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은 상관없는 전화야. 유미코. 이제 그만 가지, 그래? 여기는 너 같은 경찰이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 귀찮게 달라붙지 말라는 듯이 핫 핑크의 폭탄 머리 유미코를 노려보면서 준이 말했지만, 그녀는 간단히 그의 말을 무시하면서 그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야, 다케시나 준! 너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이 자식아! 그거 시호 전화잖아! 시호한테 또 무슨 일 생긴 거지?" "......" "그런게 아니라면 네가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리가 없잖아? 시호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끈질긴 유미코의 물음에 준은 귀찮다는 듯이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한마디 하려 하다가 급하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결 좋은 붉은 머리의 미소년을 보고서 가만히 멈추어 서 있었다. "어.. 류이치~?" "...또 멋대로 저택에 들어와, 계시는 겁니까? 아가씨도 안 계시는데 너무 제멋대로이시군요. 유미코상." "너무해, 시호가 있을 때는 들어 와도 된다는 소리인가 보지? 그런데 켄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오는 거야?" 유미코와 아는 사이인 듯 보이는 이 미소년은 간단하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켄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준에게 시선을 옮겼다. "켄은 아사노님 도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준님." "뭐지?" "급하게 보셔야 할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간부들을 소집하려고 했다." "......!!" 간부들을 소집하려 했다는 준의 고백에 두 사람은 조금 놀라는 듯싶었지만, 그의 곁에 계속 붙어 있었던 유미코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곧 침착하게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아끼는 시호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을 파헤치는 건 위험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지금 준이 자극하고 있었다. "간부들은 물론이고 아사노도 지금 당장 불러들이도록 해." "예? 아사노님도 들이실 생각이 십니까?" "그래." 아사노를 불러들이겠다는 준의 말에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놀라고 있었다. 처음 아연이 이 집안에 들어왔을 때에는 겨우 일곱 살이 되던 어린 아이였고 준은 만약 그녀와 같이 회장의 후계자가 없다면 다음 대 차기 '사황(蛇黃)'을 이끌어 갈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연을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녀의 교육 담당자가 되었다. 하지만, 워낙 약한 걸 싫어하던 준이기에 그는 끊임없이 아연을 괴롭혔고 그런 그녀의 유일한 방패가 되어 준 사람이 바로 '아사노 치로쿠(치로)'로 준과는 이복형제 관계이면서 그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밖에서 낳은 아들이다. 또 다른 아연의 보좌관인 치로는 준을 무서워하면서도 그에게 대들 수 있는 인물이면서 준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와는 다섯 살 연상의 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문에 대한 긍지가 높은 일족인 준의 집안(준도 포함) 그를 미워하고 있으며 특히 지금은 아연을 인정했지만 아직 그를 인정하지 않아서 특별히 그 두 사람의 아버지나 회장이 직접 찾지 않을 때에는 이 본가에 발을 들이지도 않는다. (어차피 준의 심술 때문에 들어오지도 못지하지만..) 그런데 준이 먼저 그를 찾는다는 것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거나 위험하게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거기까지 간파한 유미코는 여기서 물러나야 할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파고들어야 할지 고민하며 그를 살피고 있었다. "내 말을 못 들은 건가, 류이치? 간부들과 아사노를 지금 당장 불러들이고 30분 후 매실에서 회의를 시작한다. 전해라." "알..알겠습니다! 당장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싸늘한 준의 눈초리를 받자, 류이치는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유미코를 그냥, 지나쳐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준 역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데, 유미코가 그를 막아서며 물어 왔다. "아무래도 시호, 아니 사황의 소중한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보지? 그 아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본가를 버리고 움직일 리 없으니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유미코?" "그냥.. 난 내 소중한 친구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주 조금 알고 싶을 뿐이야. 준.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아사노 오빠까지 부른 걸 보면 일이 있는 거잖아?" "친구? 넌 친구라고 하면서 그 친구의 정보를 그들에게 팔아넘기나 보지? 하긴.. 그렇게 해야지. 그 목숨 값이라도 벌 수 있겠지." ".....너.." "더는 깊게 파 고들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아가씨께서 아끼시는 너라고 해도 내가 널 못 건드릴 이유 따위는 없어." 분노에 부들 떨면서 유미코가 그를 노려보는데에도 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웃으며 말해왔다. "결국, 그 말은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래, 아가씨의 인형인 너 하나 망가뜨린다고 해서 그 누가 나를 건드리겠어. 안 그래?" "......미친놈. 단단히 미쳤군아! 만약 시호가 너 때문에 다치면 그때는 내가 널 용서 안 해."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으니까." 차가운 준의 시선을 그대로 바라보다가 곧 뒤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기는 유미코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역시 그 검은 날개 '사쿠라이 시호'를 키워낸 다케시나 준 답군. 그래. 키킥.. 이대로 있다가는 저 미친개가 결국에는 당신의 조카를 물어뜯어 죽일지도 몰라. 국장님." 싱긋 웃는 유미코의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은 어느새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었다. .... ........ "뭐? 방금 뭐라고 했어?!" 먹던 아이스크림마저도 떨어뜨릴 기세로 놀라는 아영을 보면서 운현은 스스로 기특하다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따 12시 30분부터 아쿠아룸에서 돌고래쇼가 있다고 했어. 그리고 거기다가 보러 갈 생각 없느냐고 물었어." 운현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아영 또한 마음 편하게 웃어 보이면서 그를 올려 다 보고 있는데 이때 준과 유미코 각자가 그녀에게 이런(?) 위기가 닥친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전혀 알 리가 없는 아영은 웃다가 물었다. "그러면 다른 애들은?" 이 녀석이랑 둘이 가기는 좀 뭐 하단 말이지. 꼭 데이트하는 것 같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좀 바보 같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보고 싶다. (곰 인형만큼이나 유독 귀엽고 동물을 좋아하는 아영이다.) 너무... 보고 싶어.. 그런데.. 둘이서 같이 보러 가기에는.. 좀.. 그렇기도 하고.. 으아~ 이러는 거 준이 알면 많이 화낼 텐데.. 아.. 참.. 다시 전화해야겠지? 안 그러면 그 성질머리에 뭐라고 나올지. 웃다가도 준이 생각나서 얼굴이 굳어진 아영을 보고서 운현은 눈썹을 위로 비틀다가 슬쩍 그녀의 손에 자기 손을 넣어 잡으며 말했다. "이따가 1시쯤에 모이기로 했으니까. 그때 문자 해 보지, 뭐. 자, 그럼. 갈까?" ".....어..어?" "가. 자. 고. 설마? 안 갈 생각이야?" "아니.." 그런 아닌데 말이지. 왜, 갑자기 내 손을 잡는 거야? 어? 사람 기절시킬 일 있는 거야? 역시 아까 이 녀석 때문에 넘어져서 머리를 다친 것 같아. 이거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에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일단은 즐기고 보자. 그렇게 어디선가 일본에서는 자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이 땅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아영은 그저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운현의 손을 잡은 채 말이다. ◆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에 한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회색 줄무늬 양복을 입고서 남자는 초조한 듯 자기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었다. 내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랑'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그는 긴장한 얼굴로 문을 바라봤고 곧 그 앞에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지긋한 나이에도 미모가 가시지 않은 중년의 여성으로 곱고 투박한 흰 원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여자가 자기 앞에 멈추어 서자, 시우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윤 사모님." "오랜만이네요. 시우군." "네, 일단은 자리에 앉으시죠?" 곱게 웃어 보이면서 자리에 앉는 여자는 분명히 시영남매의 어머니이자, 지금 이 시간이면 남편과 함께 강 회장에게 식사 대접을 해야 할 '윤아영'이었다. 인테리업계에 손 곱힐 정도로 유명한【 마루 】 유 회장의 부인이기도 한 그녀가 지금 시우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앉자, 시우 역시 곧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종업원을 부르려 했는데, 사모님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차피 잠깐 강 회장이랑 식사하러 나온 거라서 금방 들어 가 봐야 해요.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 사람이 날 의심할지도 모르고 말이죠." 세상은 그녀가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사는 순종적이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소녀 같은 감수성에 걱정 없이 사는 여자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그녀 일부만을 아는 것일 뿐. 한때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남자가 죽고 '윤아영' 그녀는 스스로 변했다. 그가 남긴 하나뿐인 '아들'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의 고운 얼굴 선과 이목구비는 시환과 닮아 있는 것 같지만 당당하게 사람과 눈을 마주쳐 오는 것은 아영과 닮아 있었다. 윤 사모님의 눈을 바라보면서 시우는 그녀 속에 아연(윤아영)이 보이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역시 아무리 봐도 너무 닮으셨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죽지 않았나요." "......" "그때 운현이 그 애가 직접 시체를 확인했다고 했으니 말이죠. 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시우군?" 딸인 아연이 이미 3년 전 끔찍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들은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제는 눈물조차 말라 버렸으니까. 시우는 자기 옆에서 둔 서류뭉치 속에서 일단은 두 장의 사진을 꺼내 들며 말했다. "바쁘신 것 같으니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요." "일단 이 두 장의 사진을 봐 주시겠습니까?" "........??" 시우의 말에 그녀는 궁금해하면서 두 장의 사진을 받아 들었다. |
첫댓글 아이가 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