집 까지 모셔다 드렸다.
누나가 메밀전과 전병을 사는 회동집이 휴무라 팔도식당에서 샀고 제천제분소에 떡을 사고 마른 강냉이를 사고 생탄 상회에서 마른나물 등을 샀으며 3년 여후배인 생탄상회 여 사장과 셋이 대화했다.
매형이 정선파출소앞에 있는 농협에 계셔서 내가 짐을 실었 고 정선교육청 등에 주차 못 시키고 1년 선배가 하는 유료 주차장에 박킹했는데 장날이 아니라 선배가 안 계셨고 시장내 봉우네에 갔다.
봉우네는 2017년 곤드레요리 경연대회 대상(상금 1백만 원) 받은 곳으로 봉우는 여사장의 남편 이름이다. 고등어 조림으로 용탄출신으로 음식 대상 수상은 심사위원이 외지분들이라 가능했다.
11시 30분인데 군청직원들 점심 예약으로 누나가 먹고싶 은 생선구이는 안된다고 해서 조림 시켰고 매형과 나는 만두국을 주문을 했는데 생선조림이 2인부터 되서 만두국은 1인분만 시켜야 했다.
내가 교육청옆 농협에 가서 현금을 찾아와서 31,000원 미 리 계산 했고 2인분 같은 만두국이 나오고 조림은
]3인분 같은 2인분이 나왔는데 내가 봉우와 절친한 후배와 자주 왔기 때문에 대우받았다.
주차장옆 정선향교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고 내 유년시절 때 다닌 장로교회는 정선중앙교회로 이전하여
근처에 있었으며 누나가 단팥빵을 사러가서 주차장에서 차를 뺐는데 주차비는 내지 않았다.
단팥빵이 가성비가 없다고 판단한 누나는 사지를 않았고 부 모님 산소가 있는 여탄리에 갔다. 6.25사변 때까지
아버지가 태어나고 사신 곳으로 '동막'이고 부르는 동네로 옛날 누에고치가 성업했다.
옛날 여탄분교 뒷산에 아버지 유언을 받들어 나와 동생이 주관이 되서 석관으로 되어 있는 부모님 산소에서
어머니 23주기를 맞아 누나가 준비한 재물로 내가 절을 했고 누나 부부는 기도를 했다.
나 혼자 대표로 큰형의 산소에 메밀전병 하나로 절을 하고 남은 술을 무덤에 다 부어 주면서 부모님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큰형에 대한 원망이 스쳐 지나갔고 환갑도 안돼 떠난 형이 안스럽기도 했다.
산소 근처에 사과나무에 사과가 메달려 있는데 안 따서 땅 에 떨어진 사과도 있어 사과 4개를 따서 누나를 줬고 누나 부부가 짐 정리하는 동안 겨울에 뚜가리와 개구리를 잡던 실개천따라 산책했다.
누나의 지인들이 흑염소를 사 먹는다는 '가리왕산건강원'은 나보다 한살많은 9촌 조카가 했던 맛집의 옆에
있었고 주인 부부는 온화하셨고 바깥주인은 감리교회 장로고 아들은 목사로 찰 신자다.
30년 넘게 흑염소 키우면서 해 왔다고 하셨고 우리 큰형의 1년 후배로 1917년생인 우리 사촌형님을 잘 알고
있다면 서 꿀 한 병을 주시는데 누나가 받지 않았고 흑염소 3봉지는 시식용이라 먹었다.
화교가 하던 동흥루자리에서 곤드레맛집을 해서 3층 건물을 짓고 살고있는 한치출신 누나(나보다 5살 연상)를
만났다. 누나 부부가 50년 전에 우리 집에서 일을 했는데 남원출신의 남편은 작고했다.
우리 아버지가 수양딸처럼 이뻐해서 누나와 나와 셋이서 1971년 여름방학때 둘째형이 근무하는 삼척에 같이
간 적이 있고 1972년 부모님이 광주대단지로 이사가시자 따라 나서 공장생활도 하셨다.
누나부부와 동흥루자리인 백다방(인테리어 4억)에서 차 마 시는 동안 나는 읍내투어에 나섰다. 백다방 옆 친구의 아내가 하는 술집(토마토)는 4촌 형님(1922년생)이 하시던 '정선약국' 자리다.
앞에 있는 팬시랜드는 '옥서점' 자리고, 옥서점 골목 첫째 왼 쪽 집은 둘째 형의 친구(악국 형수의 6촌 동생이
부인) 집이고 정선시장 서문입구 정관장은 우리 아버지가 사 준 둘째 큰 아버지 집이었다.
신협은 우리 아버지 친구분이 하신 양조장 자리고 아들은 민선 군수 1~3대 했는데 내 둘째 형과 절친이고
그 옆에 강원일보 정선지국에 가니 부친(옥서점의 골목길 집주인)에 이어 막내아들이 한다.
건너편 목욕탕 자리의 '정선몰'에 갔는데 운기석(橒氣石)을 가공해 만든 주얼리와 생활용품을 취급한
쇼핑몰이다. 운기 석은 혈액순환과 관절, 근육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각종 미네랄 성분이 함유됬다.
이 곳은 남매가 창업했는데 이민경(46세), 이동암(52세)다. 어머니와 민경 씨가 있었다. 우연히 운기석 광산을
발견한 아버지로 인해 민경 씨 가족은 30년 전 태백에서 정선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부친이 돌아가신 뒤 남매는 인생이 바뀌었다. 부친이 남기 고 간 광산을 버려둘 수 없어 하던 일을 뒤로하고
운기석에 매달렸고, 부친이 하던 사업 대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다가 현재의 사업을 했다.
한자로 나무무늬 운(橒), 기운 기(氣), 돌 석(石)의 운기석은 수억 년 전 바다였던 정선 땅이 돌출해 육지로 변했고 그 깊은 바닷속 이암과 해초 등이 오랜 세월 지나서 화석으로 뭉쳐 운기석이 됬다.
내가 민경 씨에게 최근 KBS1 ‘동네 한 바퀴’에서 이만기가 진행한 방송을 봤다고 했고 운기석과 결혼한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했더니 오는 11일부터 이틀간 이곳에 하는 '핑거푸드 쇼게이스"에 오라고 했다.
'갖고싶다 정선아' 운기석 팔지를 사고 싶었으나 참고 내가 태어난 문화슈퍼마겟 골목에 진입하니 담에
꽃바구리가 쭉 걸려 있어 보기 좋았고 골목이 끝난 지점에 내가 중학교때까지 살던 집이 나왔다.
전의원 자리로 늙은 의사분이 타계하여 공실이다. 아들이 전준호는 유명한 시인으로 7년 후배다. 전 시인의 시집 '정선'은 정선의 풍광과 풍습, 사람과 삶, 언어와 기억을 담아내서 편운문학상을 받았다.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전 시인의 시선은 노상 정선으로 향한다. 첫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부터 다섯 번째 시집 ‘천사의 나라’까지 그의 시에는 정선이 빠짐 없이 등장한다.
시는 “할머니들이 부침개를 파는 골목을 어슬렁 거리고 함 석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들으며 옥수수막걸리를
마시던 친구들”과 “뒤통 수만 보여 주며 달아나던 처녀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메밀전병 부치는 할머니들”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정선5일장 가 보고 썼다. 이어 몰운대, 강 건너 오두막, 별어곡역, 역전으로 가는 다리 등 옛 흔적을 더듬었고 백양다방도 등장한다.
내가 2살부터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살던 집앞 백양다방은 1965년 개업하여 목상들 사무실 역할을 했던 곳으로 지난해 6촌 동생이 정선군수 출마할때 쌍화차 3잔(1잔 6,000 원)을 팔아 줬다.
당시 레지가 5명이 있었는데 2명에게 '차' 사 줬다. 코로나 19 사태 전만 해도 레지가 10명이었다고 했고 내가
다방을 간 이유는 선거 운동도 있지만 외장이 옛 모습 그대로인데 실내가 궁금해서 였다.
누나가 화암면 한치출신 누나에게 선물하자 꿀 2병을 선물 받았고 내가 재촉하는 바람에 자리가 끝났고
누나가 정선사과가 가성비가 있다고 다시 하나로마트가서 사고 큰형수에게 과일을 갖다 드렸다.
오후 4시 40분 북실리에서 출발할때 국도에서 차멀미때문에 누나 가 앞자리에 앉아 가고 고속도로 출발지인
새말에 가서 내가 앞자리에 앉았고 매형이 하루 2시간씩 직장에서 운전해 운전을 했다.
네비게이션이 양평으로 알려줘서 고속도로 나와 국도가는 데 지체와 정체로 오후 7시 25분 누나의 11살 어린
절친의 하남시청부근 아파트에서 메밀부치기 등 선물하자 답례로 내게 반찬을 줬다.
최근 누나는 반찬을 줘서 재고가 있어 나까지 챙겨줬고 다음주에 내 생일을 그냥 넘겨서 술 한잔하기로 했다.
누나 집에 짐을 풀고 오징어 2마리와 사과 2개만 내가 갖고 간다고 했고 절친집에 갔다.
매형이 내 절친에게 차 넘기면서 전병과 송편을 줬고 절친이 매형과 나를 집과 전철역에 내려 줬고 차는
큰누님의 장남이 오너로 있는 회사 차로 절친이 부사장으로 근무중인데 예전에는 상사였다.
친구 만나 닭날개에 이어 꼬막으로 2차까지 소먝하고 새벽 1시에 귀가했다. 원문이 길어 뉴스는 생략하며 오후
부터 밤 사이 중부 지방에 비가 오고 서울 낮 기온 17도로 목요일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