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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를 따라 여행하다 보면 뜻밖의 곳에서 풍경의 보고(寶庫)와 만날 때가 있다. 늘 평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곳인데도 시점의 차이로 인해 전혀 새로운 풍광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땐 정말 횡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34번 국도가 그렇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봄을 34번 국도 변에서 찾은 듯하다.
벚꽃은 여전히 만개해 있고, 산자락 따라 진달래와 개나리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3
4번 국도의 끝, 경북 영덕에는 복사꽃의 진분홍 아우성이 한창이다. 벌과 나비를 희롱하는 하얀 배꽃도 빼놓을 수 없다.
예년 같으면 순차적으로 피고 졌을 꽃들인데 더디 찾아온 봄은 여러 꽃을 동시에 피웠다.
그 덕에 우리 눈도 유례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틀에서 벗어난 계절의 순환이 염려되는 마음 없지 않으나, ‘일반 국도’ 34호선의 풍경이 아주 ‘특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 애절한 사부가(思夫歌)는 꽃잎 되어 날리고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을 나와 안동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34번 국도다. 충남 당진과 경북 영덕을 잇는 304.7㎞ 길이의 도로. 어디라 할 것 없이 수려한 풍경과 나란히 달릴 수 있으나, 이맘때라면 경북 안동에서 영덕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빼어나다. 안동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안동댐 아래 월영교(月映橋)다. 달빛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뜻의 다리.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 인도교다. 최근 만개한 벚꽃과 어우러져 절정의 풍광을 뽐내고 있다. 월영교는 미투리를 형상화해 지어졌다고 한다. 보통의 미투리가 삼이나 모시 등 가늘게 꼰 줄로 만드는 것에 견줘, 월영교의 모티프가 된 미투리는 한 여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줄기와 함께 만들었다는 것. “그 미투리에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에서 미라 상태로 발견된 이응태(1556~1586)와 ‘원이 엄마’로 알려진 부인의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원이 엄마’는 병마에 시달리던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꿰 미투리를 만든다. 어서 일어나 미투리를 신고 돌아다니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이응태는 미투리를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만다.” ‘원이 엄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절절하게 담긴 한글 편지를 미투리와 함께 남편의 품에 넣어줬고, 412년이 흐른 뒤 한 양반가의 묘를 이장하던 중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003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월영교가 세워진다. 아마도 미투리는 짚신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부인의 남편에 대한 정성이 갸륵하다. 과연 요즘에는 이런 사랑이 있을런지. 민속박물관에 가면 이 편지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보는이의 눈시울을 적시도록 그 편지의 내용이 애달프다. 이혼, 살해, 보험사기 등등 부부라기 보다는 원수가 될 수 있는 요즘의 세태가 참 아쉽기만하다. 물론 행복하게 서로를 아껴주면서 살아가는 부부들도 많치만.작년 여름에 가서 본 월영교와 민속박물관은 한마디로 아름다운 경치이다. 특히 원이엄마의 스토리는 애닮다..저런 사랑을 해봤으면 싶다.ㅎ 안동댐에서 나룻배도 타볼수있고 예전 드라마 왕건의 셋트장도 있다..물론 지금이야 관리부실로 좀 글치만..그리고 이곳은 우리나라 배스인들의 성지와 같은곳이다. 보팅이건 워킹이건 배스낚시대와 루어를 챙겨가면 씨알좋은 배스들을 만날수있다...
현지 주민들은 밤이면 늘 두 개의 달이 월영교 위로 뜬다고 했다. 하늘에 뜬 달과 물 위에 비친 달이다. 둘은 밤이 이슥하도록 서로를 보듬다, 새벽녘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질 터다. 정하동 안동지방법원 앞에도 ‘원이 엄마’를 형상화한 ‘아가페상’이 서 있다.
● 진분홍빛으로 물든 영덕
월영교를 지나 낙동강 상류에서 만나는 벚꽃 군락도 아름답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났던 이 길에 저런 자태가 숨겨져 있었던가.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임하호 주변 풍경도 쉬이 발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 하지만 영덕으로 향하는 길은 무엇보다 복사꽃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김종제 시인이 시 ‘34번 국도’를 통해 ‘34번 국도에 복사꽃 아닌 배경 없다.’고 썼듯, 이맘때 복사꽃을 빼고 34번 국도를 말할 수는 없다. 복사꽃처럼 스펙트럼이 다양한 꽃도 드물다. 무릉도원(武陵桃源), 도원경(桃源境) 등 이상향을 상징하는 꽃으로 떠받들어지다가도, 이내 도화살 혹은 도화기를 상징하는 천박한 꽃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염집 마당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은 것도 복사꽃의 화사한 빛깔과 은은한 향기에 취해 과년한 딸이나 새색시의 춘정(春情)이 살아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기운을 더해가는 복사꽃이 바람에 날릴 때면 같은 빛깔의 다른 꽃들보다 더 정신을 혼몽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영덕의 4월은 한마디로 싱싱하다. 바닷가 언덕배기엔 훌쩍 자란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이고, 구릉 곳곳에 펼쳐진 복숭아밭마다 핑크빛 복사꽃이 쪽빛 하늘과 맞닿아 피어오른다. 경북 내륙에서 영덕을 찾으려면 황장재라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안동에서 청송을 지나 영덕으로 이어지는 34번 국도에 위치한 험한 고갯길이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짙은 소나무 숲과 산벚꽃, 조팝나무, 진달래 군락이 이어져 풍광이 일품이다. 삼화리, 황장리, 지품리, 복곡리 등 영덕군 지품면 일대 산과 들에서는 때를 맞춰 핑크빛 복사꽃이 만발한다. 가파른 산비탈에도, 물가의 평평한 밭에도 온통 복사꽃 천지이다. 특히 쪽빛 하늘과 분홍빛 복사꽃, 초록색 보리밭의 어우러짐이 압권이다. 복사꽃 물결은 강구항을 통해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을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영덕읍과 인접한 화개리 오십천변을 따라 번져 오르는 분홍의 꽃사태는 지품면 삼화리 언덕배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올해는 삼화리 일대의 복사꽃이 볼만한데, 이들 지역은 최고의 사진 촬영 포인트로 통한다. 오십천부터 영덕까지는 온통 복사꽃 세상이다. 자유무역협정 등의 영향으로 2003년에 비해 절반 넘게 복숭아밭이 줄긴 했으나, 여전히 영덕의 봄은 진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특히 지품면 삼화1리는 영덕을 대표하는 복사꽃 마을이다. 마을 이정표를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복숭아밭이 펼쳐진다. 삼화1리 마을에서 내려와 달산면 옥계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69호선에서도 복사꽃들의 축제는 이어진다. 완전 폐허로 변했다. 농민들은 태풍의 상흔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때문에 영덕의 4월에 피어나는 복숭아꽃은 농민들이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선 노력의 결실인 셈이다. 영덕 초입, 오십천 즈음에 이르면 수박 냄새가 나는 듯하다. 복사꽃 필 무렵 황금빛 테를 두른 오십천 은어가 고향을 찾아 바다에서 민물로 오르기 때문이다. 1급수 여울에서 물이끼만 먹고 자라는 은어의 속살에서는 수박향이 난다고 했다. 은어는 예전 임금님 수라상에도 진상 되었다는 깨끗하고 맛있는 민물고기다. 섬진강에서도 긴 장대낚시대를 이용하여 은어를 잡고 있는 촌로들을 마주할 수 있다.
한여름, 피서 삼아 영덕을 다시 찾는다면 포실해진 녀석의 살점부터 맛볼 일이다. 그때는 은어를 직접잡아 수박향 냄새를 즐겨야겠다.
영덕군은 새달 26일 등 매달 보름이 가까운 토요일에 ‘동해안 달맞이 야간산행’ 행사를 벌인다. 풍력발전단지를 출발해 해맞이공우너, 창포리 물양장 등 7.7㎞를 돌아 온다.
◆ 청정 동해와 함께 하는 트레킹 코스 '블루로드'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저마다 순 우리말로 비슷한 길 이름을 짓다보니 어느 지역의 것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걷기길. '블루로드'를 아는 사람들은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입을 모은다. 비록 순우리말은 아니라지만 해변을 끼고 걷는 코스의 특성을 곧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싱그러운 피톤치드 속에 멀리 펼쳐진 동해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숲길이다. 아울러 해맞이공원~대탄~석리~경정~차유~축산항을 거치는 B코스(15km)는 영덕 해안의 진수를 맛보는 코스이다. 아름다운 바닷길을 굽이돌며 표주박처럼 들어선 갯마을 포구를 경유하는 그림 같은 트레킹 길이 펼쳐진다. 마지막 C코스는 축산항~대소산 봉수대~목은 이색(고려시대 학자)의 산책로~괴시리 전통마을~고래불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문화유산 답사길이다. 아름다운 자연 이상으로 영덕의 내력과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부터 길바닥에 노란색 화살표를 그려두었다.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10분 남짓이면 마을 뒤 언덕배기에 오를 수 있다. 자그만 오두막이며, 빈집이 섞여 있는 전형적인 바닷가 산동네의 모습이 정겹다. 집주인의 알뜰함을 엿볼 수 있는 한 뼘 만 한 텃밭들은 냉장고 야채칸에 다름없다. 텃밭 옆에는 벤치도 마련해 두었다. 다리쉼을 하며 강구항의 전경을 굽어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인 셈. 강구 앞바다에서 자란 황어는 이 봄 오십천을 거슬러 영덕읍까지, 은어는 달산 옥계계곡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중에 금진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도 놓여 있는데, 편안한 흙길 주변에는 요즘 야생두릅, 고사리 등 싱싱한 봄나물이 지천이다. 들어서면 마치 한편의 공상과학영화 속에 빠져 드는 느낌이다. 절경을 자랑한다. 특히 표주박만한 작은 포구가 인상적인 석리는 편안하게 머무르고 싶은 호젓한 갯마을이다. 어촌 체험마을인 이곳은 주변 경관도 아름답거니와 방파제 구조물로 바다를 막아 갖춘 해수풀 등이 있어 가족단위 여정을 꾸리기에도 알맞다. 마을 어귀 석동횟집은 영덕블루로드 스탬프를 받는 포인트. 해변에 몽돌이 많아 '석리(石里)'로 불리게 된 이 마을은 이름값이라도 하듯 돌김이 유명하다. 1장에 2000원을 호가 한다고 하니 엄청 비싼 김이다. 석리~차유마을 가는 길은 비경 못지않게 학꽁치, 졸복, 고동 등 풍성한 어패류가 서식하는 꾼들의 포인트이다. 차유 마을 입구에는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를 닮았다하여 '대게'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경정리에서 축산에 이르는 길은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마치 조롱박처럼 앙증맞은 해변이 운치 있다. 영덕 토박이들이 으뜸으로 치는 트레킹 코스이다. 봉수대 앞에 서면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고 그 아래 해안길이 이어진다. 고택이 늘어선 괴시 마을은 제법 규모가 큰 전통마을이다. 대진해수욕장, 덕천해수욕장을 지나면 명사 이십리가 펼쳐진 '고래불' 해수욕장이 나선다. '고래불'은 목은 이색선생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가 노는 뻘'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에서 유래했다. 블루로드의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 여행정보
가는길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안동~34번 국도 청송~진보~영덕읍(7번 국도)~강구항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안동가는버스가 자주 운행하고 영덕은 안동을 경유, 영덕으로 향하는 시외버스 1일 9회 운행. 4시간 30분 소요. 영덕읍과 강구항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자주 있다. 올라올때는 영덕에서 울진-삼척-동해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7번국도를 이용하면 동해의 경취를 감상할 수 있다.
블루로드 소요시간 = A코스 6시간, B코스 5시간, C코스 6시간.
안동시 관광안내소 851-6397.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730-6396.
먹거리
영덕의 대표 먹거리는 단연 대게. 5월 말까지는 속이 꽉 찬 대게를 맛볼 수 있다. 구항 인근에 대게종가(733-4147) 등 대게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1만원짜리부터 18만원짜리 ‘박달대게’까지 다양하다. 오십천 인근 화림산 가든(733-1077)은 은어요리로 입소문 난 집. 안동에서는 헛제삿밥을 맛봐야 한다. 안동댐 월영교 앞 ‘맛 50년 헛제사밥’이 많이 알려져 있다. 821-2944. 안동찜닭 전문점은 안동 구시장 주변에 몰려 있다.
잠잘곳
안동에서는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농암종택과 오천군자마을, 수애당, 지례예술촌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하고 있다. 안동관광정보센터(tour.andong.go.kr) 856-3013. 영덕군은 풍력발전단지 내에 캡슐하우스 단지를 조성했다. 5월 시범운영 뒤 6월부터 일반인의 신청을 받는다. 삼사해상공원의 동해해상호텔(733-2222), 삼사파크모텔(733-3001) 등이 비교적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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